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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거민의 한 마디52호/가대人 2010. 2. 26. 00:56
강곤 외,『여기 사람이 있다』, 2009, 삶이보이는창
권용준 법학전공 05
용산 참사의 어느 철거민은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외쳤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그 한 마디는, 사회와 세상을 향해 소리 친 것이다. 망루에 오른 사람들은, 경찰이 망루를 강제 철거하는 과정에서부터, 화재가 발생하여 사람이 불타죽는 끔직한 최후의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하여 소리쳤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간절하다 못해, 눈물로 뒤범벅이 된 절규에 가까웠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비참한 죽음의 손길뿐이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외마디 소리가 허공 안으로 아득히 사라져 갈 즈음, 그것과 거의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용산 참사는 잊혀 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안타깝게 숨져간 용산 철거민들의 외침을 잊지 않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가 미디어매체의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던 용산 참사의‘사실’을‘진실’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철거민이 겪은 생생한 체험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용산 참사의 희생자 가족 그리고 현재 다른 지역의 재개발사업 및 뉴타운 지역에 거주하는 우리의 이웃들이, 언제 쫓겨날지 모를 위기에 이르게 된 열다섯 개 삶의 이야기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던, 2009년 1월. 우리 모두는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가슴에 품으며, 소원을 기도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열망했었다. 비록 새해의 설렘과 기대감은 아주 잠깐이지만, 꿈은 곧 손에 잡힐 듯, 누구에게나 가까이 다가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군가에게는 그 희망의 환상을 품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 같다. 1월이 시작된 지 고작 3주 만에, 그저 소박하게‘내 집’에서 살고자 했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던 사람들의 희망이, 회색빛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사건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그것은 강제 철거에 대한 저항으로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 1명이 불에 타 숨지는, 우리 시대의 슬픈 사건이었다. 언론은 이를 용산 참사라고 부르며, 떠들썩하게 보도한 바 있다.
경찰은 공권력을 발동하고, 치안을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철거민들을 강제 진압하였다. 처음에는 언론의 보도 사실만을 듣고, 경찰력을 투입한 강제 진압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철거민들의 증언 속에는 뼛속에 사무친‘한’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단지, 개발 이후에도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장소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과 개발의 과정 속에서 안정된 삶을 위한 가수용 주택과 상가를 보장해 달라는 정도의 요구를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는 철거민의 요구에, 개발이라는 목적과 폭력이라는 수단이 맞물린‘거대한 힘’을 가진 자들은, 강제 철거라는 물리적 파괴로 그들의‘소박한 꿈’을 깨뜨리려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망루에 올라 저항하게 된 것이다.
고결한 인격체로서 각 개인이 가지는 존엄성은, 이 곳 용산의 재개발 지역에서는 어떤 이유때문인지, 상실되어 버린 것 같다. 이는 비단, 용산 철거민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철거민들에게도, 그들의 권리 즉,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은 완전히 무시된 듯하다.
나약한 개인인 그들의 생존권은 국가의 개발과 경제 성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참히 짓밟혔고, 결국 철거민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의 투쟁은 국가를 상대로 결코 이길 수 없는, 자명한 싸움은 아니었을까.
인간의 욕망은 우리에게‘부’를 좇게 한다. 그것은 더욱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위해, 새로운 부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미지의 영역을 찾도록 부추기고, 한 단계 도약하고 진화한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인간의 욕망이 현대문명사회를 건설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욕망은 성장과 발전에 대한 추구로 자연스럽게 변모하여, 대한민국의 경제와 사회정책 곳곳에 투영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오늘날과 같은 찬란한 문화적 업적과 성과를 달성하여,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 속에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를 독차지하면서, 분배의 과정에서 소외당한 계층이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부의 편중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고 좀처럼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 사회적으로 계층 간의 심각한 이질감과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성장의 욕망이 무분별한 개발로 변질된 것이다. 성장과 개발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일부 사람들은 재개발과 뉴타운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우리의 이웃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으며, 이른바‘묻지마 개발’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무분별한 파괴를 일삼는다.
‘성장과 이익을 위한 논리’는,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폭력과 협박으로 일관하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논리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무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 제34조의 조항도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를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여‘최소한의 살 권리’마저 박탈하는 개발의 분위기는, 현재로써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고 있지 않다.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강토에서는‘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곳곳에서 개발이 자행되고 있다. 천성산 터널 공사에 대한 소송은 기각 판결을 받아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새만금 간척 사업은 환경영향평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올해 말 방조제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허울 좋은 이름뿐인 정부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실현될 조짐이다.
우리의 산과 들과 물이 GDP로 나타나는 통계의 수치 즉, 경제 성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무분별하게 파헤쳐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의 집행은, 경제적 부를 탄생시키는 것을,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 우선시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풍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치가 전도된 사회 현상의 결과는 바로, 용산 4구역에서처럼 생존권을 무시한 폭력적인 개발의 형태로 이어져, 우리의 이웃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의 철거민들은 모두가 우리의 이웃이다. 그들은 세상을 누릴 권리가 아니라, 겨우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손에 잡기를 꿈꾸며, 희망의 실타래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 내 이웃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존중받고, 동등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시민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인간의 이기심에 소리 없이 희생된 소외받은 자들이다.
어느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에“여기 사람이 있다”고 세상에 소리쳤다. 그 한 마디가 온 세상을 돌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이며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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