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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일상, 성폭력52.5호/가대林 2010. 2. 26. 19:11
수습위원 최수화
1. 젖과 꿀이 흐르는 우리네 캠퍼스. 과연?
이번에 입학하는 10학번 새내기 여러분에게 하나 물어볼 것이 있다. ‘성폭력’.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혹시 9시 뉴스의 사건사고 코너에서나 등장할법한 무시무시한 강간사건이 떠오르진 않은가? 그리하여 언제까지나 하나의 뉴스거리인, 당신에겐 일상적이지 않은 이야기이진 않은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폭력은 대학생에게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은가? ‘성폭력’ 그 단어 안에는, 단어 자체는 일상적이지 않되 그 본질은 너무나 일상적이라는 모순이 담겨져 있다. 청춘과 낭만이 흐를 것이라 상상하며 입학한 대학, 그 뒤에는 성폭력이 존재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일상의 모습으로 숨어있기에 더 위험한 대학 내의 성폭력. 지금부터 새내기 여러분과 함께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새내기 새로 배움터의 또 다른 이름은 ‘성폭력 박람회’이다?
이제 여러분은 곧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하 새터)를 통해 대학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은 새터가 ‘성폭력 박람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걸 아는가? 새내기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학 그리고 대학생이라는 단어 안에는, 이젠 성인으로서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문화를 느끼는 첫 장이 될 새터에서 여러분은 주체적인 선택이 아닌 강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억지로 술을 먹이거나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경우, ‘첫날밤에’ 등의 게임과 같이 소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성행위를 몸짓 혹은 소리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 술을 대신 마셔주는 ‘흑기사’의 대가로 키스 등의 신체접촉을 요구하는 경우 등, 신체 접촉을 벌칙으로 하는 수많은 게임들과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음담패설들은 여러분에게 당혹감을 안겨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오는 술잔과 스킨십에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새내기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들을 참을 가능성이 높다. 새내기가 선배 혹은 남성의 위계적인 권력관계 앞에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밝히는 일에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강요들이 결국은 모두 ‘친해지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란 그저 예민한 반응이라고 묻어둘 수도 있다. 자신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 술이나 스킨십을 거부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선후배, 동기간의 정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여러분의 불편한 감정을 덮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불편한 감정, 그것이 바로 성폭력의 피해이다. 대학 입학 후 어쩌면 수차례 겪어야 할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상황들이 성폭력이라면 믿기는가. 대학생활의 시작은 곧 성폭력의 시작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끔찍한가? 하지만, 그것은 끔찍하지만 불편한 ‘진실’이다.
3. 대학생활? 그것은 성폭력다반사!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술자리 문화에서 늘상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술 권유와 ‘가벼운’ 스킨십이 성폭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가.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성폭력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 안에 강제로 삽입된 물리적인 상황만을 일컫는 용어가 아니다. 성폭력은 한 인간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성적 자율권의 침해는 상대방의 의지에 반하거나 의지와 관계없는, 성적(sex)이거나 성차(gender)
‘섹스(sex)’가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개념이라면 ‘젠더(gender)’는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맟춰 성별의 차이,즉 성차를 파악하는 개념이다. 성차는 그저 남녀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 자체가 차별은 아니라고 한다. 학술단체협의회 엮음, 2005,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 中 p258, 한울 에 기반을 둔 행위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반성폭력학생 회칙 제 2조 2항 참조. 2002년 개정판 그러므로 성폭력은 언어적 성폭력, 물리적 성폭력, 고정된 성역할을 강요하는 것, 성적 대상화, 성차에 기반을 두어 적대적이거나 불편함을 주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렇듯 ‘동의되지 않은 성이 성폭력’
