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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대전환> 3. 원자력은 대안이 될 수 없다76호/특집 2020. 5. 30. 23:16
엄아린
엉망이 된 주민 설명회 2020.5.6.
사진 성심 “오늘 이 설명회가 마치 이렇게 조금 분열된 상태에서 이 설명회를 진행하다 보면 더 갈등도 일어나고 더 격해지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부분도 있고 하기 때문에... 멀리서 양남까지 와주셨는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사전 설명회는 취소하겠습니다.”
“장난하나!”
“이게 뭐하는기고!”
경주가 드글드글 끓고 있다. 5월 6일, 양남면 복지회관을 가득 채운 주민들 사이에선 고성이 오갔다. 의견을 수렴하겠다던 사전설명회는 시작도 하기 전에 위원장에 의해 취소됐다. 몇몇 주민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경주에 밀집한 핵시설
경주는 핵논란의 격전지다. 얼마 전 영구정지 결정이 난 월성1호기를 제외하고도 총 5기의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가 가동중이며, 국내 최초의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과 고준위핵폐기물 임시저장시설(맥스터) 7기가 전부 경주에 있다. 여기에 더해 맥스터 7기를 추가로 짓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 오늘 설명회의 취지였다. 분위기가 과열될 것을 예상은 했지만 네시간을 달려 온 보람이 무색하게 설명회 자체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데 주민들은 설명회가 취소된 것 보다는 다른 문제에 열를 내고 있었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각주1 : 12월 24일 영구정지 결정이 난 월성1호기와 현재 가동중인 2,3,4호기. 그리고 각각 2012, 2015년 준공된 신월성 1,2호기까지 총 6기.
사진 성심 주민1:“한수원하고 정부가 약속을 한 거 아닙니까! 중저준위(방폐장) 받으면서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시설)는 안 받기로 하고! 2012년도에 그랬는데 지금 몇 년돕니까? 지금 2020년, 몇 년 지났다고 이래 할 수가 있습니까?”
뭐든 생산하고 나면 쓰레기가 남는다. 원전 역시 예외는 아니지만 단순한 쓰레기라 보긴 힘들다. 엄청난 방사능과 열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이 핵폐기물은 열과 방사능을 뿜어내는 정도에 따라 ‘중저준위핵폐기물’과 ‘고준위핵폐기물’로 나뉜다*. 핵폐기물은 사실상 ‘처리한다’라고 말하긴 힘든 것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사능이 자연 연소될 때까지 격리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열을 식히거나 방사능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은 인간에게 없다.
*각주2: 보통 핵연료로 사용했던 연료봉(사용후핵연료)을 고준위핵폐기물로, 핵발전소에서 사용하면서 오염된 기계부품이나 작업복, 장갑, 신발 등을 중저준위핵폐기물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지나야 방사능이 전부 사라질까? 중저준위핵폐기물의 경우 적어도 300년, 고준위핵폐기물의 경우 최소 10만년*이 걸린다. 30년* 동안 쓸 전기를 위해 300년에서 10만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재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게 바로 원자력의 실체다.
*각주3: 학자들마다 10만년에서 100만년까지 예상범위가 다르지만, 어찌됐든 최소 10만년이다.
*각주4: 원전의 평균 수명.“원자력은 원래 이렇게 무책임한 것이었다. 처음 핵발전을 시작할 당시인 1950년대에는 ‘50년 후에는 고준위핵폐기물을 처리할 기술이 개발되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막연한 기대감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막연한 기대감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_『한국 탈핵』 동국대 김익중 교수
핵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그나마 중저준위방폐장은 경주에 건설되기라도 했으나, 고준위핵폐기장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다. 유일하게 핀란드가 처분장 부지를 확보해 현재 공사를 진행중이긴 하다. 지하 427m(1,400피트)의 암반을 파고 폐연료봉을 담은 ‘캐니스터(구리 밀봉용기)’를 묻은 후 입구를 콘크리트로 밀봉한다는 ‘거대 터널 계획’이다. 건설 과정이 <영원한 봉인(2010년작)>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출처 : 단비뉴스 “이곳은 우리가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묻은 곳입니다. 큰 고통을 치르면서 말이에요. 이곳은 당신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건들지 말아야 하는 곳이죠. 절대 가까이 오면 안 돼요.”
