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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들의 ‘선배님’이고 싶지 않다52.5호/가대林 2010. 2. 26. 19:05
편집위원 찬표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식사는 하셨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에 입학한 지 일 년이 지나고 처음 ‘선배’라는 것으로 불리기 시작할 무렵 이런 인사를 수도 없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동시에 이런 인사를 받았을 때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사래 쳤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선배‘님’이라니. 고작 1년 먼저 학교에 입학했다는 이유만으로 존대를 받는 것은 정말이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위의 경우처럼 서술어에 ‘-시-’를 붙여 ‘-하셨어요?’와 같은 존대를 할 때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유별나 보일 수도 있지만 10학번 새내기들도 처음에는 대학에서의 호칭과 존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난감해 할 것이다. 물론 이 글이 새내기들에게 똑 부러지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어법에 맞는 호칭과 존칭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호칭과 존칭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더 평등한 관계 속에서의 호칭과 존칭을 사용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변호사님은 있어도 청소부님은 없다
위의 경험에서 필자가 몸 둘 바를 몰랐던 것은 ‘선배님’호칭 때문이었다.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님’들이 있다. 변호사님, 검사님, 의원님, 회장님, 사장님, 심지어 대리님 까지……. 여기서 대리님을 제외하고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돈 잘 버는 소위, ‘먹어주는’직업이다. 대리님도 상대적인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부님, 농부님 같은 ‘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데 왜 어떤 직업은 ‘님’이 되고 어떤 직업은 ‘놈’이 되는가. 또한 직업이기 때문에 ‘님’자를 붙이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직업은 단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일 뿐이지 결코 그 사람 자체의 격을 대변하거나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새내기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부르게 될 교수님 또한 따지고 보면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직접 당사자와 얘기할 때 ‘○○교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교수님’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선생님’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
별명으로 호칭하기
새내기 시절, 매년 반복되는 선배들의 ‘밥 사주기 릴레이’ 도중에 호칭과 관련해 얘기가 오간 적이 있다. 한 선배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선배’라는 호칭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형’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길 원했다. 그 선배의 호칭에 대한 얘기 전부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누군가를 선배로 불렀던 적은 없다. 생전 처음 써보는 선배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도 했었지만 왠지 친하지 않고 거리가 있는 사이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형, 누나, 오빠, 언니’같은 호칭이 평등한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한국사회에서 나이 많은 사람에게 으레 붙이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오히려 기존 질서에 순응했던 셈이다.
요즘도 필자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에게 ‘형, 누나’ 호칭을 주로 쓰고 있지만 후배들에게는 이름을 불러도 상관없다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도 필자와 마찬가지로 선뜻 이름을 부르기는 어려웠으리라. 실제로 이름만으로 호칭하는 후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나이에 의한 수직적 인간관계가 단기간 내에 사라지지 않을 것을 감안한다면, 별명으로 호칭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 우스꽝스러운 별명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별명이 주로 타의에 의한 놀림거리가 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보다 평등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별명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별명은 자신에 대한 표현이다. 누군가가 정해주는 호적상의 이름과는 다르게 별명은 남들이 자신을 이렇게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스스로가 의미부여한 것이다. 서로의 별명을 부르는 행위는 상대가 스스로에게 의미부여한 표현을 존중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별명으로 호칭할 때는 ‘○○야’, ‘△△아’처럼 격 조사 ‘야’나 ‘아’를 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격 조사는 그 자체로 누군가는 손윗사람이고 누군가는 손아랫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말과 존댓말을 가르는 기준
행정OT나 새내기 새로 배움터처럼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행사에는 대부분의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그러던 것이 개강을 하고 안면을 익히게 되면 대개 선배들만이 후배들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필자는 입학 시기는 1년, 나이는 고작 몇 개월 차이 밖에 나지 않는 후배들에게 일방향적으로 반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후배들 입장에서는 친하다고 생각하는 선배가 계속해서 존댓말을 써대면 그것 또한 어색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가 계속해서 존댓말을 쓰거나, 관계가 조금 더 깊어졌을 때 양 쪽이 동시에 반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사실 한국에서 높임법은 나이나 지위에 따라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불합리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필자의 주장이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진중권 교수(당시에는 교수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언론사 주최의 한 강연에서 존칭에 대한 청중의 물음에 자신은 모든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답한 적이 있다
진중권 외,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한겨레출판, 2007. . 자신은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사적인 자리에서도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존칭을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적 친소 관계를 표현하는데 써야한다고 덧붙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이가 많거나 적다고 해서,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거나 낮다고 해서 한 사람은 존대를 받고 다른 한 사람은 하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 같은 기준으로 인간 존엄을 가를 수 있다는 주장과 같다.
호칭 정하기가 바람직한 관계의 시작이 되려면
분명 호칭 문제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증’부터 ‘까고’ 시작하는 한국 사회에서 연공서열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평등한 호칭은 인간관계가 평등하다는 공감대가 전제되어야 만이 가능할 것이다. 곧 죽어도 한국 사람은 나이순이라는 자에게 ‘우리 쿨 하게 서로 말 놓읍시다.’라고 하는 것이 통할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호칭은 일대일 관계에서 스스로 정하는 것이 좋다. 학부나 학교 차원에서 선후배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규정하는 것도 우습고 또 호칭을 그렇게 획일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호칭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새내기라면 관계가 시작되기 전 선배들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기를 권한다.
나는 그대들의 ‘선배님’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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