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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들의 낙동강 공습기54호 2010. 11. 9. 17:37
편집위원 수화
"너 지금 뭐하냐?"
"나? 그냥 잉여야. 넌?"
"나도 그냥 잉여짓하고 있어."
"아... 심심하다..."
혹시 그대는 위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가. 할 일없이 살아도 정신없이 지나갔던 학교생활을 뒤로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두 달 반의 황금같은 시간. 무얼하며 보내야 방학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머리를 곰곰이 굴려보았지만 이내 무한 귀차니즘에 빠져 그 무엇도 하지않은 모습. 순간 그대의 잉여로운 방학이 떠올라 흠칫하진 않는지. ‘난 그렇지 않아. 아주 열심히 살았어!!’라고 발끈할 학우에겐 심심한 사과를 하며, 뼛속까지 잉여정신이 녹아있는 필자의 지난 여름방학 이야기를 할까 한다.
2010년도 어느 잉여로왔던 여름날
어느 여름날, 잉여인간 한명이 있었다.
첫째. 내리쬐는 한여름의 태양볕은 나의 피부건강을 위해 철저히 차단(집 밖 출입을 자제)한다. 둘째. 우울한 학점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영원히 망각한다. 이 두 가지의 강령만을 머리와 가슴에 새긴 채 밀려오는 심심함에 몸부림치던 잉여인간 한명이 있었다. 귓가에서 윙윙대는 모기를 쫓으며 문득 친구가 재밌는 걸 발견했다며 알려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본다. 들어가자마자 대문짝만하게 뜨는 하나의 웹자보.
‘님들아ㅋ 잉여킹도 강이 있어야 산다는 게 레알임?’‘우리 낙동강 지키러 가자! 왜? 방학이니까!’
포크레인과 더불어 파헤쳐진 강가에 잉여잉여 거리는 잉여들의 아이콘, 잉여킹 한마리. 그리고 저 멋진 멘트는 이미 나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멀쩡히 흐르고 있던 강에 그야말로 삽질을 하고 있는 MB토건정권에 지긋지긋한 경멸을 느끼면서도 내가 그 미친 삽질을 막기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언제나 무력감이 밀려오곤 했었다. 일단 내 눈으로 보자는 마음에 공사 현장에 가보면 끝없이 움직이고 있던 포크레인들에 식겁하곤 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있어도 공사는 여전히 강행되고 있고, 지금 당장 내 한 몸으로 저 포크레인 하나 막을 수 없단 생각에 끝없이 울적해졌었다. 그러나 우리의 은혜로운 잉여킹님은 “거기 심각한 자네, 뭘 해야될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가서 놀기나 하자!”라고 쿨하게 말하고 있었고, 이내 내 마음은 잉여들의 유쾌한 낙동강 공습을 그리고 있었다.
순례는 7월 12일에서 30일까지 총 20일동안 안동 마애에서부터 부산 을숙도까지 걷는 코스였다. 일주일 단위로 1기(안동~상주), 2기(상주~대구), 3기(대구~부산)로 나누어 신청자를 받았고 전구간 참여 혹은 주말참여 등 참여형태는 다양했다. 나는 18일부터 2기를 참여하여 3기까지 함께하였다. 가볍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4대강 반대 청년도보순례 ‘잉여들의 낙동강 공습기’. 그 유쾌발랄 잉여로운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江,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너
나의 순례는 문수스님의 추모제로 시작되었다. 상주 경천대의 고운 모래밭에서 지율스님과 6.9작가선언모임(이하 작가모임)과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사람들(이하 강습사) 그리고 잉여 순례단이 함께한 추모제였다. 처음 강가에 들어서면서 ‘강이 참 잔잔히 흐르네. 모래도 참 곱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강에 왠 헛질이람…’이라고 생각하며 물가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진만 찍고 있었다.
