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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생(사)회?75호/가대IN 2019. 11. 20. 22:55
엄아린 편집장 cukkyoji@gmail.com
총학생회칙 개정안의 제안 이유에서는 학생사회의 위기를 언급하고 있다. 개정된 회칙을 보면 학생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가장 잘 아는 대표자들로 구성된 선관위와 예결특위, 기존보다 간소해져 학생회의 조직력과 실행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한 회의체 진행 방식, 학생회 간부가 학생회에 더 헌신 할 수 있도록 만든 회원 규정, 없는 돈으로 어떻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학생회비 배분율까지. 딱히 어느 한 부분이 문제여서 이렇게 고치면 학생회를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기보다는 전 분야의 가능성을 열어둔 ‘학생회 심폐소생술’과 같은 회칙이다. 그동안의 ‘학생회 위기론’은 그 주체인 대학생보다는 기성세대와 기성언론에 의해 더 문제시 되어 왔으며, ‘학생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대학생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일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냉혹하다. 학생회가 기능을 하고 말 것도 없이 그 자체로 구성도 되지 못하고 픽픽 쓰러져 나가고 있다. 학생회 위기론이 등장한지도 벌써 20년째다. 놀라운 사실은 20년쨰 위기에 시달리면서도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학생회를 사고하는 방식이 위기-존폐로 충분치 않다는 방증이다. 이제 다른 질문을 해보자. 학생회, 어떤 위기인가? 위기의 학생회, 왜 회복되어야 하는가?
학생회 어떤 위기인가?
2018년 ‘가톨릭대 아나키즘설’을 부추겼던 전대미문의 전단위 입후보자 부재는 학생사회의 새로운 위기담론을 던져줬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학생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학생회 종말론 중에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학생회가 하기 싫은 이유는 명확하다. 학생회 활동은 ‘미래’에 도움이 안 된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개인들을 각자도생의 장으로 밀어 넣으면서 ‘철저한 자기관리만이 헬조선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라는 자기계발 신화가 대학생을 지배하고 있다. 삶의 수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최우선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를 여부로 결정되며, 동일한 기준으로 나의 선택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선택까지 재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학생회라는 이 여분의 활동이 나의 현생을 침범할 정도로 업무량이 과다하고 스트레스를 줄 때. 그리고 그게 남들도 알만할 정도로 심각할 때. 개인의 선택을 넘어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학생회의 기반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학생회 유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혜택이 중요하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서울대학교 55대 총학생회 총노선에서는 ‘누구나 집행위원이 되고 싶어하는 학생회’를 제안하며**, 간부들이 학생회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책임감이라는 채찍뿐만이 아니라 처우개선이라는 당근 역시 필요함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학생회는 친목질 혹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무분별한 비판에 대해 “적극적 학생들이 획득한 당연한 권리”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의지를 천명할 수는 있지만, 사실 현실성은 거의 없다. 간부들에게 줄 정당한 임금은 고사하고 업무를 위한 비품 구입비조차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생회비 납부율이 고작 30-40%를 웃도는 상황에서 학생회는 간식행사와 축제 등 최소한의 사업을 진행할 재원조차 부족해 대학 본부의 지원금이나 총동문회 등 외부재원에 의존하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개인의 자질을 발휘해 외부재원을 끌어온 것은 분명 능력이나, 재정 의존이라는 방식이 가져오는 본질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이는 이번 회칙개정 과정, 정확히는 예산배분율에 대한 논쟁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다. 학생회비가 독립적이고 고정적인 재원이라면, 학교의 지원금은 가변적이고 의존적이 요소다. 지원금이야 말로 학교에 ‘밉보이면’ (혹은 밉보이지 않더라도 재수 없으면) 못 받게 됨으로, 각 단대와 동아리연합회가 1-2%에서 5%의 학생회비 배분율을 두고 아옹다옹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회비로는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는가? 학생사회에 어떤 사업이 더 중요하느냐는 판단은 당해년도 학생회의 노선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들어 학생회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학생(인원)에게 혜택을 돌리고자 할 수도 있고, ‘학생회는 모든 학생을 대표해야 한다’는 딜레마에서 벗어나 특정집단에게 혜택을 몰아줄 수도 있다. 이 특정집단은 물론 학생회비를 납부한 학생들이(거나, 적극적 참여로 학생사회에 기여한 학생이) 될 것이다. 문제는 학생회라는 기구의 특수성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는 사실이다.
