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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 "2020 미래대담"75.5호/뫼비우스의 띠 2020. 2. 3. 14:15
국회미래연구원 박성원연구위원과의 2020 미래 대담
2020년 1월 2일의 국회의사당 엄아린 편집장
미래는 현재를 사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다. 앞으로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한국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등.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궁금해 하고 때로는 불안해한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사회로 첫발을 내딛은 가톨릭대학교 새내기들에게 미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2020년. 어감도 좋은 신년을 맞아 성심은, 1월 2일 국회의사당에서 국회미래연구원의 박성원연구위원(정치학/미래학 전공)을 만나 미래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과, 취업·학점·스펙 외의 다른 미래를 꿈꾸는 청년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질문들로 대담을 꾸렸다.
인터뷰이
박성원 연구위원
원래 직업은 기자였으나 기자로서의 자신의 미래에 회의를 느끼고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래학을 공부했다. 미래학 1세대로 불리는 짐 데이터 교수에게 미래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에서 기술 예측에 따른 사회변화를 연구했다. 지금은 국회미래연구원에서 중장기 국가미래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성심 안녕하세요 박성원 연구위원님. 최근 <미래공부>를 펴내셨죠. 출간 축하드립니다.
박위원 감사합니다.
성심 처음 이 책을 본 것이 역곡 도서관에서였는데요. 제목만 보았을 때는 청년들의 진로탐색서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더라구요.
박위원 진로도 미래죠. 그래서인지 제가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중학교의 진로담당 선생님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자주 만들어졌어요. 선생님들께서 걱정하시던 것은 ‘학생들에게 진로를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고, 학생들 스스로가 진로를 판단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는 직접 만들어가는 과정도 있는데 그 점이 생략되어 아쉽다. 스스로 진로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미래학에서 빌려올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셨어요.
성심 그렇다면 미래학이란 무엇인가요?
박위원 미래학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학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학문이죠. 하지만 다양한 미래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선호하는 미래 또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학문이 바로 미래학입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그 변화에 동참하는 것. 이것이 미래학의 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심 미래학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학문’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박위원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맞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능하다고 한 번 생각을 해보자”는 거예요. 사람들은 항상 조건에서 생각을 해요.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조건인데’, ‘내가 이 대학을 나왔는데’ 처럼 조건에서 나의 미래를 가늠해 보려고 하지 그것을 넘어서는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어요. 그런 식으로 한정 짓지 말고 조건을 넘어서서 상상하는 방법. 그것이 미래학에서 이야기하는 중요한 접근이에요.
청년에게 미래공부가 필요한 이유
성심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기를 쓰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보려는 청년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하셨어요. 청년들에게 미래 공부가 필요한 이유가 뭔가요?
박위원 2·30대는 저에게 굉장히 관심이 있는 연령층인데, 이런 거예요. 사회구성원을 봤더니 2·30대가 이렇게 가장자리에 서 있어요. 그리고 이들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제일 앞에서 맞이하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세대에요. 주거문제? 2·30대의 문제에요. 취업문제? 젠더문제? 2·30대 문제죠.
그런데 이들이 직면해 있는 문제는 과거의 방식으로는 풀 수가 없어요.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기존의 논리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죠. 기를 써서 주장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듣지도 않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도 않아요. 그래서 미래공부는 기존세계와 신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다리를 넘어가는데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있는데 왜 다른 길을 걸어야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불확실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청년, 소수자, 약자들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넘어가지 않으면 낭떨어지로 떨어져요. 잔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들이야말로 모여서 과거의 방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청년은 최전선의 약자. 그래서 대안 사회를 만드는 복병이다.”
무한경쟁
발전
경제성장
위계질서
위험사회
효율성·전문성
중앙집권적
거대국가
정상가족
가부장적
획일화
기존세계
미래공부
신세계
느림/여유
보존/생태
경제축소
평등
안전사회
공정성·투명성
지방분권적
소규모 공동체
대안가족
성평등
다양성
성심 기를 쓰는 청년에서 ‘기를 쓰는’이 중요한 표현이었군요.
박위원 네. 4·50대들도 대안을 만들려면 기를 써야하긴 마찬가지지만 당장 필요한건 2·30대니까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미래 예측법
“미래학계는 미래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법으로 미래워크숍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미래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을 이해하고 이러한 동인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하면서 다수가 바라는 미래사회를 찾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_<미래공부> 62쪽
* 미래워크숍의 자세한 진행과정 그리고 결과는 저서와 경향신문 ‘부들부들 청년’ 기획 참고.