그 순간 작가모임과 함께 지율스님이 등장하셨다. 그리고 난 그들의 자연스러운 걸음에 순간 멈칫했다. 그들은 맨발로 그 강가의 고운 모래를 저벅 저벅 밟으며 오고 있었다. 그리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물에 발을 담그며 걷는게 아닌가. 찰방거리며 걷는 그네들의 발을 바라보며 순간 나는 부끄러워졌다. 강은 아름답다고 그저 바라보는 피사체가 아닌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이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은 흘러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하는 나였지만, 정작 그 강을 자연스럽게 대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답답한 운동화를 벗고 폭신하고 부드러운 모래에 발을 디뎠다. 강가에 가만히 서 있으면 발가락을 간지럽히던 물길과 모래의 감촉은 처음 느껴보는 강의 움직임이었다. 강은 그렇게 흐르고 있었고, 난 그제서야 강이 흐름을 내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강과 나의 첫 교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 삶 속에서 이렇게 자연을, 강을 느껴볼 수 있던 기회가 몇 번이나 됐을런지. 인간은 자연 속에서 존재하 는 하나의 개체이기에 그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머리로는 늘상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나는 나름대로 환경 문제에 관심도 있었고 4대강사업에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기에, 자연에 대한 감수성도 웬만한 이 못지않게 예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자연을 머리로 배우고 판단하기 이전에 몸으로, 가슴으로 느끼고 담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 새삼스레 슬퍼졌다. 자연스럽게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나와 같은 우리 시대의 불쌍한 이들이 너무도 많을 거란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화려한 야경을 뽐내는 한강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그 옆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게 익숙한 시민들이, 강물에 손을 그리고 발을 담글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4대강 사업이 강행되어 사라지는 것은 내 눈 앞의 이 아름다운 강 풍경뿐만 아니라, 그 강을 진짜 느낄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강가를 걷고 나서 우리는 강을 향해 백팔배를 하며 문수스님을 기렸다. 그 백팔배는 문수스님과 동시에 강에게 드리는 우리의 기도였다. 그렇게 경천대에서 우리의 일정을 그렇게 경천대에서 우리의 일정을 마친 뒤 순례 2기에 참여하는 잉여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가만가만 강을 걸으며 강을 느낀 뒤 온 마음으로 문수스님을 추모한 후라 그런지 잉여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게다가 그 날 저녁 지율스님 댁 마당에서 나누었던 각자의 이야기는 이런 잉여들의 진지함에 한몫을 더했다. 강행되는 공사현장 속에서 무력감을 느꼈지만 그 속에서도 유유히 흐르는 강의 강인함 앞에서 느꼈던 한낱 미물로서의 무력감이 더 컸기에 희망이 생겼다는 잉여, 파괴된 강의 현장조차 도시인인 자신에겐 아름다운 자연일 수 있단 생각이 들어 자신의 생태감수성을 한번 알아보고 싶어서 왔다던 잉여, 강 또한 잉여이고 잉여는 결코 쓸데없는 것이 아닌 풍요의 의미라고 주장하던 잉여 등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잉여들이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인물들이란 생각이 들자 나는 이 순례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재기발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이들과 2주동안 걸으며 이야기 나누다보면 내가 느꼈던 무력감과 외로움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그렇게 잉여들과의 두근거렸던 첫 대면은 기대와 걱정이 공존한, 결코 잉여롭지만은 않았던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잉여로울 순 없다.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도보순례는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잉여롭게 움직인다!’라는 원칙 하에 진행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한 우리의 잉여정신은 흡사 하나의 계급의식임과 동시에 잉여순례단의 회칙 혹은 잉여당의 강령, 잉여국의 헌법과도 같았다. 새벽 6시 정도에 눈을 떠서 아침을 해먹고 7시가 넘어서부터 걷기 시작하는 스케줄이 부지런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매우 큰 오산이다. 11시 정도 되면 한여름의 뙤약볕을 견딜 수 없게 되고 우린 그 즈음 도착한 마을의 정자에서 점심을 해먹고 휴식을 취한다. 이 휴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되 조금도 무기력하거나 조급하지도 않은 완벽한 ‘잉여 상태’이다. 잉여들은 볕을 피할 수 있는 한 뼘의 그늘만 자신에게 허해진다면, 바닥에 머리가 닿음과 동시에 낮잠을 잔다.
