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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북극곰은 아니지만∙∙∙” 기후 위기의 또 다른 피해자79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12. 3. 23:10
들어가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디에 멈춰있을까.”
전례 없는 한파로 얼어붙은 온화했던 도시, 느닷없는 돌풍과 우박을 동반한 돌발성 호우, 끝없는 화마(火魔)에 잡아먹히는 도시들. 마치 환경재난영화 <투모로우>(2012)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언급한 사건들은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 현재의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인류의 끝을 예견한 영화 속 미래는 이미 현재 진행형이다.
2021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도드라지는 사례들이 수차례 발생한다. 물론 기후위기 이슈는 이미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꾸준히 발생해 왔다. 하지만 올해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유독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그 강도와 피해 규모, 잦아진 발생 빈도 때문일 것이다. 특히 바다가 보여준 변화는 극적이었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묵묵히 견뎌왔던 바다는 우리에게 적색등을 켜 보인다.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는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ⅰ 방영 이후, 닥쳐오는 기후재앙을 직면한 우리에게 바다는 묻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대하는 인간의 인식은 어디에 멈춰있나.
지나치게 차가운, 지나치게 뜨거운.
2021년 2월, 미국 북동부 지역의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대표적으로 북동부에 위치한 텍사스주의 경우,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상 15℃ 안팎을 유지하던 온화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에는 영하 18℃의 기록적인 추위가 닥쳐 주민들이 채 방비할 틈도 없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인간이 아닌 생물들에게도 예고 없는 한파는 치명적이었다. 텍사스주와 맞닿아있는 멕시코만은 바다거북의 서식지인데, 이번 한파의 영향으로 수온이 떨어져 이들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평균 수온 10℃ 내외에서 서식하는 바다거북은 해당 온도보다 낮은 환경에 긴 시간 노출될 경우 ‘콜드스턴(cold stunned)’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나 기타 포유동물을 비롯한 정온동물은 스스로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에, 바다거북과 같은 변온동물은 주변 환경에서 생체 활동을 위한 열을 얻어 살아간다. 이 때문에 거북은 주변 환경에서 열을 얻지 못하면 ‘콜드스턴’에 빠져 몸이 굳으며, 헤엄을 치거나 먹잇감을 잡아먹는 등 생존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없어 그대로 수면을 떠다니다 익사하거나 동사한다. 다행히 봉사자와 시민들의 협력으로 태평양 해변에 기절해있던 바다거북 약 3,500여 마리가 구조되어 그 중 일부가 생명을 건졌다. 그러나 이들은 한파의 영향을 받은 생물 중 소수일 뿐이며, 사람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1)
같은 해, ‘지나치게 추웠던’ 겨울에 ‘지나치게 더운’ 여름이 뒤를 이었다. ‘머리가 탈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더는 농담이 아닌 심각한 현실이 되었다. 2021년 6월에서 7월, 캐나다와 미국이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통 달궈지게 된다. 평균 기온이 30℃를 넘지 않았던 캐나다 밴쿠버의 태평양 해변은 폭염의 영향으로 최고 42℃까지 이르렀고, 이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의 보도에서 홍합들이 말 그대로 ‘삶아졌다’고 표현할 만큼 온 해변의 조개류, 불가사리, 게 등 각종 연안 생물들이 모조리 고온에 목숨을 잃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으로 인해 약 10억 마리의 해양생물들이 죽었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2)
산란철을 맞아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연어도 이번 폭염으로 큰 피해를 받았다. 컬럼비아강은 캐나다와 미국을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흐르며 연어들이 산란을 위해 거치는 경로가 되어주는데, 댐의 영향으로 유속(流速)이 느려져 온도가 상승한 강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염이 닥쳐 이상 수온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강의 생태복원을 위한 활동을 해온 환경단체 ‘컬럼비아 리버키퍼’가 7월 16일에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컬럼비아강의 수온이 21℃에 이르러 연어들이 심각한 화상을 입고 몸의 일부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간 채 헤엄치고 있다.3) 이렇게 화상을 입은 연어들은 곰팡이 감염 등 각종 질병에 취약한 상태가 되며, 정상적인 산란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차례로 ‘콜드스턴’에 빠져 구조된 바다거북 무리, 폭염으로 폐사해 껍데기가 벌어져 있는 홍합들, 수온이 올라가 살점이 너덜너덜한 채로 헤엄치는 연어들. ©The Guardian ©Christopher Harley ©Columbia Reverkeeper 탈색되는 우리 바다
2021년 9월, 기후위기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붉은 지구 2부 - 침묵의 바다>가 방영되었다. 제작진이 담은 한국 남단의 바다는 우리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해저부터 비명 한마디 없이 하얗게 죽어가고 있었다.
