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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음들이 일으킬 큰 변화 : 내돈내산 쓰레기 굴레에서 벗어나기77호/뫼비우스의 띠 2020. 11. 27. 03:31
김세정 편집장
코로나 19로 일상이 언택트화 됐다. 늘어나는 택배, 배달주문 그리고 쓰레기. 편리함으로 무장한 언택트는 이면을 알려주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의 과도한 업무량, 배달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 불필요한 포장재 쓰레기까지 고통으로 점철된 이면을 감춘다. 그러나 언택트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태껏 재포장, 비닐봉지의 사용은 빈번했다. 더욱이 주류 소비시장은 포장재를 물건의 일부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 틈에서 무포장 알맹이 ‘물건’만 파는 가게가 일상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성심은 8월 25일 제로 웨이스트샵 ‘알맹상점’의 양래교 공동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로 웨이스트?
영단어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쓰레기 배출 ‘0(Zero)’를 목표로 하는 실천이다. 즉, 쓰레기 배출 없는 일상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활동은 ‘#용기내캠페인’이다. 마트, 식당 등에서 일회용품, 포장재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해 물건을 구입하는 활동이다.
제로 웨이스트샵, 알맹상점
망원시장에서 2년간 ‘알맹’이라는 모임을 한 활동가 3명(고금숙, 양래교, 이주은)이 망원동에 제로웨이스트샵 ‘알맹상점’을 차렸다. 모임 ‘알맹’은 기증받은 에코백, 종이백을 망원시장에 배포하는 ‘알맹@망원시장’과 ‘우리 동네 플라스틱 프리 지도 만들기’ 활동을 전개했다. 일상 속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알맹’은 활동을 하며 망원시장 상인회가 운영하는 카페M에 작게 ‘세제 소분샵’을 꾸렸다. 텀블러 대여, 세제 소분샵 운영을 해오던 ‘알맹’의 활동가들은 새 공간의 필요성과 벌크매장이 없는 한국의 현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이들은 방법을 고안했고 마침내 한국의 벌크매장을 실현시켰다.
알맹상점은 샴푸, 세제, 로션, 차 종류를 용기에 필요한 만큼 담는 ‘리필스테이션’과 각종 무포장 제품들을 판매한다. 그 외에도 망원시장 손님들에게 장바구니와 용기를 무료 대여하고 있으며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함께 쓰는 커뮤니티 공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양래교 대표는 알맹상점의 운영 목적을 묻는 성심에 “우리가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이런 곳이 있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알리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조금만 신경쓰면 플라스틱, 비닐을 줄일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쉽고 간단한 일인데 대부분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이 문화를 한 분이라도 더 안다면 좋을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다.
사진출처: 성심 알맹상점의 철칙
① 망원시장에서 취급하는 농산물은 팔지 않는다.
“농산물도 상시로 두고 판매할 수 있지만 망원시장 인근에 있고, 망원시장에서부터 시작된 상점이라 공산품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요.”
② 포장재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제품을 선정한다.
“저희가 업체로부터 물건을 납품받는데 대부분 납품업체에서 물건을 개별·과대 포장해요. 처음에 포장재를 빼달라는 요구를 배송메모에 남기지만 업체는 보지 않고 평소처럼 포장재를 넣어 보내요. 그러면 전화를 해서 포장재를 빼달라고 부탁드리죠. 빼지 않는 업체라면 반품을 하거나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고 다른 업체를 찾아봐요.”
③ 친환경 제품의 진입장벽인 가격을 되도록 낮게 책정한다.
“친환경 제품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아요.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되도록 저렴한 가격에 팔려고 하고 있어요. 마진을 덜 가져가더라도 최대한 가격을 낮춰보자는 마음으로요.”
④ 제품을 택배 배송하지 않는다.
“택배 포장재 쓰레기와 택배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 문제가 있어 온라인 판매는 하지 않아요.”
