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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аярлалаа Monglia.(고마워 몽골)52호/가대人 2010. 2. 26. 01:04
김영규 경영학전공 04
나는 언제나 어린 시절을 그리워했다.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한없이 즐거웠고 한없이 웃었다. 언제나 그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았다. 우정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고, 나는 영원히 고등학생일 줄 알았다. 언제나 꿈이 있을 줄 알았고, 그 꿈은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지리라 굳게 믿었고, 언제나 나를 지켜줄 누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스물여덟, 지금 난 세상에 혼자 던져진 시간에 익숙해져있었다. 돌아보면 아름다운 시간들, 늘 그립고 또 그리웠다. 2009년이 나에게 준 4학년 마지막 학기, 나는 대학생활을 이렇게 마치고 싶지 않았다.
‘진리 사랑 봉사’ 이 말의 의미도 체험하지 못한 채 끝내버리면 나는 ‘도대체 가톨릭대학교에서 뭘 배웠는가?’ 라는 물음이 생겼다. 취업준비로 바쁜 마지막학기에 봉사활동을 한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 시간에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준비를 하고, 인턴을 하고, 토익점수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조언이 쏟아졌다. 하지만, 난 망설임 없이 그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몽골에서 어린 시절 순수함을 추억하며 그들과 하나가 되자.’
나는 내 스스로 치유 받고 싶었다. 사실 난 봉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고, 웃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자랑스러운 제 9기 가톨릭대학교 국제봉사단원이 되었다. 몽골에서 돌아온지도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의 추억은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어 갈 것이다. 내가 다시 새로이 시작된 일상에 다시 적응해 살아가듯이 몽골에서 함께한 성심, 성의, 성신의 81명의 국제봉사단원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위치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아름다웠던 나의 10일의 기억은 나를 몽골의 향수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덜컹거리는 버스의 창문 너머로 서울의 하늘이 보였다. 서울의 하늘을 보며 몽골의 하늘을 그려 보았다. 몽골의 하늘은 아무 것에도 물들지 않은 것처럼 맑았었다. 몽골의 드넓은 평원은 아무 숨김없이 우리들을 맞아 주는 것 같았다. 몽골아이들의 웃음은 우리들을 어린 시절로 돌려주었다.
2009년 7월 26일 우리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동한 우리들의 숙소 빈센치오 공부방. 그곳에서 처음 만난 것은 하늘만큼 맑은 아이들의 미소였다.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소녀들이었다. 그날 난 정말 내가 그토록 그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10여년 만에 맘껏 웃었고, 맘껏 수다를 떨었다. 맑은 미소를 지닌 천사들이 모여 꿈을 키우는 빈첸시오 공부방. 하지만 그곳의 시설은 정말 열악했다. 공부방 중간의 바닥은 성인 키 깊이의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고, 비가 오는 날에는 공부방 안으로 어김없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공부방에서 생활하게 될 14명의 단원들은 짐을 풀기도 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공부방 중간에 생겨버린 너무도 커다란 그 구덩이를 희망으로 채우고 싶었다. 10일의 아름다운 하루하루동안 공부방의 14명의 단원들은 아이들에게 튼튼한 바닥이 되어주었고, 비가와도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지붕이 되어 주었고, 공부방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아이들에게 우리들이 주고자 했던 희망을 선물했다. 물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기에 10일 동안 세수 한 번 제대로 못한 우리였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했는지 돌아보면 웃음이 난다. 빈첸시오 공부방 울타리 안에서 나누던 사랑이 가득차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울타리 밖의 천사들을 만났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천사 같은 미소로 우릴 반겨 주었던 산바이르는 우리가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너무도 좋아했다. 피아노를 쳐 본적이 없는 샤트를라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생활에 필요한 음식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땔감을 전해주고 우리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저녁 무렵에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어?”라며 웃는 샤트를라의 말에 공부방 봉사단원 지태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이 아이들의 가난을 해결하고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너무도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뛰어노는 것뿐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그렇게 10일의 시간을 국제봉사단원들과 함께 했다. 전 세계에서 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는 4대 명소 중 하나인 테르츠 국립공원에서 쏟아지는 별똥별을 보며 함께 소원을 빌기도 하고, 모닥불 주변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새벽하늘을 맞이했다. 몽골에서의 아름다운 시간들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면서 수많은 추억들이 만들어 졌다. 추억을 만든 시간이 너무도 빨라서일까, 나는 일상 속에서 이 추억들이 빠르게 잊혀 질까 너무도 두렵다. 10일을 함께 보낸 81명의 단원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나는 하나 됨을 체험한 이 아름다운 기억이 영원하길 소망한다. 그렇기에 남은 인생을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국제봉사단이 몽골에서 이룬 것은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봉사활동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매일 떠올리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은 나를 위한 희망이 되었다. 내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10일을 추억하며 가톨릭대학교 제 9기 국제봉사단 81명의 천사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10일의 기억 평생 가슴에 담고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들의 땀과 미소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매일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간다. 초원에서 석양을 바라보던 그 때의 우리들의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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