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모적인 ‘비정규보호법’ 논란을 넘어서52호/하늘을 가리는 손 2010. 2. 26. 17:29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들어가며
2009년 오늘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비정규직 공화국이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 2409만명 중 임금노동자가 1608만명으로 67%를 차지하고 있고, 이 중 52%가 넘는 838만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65%인 439만명이 여성이다. 비정규직은 더 오래 더 힘든 일을 하면서 정규직 임금의 절반을 받고 있다. 여성이 다수인 절반이 넘는 노동자가 절반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공화국.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 차별과 불평등의 축도이자 사회양극화의 결정판으로 인식되면서 가장 중차대한 해결 과제 중 하나로 부각돼 있다. 이는 무엇보다 21세기 들어 줄기차게 전개돼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하고 눈물겨운 생존권 투쟁에 힘입은 결과다. 비정규직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10여년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안타까운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전진이 멈춰서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국회 담장을 넘어 주요 민생 의제로까지 상정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고, 현재 정치권에서 여야간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여기서는 여야정당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돼버린 이른바 비정규보호법의 지난 과정을 되돌아보고 현재 논란의 본질과 대안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도록 하겠다.
태생부터 모순투성이였던 ‘비정규보호법’
비정규보호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 개정안’,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을 합친 의미로 쓰인다. 이 중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비정규보호법의 핵심이다. 1998년 제정된 파견법은 애초부터 헌법 정신 및 중간착취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만큼 마땅히 폐지되어야 할 법으로 지탄받아왔고, 정규직화 등 기간제법 핵심 조항이 함께 적용되므로 여기에선 새로 제정된 기간제법 내용을 중심으로 다룬다. 기간제법은 기존 근로기준법 아래서 장기간 근속하고도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형편없는 처우를 감수해왔던 계약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다. 2006년 12월 제정된 기간제법은 수년에 걸친 민주노총을 위시한 노동계의 극력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현 민주당)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손맞잡고 국회에서 의결했다. 특히 법적용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린우리당 당의장실을 일주일간 점거농성하고 국회 내 타워크레인 고공농성까지 벌이면서 반대했던 기간제법을 지금 정쟁을 벌이고 있는 두 정당이 하나가 돼 강행 통과시켰다. 2001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가 시작돼 2004년 정부에서 비정규보호법안을 발표한 이후 2년여 넘게 공방을 벌이다 사용자 입장을 대변해온 거대 여야정당들에 의해 입법이 되고 만 것이다.
당시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이 법이 진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간제법의 경우 ‘기간 제한 방식’의 정규직화 조항 자체가 비현실적이었을 뿐 아니라 정규직화를 실제로 강제할 조항도 취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사용자 편의를 우선하는 내용으로 입법이 되었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결과가 됐다. 또 하나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4년이 넘는 비정규보호법 입법 절차 속에서 정부와 여야정당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제대로 된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도외시한 채 입법하면서 비정규보호법은 애초 취지와는 정반대로 비정규직 양산법이고 비정규직 해고법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결국 정부가 기간제법과 파견법을 ‘비정규보호법’이라 굳이 명칭을 붙인 것부터가 이런 모순을 숨기기 위한 위선적인 포장이었던 셈이다.
비정규보호법 유예도, 기간 연장도, 시행도 진정한 대안이 아니다
이런 비정규보호법을 사이에 두고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법 시행을 유예하거나 아예 정규직화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고 하고, 이에 맞서 민주당은 현행법대로 시행하자고 한다. 입법 과정의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비정규보호법’을 만든 후 이랜드비정규직 대량해고사태 등 많은 문제점이 빈발한 지난 2년 6개월 동안 아무 대책 마련도 없이 손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민주당이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원조 사용자대변정당 한나라당은 악어의 통곡을 하고 있는 셈이다. 평균 근속이 1.9년에 불과한 비정규직 노동자 입장에선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라는 유예나 기간 연장이 최악이라면 실낱 같은 정규직화 희망이라도 있는 시행 유지는 차악이다. 그나마 최악과 차악의 소모적인 논란 속에서 얻은 한가지 결론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는 대증요법이나 임시처방으론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고용 안정과 차별 시정이란 비정규직 양대 문제 해결을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절실하고 긴요하다.
핵심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다수가 비정규보호법 이전에도, 2년 기간제한 아래서도, 4년 기간연장으로 바뀌더라도 계속 해고에 직면한다는 점이다. 비정규보호법과 무관하게 매년 수백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고용단절을 경험한다. 비슷한 조건의 일로 수평이동하거나, 더 열악한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으로 전락하거나, 소수는 정규직으로 상향 이동한다. 그런데 상향 이동보다 하향 이동이 훨씬 많고 수평 이동시에도 주기적으로 실업과 취업의 쳇바퀴를 돌아야 한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논란은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상적 대량해고 현실을 도외시하고 정규직화 기간을 몇 년으로 정하는가라는 별 실효성 없는 논점에만 붙박힌 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결국 ‘기간 제한 방식’ 중심의 비정규 해법은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억제하는데 역부족임이 분명해졌다. 정규직화를 기피하기 위해 2년 안에 계약해지하고 사람만 바꾸든, 아예 용역/파견 등 외주화를 통해 고용책임에서 벗어나든, 아니면 일부만 비정규직으로 계약 연장을 하든, 또 일부만 무기계약직 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든 선택권은 모두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고용을 종료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용자들이 법취지에 따라 정규직화를 하지 않을 공산이 큰 조건 속에서 2년이든, 4년이든 어떤 기간을 설정한 후 정규직화하라는 것은 순진하게 사용자의 선의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내맡기는 것이 된다. 특히 사용자를 강제할 장치도 부실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등으로 거의 조직돼있지 못해 사용자들에게 종속돼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또한 비정규보호법을 통한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개선 효과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올해 3월 기준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25만원으로 여전히 정규직(253만)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4대보험 가입율도 30% 내외에 불과하고 특히 전체 비정규직의 약 53%을 차지하는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도 남성 정규직의 3분의1에 불과하다. 이는 비정규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비정규직 차별 시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고 현행 비정규보호법의 문제점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통계 수치다. 다만 2007년 7월부터 지금까지 13만여명(노무현 정부 시절 공공 부문 8만여명+민간 부문 5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 개선 없이 고용만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사례가 그나마 비정규보호법으로 인한 개선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 230만명에 달하는 기간제 노동자 전체 규모로 보면 소수에 불과해 입법 효과를 얘기하긴 어렵다.