“이곳은 당신이 와서는 안 되는 곳, ‘온칼로(Onkalo)’입니다.”_<영원한 봉인>
이 말을 10만년 후의 인류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10만년 전이면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 시기와 맞먹는다. 그 오랜 시간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록 방법이 있을까? 그때의 인류가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나 할까? 뭉크의 <절규>처럼 위기감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는 건 어떨지. 인류의 후손이 이를 보고 유적지나 숨겨놓은 보물로 생각해 발굴하는 일은 없을지 등. 실제 온칼로를 만들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간 논의다.
플라스틱이 썩어 없어지는데 100년이 걸린다며 사용을 지양하자던 대한민국. 그런데 왜 더 심각한 핵폐기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유의미한 논의도 없었던 걸까. 이 작은 의문이 성심이 탈핵을 파고든 계기가 되었다.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문제①
왼쪽부터 1990년 충남 안면도. 출처 : 중앙포토 / 1994년 인천 굴업도. 출처: 환경운동연합 / 2003년 전북부안 출처:동아일보 핵시설은 고농도의 방사능을 내뿜는 위험시설이다. 어디에 들어서든 엄청난 갈등과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전에는 국가의 일방적인 추진과 이에 반발하는 지역주민간의 갈등이 전쟁을 방불케 했다. 1990년에는 정부가 충남 안면도에 몰래 방폐장을 건설하려다 공론화되어 백지화했다. 1994년엔 인천 굴업도를 방폐장 부지로 선정했으나 지질조사 과정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돼 중단됐다. 2003년 전북 부안에도 시도가 있었으나 ‘민란’과도 같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참여정부에서는 주민들의 시설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방법을 고안해 낸다. 첫 번째는 고준위핵폐기물과 중저준위핵폐기물을 분리해서 저장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를 「방폐물유치지역법」을 제정하여 명시했다.
*각주5: 지층이 움직여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약한 단층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 방폐물유치지역법)」 18조(사용후 핵연료 관련 시설의 건설 제한) 「원자력 안전법」 제2조5호에 따른 사용후핵연료의 관련 시설은 유치지역에 건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11.5.25.>
그런데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0년 1월 10일 경주에 고준위핵폐기물을 임시저장하는 맥스터 7기 추가 건설을 허가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설명회에서 “약속과 다르지 않냐”며 주민들이 분개한 이유다.
2020.05.06.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 천막에서 황분희씨. 사진 성심 “약속했잖아. 근데 이제 갈 데가 없으니까 ‘임시’라는 이름을 붙여서 임시로 저장하겠다는거야. 임시를 붙였으니까 고준위가 아니래. 이런 말장난이 어디 있느냐고”
“그때는 저준위 받아들이면 저거(고준위핵폐기물)를 가져 나가겠다고 법적인 약속을 하겠다(한거지). 그래, 그럼 받아들이고 저걸 내보내자. 그래서 주민들이 좋다. 그렇게 하자 했는데. 결국은 지금 저준위든 고준위든 우리가 다 떠안게 된 거야. 지금도 섣불리 해서 우리가 임시라는 말로 허락을 해주면 또 ... 그래서 죽자 살자 반대를 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갈 데 없는데 어떡하냐. 전기는 써야 되고(하는 거지)”
_황분희
정부와 원자력 산업계는 맥스터가 ‘중간저장’이 아니라 ‘임시저장’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간저장이나 임시저장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은, 원자력발전 분야에서 둘의 차이는 상당하다. 중간저장은 사용후핵연료 ‘관련’시설이 되고, 임시저장은 ‘관계’시설**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주 주민들은 ‘방폐장을 경주에 들여오려고 법을 만들어 놓고, 막상 지킬때가 되니 용어로 말장난을 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경주와 울산의 탈핵연합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상으로 소송전에 돌입했다.
님비를 넘어
주민들의 반대를 두고 일부는 ‘님비현상*’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핵폐기물처리장은 어딘가에 세워져야 하는데, 제 지역만은 안된다는 지역주민들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발전으로 인한 이익은 전 국민이 누렸으면서 쓰레기는 일부 지역만 부담하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이기적인 것은 지역 주민인가?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인가?