성심 책의 중반부터 등장하는 미래워크숍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과 5대 광역시(인천, 대전, 대구, 부산, 광주)에 거주하는 20~50대 시민 523명을 대상으로 미래 워크숍을 진행하셨다구요?
박위원 네. 미래워크숍은 최종적으로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거예요. 한국의 4가지 미래 시나리오(성장/보존/변형/붕괴) 중에 ‘어떤 미래가 더 가능할 것이냐?’ 그리고 ‘어떤 미래에 살고 싶으냐?’ 되게 재미있는게, 이건 저만의 이론 같은 것인데요. 개개인은 불완전해요. 어떤 사람은 기술에 관심이 있는 반면 환경을 잘 모를 수 있어요.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그런데 20명 정도를 모아 놓고 이야기를 하면 일종의 화합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화합의 목소리는 어느 미래학자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균형이 있고 미래를 잘 보는 시각이 있어요.
성심 워크숍에 모인 참가자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데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나요?
박위원 그럼요. 특히 4가지의 미래 중에서 한가지(계속 성장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논의하던 것은 아니에요. 예를들어 ‘경제성장 붕괴미래? 누가 저 미래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투표를 해보면 있는 거예요. 그것도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그럼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서로간의 공통된 가치관을 발견하면서 묘한 연대의식이 생겨요. ‘내가 선택한 미래가 별 볼일 없고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걸 알아주고 같이 고민해 줄 사람이 있네?’ 그걸 발견하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하죠.
해당 미래워크숍에서는 우리 사회의 성장을 두고 (인구·경제·기술·물질적으로) 계속 성장/붕괴/보존/변형의 4가지로 분류했다. 그리고 이 분류에 따라 미래 시나리오를 나누어준 뒤 ‘가능 미래’와 ‘선호 미래’를 각 각 선택하도록 했다.
성심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선호 미래는 ‘붕괴’ 시나리오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붕괴를 원할까요?
박위원 붕괴 시나리오의 핵심은 “경쟁에는 지쳤다. 경제성장보다 중요한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매번 순위만 매기고 효율성만 따지느라 나라는 존재가 오롯이 드러날 기회가 없다는 것이죠. ‘난 이런 사람인데’, ‘이런 걸 잘하는데.’ 현재의 평가 시스템에서는 (학업이든 사회에서의 평가든) 인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게다가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문제들. 세대 간의 갈등이나 계층화, 획일화, 위험사회, 교육관의 문제, 정치권 불신·부패 등. “이게 사회의 모습이라면 차라리 다시 시작하자”는 겁니다.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포기하게 아니라 과거의 방식으로 푼다는 것에 대한 거부인 거예요. 2030대는 과거처럼 더 생산하고 더 소비해서 푸는 식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경제발전이라는 꿈을 꾸고 이를 성취했다면, 지금의 청년층은 경제발전이라는 비전에 동의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쉬고 싶다, 경쟁하는 데 지쳤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청년층의 용기라고 했다.” _동일저서 86쪽
“소비 중심의 성장사회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단서일지도 모른다.” _동일저서 89쪽
2019년 11월 22일 가톨릭대학교 김수환관에서 부천 청년정책 포럼 "n포 세대는 없다"가 개최됐다. 사진은 <청년팔이 사회>의 저자 김선기씨가 청년 세대 담론에 대해 발언하는 모습. 포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성심교지 티스토리 홈페이지에서 참석후기를 볼 수 있다. 관련링크 하단 첨부. 성심 저는 포기가 아니라 거부라는 말이 공감이 갑니다. 얼마 전에 가톨릭대학교에서 <부천시 청년 정책 포럼: N포세대는 없다>가 열렸거든요. 말 그대로 청년들은 N포세대 담론이 불편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포기했다고 하는 것들. 예컨대 결혼이나 출산은 누군가에겐 ‘원하지만 못 갖는’ 포기가 아니라 비혼 · 비출산과 같은 거부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왜 자꾸 포기라고 하느냐는 거예요.
박위원 나는 선택한 건데 왜 포기한 것처럼 말하느냐는 거죠?
성심 그쵸.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그것이 기후위기든 아니면 다양성이든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거죠. 중요한건 취업(소득)과 내 집 마련(소비)인데.
