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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졸업하면 뭐 하실 거에요?52호/가대人 2010. 2. 26. 00:50
이한종태 사회학전공 04
학교에 복학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오랜만이네요. 학교 복학하셨어요?”
“응. 복학했어.”
“이번이 몇 학기시죠? 이번학기 끝나면 졸업하세요?”
“아니. 내년 1학기까지 다녀야 졸업이야.”
“이야. 졸업 얼마 안 남으셨네. 학교 졸업하면 뭐하실 거에요?”
‘아. 또 이 질문을 받게 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고 반복한 익숙한 대답을 한다.
“어. 시민단체 활동가하려고. 그리고 활동가 하다가 귀농하려고.”
“시민단체 활동가요? 귀농? 특이하시네. 네. 여튼 학교 잘 다니시고 다음에 또 뵈요.”
“응. 잘가.”
벌써 몇 번째 받는 질문일까. 다들 다른 사람이 졸업하고 무엇을 할지가 그토록 궁금한 것일까. 아니면 예의상 물어보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쳐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졸업을 앞둔 선배님들 혹은 동기들에게 굉장히 많이 물어봤던 질문이 “학교 졸업하면 뭐 하실 거에요?” 였다. 많은 선배님들과 동기들은 각자 나름의 인생계획을 펼쳐놓았었고, 그들의 인생계획을 들으면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었다. 사상 최대의 실업률. 혹은 청년실업의 위기와 같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찌 보면 이미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확인을 받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다. 이 사람은 졸업하고 무엇을 할까? 이 사람은 혹시 뭔가 특별한 미래의 계획이 있지 않을까? 혹은 결국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이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을 테고, 나와 똑같은 혹은 비슷한 길을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어서 그리도 많이 물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교에 입학할 때 내가 지닌 꿈은 심리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부를 졸업하면 심리학과 대학원에 가고, 종국에는 심리학을 연구하는 연구원이 되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1학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꿈은 바뀌게 되었다. 사회학을 배운 후에 사회학과 대학원에 가고, 사회현상에 대하여 연구하는 연구원이 되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내가 생각했던 심리학과 심리학 개론에서 배운 심리학과의 괴리가 컸던 탓도 있었지만,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 뭔가 지식인(?) 같아 보였던 사회학과 선배님들의 영향도 컸었다. 사회학과 선배님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지식과 행동의 일치를 지향하던 나로서는 선구자적인 모습들이라 느꼈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내가 따르고 바라보던 선배님들은 졸업을 하게 되었고, 나는 선배님들이 졸업 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가 매우 궁금하였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고 들었던 선배님들의 취업소식들은 나를 약간의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었다. 선배님들은 매우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였고, 그 중에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야의 일도 많이 있었는데 내가 혼란에 빠졌던 이유는 극히 단순하게도 선배님들은 당연히 사회운동을 하는 방향 혹은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는 진로를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한 방향의 일을 하게 된 선배님들도 있었지만 그 만큼의 혹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였던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 하는 일은 조금은 잘못된 방향의 일이 아닌지. 기존의 사회체계에 그대로 편승하여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더욱더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그렇게 흥분하여 묻는 나에게 선배는 조용히 학교 졸업을 하고 보니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고 이야기하였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가치 혹은 신념만을 따져가면서 일을 선택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라는 부가설명을 덧붙이면서. 뭐라고 더 항변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자신의 가치 혹은 신념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라고 말하기에는 내 안에 만약 똑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군대에서 제대한 후 부터 누군가 나에게 “학교 졸업하면 뭐 하실 건가요?” 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귀농이요.” 혹은 “시민단체에서 일할거에요.” 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시민단체에서 일하다가 귀농할 거에요.” 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대개의 사람들은 “특이하네요.” 라는 반응을 보여 왔다. 간혹 “귀농” 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나의 꿈 혹은 진로를 특이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억울하다거나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되풀이하여 말하는 “취업해야지.” 라는 대답이 아니기에. 그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졸업하고 시민단체에서 일하겠다고 말하는 후배는 너 밖에 보지 못했다.” 라고 말하는 어느 선배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특이하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단지 왜 사람들이 이토록 불확실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의 가치나 신념과는 다른 선택이 될 수 도 있는 다른 사람의 진로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그에 대해 왈가왈부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 세상에는 <꿈> 에 대한 굉장히 많은 담론이 있다. 젊은이는 꿈을 지녀야 하고 꿈이 없다면 아이고 청년이고 어른이고 모두가 잘못된 듯이 말하는 것이 주된 담론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꿈> 에 대한 무수한 담론들은 대부분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너는 꿈이 뭐니?” 라는 질문은 “너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니?” 와 동일한 질문이라는 사실은 어릴때부터 깨닫게 되고, 구체적인 직업군을 들어서 이야기를 하게 된다. 모든 초중고등학생들은 “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저는 오락실주인이 되고 싶어요!”(여담이지만 이렇게 말한 내 초등학교 짝꿍은 담임선생님이 “아이가 보다 큰 꿈을 꾸게 만들어 주세요.” 라고 적어준 가정통신문을 집에 들고 가야만 했다.) 등의 이야기를 하지. 두루뭉실 하면서 애매모호한 <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학교에서는 학칙을 바꾸어서 졸업이수학점은 다 채웠지만 졸업논문을 안내거나 졸업시험을 보지 않아서 졸업을 연기하는 일종의 편법 혹은 생존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 졸업유예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8학기를 이수한 후에도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억지로 졸업이수학점을 채우지 않게 만든 후에 새롭게 등록금을 내고 9학기를 다녀야 하게 되었다. 결국 학생신분으로 보다 오래 있고 싶다면 보다 많은 돈을 학교에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게 싫다면 8학기를 보낸 상태로 바로 학생의 신분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학교를 졸업한 후의 계획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4학년들에게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기사자를 정글에 내모는 어미사자와도 같이 돌변한 학교의 행정이 당황스럽기만 한 상태이다.
학교 내 자판기에서 나오는 종이컵은 4학년이 되어서 서둘러 취업을 준비하지 말고, 1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취업을 준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그 문구에 세뇌되어 가는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고, 1학년 때부터 준비하지 않고 어느새 고학년이 되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자신의 선배들이 혹은 동기들이 혹은 후배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는 모두에게 큰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학교 졸업하고 뭐 하실 건가요?” 라고 물어보는 것일 테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차마 “놀아야지.” 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마치 정형화된 대답만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취업해야지.” 혹은 “대학원 가야지.” 등의 전형적인 대답을 하는 것이리라.
“학교 졸업하면 뭐 하실 거에요?” 라는 질문이 차라리 나에 대해서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매우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위의 경우에 해당되어 물어봤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나의 미래에 대하여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고, 그에 대하여 성심성의껏 이야기 나누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학교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게 될 때에는 대화를 길게 나누고 싶지 않은 생각이 자꾸만 들게 된다. 금융위기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취업대란을 겪는 시기가 아니었다면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씁쓸해지기 때문에. 우리는 학생이기에 학문이나 문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철학과 사상에 대하여 논해야 한다는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 반복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할 바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가끔은 들곤 한다.
혹여나 “초등학교 때부터 지겹도록 이어져왔던 직업을 가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배움의 기간이 끝나가네요. 좋으시겠어요.” 라는 말을 듣게 되는 날은 오지 않으려나? 라는 생각을 해보며 길고 길었던 생각의 나래는 이렇게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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