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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과 88만원 세대52호/가대人 2010. 2. 26. 01:00
우석훈·박권일,『88만원 세대』, 2007, 레디앙
서동현 법학전공 04
88만원세대. 산뜻한(?) 제목에, 혹은 몇 년 전, 어렴풋이 들은 기억에 의해, 아니면 대중매체를 통해 한두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저번 51호 ‘성심’에서는 오수현 학우님께서 이 책에 대한 주옥같은 서평을 써 주셨다. 이에 필자는 ‘88만원’이 갖는 심각성을 상기시키고자, 88만원 소득에 대한 현실적 고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처럼 사는 것을 생각 해 보았다. 학업만 마치면 회사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 곳에서 오래있으면 승진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내 견문이 짧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비정규직’이란 말은 들어보지 못해서, 정규직이라 따로 칭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바로 IMF전의 대한민국 직업사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되었고, 정규직 중심의 연공서열제는 무너졌으며, 아버지는 명예퇴직 하셨다.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바람과 정부가 추진하는 ‘선택과 집중’ 속에, 오늘날의 20대는 제일 먼저는 취업을 걱정해야 하고, 이후로도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중 상당수는 비정규직으로서, 20대 기준 매달 88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단다.
책 표지에 있는 ‘88만원 세대’의 저자님의 설명을 들어보자면,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이나 삼성전자, 5급 공무원 같은 소위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인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 원 정도가 된다. 물론 이건 세전(稅前)소득이다.’ 라고 되어있다.
책을 접하기 전, 내가 2~3년 전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었을 때는 매스컴에 나온 소위 ‘전문가’라는 분들과 각종 통계자료에서 청년실업문제에 대하여 떠들고 있을 때 속된말로 “여기 말뚝 박을까?(직업군인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취업해도 (높은 확률로) 88만원이라니!! 국민소득 2만 달러(2008년 기준, 20633$)시대, 일 년 전만 해도 하루걸러 TV에 서형(鼠兄)과 그 추종자들이 나와 4만 달러 노래를 불렀던 이 시대에 88만원이라니!
자아, 88만원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자. 88만원. 아직 학생신분인 나에겐 적지 않은 아니, 그냥 큰돈이다. 하지만, 이것은 부모님 집에서 숙식 해결하고, 내 이름으로 된 세금도 내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집문제와 세금문제는 접어두더라도, 한 달에 88만원을 가지고 내가 쓰는 대학 등록금에 생활비라도 내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방학 중 야심차게 등록금을 벌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가대 법학과 ‘갑’군의 경우를 살펴보자. 법학과인 갑군은 이번학기 등록금이 316만 9천원이 나왔다. 이놈을 88만원으로 쪼개보자. 계산기의 도움을 받아, 3.60이라는 상당히 믿을만한 근사치를 얻어냈다. 3.5로 잡아도 3개월 반. 그 정도의 월급은 몽.땅. 등록금에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학은 두 달 반 정도. 처음에 계산에 넣으려 했던 생활비는 단돈 10원도 넣지 못 했지만, 타 사립대에 비해 싼 편인 등록금에, 더욱이 문과대라 이과대보다 싼 등록금임을 감안하면,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도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음먹고 돈을 벌어본 적이 있었다. 입대 전, 그러니까 2005년 여름에 휴학을 하고 몇 달 동안 아르바이트 2개(상가 식사배달, 치킨집)를 하루에 했었는데, 한 달에 120정도를 벌 수 있었다. 비정규직 평균수준이다. 이렇게 3달이면 등록금 마련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하루의 일상은 대략 이랬다.
AM 7시30분 : 기상, 세면, 아침식사
AM 9시 : 동대문상가에서 도보 식사배달 시작
PM 5시 : 퇴근 , 바로 종로1가로 출근
PM 6시 : 치킨집 아르바이트 시작
PM 11시 30분: 퇴근 (하루 노동시간 약13~14시간)
나름대로, 아르바이트 자리 2개 모두 ‘시급5천 원짜리 고급일자리’ 이긴 했고, 일요일에 쉬긴 했지만 일이 고되고 하루에 나의 시간을 가질 수 가 없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동네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야밤에 맥주한잔 하고 헤어지는 것으로 위안삼긴 했지만 다음 날 돌아오는 건 가중된 피로감이었고, 이런 생활을 서너 달 하다 보니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갑군의 예에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엔 그때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이를 그대로 적용하여, 적어도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120만원어치의 노동시간 중 1/4정도를 감산하면, 약 90만 원 정도의 한 달 수입이 나온다.
장학금 혜택을 받지 않는다면 학교를 계속 다니려는 갑군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학자금 대출로 채무자의 길에 들어서는 것뿐이다. 집안 사정상 등록금 부담이 어려운 경우, 그나마 갑군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학자금 대출이다. 채무는 취업 후 갚으면 되므로, 방학 때면 무언가 하나씩 준비해 오는 학우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밟히는 자가 되느니 차리라 밟는 자가 되자며 마음을 추스르고 자기개발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 후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는 대출금 때문에 항상 부담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에도 수많은 갑군들이 있다. 이 갑군들은 다른 곳의 갑군들과 상위5%의 갑군들만이 웃을 수 있는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패배(?)한 갑군들 중 부모세대에서 받는 것이 많은 갑군들을 제외하더라도, 반수 이상의 갑군들은 88만원의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독립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40대가 되어도 소득 수준은 별반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며, 50대가 되어서는 주기적 소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구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냥 단순히 같은 세대인 갑군들의 각축장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경쟁구도를 좀 더 넓게 관찰하여 새대 간 불균형을 지적했다.
즉, 갑군들 스스로는 이 경쟁을 ‘세대 내 경쟁’이라 인식하지만, 사실 그들의 싸움은 경쟁의 범위와 규칙이 별도로 존재치 않는 무한대의 경쟁인 ‘세대 간 경쟁’에 편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리가 되고 싶은 평직원이 과장이나 부장, 혹은 국장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새파란 20대가 관록으로 뭉친 4~50대를 무순 수로 이길 수 있을까? 그것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뻔한 상황에서 말이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비정규직법(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정부여당은 고용 유동성을 중요시 하여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결국 비정규직이라는 콜로세움에서 오래 전 사회에 진출하여 정규직을 꿰찬 ‘귀족’윗세대는 구경을 하고 있고, 20대들은 위에서 구경하며 즐기는 그들을 볼 세도 없이 눈앞에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는 동료와 맞서 싸우는 검투사가 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며, 쇠약해지면 쫓겨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검투사가 모자라지 않냐고? 그럴 일은 절대 없다.
정말 아쉽게도, 책표지 전면에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는 쓰여 있지만, 죄수의 딜레마가 걸려있는 승자독식 게임 법칙 때문에 그 또한 여의치 않다고 한다. 20대만의 자구책으로는 해쳐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단 20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진지한 고찰 없이 이러한 문제는 쉽사리 해결 되지 않을 것이다.
유신세대, 386세대, X세대, 상업주의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1318세대, 이름조차 없는 소비자 20대. 오늘도 20대들은 동료들 다 죽이면 자신은 살 수 있다는 승자독식을 철칙으로, 인간의 얼굴을 버린 몽달귀신 같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세대간 불균형의 원인을 다각도로 짚어보고, 외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해결방법 모색을 위한논의가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있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은 학우에겐 한번쯤은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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