관계를 말하는 제로 웨이스트
모임 알맹의 활동과 알맹상점의 철칙은 ‘지역성’, ‘관계성’과 밀접하다. 지역공동체가 함께 제로 웨이스트를 할 수 있도록 이끈 알맹, 지역 상권과의 상생을 고려해 제품을 선정하는 알맹상점.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것 이상의 ‘관계’에 주목한다. ‘제로 웨이스트’와 ‘관계’는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나를 위해 시작했어도 제로 웨이스트가 모두를 위한 일이고, 모두를 위해 실천했지만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로 웨이스트 실천은 ‘관계성’을 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내가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지구에 좋은 영향이 가잖아요. 지구가 깨끗해지면 나한테도 좋고요. 당연히 관계성을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관계성의 범위를 크게 갖기보다는 망원시장에서 시작했으니까 망원동을 기점으로 했어요. 망원시장에서 했던 캠페인, 만났던 상인들, 카페M 소분샵 손님들이 있으니까요. 저희는 시장 상인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어요. 상인들께서 처음에는 잘 안 받아주시지만 이 벽을 해결하면 지역성, 관계성을 잡고 시작할 수 있어 좋아요. 사실은 관계성에 대해 운영진들과 말을 한 적은 없어요. 말하지 않아도 실천하면서 느꼈던 부분이라 서로서로 생각하고 있는거죠.”
“독일 프라이부르크 농민 시장에서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내게 이 세척 솔은 용설란이고, 이건 말털이고, 이렇게 리필해 쓴다고 찬찬히 설명해주던 상인들이 생각난다. 하도 설명이 좋아 선물용으로 두 개를 구입했더니 신문지에 돌돌 말아주었다. 빨리빨리 문화는 최대한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최대한 빠른 소비를 장려하고 최소한의 관계를 맺게 한다. (중략) 좋든 싫든 오프라인 가게는 빅데이터와 편리성과 야간 노동을 갈아넣은 최첨단 혁신의 온라인몰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동네의 작고 오래된 가게들은 다른 방향의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손님과 상인이 대화하며 관계를 맺고 손님은 좀 더 비싸거나 물건이 덜 좋을 때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단골 가게를 이용하는 것, 이야기가 있고 관계가 있는 동네, 그게 바로 실물이 있는 삶이자 알맹이가 있는 삶 아니던가.”
- 책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고금숙 p.44-45양래교 대표는 제로 웨이스트의 실천이 ‘개인-타자(환경, 타인)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관계성을 뗄 수 없다고 했다. 고금숙 대표는 빨리빨리 문화가 빠른 소비를 장려해 쓰레기를 양산한다며 빨리 쓰고 버리는 소비 방식을 바꾸기 위해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두 대표는 서로 말한 적 없지만 결국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물건에 관계가 스며들고, 소비가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는 ‘관계 맺음’이 쓰레기 없는 삶을 만들 것이라고.
기억에 남는 ‘관계 맺음’의 경험을 묻는 성심에 양래교 대표는 여러 사례를 들어 답변했다.
“여러분이 계시는데요. 그중 한 분은 유리병 열 몇개를 들고 올라오셨어요. 알고 봤더니 망원시장 카페M에서부터 에코슬로우 환경책방 팝업스토어를 했을 때도 오신 분이셨어요. 알맹상점 소식을 보면서 따라오신 거죠. 그분이 5kg 정도를 구매해가셨는데 어떻게 보면 단가가 더 싼 인터넷에서 구매하는 게 저렴할 수 있는데도 유리병을 들고 여기까지 오신 거잖아요. 이분을 보면서 (제로웨이스트 실천은) 정말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파주에서 우유팩을 200개 넘게 모아 오신 분이 있었어요. 그 동네는 우유팩을 받지 않아 버려야 했는데 알맹상점 소식을 듣고 모아 오신거예요. 그분께서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았다고 하시면서 주고 가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으로 충주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환경에 대해 공부하고 우유팩을 모아서 보내주셨어요. 원래 자원을 택배로 받지 않지만 어렸을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받았어요. 아이들이 자원순환을 실천하면서 (환경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커지겠어요. 이렇게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아이들 마음도 있지만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잖아요. 우유팩 자르고 말리고 모으고 번거로운 일인데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감사했죠.”
