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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위원 날개
막장 정부·삽질 정부·어뤤지 정부라는 애칭이 회자된 지난 1년을 되짚어보면, 번듯한 이명박 정부라는 명칭을 아는 이는 많이 없는 듯 하다. 그 1년의 역사는 변화와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촛불의 역사와 동일시된다고 볼 수 있다. 고등학생들의 “미친소 너나먹어!”라는 소박하고도 중대한 구호는 제2의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FTA로,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를 뛰어넘어 비정규직 투쟁과 사회 소수자 등 사회 전방위적인 문제들과 제도권 정치를 연결하는 소통의 매개체가 된 듯 싶다.촛불이라는 복병이라도 만난 듯, 이명박은 두 차례에 걸쳐 머리를 조아리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촛불 민심에 ‘존심’도 죽였고 불도저식 국정운영 철학에 큰 화상을 입는다. 권위·수구적 정부가 그렇듯이, MB도 언론이 정책의 결점을 들춰내고 민중이 ‘더러워 못 따르겠다’는 반발이 있기만 해도 괘씸죄로 엄히 다스렸다. 어떤가?
촛불의 시발점이라는 MBC <pd수첩>을 표적수사했지만 별 성과가 없자 검사까지 바꿔가며 흠집내기와 꼬투리 잡기에 혈안이 되 있는 ‘떡검’. EBS와 YTN의 비판적 프로그램을 눈엣가시로 여겨 PD를 인사조치시키며 측근을 사장자리에 낙하시키고 공정성·공공성 운운하는건 누군가. KBS사장자리도 주겠다며 온갖 권력기관을 총동원해서 정 사장을 쫓아내곤 시사프로그램 개편과 고분고분한 연예인 길들이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Daum의 아고라가 ‘촛불 좀비, 좌빨의 성지’라는 빨간색 색소탄을 맞고, 서울대 나오신 분들이 주관하는 경제정책이 잘못되었다고 감히 의견을 개진한 전문대 미네르바는 허위사실유포라는 죄명을 쓰고 잡혀 들어가는 이 세상.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재벌·족벌신문에게 신방겸영 조공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는 정부·여당. </pd수첩>언론인이, 기자가, PD가 연쇄살인범마냥 검찰에 소환된다. 인권위가 촛불집회진압시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고 쓴소리 몇 번 했더니 몇배로 앙갚음 하려는 유치한 장난질.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신 대법관. 공기업 선진화와 4대강 살리기라는 속 빈 강정을 강요하더니 청년인턴을 찍어내고 대졸초임을 깎는단다. 그러면서도 반값 등록금은 나몰라라. 이젠 그도 모자른지 옛 대학 비리재단까지 눈감아주는 관용의 자세까지 보여주신다. 이 시점에서 자문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떤 수준으로 인식했느냐고. 지금이라도 당장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달려가 촛불을 들 맘은 있지만 현실이, ‘견찰’의 무서움이 발목을 잡는가? 나와 관련도 없는데 뭣하러 고생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게 무관심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구속받지 않는 무한권력을 양성한다. 우린 시대의 양갈랫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미래로 나가는 길인지, 다시금 피흘려 민주주의를 되찾아야 할 길인지.
가끔은 그 방관을 위하여 ‘막장 드라마’대본을 찍어내는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도 뭉게뭉게 솟아난다. 백혈병도 넣고, 바닷물에 빠졌다가도 살아나고, 어느 재벌집 도련님에게 잘보여 인생펴는 환상적인 스토리도 넣고 말이다. 방송이 장악되어 귀가 막히건 인터넷을 쓰려면 국적을 바꿔야만 하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던 웃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그 어떤 정부관료도 거뜰떠보지 않았던 주거권과 생존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올라갔던 용산의 새벽하늘. 공권력이라는 탈을 쓴 학살은 그들의 육신과 우리의 울분을 불질렀건만 남는 건 싸늘하게 식은 영안실의 시체, 무관심 뿐이었다. 철거민을 ‘도심의 폭도·테러리스트’라는 국희의원이 내뱉은 말은, 서울 재개발 299개·재건축 266개 구역의 잠재적 테러리스트에겐 어떻게 들릴까. 용산참사 100일째. 천박하고 야만한 시대. F4와 금잔디에 나를 투영하고 구은재의 복수에, 발호세의 연기에 그저 웃고 열광하는 낙이 없다면 소시민들이 살아갈 맛 나는 사회일까. 문득 궁금해지는 MB치하 1년에.
멱살도 못 잡고 / 밀쳐주지도 못 하고 / 욕도 못 해주고 / … / 변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멱살 한 번만 잡히십시다.
장기하와 얼굴들 -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