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수화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릴 때면 꼭 고향에 온 느낌이 들었다. 신도림역에서부터 여의도방향으로 난 자전거 도로를 열심히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한강이 보였다. 나는 넓고 새파랗고 잔잔한 한강을 보며 부산의 바다를 떠올렸다. 그래서 집이 그리울 때마다 그래서 외로울 때마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다보면 어느새 눈 앞에 와있던 넓은 한강. 그 때마다 들던 묘한 위안. 그 한 조각의 위로가 참 고마워서 나는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했다. 그리고 서울에 한강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방학에 낙동강을 따라 도보 순례를 했다. 그리고 그 때 강을 처음 봤다. 넓고 부드러운 모래톱이 있고 싱싱한 습지가 있고 고라니와 왜가리와 재첩이 사는 강을, 처음 봤다. 순례 뒤 나는 진짜 강과 가짜 강을 구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현 정권이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은 진짜 강을 가짜 강으로 만드는 삽질임을 알게 되었다. 마치 예전에 흐르던 진짜 한강을 지금의 가짜 한강으로 만든 것처럼.
물이 많다고 강인 것이 아니다. 현재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시멘트로 잘 정비된 거대한 '수로'일 뿐 강이 아니다. 그 곳엔 새가 날아들지 않고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발을 담글 수 없고 물장구를 칠 수도 없다. 한강은 강이 아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이 계속 진행된다면 낙동강도 영산강도 금강도 남한강도 더이상 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될 것이다. 시멘트로 만든 수로엔 강물이 갇혀 썩게 될 것이고 그 썩은 물 옆엔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질 것 이다. 그리고 그 도로 위를 달리며 거대한 수로를 강이라고 착각하는 나같은 이들이 생길 지도 모른다.
최근 자전거를 타고 ‘가짜’ 한강의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마지막으로 달린 지 불과 몇개월 밖에 안 지났지만 달리는 느낌은 정말 달랐다. 일단 내가 한강이라고 믿었던 그 수로를 바라보는 게 너무나 힘겨웠다. 강 표면의 물길은 오갈 데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결국엔 바다를 향해 천천히 흘러가는 물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강 표면이 오락가락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흡사 고여있는 웅덩이의 그것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한 때는 진짜 강이었을 현재의 강이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이 보였다. 산과 들을 자유롭게 떠돌다 인간에게 잡혀 목줄이 묶인 채 우리에 갇히게 된 들짐승의 처연함이 그 강에서 느껴졌다. 개발이라는 목줄에 목이 조여 숨통이 턱턱 막힌 채로 쓰러져 있는 강을 보니 그 강을 둘러싼 모든 풍경이 갑자기 너무나 소름끼치게 끔찍해졌다. 강변을 따라 빽빽히 드러선 높은 빌딩들, 강 위를 지나가는 수많은 다리들 그리고 심지어 강가를 거니는 수많은 사람들까지도 모두가 강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은 이젠 그만하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그 누구도 살육의 손길을 멈추지 않는 듯 했다. 어쩌면 멈출 수 없는 지도 모른다. 강이 진짜 영원히 죽어버리기 전까진.
언젠가 나에게 위안을 주던 그 풍경이 지금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괴기스럽게 변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쌩쌩 달렸고 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던 공간이 없어졌다. 앞으로도 자전거를 타고 싶을 때마다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계속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늘 불편할 것 같다. ‘진짜 강에 대해 몰랐다면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도 내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 진실을 알아갈수록 시선이 닿는 곳곳마다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이 없다. 그렇다고 불편한 진실들을 묻어둔 채 보고싶은 것만 보며 살고 싶진 않다.
순례 뒤 진실을 알고 나니 마음이 영 불편하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의 사탕발린 거짓말과 삽질 아래서 죽어가고 있는 강들의 신음소리를 이제서나마 듣게되어 참 다행이다. 이제라도 진짜 강이 가짜 강으로 바뀌는 4대강 공사에 진정으로 분노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달콤한 거짓말 뒤에 온갖 불편한 진실들로 가득 차 있는 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편한 진실을 인지하고 또 외면하지 않은 채 그 달콤한 거짓들을 깨부수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결코 두려운 일이 아닌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서울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또 강 따라 자전거를 타는 일이 더이상 마음 불편하지 않을 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