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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진국의 ‘가난의 할머니화’에 대하여78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6. 1. 18:35
소준철 작가
<소준철 작가 이력>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학 박사 수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학 석사.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국제관계학 학사.
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의 연구원과 「걷고싶은도시」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독저서로 『가난의 문법』(푸른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는 『절멸과 갱생 사이 – 형제복지원의 사회학』(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연구논문으로 「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 내 사업의 변화」(2020)이 있다.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좋은서울’ 우수논문상(2015)과 제1회 최재석 학술상 우수논문계획상(2020)을 수상했다.
한국사회서 노인의 가난은 청년의 가난과 함께 대표적인 사회문제다. 2015년,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에 대한 첫 조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란 내가 포함된 청년 세대의 가난에 견주어 ‘노인의 가난’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데 있었다. 더구나 이 시기는 2010년부터 이어져 온 청년의 가난에 대한 심각성과 그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때였다. 지금도 유명한 ‘헬조선’과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계급론’이 등장했던 때라면 더 쉽게 이해될 수도 있겠다. 청년 문제를 고민하는 연구자 그룹과 활동가 그룹이 생겨났고, 정치인과 행정관료에 의해 제도적 변화가 야기됐다. 물론 사정이 나아진 건 아니지만, 청년이 일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러 지자체와 활동 조직의 사회실험이 이뤄졌다.1) 이에 반해 노인의 가난에 대한 논의는 생각보다 더뎠다. 정치인과 행정관료들이 나섰고, 사회적경제를 중심으로 한 노인의 일자리 사업 실험과 사회복지제도를 중심으로 한 연구자 그룹이 등장했지만, ‘노인일자리’사업과 ‘기초연금’과 같은 재정사업을 실행하기 바쁜 상황이었다. 게다가 “경제활동인구(노동가능인구, 생산가능인구)에 비해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 부담이 늘어난다”라는 경고는 반복됐다. 내게 이 경고들은 가난한 노인들의 생활에 대한 고려보다 국가의 재정에 대한 고려로 여겨졌고, 또 경제활동인구라 여겨진 청년(주로 남성)과 비경제활동인구인 노인(과 어린이와 여성)을 대립시키는 구도로 읽혔다. 이 대립적 구도는 갈등만 낳는 소모적인 대립으로 생각된다. 모든 세대마다 발생하고 있는 부의 편중을 어떻게 완화할지, 가난을 해소할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나는 현재를 기록하며, 변화를 꾀할 지점을 구획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토대로 하는 사회학을 고민했고, 노인이 사회서 소거되어야 할 잉여적 존재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난한 할머니들을 만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노인의 빈곤율에 관한 통계를 살펴봤다.2)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은 2016년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3) 2020년인 지금, 65세 이상 인구가 812만 명, 즉, 전체 인구가 15.7%를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은 『고령자통계』에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때가 2025년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를 두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까닭이란 청년세대와 중장년세대를 포함한 노동가능한 인구가 생산한 재화가 줄어들고, 아동과 노인으로 구성된 비노동 인구를 부양하는 재화가 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위험을 제기하는 건 ‘노인’의 처지를 고려해서 나온 말은 아니다. 왜냐면,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구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노인의 현 처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다른 질문을 살펴야 했다. 불평등(inequality)과 관련한 통계치를 비교하며 노인의 처지를 살폈다. GDP와 상대적 빈곤율의 통계치를 비교하면 한국사회가 ‘노인들이 극단적으로 가난한 선진국’이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한국은 전체 인구에서 가난한 노인의 비율이 2018년 43.4%로 세계서 가장 높은 나라다. 고령화에 대한 문제를 한국보다 일찍 겪은 일본만 하더라도 노인의 빈곤율은 2015년 기준 19.6%다. 일본보다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고4), 한국사회는 OECD 가입국가 가운데 명목 국내 총생산(명목 GDP)이 9위였지만, 65세 이상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고, 전체 인구의 빈곤율 역시 여섯 번째로 높은 국가였다. 선진국이지만 노인의 43%가 가난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5)