이렇게 푹 쉰 잉여들은 오후 서너시부터 다시 걷기 시작하여 해가 질 무렵 도착하는 동네의 마을회관을 빌린다. 이장님의 허락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회관에 놀러오신 마을의 어르신들에게 안마 서비스 또한 필수코스다. 순례가 진행될수록 잉여들의 안마 솜씨는 나날이 늘어갔다. 어르신들이 도라지를 까고 계시면 서툰 손길이지만 같이 거들고, 창에서부터 트로트까지 부르며 아는 대로 닿는대로 재주를 부렸다. 어르신들은 우리가 당신들의 손주, 손녀같다며 우리의 긴 여정을 걱정하셨고 또한 이것 저것 많이도 챙겨주셨다. 묵은지에서부터 시원한 수박까지. 잉여들의 식량의 몇 할은 그들의 온정이 차지했으리라.
생각해보면 그 정에 감동함과 동시에 그러한 환대에 익숙해진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리하여 생각지도 못한 문전박대에 당황하기도 했다. 당시 4대강 반대 고공농성이 진행되고 있던 함안보 근처의 어느 마을에서는 갑작스레 이장님께 호통을 들었었다. 그 분은 우리의 순례가 4대강 반대라는 것을 아신 뒤로는 더욱 더 흥분하시며 말씀을 하셨다. 환대받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때의 호통에 더 놀랐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은 우리의 정체성이 조금은 의심스러우셨을 것이다. 학교도 고향도 관심사도 제각각인 채 단지 서로 잉여라는 점에서 맞닿아있는 이 젊은이들을 어르신들께 어떻게 소개해야 했을까. 어찌되었건 길에서 만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에피소드 덕에 우리의 순례가 더 풍요로웠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 풍요로웠기에 잉여로웠고 잉여로웠기에 풍요로웠도다!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또한 잉여들의 걸음엔 나름의 특징이 있었다. 바로 절대 자신의 발바닥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걸어다닌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평균 20km씩 걸어다녔지만 결코 구성원이 감당하지 못할 걷기를 강행하지는 않았다. 끝없는 강둑을 따라 걷다가 한 평의 그늘이 나오면 다들 옹기종기 붙어 앉아서 땀을 식혔다. 함께 전날 마을회관에서 얼린 물을 나눠마시며 목을 축였다. 기가 막힐 정도로 처참한 강변의 모습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으며, 해질무렵의 아름다운 강가에서도 곧잘 넋을 잃고 주저앉곤 했다. 우리의 걷기는 걷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자유로웠다. 보고싶은 것을 보았고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며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걸었던 것이다.
간혹 우리의 순례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에게~ 고작 그것밖에 안 걸었어?”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이 걷고 싶지도, 빨리 걷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걸으며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의 순례를 얕보는 이들을 보며 나는 오히려 자신이 왜 많이 걷고 있는지 왜 빨리 걷고 걷다못해 뛰어가고 있는지 자각조차 못하는 수많은이들이 안쓰러웠다. 자신의 발바닥의 속도는 물론이고 이미 인간의 속도를 넘어선 이 속도전에 끼지 못하는 우리 잉여들의 느린 발걸음이 한심해보일지라도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내 걸음의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내 옆에 친구와 같이 걸을 수 있었던 우리의 발걸음은 참으로 따뜻했다고 말이다.
강은 흘러야 한다.