근래 다이버들은 제주 해역을 자주 찾는다. 아열대화된 수중 생태계가 마치 해외의 열대 해양과 같은 화려함을 보여줘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하지만 화려한 열대 어종과 형형색색의 연산호가 군락을 이루는 제주 바다의 아름다움을 그저 즐기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들은 바다가 보여주는 기후위기 적신호이기 때문이다. 열대성 생물 대번성의 이면에는 죽어 사라져가는 난대성 생물들이 있다.
제주를 비롯한 남단의 해양은 근 몇 년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감태와 모자반, 미역을 비롯한 난대성 대형 갈조류가 급격하게 온도가 올라간 우리나라 최남단 해역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제주대학교 기초과학연구소의 강정찬 박사는 “불과 2~3년 사이에 한꺼번에 어마어마한 식물 양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또한, 소라와 성게 등 해조류를 주 먹이로 삼는 생물들도 잇따라 자취를 감추었다. 심지어 개체수가 줄어든 성게가 살기 위해 갯바위에 돋아난 붉은산호말 마저 먹어치우면서 갯바위가 하얗게 드러났다. 그 결과 제주의 조간대, 그리고 해저면은 사막을 방불케 하는 황량한 모습이 되었다. 성게와 해조류를 물질하는 해녀들도 덩달아 울상이다. 해녀들은 입을 모아 제주 바다는 끝났다고 이야기 한다.4)
사건의 전말, 바다는 지구 온난화를 지목한다.
일련의 사례들은 ‘이례적인’, ‘기록적인’ 혹은 ‘급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언론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극단에 치달은 기후와 바다가 ‘왜’ 이렇게 됐는지 그 경위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바다는, 그리고 해양 생태계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일은 ‘지구 온난화’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지나치게 추운’ 겨울과 ‘지나치게 더운’ 여름, 그로 인한 해양생물들의 대규모 피해의 경위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대기의 온도 차로 인해 형성되는 제트기류는 극지대 고위도의 찬 기류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오거나, 저위도의 뜨거운 기류가 중위도로 올라오는 상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 기후가 따듯해지자 제트기류의 세력 또한 약해져 큰 곡선을 그리는 형태가 되었다. 이렇게 제트기류가 쳐지거나 올라가면, 그 폭만큼 아래로 차가운 기류가 영향을 끼치거나 뜨거운 기류가 위로 영향을 끼쳐 한파와 폭염ⅱ이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온의 변화는 수온도 변화시키기 때문에 수중생물도 여지없이 극단적인 기후의 영향을 받게 된다.
정상적인 제트기류와 온난화의 영향을 받은 제트기류 모식도 . © KMA learning 죽어간 해조류와 하얗게 변한 제주 해역도 마찬가지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 앞서 설명한 해조류가 사라지고 바위가 하얗게 뒤덮이는 현상을 ‘갯녹음’, 또는 ‘백화현상’이라고 한다. 갯녹음 현상의 원인은 조류를 포식하는 성게 등 생물의 영향, 오수의 유입과 같은 환경적 영향처럼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가속화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갯녹음 현상에 다양한 요인 중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5)
정리하자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제트기류의 약화’와 ‘꾸준한 해수온 상승’ 등이 기후재앙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닫으며, ‘지구 온난화’, 더는 미룰 수 없는 현실.
모든 참사의 원인이 지구 온난화임을 알게 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디에 멈춰있는가. 지구의 온난화는 결코 북극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당장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변화를 보고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면, 빠르게 사라져가는 생물들처럼 조만간 우리 인간들 역시 이 지구 위에서 사라질 것이다.
앞선 해양생물들의 이야기에서 안타까움만 느껴졌다면, 혹은 기후재앙으로 희생된 생물들에게 동정심이 드는 데서 그쳤다면 이들은 그저 우리에 의해 또 다른 ‘눈물 흘리는 북극곰’이 될 뿐이다. 지구 온난화를 나와 상관없는 ‘타자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 정도로 치부하는 여러분에게 시각을 바꾸기를 권한다. 이 모든 일은 전부 인간에게도 닥치고 있는 재앙이다. 쪄 죽은 홍합들과 얼어 죽은 거북들은 50도에 육박하는 고온과 예고 없는 잔혹한 추위에 노출되어 고통받는 사람들과 닮은꼴이다. 수온이 높아져 먹이인 해조류의 씨가 마르자 서식지를 떠나버린 소라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심해진 가뭄으로 논밭이 말라붙어 식량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닮은꼴이다. 그뿐일까. 우리가 그렇게 ‘지구 온난화의 희생양’이라며 마스코트로 내세운 북극곰은 디딜 곳 없이 녹아내린 빙하 위에서 표류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앞으로 해수면이 올라가며 침수피해를 받을 연안 지대 범위를 예측한 지도를 내놓았다.6) 따뜻해진 해수에 잠겨 디딜 곳을 잃어가는 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직도 <북극의 눈물>에서 멈춰있는 우리 인간에게 바다는 묻는다. 정말 지구 온난화가 ‘나와 상관없는 동물들의 안타까운 현실’인지.
