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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희미해져 가는 로컬의 빛을 되살리다77호/뫼비우스의 띠 2020. 11. 27. 20:08
박연지 수습위원
여기 또 다른 형태의 삶이 있다. 서울을 벗어나 로컬로 향한 사람들. 자신만의 속도로 자기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로컬을 선택한 사람들. 이들은 로컬을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와 지역 문화를 창출하며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성심은 지난 10월 8일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에서 연대를 통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고 있는 청년들의 집단인 협동조합 청풍을 만났다.
강화읍의 협동조합 ‘청풍’
협동조합 청풍은 강화읍의 재래시장인 풍물시장과 그 인근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청년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2013년 겨울 3명의 청년이 모여 <청풍상회 화덕 식당>이라는 피자집을 풍물시장에 연 것이 협동조합 청풍의 시작이었다. 현재는 4명의 청년(마담, 베니스, 총총, 결)이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성심은 협동조합 청풍의 멤버 ‘총총’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진달래 섬> 외부. 왼쪽부터 필자, 멤버 ‘결’, 멤버 ‘총총’) ‘총총’은 원래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빡빡한 서울 생활에 지쳐 서울을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직장 동료의 소개로 협동조합 청풍의 구성원들과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되었다. 그 이후 강화도를 여러 번 왕래하다가 협동조합 청풍에 들어오라는 멤버 ‘마담’의 제안을 받고 2017년에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청풍의 거점 공간들
협동조합 청풍은 현재 3개의 거점 공간 <아삭아삭 순무 민박>(게스트하우스), <스트롱 파이어>(펍), <진달래 섬>(소품 숍)을 운영 중이다.
게스트하우스와 펍은 2017년에 3층짜리 빈 건물을 빌려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 건물의 1층에는 펍이 있고, 2‧3층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멤버 대부분이 이주 청년이어서 친구들이 강화에 놀러 오면 재워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놀러 온 친구들을 알음알음 재워주다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아삭아삭 순무 민박>이다. 그리고 동네 청년들과 편하게 교류하고 여행자와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 <스트롱 파이어>이다.
<진달래 섬>은 작년 12월에 오픈했다. <진달래 섬>은 협동조합 청풍이 원주민 청년 세 명과 함께 시작한 거점 사업이다. 강화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은 대부분 육지로 떠난다. 그런데 재작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세 명의 청년이 강화도에 남아서 살기를 원했다. 강화도에는 무언가를 할 만한 기반이 없기에 멤버들은 그들에게 육지로 나가 대학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도 세 청년은 강화도에 남기를 택했다. 그래서 청풍은 그들과 프로젝트 형식으로 소품 숍을 운영해보고자 마음먹었다. 강화도는 자릿세가 싸서 수월히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강화 안팎을 연결하려는 노력 – 비(非) 로컬1)과의 연대와 협력
협동조합 청풍은 강화만이 가진 콘텐츠를 바탕으로 강화 밖의 디자이너와 작가,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끌어내고 있다. 청풍이 2019년에 진행한 <동네 시골 가게 콜라보>는 서울의 창작자 8명과 강화 청년들이 운영하는 가게 8곳이 협업해서 창작물을 만들어낸 사업이었다. 서울의 창작자들은 한 달 넘게 강화를 오가며 새로운 로컬 콘텐츠를 만들어냈고,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로 2019년 12월 <강화 시골 가게 展(전)>이라는 전시회도 열었다.1) 이러한 청풍의 활동은 비(非) 로컬과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강화 안팎을 연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비 로컬과의 문화적 격차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활동이기도 하다.
“여기는 서울이나 대도시처럼 문화 예술적 기반이 많지 않으니까 문화적 갈증을 느꼈어요. 그래서 외부 창작자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 강화의 동네 가게 사장님들도 한 분씩 만나보니 각자의 가치관이나 콘텐츠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들만의 업이 있고, 그 업에 대한 삶의 태도들, 가치관, 방향 등과 같은 것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외부의 창작자들이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또 강화에 와서 자연 풍경이나 유적지, 역사도 보면 좋겠다 싶었고요.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이 프로젝트를 한 거예요.” - 총총
한편, <아삭아삭 순무 민박>에서는 2017년부터 꾸준히 ‘잠시 섬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잠시 섬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을 강화로 불러 모아 쉼을 제공한다.2) ‘잠시 섬 프로젝트’는 아직 강화에 살진 않지만, 로컬로의 이주를 탐색하는 청년들이 강화를 알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왜 달리는지 바라볼 여유 없이 무작정 앞을 향하고 있지요. 가끔 휴식을 갖더라도 다시 달릴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재정비이지, 온전히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는 쉼은 아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유배지 강화도에 들어가 동네를 어슬렁거리면서 자신에게 집중해 보려 합니다.”
- <아삭아삭 순무 민박> 인스타그램의 ‘잠시 섬 프로젝트’ 소개 글
<아삭아삭 순무 민박>은 숙박객과 동네 가게들 사이에 느슨한 관계가 형성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오래 머무는 숙박객들이나 ‘잠시 섬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 동네 가게를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준다.