4대강 반대의 뜻을 가지고 유쾌하게 걷고자 했던 잉여들이었지만 파헤쳐진 강변을 바라보며 유쾌하기란 사실 쉽지 않았다. 내가 걸은 상주에서 부산까지의 강의 모습은 흡사 하나의 장면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여러 대의 포크레인이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기 위해 그 아가리를 쳐박고 있는 장면이 끝없이 반복되었으니까 말이다. 강바닥의 모래는 찢겨진 속살처럼 퍼올려져 강둑에 쌓이게 됐는데 이 쌓인 모래의 모습은 흡사 무덤과도 같았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강은 이미 혼탁한 흙탕물이었다. 그리고 강 옆에 만들어진 수많은 ‘강의 무덤’. 이런 끔찍한 파괴의 현장 중에서도 내가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 처참한 유린의 순간에서도 묵묵히 흐르고 있던 강물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포크레인과 준설선의 끝없는 탐식에 스스로 찢기는 그 고통 속에서도 강은 미련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착잡한 마음에, 강에서 눈을 돌려 해질 무렵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내 시야의 반을 차지하는 하늘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 평화롭게 흘렀을 우리의 강이 지금 죽어가고 있다. 그것도 강 ‘살리기’라는 끔찍한 거짓말 하에 말이다. 그 기괴한 풍경 속에서 잉여들은 모두가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끔찍한 풍경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강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되뇌는 것 뿐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저지르는 짓이 강을 죽이고 강가의 생명들을 죽이고 결국엔 인간을 죽이는 일임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들을 대신해 강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를 했다.
지금 4대강 사업의 주요 작업은 보 만들기와 준설이다. 4대강에서의 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내천의 작은 보가 아닌 댐 정도의 거대한 규모이다. 특히나 낙동강은 총 8개의보를 만드는데, 이로서 평균 30km마다 보 안에 강물이 갇히는 꼴이 된다. 또한 강바닥의 수심을 평균 6m로 깊게 그리고 평평하게 억지로 긁어내는 준설은 강의 생태계를 삽질과 함께 모조리 긁어내는 작업이다. 4대강 사업의 주요 주장은 수질개선과 홍수예방 그리고 물확보이지만 보 건설과 준설로는 수질이 개선되지도 홍수가 예방되지도 그리고 식수가 확보되지도 않는다. 정말 상식적으로도 흐르는 강물을 고이게 하면 물이 썩고 그 물은 식수로 절대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자명하지 않은가. 낙동강 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부산의 경우이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식수원을 남강댐으로 옮기기로 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깊고 강바닥이 평평하며 수문이 있는 보를 이용해 물을 가두는 강. 혹시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나는 공사 현장의 강에서 지난해 국민들의 반대에 못 이겨 뜻을 접었던 MB의숙원사업 대운하가 오버랩됐다. 강에 배를 띄우기 위해선 깊은 수심이 필요하고 보에도 거대한 수문이 필요하다. 대운하 사업과 일절 달라진 게 없는 이 사업에 감히 '살리기'라는 말을 붙인 이 천하의 거짓말쟁이 정부의 뻔뻔함에 정말 치가 떨렸다. 살아있는 강을 죽여가면서 그걸 살리기라고 칭하다니. 맙소사!
또한 공사 현장 주위엔 온갖 현수막이 즐비했는데 정말이지 화가 나는 문구가 너무나 많았다. ‘강살리기는 생명살리기입니다’, ‘강이 살면 생태계와 지역경제가 살고 사람이삽니다.’ 난 순간 헷갈렸다. 강을 살리는 것이 생명을 살리는 것인 건 너무나 당연한데, 저건 정부에서 건 현수막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4대강 살리기는 옳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거짓말인 것이다. 그들은 ‘살리기’ 라는 말을 씀으로써 우리의 언어를 빼앗았고 그 거짓말 뒤에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이러한 정부의 언어 농락에 속아 “아니, 강을 살리겠다는데 왜 반대를 해. 강 살리면 좋은 거 아냐?”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파괴의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또 그들이 빼앗은 언어로 사람들을 농락하는 현장을 보며, 이와 같은 사실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진행하게 된 것이 잉여들의 사진전이었다. 낙동강을 걸으며 찍었던 사진들을 매 주말 도시에 머물 때마다 시내에서 사진전을 열기로 한 것이다. 사진전은 상주, 대구, 부산에서 총 세번이 열렸다. 나는 대구와 부산의 사진전을 함께 하였다. 대구에서는 주말에 사람이 많이 찾는 공원에서 열었고 부산은 부산의 4대강 반대 촛불집회와 연계하여 서면 시내에서 진행하였다.
