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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그리고 삶의 애환52호/가대人 2010. 2. 26. 00:55
강곤 외,『여기 사람이 있다』, 2009, 삶이보이는창
김윤형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09
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의식주를 해결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더 나아가서 사람이 일하고 들어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은 꼭 필요한 공간이다. 그런 집을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렵지 않아야 할 것 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집을 사려면 거의 한평생이 걸린다고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집 한 채를 사기위해 평생을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만해도 감사한 사람들은 많다. 왜냐하면 집을 살 형편이 안 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물이지만 자기 집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그 집에서 살면서 아이들을 낳고 또 대학까지 보냈던 그 집을 어느 순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러하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40년까지 한자리에서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들이닥친 날벼락, 그것은 바로 집 철거다. 대기업과 정부가 손을 잡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집을 빼앗은 것은 실로 단순한 일이다. 용역을 써서 살림살이를 부수고 집을 지키는 사람들을 때리고 짓밟고 하는 행동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이 다치는데도 불구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써가면서 까지 집을 부수어야만 했던가. 실례로 한 여자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뇌진탕까지 당하는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고하고 보상 한 푼조차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여자를 다치게 한 용역은 제대로 된 처벌조차 받지 못했다. 임대료까지 내고, 주민등록까지 등록되어 있던 자기 집을 이처럼 무시해버리는 세상. 정말 잔인하기만 하다. 더구나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은 집을 잃었고,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보증금 정도의 돈만 받고 쫓겨나고 있다. 그 돈으로는 집을 구할 수 없고, 집을 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월세로 구한다고 했을 때도 1~2년이면 바닥날 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시민들의 수입으로는 월세를 내기에는 굉장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기업 건설회사와 나라는 손을 잡고 자신들의 이익을 바라볼 뿐이다. 시민들이 엄청난 욕심을 가져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기가 번 돈으로 살면서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작은 집. 크기에 상관없이 자기가 살아갈 수 있는 자기 집 말이다.
책에 나온 성낙경씨의 사례를 들어보자. 성낙경씨는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경기도 고양시 풍동 지역 철거민이었다. 즉, 자신이 철거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도 없었지만 갑작스런 정부의 계획으로 철거민이 된 사례다. 지난 2002년 주택공사는 풍동 지역에 아파트 7700여 세대를 조성할 계획으로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주택공사가 제시한 두 가지 조건(700만원 현금 보상 또는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를 따로 내는 공공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성낙경씨를 비롯한 여러 세입자들은 2002년 3월부터 2년 넘게 철거 투쟁을 했고, 결국 2004년 12월 주택공사를 상대로 합의 내용이 담긴 ‘공문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쓴 글처럼 성낙경씨가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쉽게 ‘합의된 공문서’를 받아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풍동 철대 위가 포클레인하고 처음으로 부딪힌 적이 있었다고 했다. 포클레인을 막아야 되는데, 그것도 중장비인데.......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은 냄새나는 물질을 뿌려서 못들어오게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즉, 오물을 투척한 것이다. 오물을 투척한 것은 한명이 한 일이지만 수배를 당한 것은 20~30명이었다. 결과적으로 수배를 당하는 것이 두려웠던 시민들은 대다수가 후퇴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한 명의 작은 몸부림을 이용해 주공은 용역들과 갖가지 수단을 써서 시민들을 쫓아낸 것이다. 결국 계속되는 투쟁 속에 남은 것은 성낙경씨를 비롯한 몇 안되는 분들이고 그 싸움은 치열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역할
그렇다면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에 나가서 살집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이러한 황경에 가진 시민들은 힘을 합쳐 전철연 모임을 만들었고 철거될 위기에 직면한 시민들은 전철연 등과 같은 단체에 나가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무엇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요구해야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대응할 때 공정하지 못한 정부의 세력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저항해야 할 것이다. 한두 명이 법적으로 고소당하는 것을 볼 때 무서워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자세가 요구된다.
정부의 역할
책에서 본바와 같이, 정부는 몰래 기업과 손잡고 있었다. 바로 여러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철거민들이 용역들 때문에 몸에 상처를 입고 도난을 당했을 때 경찰이 한 말은 정말 무책임했었다. “증거불분명. 동영상을 찍어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도 확실하지 않다.” 등등 너무나 무책임한 말을 하면서 철거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를 통해서 본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는 정말 분명해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정답 같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에게 도움을 주고, 궁극적인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정부다. 재개발을 허락해주는 것의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보상금을 채결하거나 철거민과 기업이 법정에서 싸울 때 중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정부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철거민들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기업은 철거민들에게는 경제적인 힘도 없고 용역을 부를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윤리
실제 건설 사업에서 기업은 정부와 손을 잡고 용역을 써서 어떻게 해서든 기존의 집을 철거했고, 철거민들을 무자비하게 쫓아냈다. 끝까지 나가지 않은 철거민들을 용역을 동원해 때리고 짓밟으며 철저히 끄집어내었다. 왜 그렇게 까지 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빨리 집을 철거하고 사람들을 보내야 새로운 아파트를 짓고 그것을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또한 그것을 원동력으로 돌아가는 단체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이윤추구는 정말 당연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내기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윤추구가 전부인 것은 절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되 공공의 이익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익은 사회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공의 의미를 살펴보자. 공공은 모두를 뜻한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이익은 포함될 것이며 지켜지기 쉽다. 하지만 소수를 생각한다면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업은 재건축을 하거나 건설 사업을 시작할 때 기존에 있던 주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충분한 보상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집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용역을 동원할 필요도 없게 되므로 시민들에게 상처를 줄 이유도 없어지고 용역을 동원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글을 끝맺으며
이번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나도 갑자기 철거민이 될 수 있다’라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집이 재개발 되는데, 나는 세입자에 불과할 경우 나는 쫓겨나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까. 이러한 상황에서도 안일한 정부의 태도와 이익만을 보려는 대기업의 행동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또한 실제로 이런 상황을 당하는 시민들을 보며 정말 치를 떨었고 정확하고 치밀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철거민들도 대다수라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대기업들은 용역을 써서 집을 부수고 사람들을 때리고 ‘끝’까지 사람들을 쫓아냈다 이러한 현실은 정말 냉혹하고도 참담했다. 하지만 더더욱 억울한 것은 용역들 때문에 갈비뼈가 부서지고 머리를 맞아 뇌진탕에 걸렸는데도 철저하게 시민을 무시하고 용역의 편을 드는 경찰의 안일한 태도이다. 용역들은 가슴에 상처를 내고 짓밟는 행동을 할 뿐만 아니라 입에 담을 수 없는 욕까지 한다. 인신공격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경찰들은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대기업과 손을 잡는 단순한 ‘친구’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똑같이 태어나서 집 때문에 이렇게 싸워야 하는 현실은 정말 가슴이 아프다.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이 시점에서 누가 이 끝없는 갈등을 해결해 줄 것인가.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느 한쪽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 시민, 그리고 대기업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대기업들은 시민들을 해치지 않는 적당한 선을 긋고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며 충분한 돈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 자신이 요구해야할 것과 자신의 권리를 지켜야 할 것이며 정부는 시민과 대기업과의 사이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면서 그들의 충돌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넓은 집도 아니고 최신식 건물을 가진 집을 원하는 것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소박한 자기 집을 원하는 것이다. 이제 나에겐 하나의 뿌리가 심어졌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모두가 그 공간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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