박위원 그게 전형적인 2·30대의 특징인거죠. 저는 그 태도를 유지를 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보다 다른 가치를 선호한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줬으면 싶은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봐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에요. 기후변화와 과학기술(특히 AI나 바이오 혁명 같은). 그런데 이 두 가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망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불확실한데 아무리 예측해도 좋게 나오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현재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도 힘들어 질 겁니다. 그런데 과거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 과거 세대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게 문제에요. (웃음) 4·50대 들은 과거의 관행을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성공했을 때의 기분, 방법을 포기하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는 거죠.
무릉도원에 사는 청년들
성심 청년들에게 씌워지는 프레임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해요. ‘탈-’이라는 담론이에요. 기존의 탈담론이 부당한 관습과 제도를 뜯어 고치는 ‘탈피’의 모습이었다면, 지금 청년들은 ‘탈주(탈조선)’를 원한다는 것이죠.
박위원 이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시간을 많이 들여서 토론을 하고 싶기도 해요. 제가 작년에 청년연구자들하고 30대 싱글연구를 진행했어요. 한 80명 정도. 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했냐면 “미래는 이렇게 될 것 같다고 가정했을 때 네 가지 태도가 있다. 1번, 현실에 적응/순응한다. 2번, 현실의 문제들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3번, 세계 안에 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살겠다. 4번, 이민 등의 방법으로 한국을 떠난다. 이 네 가지 태도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 그런데 정말 압도적으로 열명 중에 일곱명이 3번을 선택했어요. 이건 무슨 말이냐 하면 (말씀하신 탈하고는 조금 다를 수도 있는데) ‘세상 안에 살겠다. 그러나 나만의 방식으로 살겠다’라는 말은 또 다른 탈이에요.
현대사회에서 예시를 들어 보자면 일종의 옥상에 사는 사람들. 한 2-3년 전 쯤에 동대문 시장 근처에 낡은 5층 건물 옥상을 빌려서 사는 사람들이 등장했는데..
성심 아, ‘옥상 낙원’이요!
“저희는 작가로서 이곳에 대한 정책 같은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이런 문제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옥상’은 동대문에서 할 수 없는 다른 상상력을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동대문시장 같은 구조가 비단 동대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도시의 어떠한 표상인거죠. 따라서 ‘도시에서 조금 다른 삶의 태도나 시각, 이슈로 생존할 수 있을까?’ 그런 걸 고민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동대문옥상낙원(DRP) Paradise Manager 이지연
박위원 네. 그들의 멘탈리티가 뭐냐면 그 안에 사는 거예요. 그런데 옥상이니까 지상과는 약간 이격이 있는거죠. 지상은 옥상에서 보면 치열한 전쟁터 같은 곳이에요. 물론 자신들도 그 전쟁터에 살지만, 이 옥상에 자신들의 놀이터랄까? 거주공간같은 것을 만들어 놓는 거죠. 중요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함께 꿈꾸는 사람들과 함께.
그런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탈-’이라는 담론은 예전처럼 부수거나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꿈꾸면서 대안을 만들어 가는 모임을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확산이 되면 사회에 균열을 내겠죠. 사회는 이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예전처럼, 예컨대 586세대가 거리에 뛰쳐나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인거죠. ‘뭐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어때? 여기 나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런 식의 태도는 되게 중요하다고 보고 또 시대에 맞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성심 듣다보니 그런 공동체가 꾸려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한 것 같네요. 공간과 사람이요. 맞나요?
박위원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전 지구적 문제를 지역의 자원과 사람들로 풀어내는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나는 포기한게 아니라 선택을 안 한 거야’ ‘나는 기후변화가 중요해’라고 외치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는데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렇게 풀고 있어.” 그런 경험이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책의 후반부에 보면 홍성같은 지역을 찾아 다닌 거예요.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미래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례. 변화를 일으킨 사람의 성공스토리를 찾기 위해서.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성공 스토리가 필요하잖아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 취직이나 창업에 성공한 사람의 스토리뿐만 아니라 이런 성공 스토리도 있어야죠.
당신을 위한 미래 공부 : 조건을 바꾸거나 비전을 바꾸거나
성심 그럼 자신이 원하는 미래상이 생겼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혹은 그러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요?
