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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펭수에 꽂히다75.5호/뫼비우스의 띠 2020. 2. 6. 15:58
김진서 수습위원
펭수 신드롬
남극 펭, 빼어날 수, 바야흐로 펭수의 시대다. EBS는 물론이고 타방송사까지 종횡무진하며 광고업계, 출판업계를 접수한 열 살의 펭귄이 대한민국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해외 인기도 심상치 않은 걸 보면 본인의 꿈인 우주대스타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둔중한 몸과 초점 없는 눈, 거침없고 솔직한 언행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현상은 예사롭지 않다.
펭수는 뽀로로, 뚝딱이, 뿡뿡이와 같이 한국교육방송공사 EBS에서 초등학생을 타깃으로 기획한 캐릭터다. 애초에 EBS 유아어린이부에서 제작한 펭수의 기획의도는 10살 펭수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트렌드와 고민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초등학생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톡! 톡! 보니하니’의 코너 ‘자이언트 펭TV’에 등장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성인층, 특히 사회에 갓 진입한 2030에서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유튜브 ‘자이언트 펭TV’의 시청연령이 18~24세 24.6%, 25~34세 40.2%, 35~44세 21.8%인 것으로 봤을 때 2030에서 열광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뽀로로, 카카오프렌즈, 펭수 등 고공행진하는 캐릭터들의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캐릭터의 성공이 귀엽고 예쁜 것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펭수가 귀여움에 더해 타고난 유머감각과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으로도 부족하다. 캐릭터가 대중의 마음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세계관’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펭수는 어떻게 2030의 공감과 세계관을 획득했을까.
#세계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출처 자이언트 펭tv 출처 자이언트 펭tv 펭수는 펭귄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어딘가 비슷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초등학생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큰 몸과 초점 처리 때문에 또래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고 담담히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초등학생들을 위로하는 펭수의 모습은 어설프지 않다. 시청자들은 펭수의 아픈 이야기를 통해 친밀감을 느끼고 펭수에게 공감하게 된다. 즉 세계관이 공감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펭수가 유독 2030 청년들에게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세계관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펭수가 EBS 연습생이라는 설정부터가 비교적 최근 사회에 진입한 2030 세대에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 EBS 연습생이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본 펭수는 회의 후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제작진의 말에 “결과를 여기서 얘기해줘야 KBS든 MBC든 갈 수 있다”고 일갈한다. 이것은 직장의 선택을 받기 위해 면접을 보는 피면접자가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시청자들은 내가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해 주는 펭수를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EBS 입사 선배 뚝딱이를 대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펭수는 EBS 입사 대선배인 뚝딱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수신거부하고 셀카 찍기에 몰입한다. 뚝딱이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귀찮아하며 다시 거절한다. 건방진 펭수를 직접 찾아온 뚝딱이는 여태껏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귀여운 면모와는 달리 인사각도가 그게 뭐냐며 펭수를 나무라고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한다. 기본이 안되어있다는 뚝딱이의 지적에 펭수는 잔소리하지 말라며 귀를 막는다. 통쾌함과 짜릿함은 시청자의 몫이다.