참조문헌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남성현, (2020), ㈜북이십일 21세기북스
『극단의 도시들 (원제: Extreme Cities)』 Ashley Dawson, (2017), 한울 아카데미
『해양환경 부문 기후변화정책의 개선방안 연구』 박수진∙정지호, 2010,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기후정의』 한재각, (2021), 도서출판 한티재
『다양한 환경문제들』 차동원, (2020), 박영사
『성심』 76호 <대:전환>, 가톨릭대학교 성심 교지 위원회, (2020), ㈜티에스업앤업
KBS 기후위기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붉은 지구 2부 - 침묵의 바다>
“이해하기 쉬운 날씨 시리즈 – 한파” KMA learning https://www.youtube.com/watch?v=dDjgfnx52co
동영상 게시일:2017.08.21. 최종검색일:2021.11.10.
“ Why do turtles become cold stunned?” Olive Ridely Project>FAQs> Why do turtles become cold stunned?
최종검색일:2021.09.14.
이근영, 『고향 강 돌아와, 삶겨 죽는 연어…‘기후 참사’ 희생』, 2021.07.28., 한겨레신문,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05465.html>, 최종검색일:2021.9.20.
김병희, 『제트기류 동요가 열파와 한파 일으킨다』, 2019.12.11., 더 사이언스타임즈,
<https://www.sciencetimes.co.kr/news/%EC%A0%9C%ED%8A%B8%EA%B8%B0%EB%A5%98-%EB%8F%99%EC%9A%94%EA%B0%80-%EC%97%B4%ED%8C%8C%EC%99%80-%ED%95%9C%ED%8C%8C-%EC%9D%BC%EC%9C%BC%ED%82%A8%EB%8B%A4/>, 최종검색일:2021.11.10.
신다혜, 『#2. 기후변화의 역습…시리아 난민을 발생시켰다고? 빈곤층 위협 고조』, 2019.03.31., 더 데일리포스트,
<https://www.thedaily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70067>, 최종검색일:2021.11.10.
ⅰ MBC가 기획, 제작한 <지구의 눈물>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북극에서 살아가는 원주민과 지역의 생태계를 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이누이트 족과 북극곰, 순록 등을 조명했으며, 이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눈물 흘리는 북극곰’이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ⅱ 폭염의 원인으로는 최근 ‘제트기류 약화’로 심화 되었다는 견해가 있는 ‘열돔 현상’, 주기적으로 해양의 온도변화가 나타나는 자연현상인 ‘엘니뇨’와 ‘라니냐’ 등의 영향도 있지만, 이 기사는 최근 연구 동향에서 주요인으로 주목하고 있는 ‘제트기류의 약화’만을 다루었다. (출처:KISTI 과학향기)
1) 투고자 미상, 『People are rescuing thousands of ‘cold-stunned’ sea turtles in Texas』,2021.02.17.,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21/feb/17/texas-winter-storm-sea-turtles-cold-stunned>, 최종검색일:2021.09.14.
2) Leyland Cecco, 『Heat dome probably killed 1bn marine animals on coast, experts say』, 2021.07.08.,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environment/2021/jul/08/heat-dome-canada-pacific-northwest-animal-deaths>, 최종검색일:2021.09.14.
3) “Salmon Dying from Hot Water: July 16, 2021”
<https://www.youtube.com/watch?v=ctGzlBiqMNY&t=6s> 최종검색일:2021.11.10.
4) KBS 기후위기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붉은 지구 2부 - 침묵의 바다>
5) <제주연안에서 기후변화가 갯녹음 확산에 미치는 영향> 황성일∙김대권∙ 성봉준 외 3인, (2017), 한국환경생태학회지
6)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 연안 재해 취약성 평가체계> 해안침수 예상도 소개<http://www.khoa.go.kr/cdas/cdasweb/CDAS/page/pageService.do?id=sub_03_02>최종검색일: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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