정희진 엮음, 2003, <성폭력을 다시 쓴다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한울 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네 캠퍼스는 너무나 많은 성폭력에 얼룩져 있다.2007년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전문대 포함)의 성폭력으로 인한 고충상담 건수는 299건이다. 일단 앞서 말씀드린 새터와 같은 술자리에서의 성폭력 상황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예컨대 MT를 가게 되었을 때 무거운 짐은 으레 남학우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시선과 요리나 정리는 여학우들에게 떠미는 상황은,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일의 분업을 강요하는 성폭력인 것이다. 또한 대학 내 성폭력은 학생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학생과 강단에 서있는 교수와의 관계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수업시간 중 교수들의 ‘열심히 가르쳐도 여자들은 시집가면 쓸데없지’, ‘프로젝트 제대로 하려면 남학생들이 있어야지’ 등의 여성 비하발언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세계일보 사회면 2007.08.22 (수) <대학가 성희롱 ''고질병'' 여전..여성비하 가장 많아> 또한 수업지도를 빙자해 교수가 어깨를 감싸거나 신체 일부를 접촉하는 등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성폭력도 자주 발생하는 사례로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이 왜 성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감이 안 오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실제적인 예 하나를 소개하겠다. 소개할 사건은 2005년 전북 익산시 모 대학 사범대 A교수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교수에겐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하는 특별인권교육을 받을 것을, 대학교에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철저히 실시하고 성희롱 예방방지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할 것을 권고했다. (2005년 9월 23일) 이 학교는 교수에 대해 다수의 성희롱 사건의 책임을 물어 2005년 6월에 해임하였다. A교수가 수업 시간에 “요즘 대학생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난자까지 파는데 얼굴이 예쁠수록 난자 값이 비싸다”며 “너 정도면 난자 가격이 비싸겠는데”라고 말하는 등 수년간 학생들에게 성적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한 것이 공론화되어 결국은 교수가 해임되며 종료된 사건이다. 이 사건 당시 해당학교의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는 A교수의 성차별 발언과 인권 유린 사례를 학생들로부터 접수받는 한편 익산성폭력상담소에 시정신청서를 접수하는 등 적극적으로 사건을 공론화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예시 사건과는 달리, 학생과 교수 사이의 성폭력은 공론화시키는데 실질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학생과 교수라는 관계는 어떻게 보면 대학 내의 가장 위계적인 권력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고발할 때 가장 실제적인 공포는 학점, 진로 등의 상황에서 학생에게 보복성 2차 가해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상황이다. 하지만 강의 중의 성폭력은 강의를 듣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일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 피해자인 불특정 다수에서 이의제기를 하는 표면적인 개인 피해자가 되는 것에는 그러한 공포를 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학 내 강의 중 언어 성폭력의 문제는 해당 언행을 성폭력이라고 느끼고 문제를 제기한 학생 개인의 피해나 문제로서 다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해당 상황에서의 언행이 내포하는 사회구조적 의미와 성폭력적 성격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책임을 묻는 것이며, 나아가 대학 공동체 차원 전체의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로서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성폭력근절을 위한 여성주의자 연대모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고려대학교 여성주의 일년나기 프로젝트팀 공동 성명 <대학 강단에서의 언어 성폭력 근절을 촉구한다!>
4. 반성폭력 운동의 행군 속, 너무나 조용한 그대 이름은 가톨릭대학교, 아 가톨릭대학교~!
성폭력을 공론화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건을 고발해야하는 피해자가 되려 사건이 공론화되는 것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피해자의 상처에 비수를 꽂는 주위의 시선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의 신분이 드러나는 경우, 피해자의 피해 사실에 대해 “그 애가 원래 좀 문란했지”라며 되려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는 경우, “이것이 왜 성폭력이냐, 친밀감의 표시다. 너무 예민하다”라는 식의 발언 등이 모두 그 시선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렇게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가지고 성폭력 가해를 정당화하는 언어 및 행위는, 피해자에게 2차적 상처이자 개별적으로도 명백한 성폭력이다. 이러한 시선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가 대학 내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학 내의 성폭력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묵인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언제까지나 먼 나라 이야기인 양 일상적인 성폭력들을 그냥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이러한 고민들 속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대학 내의 ‘반성폭력 운동’이다. 반성폭력 학칙 개정, 학생회 ․ 동아리 ․ 학회 등 자치단위의 반성폭력 내부규약 개정, 여성주의 소모임의 자체 소식지 제작, 구조 의식 변화를 위한 많은 행사 등이 여기에 속한다.