사진출처: 성심 “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마음들의 플랫폼”
알맹상점은 무포장 상품 판매와 ‘리필스테이션’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상점 곳곳에 붙어있는 자원순환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각종 프로그램 및 워크샵 포스터들,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운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작은 마음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플랫폼1-프로그램
사진출처: 성심 “‘플라스틱 없는 샴푸바 만들기’, ‘소프넛을 이용한 물비누 만들기’ 같은 상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가장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은 ‘십년후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브리타 필터 해킹 워크샵’이었어요. 미국, 유럽, 캐나다는 브리타 필터를 수거한 후 재사용하지만, 한국은 재사용 하지 않고 있어요. 한국 브리타 회사도 플라스틱 분리수거함에 버리라고 해요. 브리타 필터가 플라스틱 단일재질이 아니라서 재활용할 수 없는데도요. 수업은 플라스틱의 심각성, 플라스틱 줄이기의 필요성, 브리타 필터회사가 재사용하지 않는 이유, 필터 내용물 등을 살펴보고 브리타 필터를 스스로 재사용하는 방법을 같이 배워요. 워크샵을 통해 많은 분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서명운동에도 동참하세요.”
플랫폼2-‘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
사진출처: 성심 “저희는 매장 한가운데 커뮤니티 회수센터를 뒀어요. 쓰레기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거든요. 쓰레기하면 냄새나고 가치없다고 생각하잖아요. 저희는 쓰레기도 관리를 하면 냄새도 안나고 자원도 된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어요. 눈에 보여야 잘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이름이 한 몫한 것 같아요.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사람들이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분리수거 센터라고 했으면 쓰레기라고 인지할 수도 있었겠죠.
많은 분들이 ‘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를 좋아해주시는 이유가 자원 순환 과정과 방법을 알려드려서 인 것 같아요. 회수센터에 안쓰는 에코백을 기증해주시면 망원시장에 배포하고, 커피가루와 우유팩은 각각 커피화분·연필 만드는 회사, 망원동 자치센터로 보내요. 우유팩이 90% 이상 재활용 가능한데 종이류로 배출해 실제 재활용률이 20%미만에 그친다는 사실, 페트병도 색깔별, 재질별로 모아야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알려드려요. 저희는 병뚜껑을 색깔별로 분류해 ‘플라스틱 방앗간’에 보내요. 그곳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을 녹여 생활에 필요한 ‘치약짜개’를 만들어요. 갖고 오신 병뚜껑에 실리콘이 있으면 복합재질이라 재활용을 못한다고 말씀드리죠. 재활용을 잘못하면 사용 가능한 자원이 버려진다는 걸 알려드려요. 그러면 재활용을 더 잘해야 겠다는 마음을 갖고 가세요. “커피가루가 일반쓰레기인줄 몰랐어요. 음식물로 버려도 되는 줄 알았어요.”, “우유팩, 폐지랑 같이 버리면 안 돼요?”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알맹상점 커뮤니티 회수센터 소식을 듣고 집에 있는 작은 플라스틱 병뚜껑, 화장품 용기를 다 들고 왔어요. 작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선별과정에서 버려진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동안 순환 가능한 자원들이 버렸졌다는 게 안타까웠어요.”-알맹상점 손님
차근 차근 즐겁게 제로 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 환경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어렵고 거창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스텐 빨대 같은 물건을 준비해야할 것 같고 책도 읽어봐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다고 말씀드려요. 예를 들면 텀블러를 못 챙겼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날 플라스틱 컵에 먹을지 말지 고민하죠. 저도 옛날엔 그냥 사먹었어요. 그런데 이거 하나 안 사먹으면 500년 동안 분해되지 않아 지구 어딘가에 떠돌고 다닐뻔한 플라스틱을 줄이는 거잖아요. 플라스틱 하나를 줄이는 일이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바꾸면서 행동을 바꿀 수 있었어요.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노력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에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때 일상 속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꾸려기보다는 하나라도 습관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한 가지라도 습관이 되면 그 다음 습관은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마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임 알맹과 알맹상점의 시작 그리고 알맹상점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 모두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마음에서 비롯됐다. 이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은 포장재와 일회용품 없는 생활로 이어지고 있다. 작은 마음은 큰 변화를 만든다. 그러나 마음과 반비례하는 변화 속도에 낙담할때도 있다. 함께 나아가기 위한 단단한 ‘관계맺음’이 필요한 이유다. 알맹상점은 서로에게 힘을 주는 작은 마음들을 연결했다. 다양한 지역과 공간이 알맹상점처럼 작은 마음의 거점이 될 때 변화는 빠른 속도를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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