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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78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6. 2. 15:22
양광모 수습위원
우리는 택배 없이는 살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택배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빠르면 당일, 늦어도 이틀 안에 완료되는 택배 배송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우리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이 택배다. 하지만 택배 사업 이면에는 죽어가고 있는 택배 노동자가 있다. 호황을 맞이한 택배업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택배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택배 노동자는 근로계약을 맺는 노동자의 신분이 아닌 개인 사업자의 신분으로 일을 한다. 이를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른다. 특수고용노동자는 형식적으로 고용계약상태는 아니지만, 계약상으로만 임금노동 형태를 벗어났을 뿐 실질적으로 기업들의 통제 하에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는 개인 사업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사회보험의 울타리 밖에 놓여있으며 설령 사회보험의 안전망에 든다고 해도 모든 책임을 노동자 본인이 져야 한다. [i]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보다 사고 시에 질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2020년 산재 보험에 가입한 노동자 7천 명 중 16명만이 공식적인 과로사로 인정되었다. [ii] 전체 택배 노동자의 규모가 5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비공식적인 과로사는 더욱 많을 것이다. [iii]
기업의 노동자 수탈은 멈추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택배 산업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위 그래프를 살펴보면 2019년에는 택배 물량 약 27억 개, 매출액 6조 3,304억 원으로 지난 19년 동안 택배 물량은 약 14배, 매출액은 9.8배가 성장했다. [iv] 2020년에는 택배 물량이 33억 7,000만 개에 육박하여 지난 20년 동안 택배 산업은 꾸준히 이윤을 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v]
하지만 기업은 이러한 호황 속에서도 노동자의 안전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 또한 서서히 갉아먹었다. 택배 노동자는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임금이 아닌 배송 건당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낸다. 2000년 3,500원이었던 택배 박스당 평균 운송단가는 2020년 2,221원으로 줄어들었다. [vi] 택배 노동자는 기존의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서 낮아진 단가에 맞추어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물량이 30%가량 늘었던 2020년에도 롯데택배와 우체국 택배는 택배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수수료 삭감을 시도하였다. 이는 기업이 이윤을 내는 방식이 노동강도를 인간의 한계까지 높여 아주 철저하게 노동자를 수탈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택배 노동자의 근무환경
택배 노동자들은 보통 아침 7시 전까지 지정된 터미널 또는 대리점에 출근하여 일명 '까대기'라고 불리는 당일 배송할 물건의 분류작업을 진행한다. 택배회사는 택배기사에게 배송 건당 수수료만으로 임금을 지급하기에 노동자는 분류작업에서 임금조차 받지 못한다. 이 작업은 많은 체력을 요구하여 과로사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후 노동자는 분류작업이 완료된 물건을 상차[1]한 뒤 배송에 나선다. 분류작업은 코로나19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오전에 완료되어야 할 업무가 오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배송작업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택배 노동자에게는 제대로 된 식사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들은 주 71시간 일하고 식사시간으로 고작 12분 정도를 쓴다. [vii] 점심의 경우 그마저도 절반 정도는 식사를 거르거나 간단히 차에서 요기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장시간 노동을 해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이다. 택배 노동자는 시간당 임금이 아닌 배송 건당 수수료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같은 시간을 일해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는 것이다. 주 52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12시간 노동에 12분 휴식시간, 최저시급 이하의 임금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택배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막기 위한 별도의 법체계도 없다.
코로나19 이후 택배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없었나?
그동안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이 없던 것은 아니다. 택배노조의 강력한 요구와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목도한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택배비 지급 구조, 종사자 처우 개선 조항을 포함한 '생활물류법'이 지난 1월 8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하지만 이 법에는 택배 노동자 과로의 주원인인 분류작업에 대한 논의가 빠졌다. 그리고 과로로 인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던 지난 10월 이후 택배회사들이 사과와 함께 분류지원인력 공급 및 재발방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즉 지난 1년간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 처우는 크게 뒤바뀐 것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계속되는 과로사 사건들이 증명하고 있다.
생활물류법이 통과되었음에도 택배 노동자들이 총파업까지 예고했다는 것은 여전히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난해 12월 7일에 출범한 택배업계 노사와 정부, 소비자 단체 등으로 이뤄진 노사정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노사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에 새롭게 합의하였다. 다섯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합의 기구에서는 장시간·고강도 작업으로부터 택배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1차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한 대책 중 주요 내용은 2가지다. 먼저 택배 노동자 과로사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던 택배 물품 분류작업을 택배 노동자의 업무 범위에서 제외했고, 이를 위한 분류 전담인력을 택배 회사 측에서 제공하기로 했다. 또한, 택배 노동자의 최대 근로시간을 주 60시간, 일 12시간으로 제한하고 오후 9시 이후 심야 배송도 원칙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과로를 막겠다는 취지이다.