현재 성폭력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 예방 지침(학칙 또는 규정)을 제정한 학교는 312곳이며 335개 대학이 성희롱 전담 창구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대학들은 남성 388명, 여성 479명 등 867명을 고충 상담원으로 배치했으며 성폭력 사건 처리를 위한 성폭력심의위원회는 302개교에서 운영 중이다. (2007년 기준) 이 같은 운동은 1990년대 초반에 공론화된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한 담론이 밑거름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은 학생만의 자치적인 활동을 넘어서, 학교 자체에서도 성폭력 상담소를 설치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톨릭대학교 안에선 어떤 반성폭력 운동 활동이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안타깝게도 2010년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선 반성폭력 운동의 행보가 너무나 미약하다.
그러나 가톨릭대 안에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는 존재한다. 2007년 가톨릭대 여성주의 소모임 ‘딸세포’가 대학 내 성폭력에 대해 문제 제기한 글을 교지에 실었었다. (2007년 새내기호 ‘성폭력 없는 대학문화 정착을 위하여’) 또한 2004년엔 사회과학부 내에 반성폭력 학칙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고, 2008년도엔 사회과학부내 여성주의 소모임인 ‘사과나무심기’가 만들어졌다. 이 자치기구의 시작과 더불어 반성폭력 내부규약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자치기구의 시작은 2008년도에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학부 내의 여성주의 소모임 활동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사과나무심기’자체에서 이 자치기구의 폐지를 결정하였고, 그 인준은 2010학년도 개강총회에서 받을 예정이다. 성폭력 상담소가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독자적인 홈페이지 운영이 안 되는 등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성폭력 상담소를 제외한다면, 반성폭력 운동의 발걸음을 같이 할 여성주의 소모임, 총여학생회, 반성폭력 학칙, 그 어떠한 것도 가톨릭대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폭력을 당한 가톨릭대생은 그 어떤 이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고발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 일까. 그 엄청난 고통의 목소리를 낼 용기가 도저히 없는 사람은 그저 참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5. 젖과 꿀의 가면을 벗길 것이냐, 말 것이냐
10학번 새내기 여러분,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그대들은 표면적 성(性)폭력의 성(聖)역인 가톨릭대에 입학하였다.
김직수, 2004, ‘가톨릭대학교는 성(性)폭력의 성(聖)역?’, 성심 2004년도 새내기호 현재 가톨릭대학교는 너무나 조용하여 마치 성폭력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 양 평화로운 성역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 가톨릭대학교는 반성폭력의 성역이기도 하다. 성폭력 그리고 반성폭력 운동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에 문제 삼지 아니하기로 학교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새내기 여러분, 분명 대학은 청춘과 낭만, 자유가 흐르는 젊음의 요지이다. 그러나 진정한 청춘과 낭만과 자유는 그것을 흉내 낸 채 교묘히 쓴 가면을 벗길 수 있을 때 진정 실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면 뒤 존재하는 일그러진 대학 내 성폭력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네 캠퍼스에 청춘과 낭만 그리고 자유가 흐르지 않겠는가. 언제까지나 불편함을 참으며 가면 쓴 대학을 대할지, 잠깐의 불편함을 견디고 가면 뒤 진실과 마주 할 지는 여러분의 몫이지만 말이다.
•참고사이트
․한국성폭력상담소 http://www.sisters.or.kr/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http://fc.womenlink.or.kr/
•가톨릭대학교 학생생활상담소 소속 성폭력상담소
위치: 니콜스관 2층 224호(N224호)
전화번호: 02. 2164.4655 / 구내전화 4655
이메일: counsel@catholic.ac.kr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5시 (방학중 이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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