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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이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77.5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2. 23. 15:07
박연지 수습위원
©네이버 영화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가족’의 형태에서 벗어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시바타 가족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깊은 정서적 유대를 나누고 생활 공동체를 이루며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가족’의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다.
비단 영화 속 세계에서만의 문제일까? 현대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의 법률과 제도는 혈연과 이성애를 중심으로 하기에 현실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교육부 누리집 위 그림은 2020년 교육부가 제작한 카드뉴스이다. 카드뉴스 속 인물들에 대한 설명은 나와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부가 이들을 ‘가족’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왜 하필 교육부는 ‘혼인 관계에 있는 이성애자 남녀와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가족’의 대표 이미지로 삼은 걸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법률혼으로 맺어진 이성애자 남녀와 이들의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사회 및 문화적 구조와 사고방식을 말한다.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하에서 사회와 국가는 이를 벗어난 가족 형태를 ‘비정상’이라 간주하며 차별하고, 가족 내에서는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가족을 지배한다.ⅱ)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는 남성은 생계부양자이고 여성은 가사전담자라는 성차별적 성별분업 이데올로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ⅲ)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견고해질수록 ‘정상’의 범주 밖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사회를 지배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우리나라의 현행법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행법이 정의하는 ‘가족’은 개별 법률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 글에서는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민법』과 각종 가족정책의 법적 토대인 『건강가정기본법』에서의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
①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제1항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 한한다.<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정의)
1.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법률1)상의 가족 정의는 ‘혈연과 이성애’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굉장히 한정적이다. 법률에서와 달리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이 각자의 선호와 삶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1인 가구, 동성‧이성 동거커플, 비혼공동체, 성소수자공동체, 3인 생활동반자 등. 법률이 이들을 정의하지 못하기에 사회는 이들을 ‘정상’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결격된 존재’ 혹은 ‘미완성의 존재’로 여긴다. 따라서 이들은 법률의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상’이라는 울타리 밖의 차별들
우리나라에서 ‘혈연과 이성애’란 곧 ‘정상’을 의미하고, ‘정상’의 범주에 드는 가족만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정상’이라는 울타리 밖의 가족이 겪는 일상적‧제도적 차별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글에서는 법 밖의 가족이 겪는 제도적 차별 중 대표적인 것들을 몇 가지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주거정책에서의 차별
정부가 정책적으로 주거공급을 좌지우지하는 한국 주거정책의 특성상, 정부의 가족정책은 주거정책에도 깊이 반영된다.ⅳ) 그렇기에 주거 문제는 법 밖의 가족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느끼는 차별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주거 지원 제도는 대부분 ‘정상가족’을 위한 제도이다. 법 밖의 가족은 주택 분양시 청약가산점을 인정받지 못한다.ⅴ) 신혼부부나 다자녀 가구 등 ‘정상 가족’을 위한 주거비 지원 혜택 역시 받을 수 없다. 전세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금융에서의 차별도 존재한다. 또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상 임차인 사망시 법률상 가족이나 사실혼 이성 배우자가 아닌 생활동반자는 임대차 승계 권리에서 배제된다.
2. 피부양자 인정의 문제
법률상 가족이 아닌 생활동반자는 부양관계로 인정되지 않아 소득세 인적공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 자격에서 배제된다.
3. “도와줄 권리”ⅵ) 박탈
법 밖의 가족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가족돌봄지원에서 배제된다. 질병, 노령, 사고 등으로 가족에게 돌봄이 필요할 때 돌봄 휴직을 사용할 수 없으며 출산 휴가과 육아 휴직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 또한 생활동반자 관계에서는 가족요양보호 제도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가족으로서 일상적 업무를 대리할 자격 혹은 대신 결정할 권리에서 배제된다는 것도 문제이다. 수술 등 의료결정권도 보장받지 못한다. 같이 사는 사람에게 급한 수술이 필요할 때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하는 것은 법 밖의 가족에게 큰 무력감을 안긴다.
4. 가정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박탈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가정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이다. 두 법이 보호대상으로 지정하는 ‘가정구성원’은 배우자와 동거 친족을 비롯해서 이혼한 전 배우자, 전 배우자의 부모, 부모의 새 배우자로 한정되어 있다.ⅶ)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생활동반자는 가정폭력을 당해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호받지 못한다.
5. 장례를 치를 권리 박탈
법률상의 직계가족이 아니라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의 연고자 자격에서 배제된다. 아무리 함께 산 기간이 길고 정서적 유대가 깊은 사이여도 상대방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것이다.
울타리의 폭을 넓히는 생활동반자법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두 명의 성인이 함께 살 때 필요한 사회복지혜택과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고, 동거생활을 시작하고 해소할 때 필요한 절차를 규정하는 법이다. 이 법이 규정하는 ‘생활동반자 관계’란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루어진 민법상 가족이 아닌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를 말한다.ⅷ) ‘생활동반자법’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쳐놓은 견고한 울타리 밖의 사람들도 ‘가족’의 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게끔 한다.ⅸ)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면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 안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활동반자법’에도 한계는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하지 않은’ ‘두 명’의 ‘성인’의 관계에 한정한다.ⅹ) 생활동반자 셋 이상이 가족을 이룰 수 있도록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법은 가족제도의 근간을 건드리지는 않고 기존의 가족제도를 보완하는 법이라 볼 수 있다.ⅺ) 생활동반자 셋 이상이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활동반자법’을 구상할 때보다 밀도 높은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울타리가 해체될 때까지
“어쩌면 세상의 기준에서 나는 철저하게 불온한 연애와 가족 공동체를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와 이 관계가 불온하다고 손가락질받을 일이라면, 나는 불온한 존재 그대로 남아 그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을 해체하는 아름다움이고 싶다.”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홍승은
모든 범주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가 가지는 상상력의 범위에 따라 움직인다. 과거에 사람들이 ‘정상’이자 ‘규범’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 현재에는 ‘비정상’이자 ‘탈피 대상’이 되어버린 것들이 많다. 인류가 상상력의 범위를 넓힘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움직인 것이다. 이처럼 상상력에 따라 경계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정상’이라는 건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는 개별적이며 유일하다. ‘가족’도 우리가 맺는 관계 중 하나이다. 그런데 사회는 개별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눈다. 이 사회에서는 ‘혈연과 이성애’ 중심의 가족 구성만이 ‘정상’이자 ‘규범’이다. 관계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역시 인간의 허상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의 ‘정상’ 기준이 누군가를 사회에서 지우고 법과 제도의 보호 밖으로 내몬다면 이는 곧 폭력이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는 ‘정상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해체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각주>
1)이 문단에서 언급하는 ‘법률’은 모두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을 기준으로 한다.
<출처>
ⅰ)조성은, 『사유리, ‘정상가족’ 신화에 돌을 던지다』, 2020.11.19.,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11913503787051> 마지막 검색일: 2021년 1월 14일
ⅱ)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2017, 10쪽
ⅲ)조주은 (2005), 『'정상가족'은 정상이 아니다』, 여성과 사회(16), 262-273
ⅳ)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226쪽
ⅴ)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227쪽
ⅵ)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235쪽
ⅶ)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260쪽
ⅷ)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6쪽
ⅸ)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185쪽
ⅹ)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210쪽
ⅺ)황두영, 『외롭지 않을 권리』, 시사IN북, 2020,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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