제1의 대안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도입하는 것
사실 2년 이상 상시적으로 일해왔던 비정규직이라면 비정규보호법 아래서라도 바로 정규직이 되는 게 맞다. 그런데 거꾸로 비정규직이 해고되는 빌미가 됐다. 이런 일을 없게 하려면 ‘상시적인 일은 정규직으로, 일시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고용기준을 세우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즉각 도입해야 한다. 계약 유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사용자의 인사노무관리 전략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유를 명시하여 상시적인 일은 정규직에게 맡기고 임시적이거나 일시적인 일은 비정규직을 채용하여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사용자 판단에만 맡기면 되면 기업들은 소수 핵심역량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다수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 기업은 단기적으로 이윤을 얻겠지만 그 기업들이 양산해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이란 값비싼 대가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당초 비정규보호법의 입법 취지는 나쁘지 않았지만,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배제한 채 ‘기간 제한 방식’만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책으로 고집하면서 입법 취지가 무색하게 된 만큼 제1의 해결 방책은 ‘사용사유 제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입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껏 쓰게 해 놓고 출구에서 막는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 이제는 출구가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막아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 비율이 10%대에 불과한 유럽의 사례에서도 증명되듯이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서 상시적인 일자리라면 정규직 채용을 정상적 고용으로 사회가 인식하게 해야 한다. 정부 및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제부터라도 ‘기간 제한’을 둘러싼 소모적인 숫자놀음에서 벗어나 가장 효과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그 첫 관문이 ‘사용사유 제한’ 방식의 비정규 해법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당사자에게 입법 효과가 미칠 수 있도록 현행 비정규보호법을 전면 재개정하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보호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838만 비정규직 중 비정규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기간제 노동자는 230만명으로 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다수 비정규직인 임시직이나 간접고용,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아예 입법 논의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이다.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과 차별 시정을 보장하는 ‘사용사유 제한’ 방식의 도입과 함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원청사용자성 인정, 중간착취를 용인해온 파견노동의 폐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비자 도입 등이 함께 논의돼야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비로소 찾을 수 있다.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임시직, 용역, 도급, 사내하청,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가 기간제 노동자들의 문제와 함께 논의 테이블에 놓여야 다각도로 실효 있는 비정규직 해결 방책을 내올 수 있다.
당사자들이 나서야 할 때다
솔직히 비정규보호법 논란을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왜 당사자들이 배제된 채 이토록 뜨거운 쟁점이 됐을까 하는 점이다.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피부로 와 닿아야 할 사람들이 취업을 코앞에 둔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인데 정작 이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낸다는 얘기를 접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당장 스펙을 쌓는 일에 몰두해있고 온통 경제 논리가 범람하면서 일상적 경쟁 훈련의 온상이 되다시피 한 캠퍼스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무능력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취업을 앞둔 청년층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출산 시대, 2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시대, 집 장만은 아득하고 내 한 몸 앞가림조차 버거운 비정한 시대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비정규직 일자리의 남발이고 그 최대 피해자가 청년층인데도 당사자들은 마치 강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고만 있으니 답답한 심경을 가누기 어렵다. 2006년 프랑스에서는 현행 비정규보호법보다 더 나은 내용의 최초고용계약법(CPE법)을 반대하면서 “우리는 일회용 휴지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수백만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 노동자들이 동맹휴학을 하고 길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했고, 결국 폐기한 바 있다. 왜 한국과 프랑스는 이렇게 달라야 하는가.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공멸로 가느냐, 공생으로 가느냐, 인간다운 얼굴을 한 사회로 가느냐, 야만적인 사회로 가느냐를 가름하는 핵심 사회적 의제이다. 첫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출발할 수 밖에 없는 세대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얘기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가장 무서운 건 비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용인과 그런 심리의 내면화다. 꿈 꿀 수 없는 인생을 어느덧 숙명처럼 받아들인 비극적인 모습이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무한경쟁과 비인간적 차별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당사자들이 나서서 자그마한 노력부터 해나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개선은 그 당면한 첫 과제이다.
마치며
현재 비정규보호법 논란은 국회와 정부로 대표되는 정치가 자신이 복무해야 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가를 판가름짓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미래 비정규직이 될 예비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미미해선 비정규보호법 논란으로 부각된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관련한 논의가 또 다시 무의미하게 종결되고 말 공산이 크다. 작은 목소리라도 함께 모으고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서야 할 때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행복추구권이 보장돼있다. 행복추구권이 만인에게 적용되려면 비정규보호법부터 전면 재개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와 학생 등 당사자들이 한 발짝씩 나서는 날, 우리나라는 비로소 비정규직 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52호 > 하늘을 가리는 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박 시대의 법치주의 (0) 2010.02.26 다시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말하다 (0) 2010.02.26 한나라당의 언론관련 법안, 악법인 이유는? (0) 2010.02.26 철밥통 잔혹사 (0) 2010.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