게다가 핵폐기물처리장을 기필코 지방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수혜자부담원칙’에도 어긋난다. 전기를 가장 많이 쓴 건 서울·수도권이기 때문이다. 도시인은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핵폐기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이러한 무지를 이용해 유지되는 것이 바로 원전시스템이다. 핵폐기물처리장이 서울에 세워진다고 상상해보라. 쌓여가는 핵폐기물을 눈앞에 두고도 ‘원자력이 친환경 대안’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주6: 쓰레기장이나 핵폐기장, 원자력 발전소 따위와 같이 공해나 위험의 가능성이 있는 사회적 시설물의 설치에 대해서, 그 필요성은 원칙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자기 주거 지역에서만은 안 된다고 하는 자기중심적 태도나 경향. ‘나의 집 뒷마당은 안된다’라는 뜻의 영어를 줄여서 만든 말이다. [출처: 고려대민족백과사전]
“고준위 핵폐기물이 걔넨(한수원) 안전하다고 하거든. 그렇게 안전하면 전기를 많이 쓴 대도시 가져가서 같이 분담하자. 안전한데 어때? 응? 서울 같은데 완전 돌산이잖아. 거기다 갖다 놓고 서울대 공학과나 얼마나 머리 좋은 사람들 많아 서울에. 그 사람들이 옆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왜 고준위 때문에 이렇게 고생해.”
“근데 죽어도 그렇게는 안할라고 하지. 위험하니까 그러는거 아니야. 거기는 안된다. 그럼 여기 시골사람들은 사람도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거 생각하면 너무나 억울해. 이렇게 피해보고 사는게..”
_황분희
핌비를 넘어_경주중저준위방폐장 문제②
“경주만은 안된다”는 주장이 님비가 아닌 이유는 또 있다. 경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2016년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월성원전이 규모 6.0의 지진에 대비해 설계됐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지진은 어느 지역에나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월성원전에서 20~3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인 것이 문제다. 황분희 부위원장은 9.12지진 당시를 회상하며 ‘후쿠시마 사고가 전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전성보다 우선시 된 주민수용성
사고 위험이 있는 핵시설 유치에 있어 안전성은 언제나 최우선 가치로 여겨질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경주의 중저준위방폐장이 살아있는 증거다. 경주방폐장 부지의 경우 지질조사 결과로 따지자면 (방폐장 부지로 활용할 수 없는) ‘불량’ 또는 ‘매우 불량’ 단계다. 결과 마저도 정부에 의해 은폐되다가 2009년 조승주 당시 진보신당 국회의원에 의해 밝혀졌다. 조사결과를 왜곡하면서까지 경주에 방폐장을 짓고자 한 것은 ‘주민 수용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인데,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가 ‘지역 경쟁 시스템’을 도입한 데에 있다. 2005년 참여정부는 방폐장 유치지역에 ‘특별지원금 3,000억 원과 연평균 85억 원의 폐기물 반입 수수료, 한수원 본사 이전 등’의 혜택을 내걸고 지역으로부터 유치 신청을 받았다. 이에 경주, 울진, 영덕, 포항, 삼척 등이 신청서를 제출했고, 주민 투표에서 가장 높은 찬성률(89.5%)이 나왔던 경주가 최종적으로 방폐장을 유치하게 됐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방의 상황을 이용하여 님비를 핌비로 바꾼 기적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하지만 미뤄뒀던 안전성은 미래의 어느 때에나 더 큰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방폐장 부지의 암반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이미 공사에 돌입하고 난 후였다. 설상가상으로 삽을 뜨자 지하수가 터졌다. 물은 고여 있던 흐르던 침식을 유발한다. 방사능을 격리해야 하는 방폐장의 조건으로서는 최악인 것이다. 이 때문에 2009년 완공 예정이었던 방폐장은 무른 암반을 보강하고 넘쳐 흐르는 지하수를 퍼내느라 2014년에야 준공 됐다. 추가 비용도 막대하게 발생했으며*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업무도 가중됐다. 지금도 하루 1,300톤 가량 지하수가 새어나오고 있어 매일같이 이를 퍼내야 하기 때문이다.**
*각주7: 공사비는 2,842억원 예정이었으나 보강 공사를 하느라 5,944억원으로 늘어났다. [출처: 단비뉴스]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핵시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지역 주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황분희씨는 “그때는 뭐 잘살게 해주겠다. 방폐장 들어오면 이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이렇게 말하더니, 지금 경제가 살기는커녕 전국에서 꼴지 수준이다.” “이렇게 위험한 줄 알았으면 억만금을 준대도 찬성했겠냐. 완전히 속은거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누구나 미래에 할인율을 적용한다
경주 방폐장이 들어설 당시, 정부나 지역주민들은 각자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갈 곳 없는 핵시설을 ‘갈등 없이’ 유치해야 했던 정부는 목적을 달성했고, 다시 한 번 ‘잘 살아 보기를’ 원했던 지역주민들도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인 것이 미래를 기준으로 하면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안전성이 바로 그런 문제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에 비해 안전이라는 것은, 위험해 지기 전까지 얼마나 무가치해 보이는가.