펭수와 뚝딱이 사이에 위계질서가 존재하듯이 우리 사회 대부분 조직 안에도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있다. 2030 세대 곧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면서 마주하는 세계는 공고한 수직 질서다. 그들을 지탱해왔던 배경과 가치관이 수평적 질서에 발 딛고 있다고 해도, 외부 질서는 바뀌지 않는다. 탈권위를 꿈꾸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 펭수는 다르다. 권위에 도전하는 촌철살인 멘트를 날리면서 전복적 쾌감을 선사한다. 대표적인 예가 “김명중”이다. EBS 사장을 돈줄 취급하며 번번히 그를 소환해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혁신에 가깝다. 사장님이 친구같아야 회사가 잘 된다니, 밀레니엄 윗세대로서는 당혹스러워 할 법한 발언이다. 실제로 김명중 사장은 처음에는 불편했으나 펭수가 가진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펭수가 밀레니얼 세대의 폭넓은 지지를 얻게 된 데에는 펭수가 처한 환경에 대한 공감, 그리고 나아가 자신이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해주는 모습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BBC는 기성세대를 향한 젊은 층의 불만이 펭수의 인기 요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B급 감성
공감과 세계관에 더해 펭수를 향한 밀레니얼 세대의 애정을 설명하는 또다른 키워드는 B급 감성이다. 주류를 타파하고 권위와 가식을 끌어내리는 식의 접근을 통해서 짜릿함과 통쾌함을 느끼는 이 세대는 비주류를 받아들이는 것이 낯설지 않다. B급은 이미 기성 방송과 유튜브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tvn의 드라마 <천리마마트>, 유튜브 채널 <워크맨>이다. SNS를 통해 인기를 얻은 하상욱 시인도 스스로의 시를 B급이라고 표현한다. A급이 되기 어려운 현실에 처한 젊은 층에게 B급 코드는 소소한 재미와 위안을 선사한다. 펭수의 컨텐츠도 여기 맞닿아 있는 셈이다. EBS에서 잘리면 KBS로 가겠다고 제작진을 협박하는 모습이나 체육대회에서 “나만 이기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장면에서 B급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펭수가 밀레니얼 세대의 유머코드와도 잘 맞닿아 있는 것이다.
#위로
펭수가 2030에게 선사하는 건 카타르시스와 유희만이 아니다. 펭수는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네티즌들이 뽑은 펭수의 어록들은 울컥하게 되는 지점이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청춘팔이 위로가 아닌 솔직하고 담백한 위로다. 끝없는 경쟁으로 치이고 기성세대에 대한 순응을 통해 자아를 조각하는 과정에서 이 세대가 겪고 있는 문제들에 직접 가 닿는다.
정신과 전문의 정우열은 말한다. “어른이 된지 얼마 안 된 20~30대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어른다움, 그것과 반대되는 아이같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참 많다.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펭수이지만 특히 20~30대가 많이 좋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더보기<펭수 어록>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다 잘할 순 없다. 하나 잘 못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 잘하는 게 분명히 있을 거다. 그걸 더 잘하면 된다.”
“잘 쉬는 게 혁신이야.”
“처음엔 다들 힘들고 실수도 많아요. 하지만 실수와 힘듦이 꽃을 피울 날이 올 겁니다.”
“화해했어요. 그래도 보기 싫은 건 똑같습니다.”
“주변 눈치를 보고 있구나.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눈치 챙겨!”
“김명중!”
출처 자이언트 펭tv #펭수 신드롬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수직적 사회에서 수평적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서 있고 이 과정에서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위로부터는 순응을, 옆으로는 경쟁을 강요받아온 청년들의 애환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키워드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세대 간의 갈등이 그야말로 최고조에 달한 지금, 펭수의 언행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원하는 가치들이 투영되어 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펭수의 인기와 펭 tv 구독자 수가 증명해준다. 그러니 이제는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이 펭수 신드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초등생 타깃 캐릭터 펭수는 어떻게 ‘2030의 뽀로로’가 되었나”, 김정은 기자, 동아일보, 기사작성일:2019.10.26. 검색일:2020.1.12.
“2019년 전국은 ‘펭앓이’…펭수의 4가지 매력 포인트”, 김영은 기자, 한경비즈니스, 기사작성일:2019.12.10. 검색일:2020.1.12
“[펭수 경제학]①10살짜리 펭귄에게 위로받다”, 이유미 기자, 비즈니스워치, 기사작성일:2019.12.10., 검색일:2020.1.12
“[올해의 인물-문화] 2019년, 대한민국이 펭수의 매력에 빠졌다”, 조유빈 기자, 시사저널, 기사작성일:2019.12.23., 검색일:2020.1.12
“정신과 의사‘펭수 보며 자신을 위로하세요’”, 김소정 기자, 이데일리, 기사작성일:2019.11.16., 검색일:2020.1.12'75.5호 > 뫼비우스의 띠'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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