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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대전환> 대안은 있다. 그린뉴딜!76호/특집 2020. 5. 30. 23:25
엄아린 편집장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각 정당이 제시한 환경관련 정책 목표. (이행방법은 제외함)
더불어민주당 [산업자원, 환경] 기후위기와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목표
“2050 ‘탄소제로사회’ 실현을 위한 중장기 계획 마련 및 그린뉴딜 기본법 제정”
“기후위기 대응 투자 확대 및 저탄소 에너지·산업혁신 추진
“미래차 등 저탄소 산업 육성 및 에너지 효율화 추진”
“탄소세 도입 검토 및 그린뉴딜 투자 세제 등 지원 강화”
“지역에너지전환센터 설립과 에너지 분권체계 구축”
2040년까지 미세먼지 농도 선진국 수준으로 40% 이상 감축“
민생당 [환경, 문체] 미세먼지 50% 감축 및 호남권 등 환경일자리 100만개 창출
목표
“한국판 그린뉴딜 ‘녹색경제 10년 민생뉴딜 프로젝트’ 추진을 통해 미세먼지·온실가스는 50% 줄이고, 새로운 환경일자리 100만개를 창출하여 지속가능한 발전 도모”
정의당 [재정경제환경, 산업자원] 그린뉴딜경제로 한국사회 대전환
“10년 대전환 프로젝트를 통해 기후위기 극복과 불평등 해소”
녹색당 [환경]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정의로운 대전환 ‘기후·에너지’
목표
2050 탄소배출제로 달성과 기후정의 확립
기후변화 피해로부터 시민보호
2030 탈핵
원자력특권구조 철폐
에너지효율 확대와 2030년까지 에너지소비 50% 절감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에너지 기본권 및 분권보장과 민주적 에너지 전환
*미래한국당은 환경관련 정책이 없어 제외함.다시 환경이다. 우리가 아닌, 저 멀리 북극곰에게나 심각했던 환경문제가 ‘기후위기’ ‘6번째 대멸종’ 같은 이름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최근 치러진 21대 총선만 봐도 주요 정당이 앞 다투어 환경관련 정책을 내놓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노선에 따라 목표치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귀결은 같다. 바로 ‘한국형 그린뉴딜’을 해내겠다는 것. 아직 이름조차 생소한 그린뉴딜은 대체 뭘까?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온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성심은, 지난 5월 14일 본교 사회학과 이영희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그린뉴딜에 대해 알아보자.
그린뉴딜이란?
그린뉴딜은 ‘그린’과 ‘뉴딜’이라는 각기 다른 단어의 조합이다. 그린은 예상 가능하듯이 환경을 위한 변화를 말한다.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온실가스의 배출을 감축하는 것. 탈-탄소화를 위한 모든 정책이 여기 포함된다. 지구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는 ‘티핑포인트’를 넘기지 않으려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0년 대비) 40~50% 감축하고 2050년에는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이 수치는 에너지 산업의 구조를 바꾸고(기존의 석탄발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 경제활동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를 개혁하고(도로·교통·수도·전력·도시가스 등이 친환경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다소비구조인 건물을 넷제로 빌딩으로 바꾸며, 대량생산 · 대량소비에 맞추어진 인간의 소비패턴까지 전환해야 가능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대전환’인 것이다.
그렇다면 뉴딜은 뭘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만, 인류는 이미 90년 전에 뉴딜을 경험 해 본 바 있다. 1932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대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사회·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실업자에게는 댐 건설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빈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며, 금융정책의 전환과 산업 개혁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것이 바로 ‘잊힌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다.
Q. 그린뉴딜은 왜 주목받기 시작했나요?
A. 그린뉴딜은 다른 무엇보다도 기후위기 때문이죠.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웬만한 것으로는 안 되고) 근본적인 산업 문명. 특히 화석연료에 기반 해왔던 지난 300년 동안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에요.
Q. 최근에 급부상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코로나 때문도 있죠. 지금 코로나 이후 경제가 너무 다운되고 일자리도 대량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대규모적인 경제 부흥정책을 취할 수밖에는 없어요. 어느 나라든,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에요. 경제를 다시 살리고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재정도 엄청나게 투입해야죠. 이런 상황에서 딱 떠오르는 것이 세계 2차대전.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 경제 재건을 하고 시스템을 재건했던 ‘뉴딜’이 떠오르는 거죠.
Q. 해외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린뉴딜을 시작했다고 하던데요.
A. 유럽에선 2010년 정도부터 확산되기 시작했어요. 미국도 마찬가지로 오바마 정부 때 부터 나오기 시작했고요. 미국이나 유럽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후위기는 정말 어마어마한 문제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류가 절멸한다.’라는 위기의식이 강했던 거예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취와 정책을 취해야 하는데 그게 그린뉴딜이었던 거죠. 공공부분이 주도해서 적극적으로 경제를 재구조화 하는 방식이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취임했다는 점에서 루스벨트의 사례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체 산업으로서 ‘화석연료 기반 산업’ 대신 ‘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석탄발전에서 재생에너지 발전(태양광·풍력·지열 등)으로 전환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에 대한) ‘세액공제’ ‘대출보증’ 제도를 실행한 것도 대표 성과다. 경제위기로 타격을 입은 실직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그린칼라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에 복귀시켰다. 예를들어 건축장비 운전자, 지붕공, 토목기사, 용접공 등 기존 산업에서 종사하던 노동자들은, 건물에너지 효율화 분야나 재생에너지 분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식이다.