주목해야 할 논의가 있다. 가난한 가구 사이서 이뤄지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다. 1976년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애나 피어스(Diana Pearce)는 성인 빈곤층의 66%, 노인빈곤층의 70%, 그리고 빈곤가구의 50% 이상에서 여성이 가구주라는 점을 발견했고, 빈곤이 여성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서 ‘빈곤의 여성화’에 대한 논의는 IMF 경제위기부터 이뤄졌다. 당시 여성노동자의 강압적인 퇴출과 결혼해체로 인한 여성가구주의 증가에 따라 가난한 여성이 늘어나자, 한국사회 역시 빈곤이 여성화되었다는 논의가 이뤄졌다(석재은, 2003, 174쪽). ‘빈곤의 여성화’라는 논의는 남성의 소득활동과 여성의 가족 내 보호노동이라는 성별 역할 분담이 뚜렷한 사회에서 남성의 역할이 사라지거나 여성에게 전가될 때, 여성이 처하는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으로 의미가 확장되기도 했다.6) 이런 논의를 살펴볼 때, 현재의 할머니들은 최초로 성별화된 ‘가난의 문제’를 겪는 여성이며, 노인이다.7) 그러므로 한국 사회는 ‘가난의 할머니화’를 겪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할머니들의 경우, 남성에 비해 젊은 시절의 노동이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경우가 적다. 왜냐면 젊은 시절의 경력이 단절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들이 여전히 젊었던 1970년대, 결혼한 여성의 경우, 10명 중 4명이 일을 했지만, 저임금단순 노동력으로 활용될 뿐이었다. 내가 만났던 할머니들은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며 숙련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떤 이는 복덕방(부동산)을 운영했다가 옷가게를 차리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식당서 일을 하다가 방문판매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숙련된 기술보다는 지인의 소개로 ‘빈자리’에 들어가는 방식이 많아서 ‘이직’의 경험이 많았고, 정년이 보장된 일을 하기 어려웠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면,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취업을 하는 건 건강해야 가능했고, 워낙 취업가능한 곳이 적어, 2019년엔 10명의 여성 노인 중 2명 정도만 (비정규직이 다수이며, 식당업이나 청소업에) 취업했다. 한국사회서 할머니들은 젊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단순노동자’에 불과했고, 그 기회 역시 아주 작았다. 이런 상황은 할머니들이 가난한 탓에 생겨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사회가 여성의 취업을 제한했던 결과로 보아야 한다.8)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애초에 ‘노동’이 아니었다는 걸 고려할 때, 여성 노인들이 가난에 처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그저 기구한 삶의 주인공이거나 잘못된 선택 혹은 게으른 삶 때문일까? 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가난에 벗어나지 못하거나 머물게 된 건 아닐까? 사람들 대개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경기 활성화와 주택 분양으로 인해 중산층이 될 기회가 있었다. 이런 기회를 잡은 이들 가운데서도 어떤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다시 가난해진 이들도 있었다. 첫 번째 선택은 1997년 IMF 경제위기와 같은 극도로 불안정한 사회에서 (전통적인 사유처럼) 가족이 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경우다. (은퇴나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작은 규모의 사업을 하려 해도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즉, 국가와 사회가 국민을 보호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가족의 부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했다. 이 시도가 성공한 경우야 문제가 없겠지만, 실패한다면 가족 전체가 그 빚을 짊어져야 했다. 불안정한 사회서 가족이 가족을 보호한다는 판단은 (어쩔 수 없었고) 합리적이었지만, 그 결과는 모두의 ‘가난’일 수도 있었다. 두 번째로 산업의 노화로 인한 가난이 있다. 내가 만난 노인들 역시 자신 혹은 가족 명의의 가게를 가진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집에서 부업으로 봉제업을 하다가 작은 봉제 공장을 차린 이가 있었고,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한 후에 슈퍼를 차린 이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가게’는 2000년대에 접어들며 낡은 산업이 되어버렸다. 어떤 노인들은 자신이 일군 가게를 유지하는 선택을 했다가 가난해졌다.
가난한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까? 앞서 봤던 통계를 떠올린다면 한국사회는 복지국가를 자처하면서 노인들, 특히 할머니들의 열악한 상황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사회복지정책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빠진 걸까? 우선 그녀들은 ‘연금’을 받지 않는지부터 살펴보자. 그들이 젊었던 시절, 그들의 노후는 자녀가 책임진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렇기에 현재 70대의 노인 가운데 ‘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이 상당하다.9) 게다가 여성의 경우는 ‘소득’을 올리기보다 무급인 가사에 집중했다. 이처럼 강력한 성 역할의 구분은 여성이 소득을 갖기 어렵게 했고, 이로 인해 독자적으로 연금에 가입하기도 어려웠다.10) 연금을 받지 않는 이유를 살폈으니, ‘연금’을 받지 않는 노인들에게 다른 지원이 없는지 더 살펴보자. 만약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절대적으로 가난한 상황이라면 ‘기초수급자’가 되어 최저생계비를 받았지만, 소득 없이 ‘집’ 한 채를 갖고 있거나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면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다. 사회는 기초수급자는 아니지만 빈곤선 아래에 위치한 이들을 ‘차상위계층’이라고도 부르며, 사회복지제도가 접근하지 못 하는 ‘사각지대’라고도 불린다. 이들이받을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는 1인당 30만 원 내외의 기초연금 정도뿐이다.11)