6일 만에 다시 총파업을 외친 노동자들
1월 15일 택배노조의 총파업 선언 후 노사정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1월 21일 합의가 이루어지자 택배노조는 총파업 의사를 철회했다. 하지만 불과 합의 6일 만에 사측이 1차 합의문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다시 총파업을 예고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의 기구에서 다시 협의를 진행했다. 이번 협의에는 지난번과 달리 통합물류협회가 아닌 원청 택배 3사(CJ대한통운, 롯데택배, 한진택배)가 직접 참여하여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총파업을 철회하여 사태가 극적으로 봉합됐다. 하지만 아직도 안전한 노동환경은 멀기만 하다. 1월 합의는 택배회사에만 적용된다. 직영으로 택배를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쿠팡, 마켓컬리, SSG는 이번 합의와 상관없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쿠팡에서 지난 1년간 6명의 과로사가 일어났음에도 쿠팡은 택배회사가 아닌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이유로 합의를 피해갈 수 있었다. [viii]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는 코로나19가 만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이전부터 존재했던 산업구조와 법체계의 모순이 드러난 것이다. 현재의 법과 제도는 과로사한 택배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했으며 산업구조는 과로로 인한 사망자를 계속해서 양산해 낸다. 인간에게는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 사망 사건,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을 기억하는가? 2016년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하철에 끼어 사망했어도 바뀐 것은 없었다. 2017년 제주도에서 현장실습생이 안전수칙과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깔려 사망했다. 이번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계약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목이 잘려 사망했다. 김용균 씨의 유족은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시 기업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갔으나, 국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이름으로 처벌수위와 처벌범위가 크게 낮춰진 뒤 통과되었다. 그 결과 2021년 평택항에서 23살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했을 때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을 처벌할 수 없었다. [ix] 50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예외이기 때문이다. 안전수칙은 모조리 위반된 상태였다. 어차피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자신들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서였을까? 2020년 질병을 제외한 산재 사망사고의 81퍼센트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벌어졌다. 이마저도 지난 3월 25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이 더욱이 후퇴시킨 개정안을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았을 때 현실은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x]
오늘도 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는다. [xi]우리 또한 그 3명의 노동자가 될 수 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갈 것이다.
각주
[1] 본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배송물을 싣는 작업
미주
[i] 박종식 (2018), 『민간부문(택배산업) 비정규 노사관계 평가와 전망』 노동리뷰, 104-118
[ii] 김성민, “택배과로사대책委, “택배 노동자 또 과로사…지난해만 16명 숨져”” 2021.01.05., 안전저널 <https://www.anjunj.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14> 마지막 검색일:2021년 5월 6일
[iii] 박종식 (2018), 『민간부문(택배산업) 비정규 노사관계 평가와 전망』 노동리뷰, 104-118
[iv]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생활물류통계] <https://www.nlic.go.kr/nlic/parcelServiceSales.action>
박종식 (2018), 『민간부문(택배산업) 비정규 노사관계 평가와 전망』 노동리뷰, 104-118
[v]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생활물류통계] <https://www.nlic.go.kr/nlic/parcelServiceSales.action>
[vi] 국가물류통합정보센터 [생활물류통계] <https://nlic.go.kr/nlic/parcelServiceAvgCost.action>
[vii] 서울 노동 권익 센터, 2017., 택배기사 노동 실태 보고서
[viii] 김종훈, “쿠팡, 1년 새 여섯 명이 죽었다... "예고된 과로사, 간접 타살"” 2021.03.08.,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25105> 마지막 검색일:2021년 5월 6일
[ix] 이영재, “안경덕 노동장관, 청년 노동자 숨진 평택항 등 긴급점검 지시” 2021.05.10.,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510051600530> 마지막 검색일: 2021년 5월 6일
[x] 양효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더 난도질하자는 재계, 호응하는 정부” 2021.04.14., 노동자연대
<https://wspaper.org/article/25449> 마지막 검색일:2021년 5월 9일
[xi] 김정은,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하루 3명'…"죽음의 고리 끊어달라"” 2020.07.03., JTBC
<https://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957897> 마지막 검색일:2021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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