“쿠폰을 받은 손님이 밥을 먹으면 <아삭아삭 순무 민박>에서 온 걸 가게 사장님들도 딱 아셔요. 그러면서 손님과 동네 가게 사장님이 친해지고 느슨한 관계가 형성되는 거예요. 즉, 외부인들과 동네가 관계를 맺으면서 지역이 친밀해지는 것이죠. <아삭아삭 순무 민박>은 강화도의 이야기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어요.” - 총총
강화만이 가진 이야기가 묻히지 않도록
강화의 특산물 중 ‘소창’이 있다. 소창은 전통 직물(무명천)을 가리키는 강화 말이다. 소창은 천 기저귀나 면 생리대, 수건, 행주 등이나 장례식에 많이 쓰인다.3) 과거에는 강화도에 많은 소창 공장들이 있었지만, 중국산 값싼 직물에 밀려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남아있는 소창 공장이 열 곳도 채 되지 않는다. 협동조합 청풍은 2018년 가을, 은퇴를 앞둔 소창 장인 부부의 은퇴 전 마지막 일 년간의 기록을 담은 사진집인 <무녕>을 발간했다.
“사진집 <무녕> 발간은 강화가 사람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동네가 되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에요. 로컬마다 묻혀있거나 사라져가는 재미있는 전통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 총총
지난 10월 말 협동조합 청풍은 두 번째 아카이브 사진집인 <왕골>을 출간했다. <왕골>은 강화의 특산품인 ‘화문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천천히 담아낸 사진집이다. 같은 이름으로 <진달래 섬>에서 사진전을 진행했다.
로컬의 개방성을 위해
“약자 혹은 이주한 사람들이 로컬에서 좀 더 살기 편하려면 로컬이 개방성을 가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새로운 이주민이 왔을 때 환대를 해줄 수 있어요. 그 경험이 로컬에 대한 이미지를 만드는 거죠. 저희가 하는 프로젝트들을 통해 단기간이라도 계속 이방인과 원주민이 만나다 보면 로컬이 조금씩 개방성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만남이 계속 쌓이다 보면 나중에 누군가가 이주해 왔을 때 좀 더 적응하기 편하고 더 오래 머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총총
협동조합 ‘청풍’의 활동들은 로컬과 비(非) 로컬 간의 경계를 허문다. 그래서 더 많은 청년이 강화로 유입되도록 만들고 있다. 협동조합 청풍이 처음 활동을 시작한 2013년에는 강화에 청년이 운영하는 가게가 <청풍상회 화덕 식당>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강화읍 안에 많이 생겨났다. 협동조합 청풍이 마중물을 부은 덕분이다.
더 많은 청년이 로컬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로컬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의 사회적‧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숫자에 초점을 맞춘 단기적인 성과만을 바라보고 무리한 일자리 창출 혹은 보조금 지급 등에 의존하여 인구 유치 경쟁에 빠져서는 안 된다.4) 지자체와 지역 공동체는 로컬 안에서 청년들의 생활과 일자리 인프라를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아직은 (지자체나 지역 공동체가) 단기적이고 수량적인 성과만 따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돈 주고 직업 준다고 단숨에 이주해서 살지는 않잖아요. 청년들이 지역에 오래 정착해서 살려면 천천히 지역을 탐색하고 지역과의 관계를 쌓는 시간이 필요해요. 근데 지금 정책은 그런 걸 고려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총총
이주민 청년은 가족의 지원이나 살 집 혹은 건물 등과 같은 경제적 기반이 아예 없는 채로 로컬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나 지역 공동체는 정책의 대상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한’ 청년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5)
로컬을 되살리는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로컬의 서울화(化)를 좇아서는 안 된다. 로컬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멋을 지켜야 한다. 협동조합 청풍은 로컬 안팎과의 협력을 통해 강화만이 가진 이야기와 멋이 묻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강화에 찾아와서 오래 머물도록 로컬의 개방성을 확보하고 있다.
로컬의 가치를 되살리는 청풍과 같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로컬 크리에이터들은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로컬로 향했다. 이들은 로컬에서 새로운 가치와 지역 문화를 만들어낸다. 더불어 주류에서 배제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 주목하고, 그것들을 되살린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희미해져 가는 로컬의 빛을 되살리고 있다. 전국이 더욱 고르게 빛나게끔 하려면 로컬이 발산하는 빛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빛이 희미해져 가는지, 혹은 되살아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각주>
1) 수도인 서울을 의미한다.
<출처>
1)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윤찬영 외 8인, 2020, 스토어하우스
2)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윤찬영 외 8인, 2020, 스토어하우스
3)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윤찬영 외 8인, 2020, 스토어하우스
4) <젊은이가 돌아오는 마을> 후지나미 다쿠미, 2018, 황소자리
5) <지역교류형 청년 일자리 사업모델을 위한 지역사회 기반 현황 연구> 듣는연구소, 2019,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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