학생회는 조합인가? 학생회가 조합이라면 학생회비 납부는 회원의 의무다. 노동조합이 비조합원의 처우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듯이, 학생회는 회원의 복지증진과 편의를 위해 활동하면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2017년 1학기 ‘사물함 배정 논란’이 일어났다***. 학생회비 납부자만 본교 사물함을 쓸 수 있도록 제한한 것으로, 회비 납부자와 비납부자의 혜택 차등을 고려한 정책이다. (학생자치기구가 아니라 학교 측에서, 정확히는 학생지원팀에서 고안해낸 정책이라는 점에서 결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학생들은 차갑게 돌아섰고, 정책은 폐기됐다. 학생회가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투표를 통해 선출됐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이 입학과 함께 학생회에 소속되기 때문이다. (투표를 통해 선출돼서 대표성을 가진다면 비대위는 대표성이 없는 학생대표가 됨으로 학교와의 협상능력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회비납부를 기준으로 회원들에게 차별을 둘 수 있으려면 가입과 탈퇴도 자유로워야 한다. 결국 의무가입제이면서도 회비는 선택납부라는 것이 맹점이다.
그렇다면 학생회비는 언제부터 선택납부가 되었나? 각 대학들이 학생회비를 선택납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정부와 교육부의 지침 때문이다****. 이러한 지침에 각 대학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일률적이었는데, 수업비를 줄일 수는 없으니 학생자치를 위한 학생회비를 건들인 것이다. 대학생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시한 등록금 인하 정책이 결국은 학생들의 자치를 제한하게 된 형국이니, 이 악인 없는 싸움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학생회의 정체성이 보편성인가 조합성인가에 대한 양자택일을 하지 않겠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학생회비 납부율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학생회 그들만의 리그에 돈을 낼 생각은 없다거나, 회비를 내봤자 간식행사 말고는 돌아오는 것을 체감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왕왕 들린다. 전자는 학생회에 대한 불신에서 후자는 학생회가 ‘소셜커머스’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학생회의 진정한 위기는 학생회가 학생대중들로부터 스스로의 필요성을 설명 혹은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현실이다.
학생회 왜 살려야하나?
학생회가 유명무실해졌다는 학생회 위기론은 학생회가 맡고 있던 과업의 한축이 없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바로 학생운동이다. 민주화운동을 인양한 NL계열에서 노학연대에 중점을 둔 PD계열로의 이전*****, 지리멸렬한 정치싸움에 질린 학생들로부터 제기된 비-반(운동)권 학생회, 교육개혁·문예·언론·사회연대 등 학생 활동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제공해야 한다는 네트워크 학생회, 학내 복지에 주력해야 한다는 복지 학생회의 등장까지. 학생회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변천을 달리 해왔다. 공통점이 있다면 무언가(독재나 불평등 혹은 비민주 등)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존재해 왔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반대할 만한 것도 딱히 없다. 없다기보다는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팽배하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사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43.5%가 만성적인 울분 상태이며 이는 가히 한국을 ‘울분 사회’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라고 지적한다. 울분은 분노와 다르다. 울분은 분노에 무기력이 결합될 때 발생한다. 달라지리라는 희망이 없을 때 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울분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다. 학생사회의 위기는 무관심이 아니라 무력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근 각 대학들에서 총학이 주도하여 조직하는 ‘조국 반대 시위’는 학생회가 청년정치에 대한 연결고리를 잃지 않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학생들의 관심도 낮지 않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가 페이스북에 올린 ‘조국 교수 STOP! 서울대인 촛불집회 안내’ 공지의 댓글은 200-400개에 달한다******. 기성언론이 ‘20대 개새끼론’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러한 총학의 노선에 학생들의 반응이 ‘썩’ 좋지 않다. 우선 의제 설정부터 난관이다. ‘조국 논란’의 중심에서 학생회는 어디까지 의제를 끌고갈 수 있을 것인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0830 집회 관련 중앙운영위원회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중운위에서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단어를 핵심가지로 넣을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음을 밝혔다. 또한 ‘집회의 의제를 확장할 수 있는가? 확장한다면 어디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 ➀개인의 입학 의혹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자는 의견 ②공정한 입시제도 확립까지 나아가자는 의견 ③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어버린 대학과 교육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는 의견이 오갔으며, 결국 집행부는 ➀②번만을 구호로 결정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 중에서는 ‘집회 운영의 미숙함’과 ‘담론 설정의 정당성’을 문제제기 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전과 달리 학생회가 정치 수단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학생회는 모든 학생들을 대변하는 보편성을 가진 기구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대학생이 과연 보편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이는 오히려 학생회가 중심이 되는 정치의제 설정은 협소한 기준으로 청년정치를 끌고 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만들어낸다. 결국 학생회 위기론은 학생회가 주도하던 학생운동이 쇠퇴하면서 필요성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성언론이 보도하던 것처럼 운동이나 정치를 떠난 학생회는 존재의 가치를 잃는가? 필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대학는 공간이고 다양한 학내 구성원(교수, 교직원, 대학 등)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따라서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운영 등에 있어서 이해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학생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각 대학들에서 학생회가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은 ‘총장 직선제’ ‘민주적인 대학 운영절차 마련’과 같은 의제 설정 때문이다. 대학 본부의 운영절차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절차를 민주적으로 하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점차 구체화 되고 있다.
