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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가78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6. 1. 17:55
박연지 부편집장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를 척도로 사람의 계급이 나뉜다. 자본주의 사회의 천박함은 계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곤궁한 처지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데까지 이르렀다. 타인의 빈곤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삼아 불로소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빈곤 비즈니스’다. 이 산업은 빈곤층이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고착화하고ⅰ,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말살되는가를 낱낱이 보여준다.
쪽방촌 사람들
2017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쪽방을 ‘일정한 보증금 없이 월세 또는 일세를 지불하며 0.5~2평(1.65~6.61㎡) 내외의 면적으로 취사실‧세면실‧화장실 등이 적절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주거공간’이라고 정의했다.ⅱ 쪽방촌은 쪽방이 다수 모여 있는 곳으로 주로 대도시 역사 주변에 형성된다.ⅲ
서울시에는 총 5곳의 주요 쪽방촌이 돈의동, 창신동, 남대문, 서울역, 영등포에 있다.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8월 기준 해당 5곳의 쪽방촌 거주자는 총 3,317명이다.ⅳ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사에서 누락된 쪽방 수를 포함하면 훨씬 많은 이가 쪽방에 거주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ⅴ
쪽방촌에는 노동하기 힘든 이가 대부분이다. 서울시 내 쪽방촌 거주자의 53%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65세 이상 홀몸노인의 비율은 33%이다.ⅵ 『2018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쪽방촌 주민 중 ‘장애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018년 기준 29.7%이다.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서 노숙만을 겨우 면한 주거 빈민이 바로 쪽방촌 사람들이다.
쪽방촌의 ‘빈곤 비즈니스’
쪽방촌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다.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애써 밀어 올리지만, 바위는 곧 높은 월세와 함께 아래로 굴러내린다.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보증금으로 지불할 목돈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쪽방촌에 거주하며 목돈을 모으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2018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자의 월평균 소득 수준은 71만 5,000원이지만, 쪽방의 평균 월세는 22만 8,188원이다. 이를 평당 평균 월세로 계산하면 18만 2,550원이다.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당 평균 월세는 3만 9,400원으로, 쪽방촌 평당 평균 월세의 1/4도 채 되지 않는다.ⅶ 월평균 소득보다 지출하는 주거비가 너무나 크기에 쪽방촌에 살면서 목돈을 모아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터무니없이 높은 월세에도 쪽방의 집수리가 제때 이루어지는 곳은 거의 없다. 쪽방에 사는 사람들은 ‘최저주거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부조리함이 존재하는 까닭은 쪽방촌 사람들의 빈곤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곤궁한 처지의 쪽방촌 사람들을 착취하며 임대업으로 폭리를 취한다. 쪽방의 실소유주가 쪽방 건물에 실제로 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보통 쪽방 관리인을 두고 월세 중 일부를 나누거나 무료로 쪽방에 거주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식으로 관리를 맡긴다. 관리인은 혜택의 대가로 세입자의 전 입출과 월세수납을 관리한다.ⅷ 쪽방촌 안에서도 촘촘한 착취 구조에 따라 빈곤의 계급이 나뉘는 것이다.
쪽방 사업은 확실한 돈벌이가 된다. 여인숙과 고시원으로 영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쪽방은 무허가 숙박업이다. 대부분 부동산 계약서와 보증금 없이 관리인과 세입자 간에 구두로 계약이 이뤄진다. 월세를 현금으로 받으며 카드 결제나 현금 공제가 되지 않아 대다수의 쪽방 실소유주는 탈세를 하며 추가 수익을 챙긴다.ⅸ 그들은 투자 명목으로 건물을 사들이고는 집수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월세 이익만 얻는다.
국민의 권리를 갖지 못하는 쪽방촌 사람들
헌법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주거기본법 제2조(주거권) 국민은 관계 법령 및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은 어떤 모습일까? 주거기본법의 ‘최저주거기준’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최소한의 충분조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1인 가구 기준 14㎡(약 4.24평)의 면적, 부엌, 전용 화장실과 목욕 시설 포함.’ⅹ 그러나 쪽방촌 사람들은 헌법과 주거기본법이 규정하는 ‘국민’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나라는 직무를 유기하며 쪽방촌 사람들을 ‘국민’의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쪽방촌의 주거환경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엔 너무나 처참하고 위험하다. 쪽방은 부엌, 전용 화장실과 목욕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쪽방촌 사람들은 부엌, 화장실, 목욕 시설 등을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경우ⅺ가 많고 공동 샤워 시설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며, 잠금장치도 없는 경우가 있다.ⅻ 심지어 철거 대상인 재난위험시설이 쪽방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ⅹⅲ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며 화재에도 취약한 환경이다. 비주택의 열악한 환경은 주거권 침해뿐만 아니라 건강권과 생명권의 침해로도 이어진다.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과 생명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실질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테두리 안에 있는 존재만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정상 가족’, ‘정상 연애’, ‘정상 주거’ 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존재는 무수한 일상적‧제도적 차별을 받는다. 쪽방은 ‘정상 주거’라는 사회적 규범 밖의 주거 형태이다. 쪽방은 집이 아닌 비(非)주택으로 분류되며 법적으로 명확하게 개념 정의가 되어있지 않다. ⅹⅳ 따라서 쪽방은 각종 법의 울타리 밖에 놓여있다. 