Q. 한국에서 그린뉴딜이 아예 처음은 아니라구요?
A. 이명박 정부때 ‘녹색 성장’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그린뉴딜로 선전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그린워시(greenwash)라고 비판을 받죠. 칠만 녹색으로 한 것이지 사실상 토목·건설 사업이었고 대규모 개발사업이었어요. 그린뉴딜이란 기후위기와 같은 생태위기에 근본적인 반성이거든요. 무분별한 개발에서 벗어나서 삶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자연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 출발점이예요. 말하자면 성장주의, 개발주의를 벗어나 보자는 거죠. 그런데 녹색성장은 녹색이 아니라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었던 거죠. 대표적인게 4대강 사업. 댐 만들고, 도로 건설하고 이런 것들이죠.
토목 · 건설사업은 단기간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는 있지만, 산업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강을 ‘들어낸다’는 점에서 오히려 환경에는 악영향을 주는 정책이다. 녹조라떼로 유명해진 낙동강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과적으로도 ‘녹색 성장’ 시행 이후 온실가스 총배출량이 증가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린뉴딜은 자칫, 녹색이라는 이름만 단 채로 ‘경기부양 정책’이나 기존의 ‘발전 사업’과 별반 다르지 않게 시행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A. 현재 좀 더 지배적인 흐름은 그린뉴딜을 경제성장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시 예전처럼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녹색 기술, 녹색 산업, 녹색 일자리 등을 이용하자는 거죠. 기존의 토목이나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했던 것처럼 재생에너지 산업에 투자하고 일자리도 이런 쪽으로 늘리자는 건데.. 뭐 이런 것도 탄소를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지금보다는 진전이 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린뉴딜을 경제부양정책의 일환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협소한 기준이라는 시각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후보로 나섰던 버니 샌더스같은 사람이에요.
버니 샌더슨은 그린뉴딜이 기후정책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종적·경제적 정의를 진전시키는 ‘불평등 해소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후위기는 ‘공정’과 ‘정의’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명백하게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다. 지구에 사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누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산업화를 가장 먼저 시작해 방대한 탄소를 배출해 온 제1세계 국가(미국, 영국 등)와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가 공통의 책임을 져야한다면 당연히 ‘불공정하다’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A. 그래서 중국 같은 나라는 억울하다고 하는 거예요. 중국은 최근엔 탄소를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농업 국가였기 때문에 별로 배출을 안했잖아요. 이런 점이 국가들 간의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논쟁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유명한 말이 있어요.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 된 책임.”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산다는 것 자체로 이산화탄소를 만드는데 기여를 했어요. 흔히 ‘탄소 발자국’이라고 하죠. 모두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지만, ‘오염자 부담원칙’에 따라서 그 책임의 정도는 다른 거죠.
기후위기는 위기를 초래한 원인제공자와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후처리자가 다르다. 국가별로 다르고, 세대별로 다르며,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다. 또한 기후위기의 피해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아야 했던 사람은 장애인, 이주자, 저소득계층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린뉴딜은 환경정의를 실현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전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Q. 산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실직이 예상되는데,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전환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죠. 예를들면 기존의 석탄(화력)발전소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이제 문을 닫아야 해요. ‘그럼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지?’라는 문제가 떠오르죠. 그래서 정의의 문제라는 겁니다. 전환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약자들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전환의 과정이 구조조정과 같은 폭력적인 형태가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실직이 예상되는 노동자들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논의나 추진 과정에 참여 시켜야 한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Q. 에너지 전환에서도 정의로운 전환이 적용될까요?
A. 우리가 쓰는 전기의 상당 부분은 저 멀리 서해안에 있는 석탄발전소나 아니면 경주·부산·전남 영광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오는 거예요. 초고압 송전망을 타고요. 서울·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니까. 그게 정의롭지 않은 방식이라는 건 오랫동안 이야기가 되어 왔어요.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은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데, 그 위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과실만 따 먹는 거잖아요. 실제로 송전망 문제 때문에 밀양 사태도 벌어졌고.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한전이 그런 시설(송전탑, 핵발전소, 핵폐기물처리장과 같은 전력시설이나 위험시설 등)을 들여올 때마다 어머어마한 갈등과 싸움이 일어나요. 밀양에서처럼 사람이 죽기도 하고요. 이런 문제들은 현재의 전력 시스템이 몇 군데 몰아서 대규모로 투자하고, 대규모로 생산하고, 또 대규모로 보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린뉴딜을 통해 에너지 생산·분배의 시스템 자체를 분산화된 방식으로 바꾸자는 거죠. 태양광 발전도 한 곳에서 아주 집중적으로 (태양광 패널을 깔아서) 대량생산할 수도 있고 (각 가정의 지붕에 패널을 깔아서) 분산화 된 방식으로 할 수도 있어요. 전자의 방식으로 가면 여전히 해당 지역의 환경적 영향과 주민들의 삶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죠. 따라서 에너지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에게 바람직 한 것은, 에너지 산업 자체가 우리 공동의 사업이 되는, 우리 사업체 혹은 협동조합처럼 운영되는 거라고 봐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Q. 그린뉴딜로 가능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네요?
A. 그러니까요. 그린뉴딜이 한 가지 버전이 아니라는 게 중요해요. 여러 가지 버전이 있고, 지금 말하자면 그 다양한 버전들 사이에 일종의 경합과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국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린뉴딜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이잖아요. 오지 않은 세계와 오지 않은 비전을 가지고 서로 자신의 비전이나 전망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의 전환 저지해 온 것은 탐욕스러운 경제성장과 발전논리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전환으로 이끌고 있는 것 역시 경제논리다. 화석연료의 퇴출은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가능해 지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그린뉴딜을 시행한 유럽과 미국이 신재생에너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기술을 발전 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바뀐 것은 없다. 여전히 전형적인 시장논리로 돌아가는 세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금이 전환의 시기라면 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전환이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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