이런 상황은 할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게끔 만든다. 그나마 노동을 할 수 있는 건강을 지녔다면, 지인이 구해 온 자리에 취업할 수도 있을 테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는 2019년을 기준으로 10명 중 2명 정도나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가난에 처한 할머니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질이 낮은 노동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서 할머니들은 각기 다 다른 삶을 살았고, 매번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가난한 할머니들은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일에 수렴되었다.12) 이 일로 할머니들은 일시적인 금전을 취할 뿐이다. 그러므로 할머니들은 다시금 별일 없기를 바라며 ‘끝나지 않는 노오력’을 계속해야 한다. 문제는 누구도 할머니들을 보호하지 않는 데 있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혐오범죄에 휘말려도, 재활용품 업체가 마구 값을 떨어트려도 말이다. 게다가 노인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일 자체가 가하는 육체적인 고통과 위험을 누구도 고려하지 않는다. 국가는 할머니들에게 ‘야광조끼’와 가벼운 ‘리어카’를 나눠주며, 스스로 잘 피하길 바라준다. 이 ‘안전용구’의 배급을 두고 국가가 적절한 ‘보호’를 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이 위험을 그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불운’으로 치부하게 만들고 있다. 정리하자면, ‘가난의 할머니화’란 가난은 무분별한 상속과 개인이 게을러서 생겨난 당위가 아니라, 사회복지라는 안전망이 기능하지 않고, 성별화된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여기에 보호받지 못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며 돌봄노동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는 현실의 가난한 사람들(특히 노인들)을 보호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아무도 대변하는 이가 없는 노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특히, 낮은 취업률과 계층과 젠더에 따라 차별이 난무한 사회를 사는 청년들의 관심 역시 필요하다. (많은 이들의 걱정과 달리, 나는 지금의 청년이 노인이 되어 재활용품을 주울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노인 세대를 둘러싼 제도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도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인들이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모두가 나서 궁리해야 한다. 이는 노인들에게 ‘노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과는 별개다.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지속하는 일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의 쓸모를 찾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인들이 자신의 ‘쓸모를 찾는’ 일을 만드는 일은 생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을 없애야 가능하다. 즉, 사회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며, 사각지대를 줄일 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참고문헌
석재은(2004), 「한국의 빈곤의 여성화에 대한 실증분석」, 『한국사회복지학』56(2), 167-194쪽.
<각주>
1) 청년의 실업률은 2016년 9.8%에서 2019년 8.9%로 낮아졌다. 그렇지만 이 수치가 유의미한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노동가능인구 전체의 실업률이 3.7%(2016년)-3.8%(2019년)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청년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가 작동을 멈춘 2021년 3월 10%로 다시 청년의 실업률이 상승하고 있다.
2) OECD에서는 빈곤율을 상대적 빈곤율로 측정하길 요구하며, 한국 역시 이 방식을 따라 통계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상대적 빈곤율은 한국 사회의 전체 인구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자면, 매해 모든 인구가 벌어들인 돈에서 연금과 세금과 보험료 등을 제한 돈을 기준으로 정중앙의 값을 계산하고, 이 값에서 아래로 50%에 해당하는 값을 빈곤선이라 정한다. 이 빈곤선에 아래에 있는 이들의 비중을 두고 우리는 ‘상대적 빈곤율’이라 부른다.
3) 국제적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4) 한국이 절대적으로 심각한 상황인데, 일본의 사례와 대안을 수입하자는 연구들을 보면 의아한 마음이 든다. 한국의 사정을 알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외국의 사정을 기초로 한 개념과 이론으로부터 답을 구하려는 시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살피고, 그 후에 그 이유와 대안을 고려하는 작업이 아닐까?
5) 이를 76세 이상의 노인으로만 한정하면, 55.6%가 가난한 상태에 처해 있다.
6) 보건복지부의 「노인학대현황」을 살펴보면, 신체적·정서적·성적·경제적 학대나 방임·자기방임·유기 등을 겪은 할머니는 남성노인에 비해 약 2.3배 많았다.
7) 그렇지만 가난은 ‘할머니’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 역시 ‘할머니’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할아버지’의 빈곤으로 야기되는 위험은 할머니에 비해 통계적으로 낮을 뿐이니 실질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8) 이 문제는 다른 세대에서도 반복된다. 게다가 여성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저학력인 노동자 역시도 이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9) 연금의 문제는 현재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3개월 미만 근무하는 ‘월 60시간 이하’ 또는 ‘주 15시간 이하’ 노동자, 혹은 시간제근로자, (저소득) 자영업자, 대학(원)생 등에게서도 반복되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10) 2019년, 통계청의 「사회조사」에서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남성의 61%는 노후를 준비했다고 응답했고, 여성은 39%만이 노후를 준비했다고 응답했다. 게다가 공적연금을 수급하는 데서도 성별의 차이가 도드라진다. 남성의 71%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을 받고 있지만, 여성은 36%만이 공적연금을 받고 있었다.
11) (선착순 신청을 통해) 월 30시간 동안 일하고 27만 원을 받는 ‘노인일자리사업’이 있다. 다만 11개월에 불과하며, 매해 새롭게 신청해야 한다. 신청자가 모두 사업 참여자로 선정되는 건 아니며, 경쟁을 거쳐 일부만 선정된다. 그리고 일 대개가 신체 활력도가 높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12) 편견과 달리, 각 지자체에서 실시한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쉬엄쉬엄 놀며 소일거리로 이 일을 하는 사람이나 건물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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