원자력에 대한 오해와 진실
사진 성심 갈등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이 행정처리를 서두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도 원전이 가동 중이라 핵폐기물은 계속 나오는 데 반해, 이를 저장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원전 내 임시저장수조(물통)와 고준위핵폐기물 임시 저장시설(경주에 있는 맥스터 7기)은 지난 50년 동안의 폐기물로 포화 직전이다. 한수원은 맥스터 7기 추가 건설이 없으면 월성원전 2,3,4호기를 가동 중단해야 해야 하다고 주장한다. 매일 같이 전기를 쓰는 현대인들에게 원전 중단은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원전이 멈춘다’는 말이 곧 ‘전기를 쓸 수 없다’는 말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력만이 전기 생산의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원자력은 사양산업
한국의 전기 생산 에너지별 비중을 보면 가장 높은 것이 석탄(46.2%), 그 다음이 원자력(26.0%) 그리고 천연가스(21.1%), 신재생(2.8%), 석유(2.2%), 기타(1.2%), 수력(0.5%) 순이다**. 이중 석탄발전은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키기 때문에 발전비중을 줄여야 한다는데 전 세계가 합의했다. 유럽에서는 화석연료발전 비율을 1990년 40.50%에서 2015년까지 25.60%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대신 친환경 발전을 12.5%에서 30%로 늘렸다. 중요한 것은 원자력 역시 발전비중을 줄였다는 점이다*. 시장의 선택은 냉혹하다. 원자력은 경제성이 떨어진다.
*각주8: 30.60%에서 26.50%
방사능이나 사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에너지로 사용해 온 것은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는 계속 낮아지는 반면, 원자력은 40년 전에 비해 4~8배나 높아졌다**. 그리고 원전의 발전단가에는 사용후핵폐기물의 처리, 폐로, 사고 위험 비용 등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팩트는 이것이다. 원자력은 비싸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태양빛이나 바람은 우리에게 청구서를 보내오지 않는다. 처음 설치할 때 드는 비용을 제외하면 이후 추가적인 비용이 거의 필요 없다. 특히 태양열에너지는 각 가정집의 지붕에도 쉽게 설치할 수 있어 별도의 송전 시설과 비용이 필요 없다. 부지를 선정할 때부터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책임질 수 없는 방대한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원자력 대신, 재생에너지를 선택하는 것은 시장의 합리적인 선택이다.
“원자력은 사고나 실수로 수없이 많은 가치를 파괴하고 광범위한 지역의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원료와 기술, 방법에 있어 핵무기를 만들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기후 해법 중 유일하게 핵 확산, 대형 사고, 방사능폐기물을 발생시킨다. (..) 원자력발전은 수십 년 동안 존재해온 세계시장에서 계속해서 퇴보하고 있다. 왜냐하면 극도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불필요하며 쓸모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완전히 비경제적이다.”_물리학자 에이머리 러빈스
에너지 낭비 부추기는 원전체제
이쯤 되면 정의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물론 차치할 수 없지만) 이토록 비합리적이고 비경제적인 에너지를 ‘왜 계속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왔다면 당신은 진실을 알 준비가 됐다. 이제 가장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자. 원전체제가 작동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의 에너지낭비구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은 그 자체로 에너지낭비를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출력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핵분열 반응으로 발생시킨 열을 끌 수 있는 기술이 없다. 일단 발전을 시작하면 수명을 다할 때 까지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하는 것이 원전의 생리다. 야간에는 전력수요가 줄어들고, 봄·가을에는 전력수요가 덜한 인간의 생태리듬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렇게 남아도는 에너지를 처리하기 위한 방책이 ‘심야전기제도’로 싼값에 내놓거나, ‘양수발전소’로 약 30%의 에너지를 그냥 버리는 것*이다.
