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정승균
2004년 새내기호를 읽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교지편집위원회에 발을 담그게 된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6년의 기간동안 1년은 아무것도 모르는 수습위원으로 1년은 선배라는 이데아만 바라보던 동기들 사이의 편집장으로, 3년은 교지를 그리워하던 군인·알바생으로, 그리고 다시 교지로 돌아와 편집장으로 1년, 그리고 선배 편집위원으로의 반년이 모두 흘러갔다. 그 기간동안 나는 10권의 교지를 만들었고, 그 교지 속에 20개가 넘는 글을 썼다. 내가 꼭 쓰고 싶었던 주제보다는, 지금 꼭 써야하는 주제를 가지고 딱딱하고 건조한 글을 쓰면서도‘나는 좋은 글을 쓰는 역할보다는, 필요한 글을 쓰는 역할’이라며 자신을 속이며,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다. 슬프게도 솔직히 내가 쓴 글의 대부분은 내가 봐도 재미가 없었다.
처음 교지에 들어왔을 때는 단지‘운동을 하고 싶어서+글쓰기 실력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년 동안 나는 뛰어난(?) 선배의 그림자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정신이 없었다. 여기다 너무 빨리 맡겨진 편집장의 위치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도 했다. 나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하는 동기들과 선배가 미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일’은 그 어려움을 잊게 만들어주곤 했다. 책을 만들며 편집하는 과정에서 나는 행복했다.
3년의 공백기동안 나는 교지가 그리워졌다. 군대에서 글을 투고하도 했고, 이렇게 저렇게 교지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돌아온 교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편집실의 분위기도, 발간 된 교지도. 지금까지 고생해 온 후배들이 불편함을 느낄만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교지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인원들이 새로 바뀌면서 교지는 다시 새로운 교지가 되었다. 그 와중에서 교지의 틀을 만들고자 했다. 회칙도 만들고, 아이템 회의, 표지 디자인 회의도 바꾸고, 교지 발행 횟수도 늘렸고, 제호도 새롭게 만들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교지를 만든 누구보다도 교지에 애정을 가졌고, 많은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후배들과 선배·동기들은 이런 내 노고(?)를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해지기도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다는 걸 다시 인식하기도 하고.
이제 정말 마지막 교지작업이 끝나간다. 내 대학생활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차지했던 교지를 이제 떠나야 한다. 매번 교지를 발간하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이번에는 그 아쉬움이 더 클 것이다. 내 방 책장 내가 만들었던 교지들 마지막에 54호를 꽂으면서, 다른 때보다 더 진한 아쉬움과 뿌듯함과 그리고 그리움이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