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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아린 편집장 cukkyoji@gmail.com
어느 사회나 그 사회만의 특징이 있고 그에 기반 한 법과 제도가 있다. 학생사회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사회의 법과 제도는 현실사회와 똑같을 수 없다. 다만 현실사회를 준용해야한다.
대학언론은 그동안 학생사회에서 무슨 역할을 맡아왔나? 대학언론 역시 독재정권에 의한 언론탄압, 편집권 침해, 대항이데올로기 형성을 외치며 탄생했다. 학보사, 방송국, 영자신문사.. 그런데, 교지는 뭐지?
교지는 대학본부로부터 독립된 학생자치언론이다. 보통 대학언론은 대학본부에 속해있으나, 교지는 독립이라는 위치를 통해 편집권 보장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 기구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재정분리다. 대학본부의 예산을 편성 받거나 지원금을 받는 것은 교지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때문에 학생회비에서 ‘자치언론기금’을 배분 받거나, 독립된 교지대금으로 운영된다. 성심교지는 학생회비와 분리된 5,000원의 교지편집비로 운영된다. 그러므로 교지는 대학본부로부터 위치로서의 독립과 재정으로서의 독립 두 가지를 전부 보장받은 언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충돌이 발생한다. 언론이라면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인 것이 원칙이나, 학생사회는 총학생회 외의 독립된 학생자치단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용단체의 생성을 막기 위함이다. 학생회는 기본적으로 노조의 성격을 띤다. 학생회원이 투표를 통해 뽑은 대표자는 학교당국과의 교섭을 통해 회원의 권리와 복지를 향상시킨다. 만약 학생사회에 두 개의 학생자치단체가 존재할 수 있다면 복수노조가 된다. 독재정권의 어용학생자치단체인 ‘학도호국단’의 해체 – 학생회 설립 – 학도호국단 부활 – 학생회 해체‘의 역사를 보면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상황이 아주 복잡하다보니 각 대학들마다 교지의 상황도 제각각이다. 여전히 본부에 속해있는 교지, 총학생회에 속해있고 학생회비를 배분받는 교지, 총학생회에 속해 있지만 교지대금을 따로 받는 교지, 완전히 독립적인 교지, 독립언론이 여러개라 자치언론협의회를 두고 이에 속해있는 교지 등.. 각자 현재의 상황에 맞춰 편집권과 자치권을 지키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앙대학교 교지 <중앙문화>와 여성주의 교지 <녹지>는 2011년 “교편위의 비판적인 논조가 학교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2011.02.15. 학생지원팀 방문내용中)”는 이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 당했다. 언론 탄압에 반대하며 당시 대학본부 언론매체부 소속으로부터 독립하고, 고지서를 통한 자율납부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2015년 다시 학내 공간으로 위협 당한다. ‘학교 소속이 아니니 공간을 내어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국외대 교지 <외대문화>는 KBS 고대영 사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대학측으로부터 교지를 전량 수거 당했으며* 동국대학교 교지 <동국>은 학내를 깨끗하게 정돈한다는 명목으로 가판대를 무단 철거 당했다. 대학 본부에 의한 언론 탄압이야 새롭지도 않은 일이지만, 교지가 마주한 새로운 탄압의 양상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바로 학생회에 의한 언론탄압이다.
2008년 경성대학교는 총학생회는 전학대회를 통해 ‘운영의 투명성’을 핑계 삼아 독립인 교지를 총학생회 하위부서로 편입시켰다. 교지대금 또한 학생회비와 통합시켰으며, 바로 다음 연도 교지대금 배분율을 줄였다.
2010년 <외대문화>는 감사에서 발생한 문제로 예산을 동결 당하고, 1학기 발행이 중단된다. 이에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동결을 풀어줄 것을 총학생회측에 요구했으나 ‘학생 대다수가 교지 발행을 원치 않는다’며 이를 거절했다.
건국대학교 교지 「건대교지」는 2018년 10월 전학대회 의결을 통해 총학생회 중앙자치기구에서 퇴출됐다. 퇴출로 인해 예산을 배분받지 못하고 1년간 호외를 발행하다가 현재는 광고비로 운영되고 있다.
사건의 맥락을 살펴보면 둘 중 하나다. 줄어드는 학생회비 납부율에 따라 학생회에서 교지대금을 탐내거나, 시시각각으로 여론을 확인 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비판을 싣는 교지와 비판받는 총학의 대립구도가 발생한 경우다. 이전과 달리 총학생회와 교지 활동을 학생운동의 부분으로 사고할 수 없게되면서, 서로 관심가지는 사업이 달라진 점도 한 축을 이룬다.
이상의 상황들이 말해 주는 바는 대학언론의 위기란 대학언론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독립되어 있지 않은데 독립성을 지켜야 하고, 때론 독립을 이유로 재정운영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교지가 속해 있는 단위가 정권이건 대학본부건 총학생회건 ‘정론직필’의 자세를 견지해야하는데, 교지는 이들에 비해 힘이 약하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몰랐던 규정, 학칙, 학생회칙 등은 언제나 언론의 위기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위기의 상황에서 교지의 존폐는 언제나 학우들의 지지와 응원에 달렸다는 점은, 대학언론의 위치와 권력의 원천에 대해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다. <중앙문화>는 중운위에서 직접 나서 대학본부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붙였고, <외대문화>는 교지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학우들의 집단 요청에 따라 다시 편집권을 회복했다. 「건대교지」는 다시 중앙자치기구로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학우들의 지지로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대학언론의 권력은 독자와 학생대중들로부터 나온다. 이 당연한 명제에 무감해 질 때 대학언론의 위기는 현실이 된다.
견제가 없는 정치권력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동시에 언론의 견제가 무분별 혹은 무비판적일 때 권력의 지지는 반등하기도 한다. 정치권력은 언론의 운영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되지만, 언론이 독립을 이유로 내부 운영을 베일로 가린다면 그야말로 자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는 실제 사회에서건 학생사회에서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대학언론은 추락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각주
*고대영은 한국외대 졸업생으로 총동문회를 통해 압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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