두 번째는 학생자치로서의 학생회다. 학생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다. 이 공동체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개별적 사건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닌,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들어 학생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성폭력이나 인권침해 사건은 개인의 ‘불운’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구조 속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또한 문제해결 과정은 대학 본부가 아닌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학생회는 그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화여대나 서울대학교의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는 매 선거 때마다 각 선본에게 ‘선거질의서’를 보낸다. 이를 통해 후보자의 인권에 대한 견해를 듣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배제 없는 학생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세 번째는 대학문화로서의 학생회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하나의 정류장 정도로 치부되면서 내가 서 있는 공간의 운영이나 문화를 직접 변혁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과 즐거움을 유예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정언명령에 불응할 개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학생회와 동아리, 학회, 소모임 등에 남아 있는 개인들만이 유예하지 않는 현실의 삶을 즐기는 자들이며 이들이 모인 학생자치기구가 마지막 보루다. 타자가 어떤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든 학생자치를 해 본 사람만이 아는 대학생활의 ‘다른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학생회는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 이들을 적극 지원하고 대학문화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 취업특강이 있는 캠퍼스는 대학본부가 만들어 줄 수 있을지라도, 노래 소리가 들리는 캠퍼스는 학생회 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다.
학생사회의 위기
그런 면에서 학생회의 위기는 학생사회의 위기와 분리된다. 학생사회의 위기는 무엇인가? 학생사회의 위기는 학생들의 ‘탈-정치화’다. 탈정치화는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탈정치화란 일상의 고민과 문제들을 정치화할 수단을 갖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까지 학생사회의 의제(반독재, 민주주의 등)는 학생회가 견인해 왔으나, 이제는 그러한 의제 설정이 학생회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래서 기대하기 힘들다. 문제는 운동 없는 학생회는 가능할지 몰라도, 학생회 없는 운동은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을 요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학생사회의 다양하고 다변화된 의제(청년 정치, 인권, 세계화, 노동, 페미니즘, 문화, 소수자, 동물권, 비건 등)는 동아리나 소모임 혹은 학회 수준에서 메아리처럼 떠돌거나, 단발적인 이슈파이팅에 그치며 조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일상의 정치의 수단이 될, 학생사회의 새로운 공동체는 가능한가? 이는 전인미답의 과제로 남아있다.
각주
* 올해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약학대를 제외한 전단위 선거 무산이다.
** 2013년 7월 24일 제10차 총운영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출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성심교지 72호 <학생회비 특집> “학생회비 안 내면 사물함도 쓰지 말래요”
2018/05/30 - [72호/가톨릭대와 대학] - 학생회비 안내면 사물함도 쓰지말래요
****여기에 더해 몇몇 대학에서 학생회 간부들의 횡령과 비리 문제 등이 발생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해결방법으로써 학생회가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체적인 감사기구를 만드는 것이 아닌, 회비납부를 제한하는 방식이 된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 현재 학생회가 하고 있는 활동들 중에서도 과거 학생운동으로부터 내려온 것들이 많다. 예를들어 농활(농촌봉사활동)의 경우에는 민족성과 민중을 강조한 NL계열의 학생회가 농민들과의 연합을 위해 방학동안 농사일을 돕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현재 사회학과 학생회에서 주도하고 있는 메이데이행사는 노학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한 PD계열의 학생회의 유산이다.
****** 물론 댓글이 전부 대학생들인 것은 아니다.
<참고문헌>
서울대학교 55대 총학생회 총노선
대학연구네트워크 정기연재 프로젝트: 살아남아라! 학생회!
성심교지 학생운동 세미나 자료
서울대60년사 제4부 2장 학생회의 변천
“울분사회 한국, 지속가능한가?” 한겨레 칼럼. 한귀영. 등록일: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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