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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자, 집 밖 더 큰 세상으로 -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김재순 협회장,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와의 인터뷰79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12. 6. 19:59
-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김재순 협회장,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와의 인터뷰-
고수안 수습위원
‘가사(家事) 사용인에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제11조의 열다섯 자 남짓의 한 줄은 지난 68년 동안 가사 노동자를 법의 보호 밖으로 밀어내는 장벽과도 같았다. 전통적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속에서 가사 노동은 ‘집안일’이라는 말로 불리며 경제적 가치가 없는, 부수적인 노동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법 제정 당시의 사회적 맥락으로 보자면, ‘사적(私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에 국가가 개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조항의 사유로 짐작해볼 수 있다. 오히려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더욱 호출 근로, 부당 대우 등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었음에도 국가는 과거의 관행과 인식을 청산하지 못한 채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외면해왔다. 2010년 이래로 수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입법기관의 무관심 속에 폐기되기 일쑤였다. 기나긴 투쟁 끝에 지난 5월, 마침내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이하 가사근로자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가사 노동자는 2015년 기준 최소 15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추산된다.1) 플랫폼까지 합세한 상황에서 현재 얼마나 많은 인원이 정당한 권리 보장 장치 없이 노동 시장에 내던져졌는지 알 수 없다. 당연하게 ‘여성의 것’으로 여겨지며 법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던 가사 노동자가 드디어 그 장벽을 허물고 ‘공식적인 노동자’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김재순 협회장(이하 김),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이하 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1) 올해 5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가사근로자법)이 통과되면서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68년 만에 가사 노동자의 법적 지위가 인정되었어요. 이 68년을 어떻게 보시나요?
김 과거에 주부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집안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집안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하면 어떻겠냐’ 해서 가사 서비스가 시작되었던 거죠. 68년이라는 지대한 시간 동안 ‘집안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로 여겨지면서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배 가사 노동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역사적 흐름이 있잖아요. 가사 노동이 전문화, 고도화되면서 직업적인 영역에서 당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상 국회나 정부의 책임 회피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성들이 주로 하는 노동, 특히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이 주가 되는 노동이었기 때문에 이 사안에 대한 관심도나 민감도가 떨어졌던 것도 있었다고 봐요. 연구대상조차 되지 않았고요. 여성 노동 안에서도 ‘가장 외곽의, 소외되고 배제된 노동’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럼에도 68년 동안 가사 노동자들은 노동을 해왔고 삶을 이어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 가사 노동자의 법적 지위 인정에 대한 논의 자체가 2010년대에 들어서 시작되었고, 법안 발의 단계에서 세 차례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기도 했는데요.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김 현장의 입장에서 보면 전문 직업인으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로 인정이 안 되다 보니, 다쳤을 때 산재 인정이 안 되는 것, 어떠한 법적 보호 없이 무기한으로 일을 쉬면서 수입이 없는 것. 그런 점들이 힘들었죠. 최소한 고용보험과 산재 인정만이라도 가사 노동자들이 일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입법 기관이 조금 더 깊숙하게 가사 노동자의 입장에서 고려했다면 ‘(10년보다) 더 빨리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 국회에서 이 법이 공회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노동을 누가 하는지와 더불어 이 노동의 주요성(主要性)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가사 노동’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았기 때문인 것이죠. 그것을 끌어올리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가사근로자법 입법 운동을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는데, 법안의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는 동안 “도대체 언제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이 운동이 지속 가능한가” 라는 현장의 물음이 있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오랜 시간 가사 노동자 당사자분들을 설득하고 함께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재순 협회장님처럼 현장에서 단단하게 이 운동을 지켜 오신 분들 덕분에 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3) 가사근로자법은 ‘인증을 받은 제공기관’에 소속되어 일한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인증 요건에 법인 설립, 손해 배상 수단 마련 등이 요구되는데요. 개인 간 거래/소규모 오프라인 알선업체(직업소개소 등)의 경우 비용적, 시간적 부담이 있을 것 같아요. 업계 반응은 어떤가요?