*각주9 : 양수발전소는 산 위쪽과 아래쪽에 저수지를 만들어, 밤에는 남아도는 전기로 아래쪽 저수지에서 위쪽 저수지로 물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낮에 위쪽 저수지에서 아래쪽 저수지로 물을 떨어뜨려 발전한다. 한번 발전할 때 마다 30%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원전 자체의 생리에 더해 ‘한국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의 전기세는 가정용과 산업용을 막론하고 아주 싼 편이다. 산업용 전기세를 올리면 ‘기업경쟁력 발목 잡기’라며 반발이 심하고, 가정용 전기세 인상은 마치 세금인상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 어느 정부도 국민들에게 전기 절약 정신을 호소하면서도 과단성 있게 전기세 인상 정책을 펼친 적은 없었다. 경제성장을 위해 싸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약속하는 것. 박정희정권의 체제유지에 필요했던 비방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원전의 생리가 전기값을 싸게 만들고, 이는 에너지 낭비를 부추긴다. 이 낭비의 습관은 다시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원전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든다.
공론화 방식의 의미
“그래서 (우리는) 월성 2,3,4호기를 세워라. 응? 영구 폐로를 하라는게 아니고 지금은 전기가 많이 남아 도니까. 폐기물이 많이 나오니까. 일단 세워 놓고 공론화를 하든지 뭐를 하든지, 어쨌든 세워 놓고 의논을 하자. 자꾸 돌리니까 핵폐기물도 많이 나오고, 그러니까 급해서 밀어붙이기를 하지 말고. 세워 놓으면 당장 폐기물이 안 나오니까, 우리가 천천히 의논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느냐. 그렇게 했는데도. 쟤들은 저거를 죽어도 포기를 못하겠나봐.”_황분희
황분희씨는 가장 큰 문제가 정부와 한수원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전이 처음 들어올 때는 처음 들어올 때는 사고가 날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일어나니까 그제야 우리나라 원전은 후쿠시마보다 안전하다고 말을 바꾼다.” “다 똑같다. 방폐장도 맥스터도 받아들일 때는 안전하다, 잘 살게 해주겠다 해 놓고 약속한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라며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핵시설의 위험성 그 자체가라기 보다는 ‘위험성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원전산업계는 지속적으로 ‘당장 맥스터 추가 건설이 없으면 원전 2~4호기를 가동 중단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나라의 발전·전력 생산에 있어 엄청난 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대한 전문가의 입장은 다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위원으로 있었던 본교 이영희 교수는 “현재 한국은 전력예비율도 높고 월성 2~4호기 외에 다른 원전도 많다. 2~4호기를 멈춘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 게다가 포화시기까지 임계점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도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핵시설과 같은 위험시설을 공론화 문제로 해결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라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여태까지 관료와 전문가 혹은 이해 당사자들(주로 우리나라는 산업부 관료들이나 원자력계 전문가들과 같은)이 의사결정의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핵발전소나 폐기물저장시설같은 경우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고준위는 엄청난 방사능을 내뿜기 때문에 잘못 관리 되었을 때 해당 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온다. 따라서 그런 위험 시설을 입지할 때는 반드시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론화 방식의 전제조건이다.”
발전의 논리를 뒤집어라
탈핵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투명한 정보공개와 객관적인 시선, 그리고 생각할 시간만 있다면 누구라도 원전을 택할 이유란 아무 것도 없다. 이 싸움에서 친원전론자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야 말로 졸속행정과 비공론화다. 결과가 예견 된 싸움에서 조금이나마 시기를 미루는 것이 최선의 방어인 셈이다. 따라서 탈핵의 논점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될 수 없다. 지금 당장이냐. 나중이냐의 문제다. 원전을 멈추고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미주
1) “월성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관련’일까 ‘관계’일까”, 김도훈 기자, KBS 뉴스, 작성일: 2020.01.14. 검색일: 2020.05.18.
2) “경주방폐장, 매일 1,300톤 지하수 퍼내고 있어” 김병욱 기자, 투데이 에너지, 작성일: 2018.10.30. 검색일:2020.5.6
3) BP ‘2018 세계 에너지통계보고서’
4) <1990~2015년 유럽연합 발전 에너지원 구성비 변화 추이>
5) 『플랜드로다운』 폴호켄, 2019,, 글항아리사이언스
6) “박정희 체제 유지에 필요했던 ‘값싼 전기’의 위험성- ‘싼 전기공급 매달리다 원전·석탄 중독” 윤연정, 서지연, 박희영, 오마이뉴스, 작성일:2018.11.09. 검색일: 2020.05.09.<참고문헌>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신혜정, 2015, 호미
『한국 탈핵』 김익중, 2019, 한티재
『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2012, 녹색평론사
『마지막 비상구 :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제정임 편, 2019, 오월의 봄
『플랜 드로다운 : 기후변화를 되돌릴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인 계획』 폴호캔, 2019, 글항아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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