허가받은 숙박업도 아니고 임대업도 아니기에 ‘공중위생관리법’이나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ⅹⅴ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쪽방촌 거주자를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인 노숙인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ⅹⅵ 쪽방촌 거주자는 국가의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한 사람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러나 쪽방이라는 거처의 정의가 불명확하기에 쪽방촌 거주자는 주거복지 정책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ⅹⅶ 2018년 기준, 보건복지부는 쪽방을 전국 10개소의 쪽방상담소가 운영하고 관리하는 곳으로만 국한하여 쪽방 주민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ⅹⅷ 쪽방상담소의 시야 밖의 쪽방은 복지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는 서울 쪽방밀집지역 주거복지지원정책의 일환으로 ‘저렴쪽방 사업’을 시행하였다. 저렴쪽방 임대지원 사업은 쪽방촌의 지속적인 월세 인상으로 인해 주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2013년에 시작되었다. 이 사업은 기존 쪽방 건물을 지역상담소가 임차해 열악한 주거 환경을 리모델링한 후,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에서 세입자에게 쪽방을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ⅹⅸ 2017년을 기준으로 서울시는 총 8개 건물에 178호의 물량을 확보해 저렴쪽방으로 운영했다.ⅹⅹ
하지만 서울시가 민간 소유의 건물을 약 5년의 계약 기간 동안 임차해 주민에게 재임대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저렴쪽방 사업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계약 기간 동안 서울시는 건물의 임대와 관리 및 보수에 관한 권한을 갖지만, 건물의 소유권은 여전히 민간에게 있다. 따라서 저렴쪽방은 공공재가 아닌 사유재이기에 서울시가 건물주의 의사에 반해 더 저렴한 월세를 제공하거나, 노후한 건물의 대대적인 보수를 진행하기는 힘들다. 건물주가 서울시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건물의 용도 변경을 원한다면 저렴쪽방 사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저렴쪽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제대로 된 대비도 하지 못한 채 건물주의 의사에 따라 퇴거를 당한다.ⅹⅺ
국가의 법과 제도는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법과 제도는 쪽방을 ‘정상’의 테두리 밖으로 몰아내며, 국가의 보호는 쪽방촌 주민들의 삶을 비껴간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가
개인의 탐욕과 국가의 무능력함이 더해져 ‘빈곤 비즈니스’라는 악독한 산업이 존재하게끔 한다. ‘빈곤 비즈니스’는 대상이 되는 사람을 자본주의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 더불어 행하는 사람을 천박함의 바닥까지 내려가게 함으로써 그의 존엄성 역시 스스로 무너뜨린다.
누군가가 부의 첨탑을 쌓아 올리는 동안 그의 발걸음에 짓밟혀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타인을 짓밟아 가면서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은 과연 권리일까. 사람이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가. 타인의 빈곤을 수단으로 삼아 경제적 이익을 얻어낼 권리 이전에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주거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가는 개인이 행하는 빈곤 비즈니스를 더는 별다른 대책 없이 방관해서는 안 된다. 빈곤 비즈니스는 주거권과 생명권보다 재산권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주거 정책의 대전환 없이는 쪽방촌 주민들의 고통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ⅹⅻ
<참고 문헌>
ⅰ이혜미, 『착취도시, 서울』, 글항아리, 2020, 54쪽
ⅱ 이혜미, 『‘집 아닌 집’ 쪽방… 각종 법 테두리서도 한참 밀려나』, 2019.05.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232010390824>, 마지막 검색일: 2021년 4월 20일.
ⅲ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149쪽
ⅳ 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빨간소금, 2021, 30쪽
ⅴ 이혜미, 『‘집 아닌 집’ 쪽방… 각종 법 테두리서도 한참 밀려나』, 2019.05.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232010390824>, 마지막 검색일: 2021년 4월 20일.
ⅵ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9쪽
ⅶ 이혜미, 『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2019.05.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181641056941>, 마지막 검색일: 2021년 4월 20일.
ⅷ 이혜미, 『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2019.05.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181641056941>, 마지막 검색일: 2021년 4월 20일.
ⅸ 이혜미, 『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2019.05.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181641056941>, 마지막 검색일: 2021년 4월 20일.
ⅹ 이혜미, 『‘집 아닌 집’ 쪽방… 각종 법 테두리서도 한참 밀려나』, 2019.05.07.,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232010390824>, 마지막 검색일: 2021년 4월 20일.
ⅺ 서울연구원, 『도시빈곤층의 공동체 형성 고찰 -서울시 쪽방밀집지역 저렴쪽방 중심으로』, 2018, 9쪽
ⅻ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150쪽
ⅹⅲ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151쪽
ⅹⅳ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17쪽
ⅹⅴ 이혜미, 『착취도시, 서울』, 글항아리, 2020, 35쪽
ⅹⅵ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27쪽
ⅹⅶ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19쪽
ⅹⅷ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27쪽
ⅹⅸ 서울연구원, 『도시빈곤층의 공동체 형성 고찰 -서울시 쪽방밀집지역 저렴쪽방 중심으로』, 2018, 14쪽
ⅹⅹ 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빨간소금, 2021, 216쪽
ⅹⅺ 정택진, 『동자동 사람들』, 빨간소금, 2021, 219쪽
ⅹⅻ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주거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 방안 실태조사』, 2018,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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