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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살리는 일78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6. 1. 18:40
최희원 수습위원
구성원이 가정에서 안정적이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식주를 영위하게끔 하는 가사노동을 ‘살림’이라 부른다. 가사노동이 가족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면 돌봄노동은 ‘노동’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두어 한 개인이나 집단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돌보는 행위를 의미한다.ⅰ따라서 돌봄이란 가사를 넘어 사회적 의미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돌봄노동은 가사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2019년 생활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세 이상 인구의 1인당 돌봄노동 시간은 남성은 연간 228시간, 여성은 598시간이다.ⅱ 여성이 겪는 돌봄노동의 편차는 늘 심각했으나 코로나19를 시작으로 여성의 돌봄 가중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비대면’으로 인해 학교와 돌봄시설의 문이 굳게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이 아닌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라는 말은 공적인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가정으로 떠넘겼다. 하지만 모든 가정이 돌봄을 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비대면에 걸맞은 교육과 양육환경을 갖추지 못한 가정은 또 다른 불평등을 경험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돌봄노동 문제는 특히 여성에게, 정상 규범 밖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했다. 방역을 위해 가정으로 돌아가란 말은 과연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일까?
‘집’으로 돌아간 책임
한국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어내며 ‘경제만이 살길’이라는 강박이 사회 전체에 자리 잡았고 국가는 경제성장 이외의 요소를 전부 가정으로 일임했다. 이로 인해 돌봄노동은 무보수와 헌신을 기반으로 한 낮은 가치의 허드렛일로 취급받으며 다른 노동에 비해 ‘개인적인 일’로 저평가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인 이반 일리치는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을 ‘임금노동을 위한 그림자’와 같이 정의하며 돌봄노동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지칭했다. 대가를 받지 않고 가족 구성원들을 위해 행하는 ‘그림자 노동’은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를 대신하여 복지체계의 역할을 해 온 가정은 현재 과부하에 걸려있다. 이는 돌봄의 주체인 여성의 부담으로 자리 잡았다.ⅲ
코로나19와 함께한 약 1년의 시간은 한계에 봉착한 가정을 매섭게 뒤흔들었다. 국가는 또다시 복지가 아닌 책임을 가정에 떠넘겼으며, 위태로웠던 돌봄은 힘없이 무너졌다. 국가는 개인 간의 거리 두기를 강조하며 학교, 어린이집, 학원 등의 시설 문을 한꺼번에 닫았다. 아동 대상 시설뿐만 아니라 장애인 지원 센터, 노인복지관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향했던 시설의 운영이 전부 동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온라인 수업의 증대를 야기하며 사회에서 이루어졌던 교육의 영역까지 가정으로, 더 나아가 여성에게 미루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2020년 5~6월 여성 노동자 3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3%가 ‘코로나19로 돌봄노동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성에게 가중된 돌봄 시간은 약 4시간인 것으로 드러났다.ⅳ 또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멈춰버린 각종 사회복지서비스를 대신해 여성이 돌봄을 제공하는 전담자가 됐고, 2020년 2분기에 일자리를 잃은 41만 명 중 여성이 25만 명으로 남성(16만 명)의 1.5배에 달한다”고 언급했다.ⅴ 돌봄노동의 증가는 결국 여성의 경력단절 심화로 이어졌다. 무너진 공공 돌봄이 가져온 고통은 고스란히 여성 부양자들에게 돌아갔다.
편파적인 돌봄 정책
돌봄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18세 미만 유자녀 가구의 52%, 6세 이하 아동이 있는 가구의 약 45%가 맞벌이 가구라는 상황은 돌봄 정책이 노동 시장정책과 밀접하게 연동해 결정될 필요를 보여준다.ⅵ 김지연 KDI 1) 경제전략연구부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위기에서 부각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여성 노동 공급의 제약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수행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단순히 돌봄 서비스 제공 인원을 늘리거나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금전적인 지원이 대부분이다.
2020년 3월, 국내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생 돌봄 수요는 정부 추계로 최대 64만 명이지만 현 정부가 공급하는 돌봄 수용인원은 40만 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정부는 2022년까지 약 53만 명까지 수용인원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종일 돌봄이 아닌 시간제로 운영되는 정부의 돌봄 서비스는 중간중간 아이들을 다른 돌봄시설로 데려갈 수 없는 맞벌이 가정들의 문제점을 해소하지 못했다. 보호자들의 경제활동과 돌봄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돌봄의 양을 늘리는’ 방식의 대책으로는 돌봄 문제를 해소하기 어렵다.ⅶ
가족 형태의 종류만큼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국내의 돌봄 지원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정상 가족’에 한정된 정책이라는 점이다. ‘정상 가족’을 기준으로 하여 일괄적으로 진행된 돌봄 지원 제도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생활양식을 포용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결혼과 혈연 이외의 수단으로 맺어진 동거인이 법적인 부양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국가에서 규정하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가족 정책 의제나 가족센터의 가족 대상 프로그램들은 이들을 도울 수 없다. 돌봄 주체가 반드시 가족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반한 지원제도는 다양한 형태의 부양자를 외면한다.ⅷ 그리고 돌봄의 주체가 혈연가족이더라도 부부가 함께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돌봄 노동의 강도가 더욱 극심해진다. 예를 들어 한 부모 가정의 경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한 명뿐이기 때문에 가사노동의 압박과 경제활동의 압박이 더 가중된다.ⅸ
또한 피부양자가 장애인인 경우도 보호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 대한 돌봄 지원 서비스를 살펴보면 활동지원사가 접촉자(확진자)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경우나 장애인이 접촉자(확진자)가 되어 격리되어야 하는 경우에 대한 대책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이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서 자가격리 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장애인은 홀로 재난 상황에서 중요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받기 어렵다. 이 경우에도 정보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지 않았다.ⅹ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전통적 가족주의에 기반한 사회안전망이 다양한 가족 구성을 포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 이들은 “현재의 정책이 복지는 가족에게 1차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며 재난 상황에서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경제적 고통을 받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집단을 더욱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다”라고 강조했다.ⅺ 심각한 방치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정상 가족’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신음하고 있다.
