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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펴내는 글82호(2023)/펴내는 글 2023. 12. 29. 14:29
당신이 이 책을 펼쳐 보았을 때, 학교에 첫눈이 내렸을까요? 요즘 같은 날씨에 눈까지 내렸다면 꽤나 추울 것 같은데, 밖에서 교지를 집었을 당신을 생각하니 걱정이 올라옵니다. 적어도 교지를 읽는 순간만큼은 실내에서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이라는 단어는 정말 특별한 것 같습니다. 처음이 주는 의미는 우리의 당연한 일상에 새로움을 부여합니다. 눈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기상현상이지만, 첫눈이 검은 배경을 수놓는 것을 보게 되면 밤하늘의 공허함이 어느새 어린 시절의 설렘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웃을 일이 없는 요즘이지만 추위조차 잊은 채 눈덩이를 굴리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에 따뜻함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첫눈이 설레는 경험은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 처음이 주는 새로움은 설렘이 아닌 걱정의 대상이며, 또 다른 이에게 처음은 이제는 보호에서 벗어나야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처음을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순간에 맞이하며, 특별해야 할 오늘날의 첫눈조차 그들에게는 살을 에는 추위로 다가옵니다.
<성심>은 이번 교지에 우리 모두의 첫눈을 담았습니다.
처음 세상을 마주한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오늘날의 전래동화
처음으로 이별을 경험할 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해야 할 고민들과
기후위기에 맞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어떤 대학생의 이야기까지
교지를 만드는 동안, <성심>의 마음속에서도 각자의 첫눈이 내렸습니다. 우리에게 오늘날의 첫눈은 설렘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일종의 경고였고 어떤 의미에서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성심>은 우리를 첫 눈에 반하게 했던 그날의 눈송이가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성심>에게 첫눈은 여전히 특별함입니다. 매년 똑같이 찾아오는 기상현상이 매번 새로울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는 녹아내림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심>은 오늘도 모두의 소식을 전합니다. 모두가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다보면, 우리를 구분 짓던 오늘날의 추위가 어느새 녹아내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오늘의 첫눈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난히 추운 겨울날, 첫눈이 당신을 너무 괴롭히지 않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립니다.
전민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