김 이전까지는 서비스 비용을 그대로 노동자가 받는 형태였어요. ‘인증을 받은 제공기관’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 서비스 비용이 회사(제공기관)로 가서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위한 비용이 제해진 다음, 노동자에게 돌아가요. 그만큼 지금보다 서비스 비용 자체가 올라가겠죠. 전에는 당사자(노동자)에게 가는 비용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이 점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그리고 현재 가사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법이 시행되자마자) 모두 제공기관에 속해서 일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대신 제공기관 중에서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들이 꽤 있어요. 일반 회사와는 달리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이 됩니다. 가사 노동자분들이 협동조합을 많이 이용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배 일단 그동안 우리 사회가 가사 노동 서비스를 이용해옴에 있어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 노동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인식, 그리고 ‘더 이상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합의. 이런 것들이 만들어져야겠죠. 가사 노동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 노동이 아니잖아요. 1:1로, ‘노동 하나 대 어떤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이윤을 추구하게 되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이 노동의 특수성에 대해서 정부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수한 성격의 노동 시장을 어떻게 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좀 더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요.
3-1) 이와 관련해서 이루어져야 할 부가적 지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배 앞서 말했듯 1:1 노동이기 때문에 이 노동에 해당하는 완전히 교환적인 가치로서의 임금이 주어지게 되죠. 거기에서 이제는 4대 보험, 퇴직금, 연차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사실 이것들 자체가 노동자 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은 아니라고 봐요. 기존의 노동 관련 정책에 상응하거나 더 높은 비율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노동 알선’의 문제예요. 배달 서비스도 공공 어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특수성을 띠고 있는 직업을 알선하는 것도 정부가 고려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는 나라*도 있고, 그렇게 되면서 중간착취 없이 노동자들이 온전하게 일한 대가를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죠.
*이탈리아의 대표적 돌봄협동조합인 ‘CADIAI’는 양질의 가사서비스 공급에 대한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가사노동자의 고용조건이 제도적 틀 안에서 집단적인 방식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한다. 비슷한 예시로 영국의 ‘썬더랜드’ 협동조합 등이 있다.
3-2) 당초 ‘공익적 제공기관’에 대한 현장의 요구가 있었는데요. 공익적 제공기관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김 ‘공익적 제공기관’이라는 것에 요구했던 내용은 취약계층을 위한 가사 서비스, 예를 들면 한 부모 가정에 대한 가사 서비스 지원이라던가, 어르신 돌봄 가사 서비스 등이 있었어요. 안산시에서 진행한 ‘우리 집을 부탁해’ⅰ 같은 서비스를 말하는 거죠. 가사 노동자분들이 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가사 서비스 시장이 공익적 제공기관에 밑바탕을 두고 차츰차츰 발전해나가길 원했어요. 이 부분이 이번 법안에는 빠져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확대시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배 이 입법 운동을 시작했을 당시에는 가사 서비스 시장 자체를 공익적 제공기관이 대거 참여한 협동조합 생태계로 만드는 게 목적이었어요. 비영리 단체들이 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류 기관이 되도록, ‘시장의 중간착취를 없애는 방식으로 가보자’ 해서 추진이 됐었죠. 그런데 발의-폐기의 반복, 입법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처음 목적 자체가 빠져버린 거죠. 더군다나 논의되기 시작한 지가 10년이 넘다 보니, 그동안 여러 가사 노동자 중계 플랫폼들이 생기는 거예요. 이미 법안이 만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플랫폼에 대한 대응을 하지 못한 상태로 법이 통과됐어요. 이 법에서 문제를 찾자면 그런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4) 가사 서비스의 사용자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입니다. 기존의 가사 서비스와는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 보시나요?
김 법이 통과되면서 관심을 가지는 지자체들이 생겼어요. 경기도에서는 가사 서비스 시장의 건강한 활성화를 위해 토론회도 개최하고 자체 어플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렇게 지자체에서 나서주면 가사 서비스 시장이 조금 더 공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가사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죠.
5) 내년 5월부터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됩니다. 법안이 시행되면 법적 보호 외에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김 이제 첫발을 내딛는 만큼 큰 변화는 어렵겠지만, 공식적인 노동자로서 좀 더 안정적으로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긍심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가사 노동자들이 (사회 속에서) 자리매김을 잘 했으면 좋겠고 그와 더불어 비영리단체도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배 사회적으로 봤을 때는 이 노동 자체에 대한 인정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봐요. 지금까지 가사 노동이 ‘옆집 아줌마’가 하는 노동으로 생각됐다면, 이제는 4대 보험을 비롯해서 노동자로서 정확하게 보호가 들어가야 하는 노동이라고 인식되겠죠. 사회적 인정과 동시에 가사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ⅰ) 한부모 가정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가사 서비스 이용을 지원하는 사업.
1)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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