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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말하다52호/하늘을 가리는 손 2010. 2. 26. 17:27
편집위원 정승균
4,000원, 그리고 4,110원
4,000원 이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만화책 1권? 문고판 책 1권? 맥×날드 런치 세트? 김밥×국에서 먹는 제육덮밥? 하지만 이보다 ‘방학동안 받았던 최저임금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받았던 자신의 아르바이트 시급’이 떠오를 사람도 있겠다.
4,000원은 2009년 현재 한국 안에서 어떤 일터에서든 일을 했다면 받아야 하는 최저임금(시급)이다. 물론 수습근로자와 감시․단속직 근로자를 비롯하여 여러 합법적 방법을 통해, 또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더 낮은 임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법으로 강제된 금액은 4,000원이다. 그리고 올해 6월 결정된 2010년 최저임금은 4,110원이 되었다.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될 때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큰 진통을 겪지만, 올해는 특히나 더 큰 진통을 겪어야 했다. 그 진통은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흔들리게 할 만큼 컸다. 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위원 측에서 최저임금 ‘삭감안’ 카드를 내놓았다. 최저임금제도가 실시된 1988년 이후 삭감안이 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영계가 주장한 삭감안은 2009년 최저임금에서 5.8%를 삭감한 3,770원 이었고, 이는 2008년 최저임금 금액이었다. 이에 반해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30여 노동시민단체가 모인 최저임금연대는 2010년 최저임금을 2008년 노동자 평균임금의 50%인 시급 5,150원으로 요구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이를 중재하여야 할 공익위원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과 동수인 공익위원은 노동부 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위촉한다. 최저임금과 관련된 학과의 교수들로 구성되며, 본교 생활과학부 소비자주거학전공의 김경자 교수도 공익위원으로 활동 중 이다. 은 수수방관하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노동계와 경영계의 수정안이 몇 번씩 오고 간 뒤, 결국 경영계의 손을 들었주었다고 할만한 공익위원 제출안인 2.75% 인상안이 표결을 통해 결정되었다. IMF 외환위기가 시작되었던 1998년 2.7% 인상 이후로 가장 낮은 수준의 인상률이었다. 경제위기와 물가상승에 따른 이중고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에게 지난해 물가상승률 4.7%에도 못미치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률은 실질적으로 임금이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기에 이들을 더 큰 고통으로 받게 되었다.
올해 최저수준의 인상률을 떠나 경영계에서 ‘최저임금 삭감안’이 나왔다는 사실은 최저임금제도 자체를 위협할 만한 일이었다.
최저임금법 개정안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7달 전인, 2008년 11월 18일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 외 30명의 의원이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금융위기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 증가와 이에 따른 최저임금법 위반, 그리고 취약계층의 고용기회 축소 등의 부작용을 줄인다는 이유’
김성조 의원 대표발의,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2008. 11. 18. 참조 로 제안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개정안의 주요내용은 지역별 최저임금의 도입, 수습근로자의 수습기간을 6개월로 연장, 60세 이상 근로자의 경우 동의에 따라 최저임금 감액적용 가능, 숙박 또는 식사비용 임금 공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만들어 낼 부작용들을 살펴보자면, 먼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개정한다는 지역별 최저임금제의 경우 현재도 서울 등 대도시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지역의 노동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더불어 최저임금액이 높은 지역으로 사람이 몰리고, 최저임금액이 낮은 지역에는 사람들이 빠져나와 지역간 불균형(특히 대도시와 지방도시간)을 심화시킬 것이라 예상된다. 다음으로 수습근로자의 수습기간을 현 3개월에 6개월로 늘리는 안은 현재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이 대부분 사실상 수습기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노무직임을 생각할 때 이들의 경제적 상황만 더욱 나쁘게 만들 뿐이다. 또한 최저임금 보다 낮은 임금으로 6개월 이내의 기간제로 남용될 위험성이 크다. 이와 더불어 숙박 또는 식사비용을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은 실질임금을 크게 떨어뜨려 노동자들의 경제적 상황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60세 이상 근로자의 경우 최저임금을 감액적용할 수 있다는 조항은 2006년 한국의 노인빈곤률(전체 가구 중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속한 고령자의 가구)이 45%로 OECD 평균인 13%보다 3배 이상인 상황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 결정,「‘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 2008. 12. 18. 참조 에서 노인빈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 개정안과 더불어 올해 3월 국무총리는 최저임금제도를 2년간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최저임금이 최소한이 기준조차 되지 못하도록 만들려하는 지금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최후의 보루인 최저임금제도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최저임금제도의 의의와 중요성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시장 내 임금결정 기구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저임금을 일소하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것을 목적으로 국가가 노사간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여 사용자에게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고 있고, 한국에서 최저임금제도가 실시된 것은 1988년부터였다. 