박위원 저는 미래 연구를 심플하게 설명해요. 이건 제가 편집장님을 만나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알파와 오메가 같은 건데, 미래는 현재의 바람(비전)을 현재의 조건에서 실현하면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조건들을 봐야겠죠? 예를들어 볼까요? 내가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럼 의대를 가야죠. 근데 한국에 의대(조건)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국으로 가던가, 아니면 ‘한국에 5년 뒤에 의대가 생긴다더라. 그럼 (변화의 추이를 보고) 좀 기다려볼까?’ 혹은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책가들을 설득을 해서 의대를 만들도록 하자.’ 이런 식으로 조건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주워 듣죠. ‘여기 가면 취업이 잘 된다더라’ 그런 경우에는 꿈이 불확실한 거예요. 그냥 ‘취업이 잘 된다더라’하는 꿈을 꾸고 있는거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를 정하는 거예요. 내 비전을. 근데 이 비전이 근사해야 해요. 남들한테 말고 나한테. ‘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이런 사람이 되면 근사하겠어.’
한편 반대로, 조건들 속에서 적절한 비전을 찾는 것도 중요해요. 의사가 되고 싶은데 한국에 의대도 없고, 나가자니 힘들고, 또 기다리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럼 ‘내가 왜 의사가 되려고 하지?(비전)’ 한 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내가 사람들을 치유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좋아하나? 그럼 이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한의사가 되던지, 아니면 심리치료 음악치료 등을 하기 위해서 미술과나 음악과에 가던지. 조건을 바꾸기가 힘이 들면 조건 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거예요. 지역 이야기를 한 것도 그런 맥락이죠. 그 지역에서 꾸는 꿈을 그 지역적 조건에 의해서 어떻게 결합을 시켜서 미래가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심 그럼 비전이 없다면요? 아직 없을 수도 있고, 워낙 꿈을 꾸기가 어려운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박위원 꿈을 갖는다는 것이.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뭔가를 자꾸 계획한다는 것이 요즘 세대에게는 어필을 못하는 것 같아요. 불안한 거죠. 정해진 길을 발견하고 싶고. 틀림없이 실패하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는데 그런 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걸 제안을 해보고 싶어요. 내가 지금 불안하다면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뭔지를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전공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뭐라도 좋아요. 그리고 이 불안의 요소를 찾아서 오히려 확대 해 보는 거예요.
성심 불안을 확대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는, 6년간 키운 아들이 사실은 병원의 실수로 뒤바뀐 다른 사람의 자식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혈연이냐, 키운 정이냐 하는 단순한 물음을 넘어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영화다. <방구석 1열> 고레에다 히로카즈편. 화면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를 찍게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박위원 네. 2018년에 황금 종려상을 탄 일본의 감독이 있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인가?
성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박위원 네. 그 감독이 얼마 전 방구석 1열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혼해서 아버지가 됐는데 불안하더래요. ‘나는 아버지 역할을 해 본 적도 없고 잘 할 자신도 없는데..’ 그런 불안함에 직면해서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회피한 게 아니라. 불안을 더 확대한 거예요. ‘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어도 난 아버지 노릇을 잘 할 수 있을까?’ 그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아버지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였지만 ‘아이가 바뀌어도’는 극단적 불안감의 확장이거든요. 그런 질문은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이런 질문을 통해서 나다운 게 무엇이고 내 비전은 무엇인지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을 잘 해야 되겠죠. 단순하게 질문하면 단순한 대답만 와요. 무슨 직업을 가진 사람, 대기업에 가는 사람. 그건 기준이 잘못 된 거죠. 내 미래를 쭉 내다 보았을 때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극대화 시켜도, 나는 이걸 하고 싶나? 조건을 봤을 때 변화의 바람은 순풍인가, 역풍인가? 나는 이 바람을 피해야 하는가, 아니면 맞서 싸워야 하는가?
* 함께 이야기 나눠주신 박성원연구위원님, 감사합니다. *
미래에 대한 불안은 ‘세계에 대한 알지 못함’에서 비롯된다. 4차 산업혁명이나 기후위기같은 담론은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더구나 기술과학시대의 전문화는 이런 정보를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미래공부가 필요한 이유다.
박위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은 미래공부란 거창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래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다만 내가 선호하는 미래로 가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현실을 바꾸는 것보다 적응하는 편이 낫다고 여겨왔다. 그래야 생존하니까.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현실은 적응 할 만 한가? 이곳에서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을 때,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 적응하여 살고 싶은가? 만약 아니라면 지금은 조건을 바꿔야 할 때다.
* 개강 후 성심에서는 “내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 2050년의 한국 사회, 어떤 모습인가?”를 주제로 박성원 연구위원과 함께 미래워크숍을 진행합니다. 학우여러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참고문헌
네이버 블로그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사는 사람의 삶” 인터뷰 일시: 2017년 6월 12일 검색일: 2020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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