개인적으론 우리 잉여가 독자적으로 준비하고 시민들이랑 이야기 할 기회가 많았던 대구의 사진전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대구라는 도시의 정치적 정서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이곳의 시민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레 겁을 먹었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4대강 사업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고 사업에 대해 아예 모르다가 우리의 사진전을 보고 그 심각성을 깨달은 분도 많았다. 물론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데 앞서 우리의 이런 반정부적(?)인 활동을 꾸짖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그네들은 토건 개발이 자신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박정희 향수를 느끼기도 했다. 뜨악할만한 그네들의 생각을 들으며 기분이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 또 이들과도 이렇게나마 소통할 수 있음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이 다시 잉여롭게 흐를 수 있도록. 아멘
공사 현장을 걸으며 잉여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생각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였다. 그동안 나는 정서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해 반대는 하면서도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너무나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보고 느낀 강은 생각보다 더 많이아파하고 있었다. 4대강 사업이 천인공노할 정말 말도 안되는 삽질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단 점만으로도 이번 순례는 정말이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나에게 더 값졌던 것은 여기 저기서 숨쉬고 있던 잉여들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이 사회에 잉여인간이구나 라고 느꼈을 때 그것에 동의하기란 쉽지 않다. 잉여는 분명 쓸모없음이 아닌 남은 가치일 뿐인데, 잉여 속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먼저 다가오니 말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 너무나 많은 부담의 시선을 보내는, ‘다름’에 대한 우리사회의 메마른 감수성이 내안에도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일까.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안하면 경쟁에서 동일한 기준선상에 설 수 조차 없다는 불안감때문에 온갖 스펙 쌓기에 열중하며, 자신이 걸어온 뒤는 물론이거니와 옆에 친구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 속 또한 보지못해 너무나 외로운 우리들. 잉여롭게 살고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나 정말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던 내가 다른 잉여동지들의 존재를 확인하는순간. 그것은 감동이었다. ‘우리 이래도 돼! 아무 문제없어!’ 라고 서로를 다독여주고 ‘그래. 너의 발걸음 그대로가 참 소중한거야. 너 참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해주는 따뜻한 그 시선에 내 외로운 마음이 따뜻해졌다. 또한 경쟁의 기준선상에 서는 것 자체에 ‘왜? 재미도 없는데!’ 라고 의문을 던지는 잉여들의 목소리가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살인적 신자유주의 경쟁구도를 깨뜨리는 하나의 작은 균열로서 작용할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니 마음 한가득 두둑한 희망이 생겼다.
또한 잉여들과 4대강 사업에 관한 다양한 고민들을 나누면서 한낱 개인인 내가 이 사업을 막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 우울해했던 조급증이 많이 사라졌다. 속도전 그리고 엄청난 규모로서 승부하는 저들의 불도저 스타일에 똑같이 대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내 자리에 서서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들부터 차근히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교지를 통해 학우들에게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내 이 작은 목소리가 한 명의 학우에게라도 진정으로 닿았다면 그것이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구체적이진 않아도 4대강 사업이 옳지 않구나 라는 작은 담론이나마 형성할 수 있다면, 또 그 반대의 목소리가 차츰 퍼져나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 내 이 목소리가 결코 작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한없이 잉여로운 그대여, 그대의 소중한 목소리를 내주오. 그 작지만 값진 목소리가 강가의 미친 삽질을 멈추게 할테니. 그리하면 강 또한 다시 평화롭게 그리고 잉여롭게 흐르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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