비대면으로 인한 돌봄 시설의 일방적 폐쇄는 가족의 구성원과 가정의 형태에 따라 구성원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노동은 취약계층일수록, ‘정상 가족’에서 동떨어져 있을수록 더욱더 무겁게 다가온다.
사회적 돌봄의 필수성
코로나19가 불러온 돌봄의 쏠림은 가정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돌봄 정책의 허점을 드러냈다. 한계에 도달한 가정과 사회에서 돌봄의 공백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사회적 돌봄'을 고려해야 한다. 오랫동안 여성에 특화된 개념으로 여겨졌던 돌봄에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회적 돌봄’의 개념은 ‘돌봄’에 ‘노동’이라는 차원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돌봄 수행자를 임금노동자와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돌봄서비스를 사회적 권리의 측면으로 이해하게 되면, 모든 시민이 돌봄의 대상자가 되고 서비스 제공의 책임을 공유하게 되며, 서비스 수급자와 제공자 간 상호보완적이고 연대적인 협력관계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에게 가중되어야 할 것이 아닌, 공동으로 수행해야 할 명백한 노동으로 인정받는 것이다.ⅻⅹⅲ
노동과 돌봄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시점의 변화가 시급하지만 여전히 국가는 여전히 개인의 희생을 방관하고 있다. 삶을 영위하는 데에 돌봄은 모두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돌봄을 분담하는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돌봄의 필요성을 재고해야 하며 국가는 복지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과거의 답습이 아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마련해 사회적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
각주
1) Korea Development Institute(한국개발연구원)
미주
ⅰ이숙진. '노동'으로서의 돌봄, 2012.02.15., http://www.peoplepower21.org/Welfare/873577, 마지막 검색일 : 2021년 5월 6일
ⅱ 장지연. 코로나19 팬데믹과 유·무급 돌봄노동. 2020, pp.3-4
ⅲ송다영. 돌봄의 사회화와 복지국가의 지연(遲延). 한국여성학, 2014, pp.124-126
ⅳ 박다해. 코로나 유행 장기화에 여성노동자 3분의 1 “가족돌봄노동 독박”. 한겨레. 2020.09.17.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62630.html#csidx196878ec1e6090babd7999b759ef439, 마지막 검색일 : 2021년 5월 6일.
ⅴ 박다해. 코로나 유행 장기화에 여성노동자 3분의 1 “가족돌봄노동 독박”. 한겨레. 2020.09.17.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62630.html#csidx196878ec1e6090babd7999b759ef439, 마지막 검색일 : 2021년 5월 6일.
ⅵ 양난주.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돌봄, 필수 서비스·필수 노동이 되기 위하여. 정책기획위원회. 2020.
ⅶ 정익중. 코로나19로 인한 아동돌봄 문제에 대한 해외 대응과 그 시사점. 국제사회보장리뷰. 2020. pp.56
ⅷ 류연규. 포스트19 시기 가족생활과 가족정책 의제. 코로나 19로 인한 가족의 변화와 정책과제. 2020. pp.41-42
ⅸ김민주. 코로나19는 미혼모가정의 위기…“소득 감소하고, 돌봄 부담은 증가”. 베이비뉴스. 2021.03.30. https://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4075, 마지막 검색일 : 2021년 5월 6일.
ⅹ박성용, 쏟아지는 코로나19 대응책, "장애인은 사각지대, 웰페어뉴스, 2020.02.17, https://www.welfare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2801, 마지막 검색일 : 2021년 5월 6일.
ⅺ 김미향. 돌봄의 사회화, 그 이상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겨레. 2020.04.18.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37585.html#csidxedad108552ce1178ef09ce018c78d0a, 마지막 검색일 : 2021년 5월 6일.
ⅻ 장민선. 사회적 돌봄서비스 강화를 위한 법제 연구. 2017. pp.35-43
ⅹⅲ 채효정 외.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 누가 이 세계를 돌보는가. 2021. 창비.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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