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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를 하는 방법82호(2023)/특집, 동화윤리 2023. 12. 30. 04:39
고경빈 수습위원
아이들에게 죽음을 알려준다는 것
우리는 종종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립니다. 아이들은 죽음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생각하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과연 그들을 위한 것일까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을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어른과 같이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한 명의 똑같은 인간이죠. 그 말인, 즉 아이들 역시 죽음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경험합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우리 사는 세계의 이치인데, 물론 이 규칙을 아이들이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게 할 일도 아니죠. 죽음도 엄연한 삶의 일부인걸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알려줄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 성심은 동화책 《작별 인사》, 그림책 《잘 가, 안녕》을 통해 아이들 세계에서의 작별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구두룬 멥스, 《작별 인사》 표지. ⓒ시공주니어 나와 가까운 사람이 사라진다면 – 구두룬 멥스, 《작별 인사》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 가까운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을 경험한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 어쩌면 나의 세상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으셨나요. 우리는 이런 걸 알기에 아이들에게 말해주기 꺼렸던 걸까요? 구두룬 멥스의 동화 <작별 인사>는 하나뿐인 언니의 죽음을 경험하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하루아침에 사팔 눈이 된 언니. ‘나’는 그런 언니의 모습이 마냥 웃기지만 어른들은 그런 언니를 병원에 데려갑니다. 그리고 언니는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나’는 언니의 암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언니는 왜 머리가 없어진 걸까? 숙제를 안 했는데 선생님은 왜 날 혼내시지 않는 거지? 왜 병문안을 가면 안 되는 걸까? 뇌종양은 어떤 병일까? 언니가 몹시 아픈 걸까? ‘나’는 다만 질문이 많아질 뿐입니다. 아이들은 이처럼 아직 죽음의 과정을 이해하기까지 많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의 주변에 있는 어른 중 설명을 ‘알아듣기 쉽게’ 해주는 사람은 없죠. ‘나’는 그저 언니가 없는 방에서 혼자 과자를 먹고, 혼자 잠에 들면서 언니를 기다릴 뿐입니다. 어른들이 언니의 병이 심해져 호스로 밥을 먹게 됐다고 했을 때도 ‘나’는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줍니다. 얼마나 아픈지, 앞으로 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말이죠. 언니와 작별 인사를 할 준비를 알게 모르게 하게 됩니다. 돌아오지 않을 언니를 위해 모자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다가 할머니를 통해 언니의 죽음을 듣게 됐을 때 ‘나’는 또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제 다시는 언니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안녕....”이라고 작별 인사를 못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터뜨립니다. ‘나’에게 아무도 죽음에 대해, 그 과정에 관해 설명해주지 않았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이제 나의 세계를 구성했던 존재를 갑자기 잃게 되어 갑작스러운 빈자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심지어 어른들은 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이들까지 그곳에서 슬퍼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나’는 이런 결정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고집을 피울 수 없었습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열심히 언니를 생각하면 언니와 대화도 할 수 있을 거란 엄마의 말을 듣고 열심히 언니를 부르죠. 그러나 당연하게도 언니는 답이 없습니다. ‘나’는 장례식 때문에 언니가 바쁜 거로 생각합니다. 이제 앞으로 답이 돌아오지 않을 부름만을 하게 된 ‘나’는 언니의 빈자리를 과연 채울 수 있을까요?
구두룬 멥스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행복과 슬픔을 느꼈으면 한다고 전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른들은 이 책을 읽으면 행복보다는 슬픔을 더 크게 느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우선 성심 역시 그랬습니다. ‘나’에게 미안하고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요. 죽음과 이별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그 빈자리를 어떻게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어쩌면 아이들이 충분히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죽음과 그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른들이 다 말해주지 않은 걸 책을 통해 알 수 있도록. 그리고 죽은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이상한 것만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갑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이렇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충분히 설명해 주세요.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주세요.”
김동수, 《잘 가, 안녕》 표지. ⓒ보림 잘 가, 오늘 처음 봤지만 – 김동수, 《잘 가, 안녕》
아이들에게 로드킬¹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요?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차가운 도로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을 설명하긴 참 곤란하기도 합니다. 가끔 길을 가다 보면 길 위에 납작해져서 죽은 동물들을 보고는 합니다. 아이들은 옷자락을 당기고는 말합니다. “저기 고양이가 누워있어.” 자동차들이 지날 때마다 동물들은 이리저리 도로 위를 나뒹굽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또 이런 ‘문제’를 아이들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사실 로드킬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보면 어른들은 눈을 가리고 그 장소를 떠나기 일쑤입니다. 마치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말이죠. 이 책은 무심코 지나쳤던, 피하기 급급했던 생명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야기는 트럭에 치여 죽은 강아지를 한 할머니가 집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할머니의 방에는 죽은 동물들이 누워있습니다. 모두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입니다. 할머니는 죽은 동물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털을 빗질해 주고, 감지 못 한 눈을 감겨줍니다. 따뜻한 이불에 넣어 하룻밤을 재우고 해가 뜨자 꽃을 넣은 배에 태워 강으로 흘려보내죠. 우리가 평소 도로 위에 죽은 동물들을 대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르는 새벽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인데 도로 위에서 죽은 동물들에게는 한없이 차가운 시선만을 보냅니다. 아이들이 다시 한번 “저기 고양이가 누워있어.”라고 말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요? 아마 이 책을 읽고 난 후라면 “그냥 가자.” 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무심코 지나갈 일이 된 건 아니라는 겁니다. 따뜻한 할머니의 손길처럼 죽은 동물들에게도 그런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어야 할 겁니다. 물론 단순한 연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동물들이 왜 도로 위에 있어야 하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말이죠. 그냥 지나치지 않는 순간이 쌓이고 쌓인다면 아이들이 나중에 성장했을 때 작은 존재에게 이야기 속 할머니처럼 다정한 손길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요?
이야기 속 할머니는 동물들을 보낸 후 손을 흔들며 말합니다. “안녕, 잘 가.” 그리고 어제와 다르지 않게 해가 떠오르고 맑은 하늘이 보입니다. 그냥 지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도로 위 동물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아이들이 처음 보는 동물들의 죽음에도 다정하게 진심으로 작별 인사를 해주기를 바랍니다.
¹ roadkill. 도로에 나온 동물을 자동차 등으로 치어 죽이는 일.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아이들의 시선에서 죽음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죽음이 쉬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어른의 이해와 아이의 이해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아이들의 세계에 맞는 작별 인사를 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두 편의 동화를 통해 죽음을 전하는 방법을, 작별 인사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죽음을 단순한 공허와 슬픔으로 받아들이지를 않도록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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