하지만 시행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저임금 본연의 목적인 ‘저임금계층 일소, 임금격차 해소, 분배구조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김유선, 「최저임금 수준과 최저임금법 개정안」, 『노동리뷰』2009년 1월호 인용 여전히 한국사회는 저임금계층이 대단히 높은 수준이며,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 한다.위 국가위원회 상임위원회 결정 참조 여기에 IMF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와 서민 물가상승, 그리고 높은 실업률이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드는 지금, 최저임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사회보장제도가 갖추어지지 못한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한국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 칭해지기도 한다. 여기에 더불어 노동조합 조직률은 10.3%에 불과해 노동조합을 통한 보호를 받지 노동자들 보다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노동자들과 이들 중에서도 더욱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는(쉽게 다른 노동자와 교체될 수 있기에), 단순노무직 노동자들과 이들 중 더욱 열악한 위치에 처해있는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마지막 보루가 되며, 사실상 그해 임금으로 정해지기에 최저임금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이렇듯 최저임금이 노동자들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을 결정하는 기준임에도 최저임금을 삭감하려는 경영계와 최저임금 제외 대상을 늘리고 숙식비와 식비 공제를 통해 실질임금을 낮추려 하는 법률안은 최저임제도의 근간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금융위기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최저임금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소기업의 부담은 원․하청간의 불공정한 거래관계나 원자재․유가상승과 같은 외부적 요인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을 통해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며, 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야할 문제는 아니다.위 국가위원회 상임위원회 결정 참조 또한 한국의 최저임금(시간당 임금기준)은 정액급여 대비 최저임금비율은 32.7%이며, 임금총액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26.1%로 국제적으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위 김유선 저 논문 참조 최저임금제도를 흔드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을 잡고 흔드는 일이다.
최저임금과 대학생
그렇다면 최저임금이 우리 대학생들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대학을 다니고 있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방학 중이나 학기 중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이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받게 되는 임금은 대부분 최저임금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특히나 방학기간 중 아르바이트를 찾는 대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최저임금 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필자도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에 불과한 시급으로는 이번 등록금의 절반도 벌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서도 최저임금은 우리와 떨어지지 않는다.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도 학자금대출을 갚아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20대 구직자의 35.4%가 아르바이트 중이며 이 중 29%가 아르바이트를 두 개 이상 하고 있다는 통계
조성주,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2009, 시대의 창. 참조 는 최저임금이 대학생과도 쉽게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본 최저임금법 개정안 중 수습기간 연장 조항은 많은 대학생들이 장기간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에서 6개월이나 되는 수습기간은 자연스럽게 사용주들이 대학생들을 합법적으로 최저임금 이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최저임금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대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좀 더 그 이름에 걸맞는 액수로 결정되었다면, 우리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자기계발과 취업준비를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이 가능했을 거란 얘기다.
다시 최저임금이 중요해지다
최저임금이 위협받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삶이 위협받는 지금이 다시 최저임금제도가 중요해지는 때이다. 지금이 최저임금을 제자리를 찾게 만들어야할 때이다. 우리도 최저임금 현실화해서 인간답게 살아보자. 좀 더 여유를 가지며 공부할 수 있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인간의 노동이 세상을 바꾸고 만들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금 같은 내 1시간과 그 1시간 동안의 내 노동은 햄버거 세트 값도 안 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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