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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문어, 오징어를 중심으로-
Max Beaver(김호영 사회학전공 05)
prologue
“수족관은 우리에 불과하지만
저 물고기들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우니까“ -「해저2만리」, 쥘베른
종로를 걷다가 수조 속 수면을 박차고 솟구쳐 오르려는 횟감용 오징어를 보게 되었다.
수조는 잠겨 있었으나 오징어는 날아오를 듯한 기세로 탈출을 시도한다.
오징어
당신이 진정한 문학도라면, 학생식당의 메뉴야말로 그럴 듯한 표현임을 순순히 인정할 것이다. 이를테면 “해물”은 오징어를 상징한다. 한국 최초의 자장면 집에 가서 삼선자장을 시켜먹어도 값비싼 삼선의 대부분을 오징어가 대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어쨌든 새롭게 학생들의 복지를 위하야 입점하신 업체의 “해물”이라는 것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난 여러 식재료”라는 예상은 곤란하다. 예를 들어 해물볶음밥을 받고 나서 당신의 미각을 자극할 단 한조각의 칵테일 새우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냉철한 지성인으로서 이러한 당황스러운 상황의 합리적인 이유를 추론해야만 하는 것이다.
단 돈 2500원, 기숙사생은 2000원(환불 불가능하고 의무적으로 사야하는 160끼, 32만원 분량의)만 내고 해물의 의미를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대학생일 것이다. 언뜻 도저히 예상하기 힘든 인간학 학점마저도 다 까닭이 있기에 교수님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진 것일 따름이다. 당신은 분명 졸았거나, 무신론을 들먹이며 예수인간사망설을 한마디라도 내뱉은 게 틀림없다. 기본적으로, 당신의 까다로운 미각을 상당 부분 당황시키는 학생식당의 그러한 상황도 당신의 저렴한 성의에 대한 합리적인 업체의 대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가격대에 훨씬 질이 좋다는 성의교정 학생식당 밥맛도 너무 부러워하지는 마시라. Distinct campus!라는 문구를 음미하시기를.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업체의 사업 영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병원식의 특징이란, 값싼 비용으로 환자들이 죽지 않을 만큼의 영양을 공급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기숙사 160끼 의무식의 특징이란, 값싼 비용으로 기숙사생들이 최소한 괴혈병에 걸리거나, 빈혈이 걸리지 않을 만큼의 영양을 공급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할 수 있겠다.
결국, 해물-오징어 해석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여러분이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는 아전인수격의 미각적 기대를 해서는 곤란하다. 지성인이라면 치열하게
2005년 2학기 문학개론 홍순이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 분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설탕물에 담군 것 같은 우동이 나오더라도 일본 어느 지방 고유의 풍미를 살린 정통 우동을 딱 2500원 아치만큼 흉내 냈다는 식으로 융통성 있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병원식의 특성을 떠올리며 적어도 MSG가 들어가지 않았으니 일단 뱃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어떻게든 소화는 되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소화가 다소 안 되는 학우들을 위하여 전략적으로 새로운 계단을 설계했음도 음미해보시라.
넙치
세계 경제는 날로 어려워지고, 물가는 오르고, 등록금은 원래 잘 오르고, 기숙사비도 조금 오르고, 학우들 간의 학점경쟁도 치열해진다.
어떤 놈팽이 학생이 금연을 못하는 고정 레퍼토리로서...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이 시점에 어떤 해양생물을 살펴보며 위안을 얻어 보자.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는 주한미군 군의관이 버린 포르말린에 대한 상상력이 묘사된다. 개울가의 올챙이 한 마리가 꼬물꼬물 헤엄치다
어느 인터넷 작가의 아이디어임을 밝힌다. 포르말린 때문에 변형되어 괴물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그러나, 이미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횟감을 공급하려는 시도 덕분에 이미 넙치는 포르말린과 친하게 되었다. 물론, 해당 법령이 제정되어 지금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포르말린을 쓰던 시기가 있었다. 좁은 시멘트 지상 수조에 빽빽하게 바닥을 기던 넙치들은 그 곳에서 서로 부딪혀서 상처가 나서 병이 옮는다는 등의 일을 막기 위하여 포르말린이 섞인 바닷물에 가끔 목욕재계 하곤 했다. 양식장에서 포르말린을 뿌리던 날에는 눈과 코를 자극하는 날카로운 냄새가 양식장 주변을 맴돌고는 했었다. 시체 부패를 방지하는 약품을 뿌려서 싱싱한 횟감을 얻는다는 것은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묘사한 그러한 괴물이 합리적으로 생산되던 때가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설마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키우는 양식장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약 10여년 전 일이니, 다만 수입산은 또 모르는 일이다.
다랑어를 예찬하던 이어령씨가 그에 대비하는 것으로 지적한 것이 가자미이다. 가자미와 넙치는 어종이 다르지만, 바닥을 기며 주위 환경에 색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는 거의 비슷한 종일 것이다. 다랑어야 대왕오징어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그래도 바닥을 기며 겨우겨우 주위 눈치 보며 색이나 바꾸며 살아가는 넙치보다야 훨씬 바람직한 해산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넙치 또한 열심히 살아가도 잡히면 자연산, 이미 잡혀서 키워진 것은 양식이라는 이름이 붙여서 인간들의 혀를 즐겁게 할 뿐이다. 열심히 자라 2m에 육박하게 되는 일생을 살더라도 사람들의 갈고리에 찍혀서 기념사진의 재료가 될 뿐이다. 어떤 작가는 그를 비아냥거려 노벨문학상도 탔지 않는가. 물론 양질의 값비싼 사료에 만족하고 같은 수조안에서 다른 넙치들과 싸워서 생존할 자신이 있다면 훌륭한 양식 넙치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원래의 생이란 자연에서 스스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받은 것인데, 생존의 연장을 담보잡고 열심히 살아서 살을 찌워도 도대체 누굴 위해 살을 찌워야 하는 것인지는 퍽이나 슬픈 운명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신은 좁은 시야를 주시어 수조에 있는 다른 넙치만 보이게 하고, 왜 자신이 수조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뇌 용적과 더불어 넓은 시야는 주시지 않았으리라. 인간은 거기에 포르말린만 부었을 뿐.
문어
넙치보다 한 단계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문어이다. 넙치와 같이 주위 배경에 따라 자신의 색을 바꿀 수 있으나 넙치보다 훨씬 폭넓은 색감으로 험난한 바다생을 풀어나가고 있다. 일단 무조건 바닥에 숨어서 기회만 엿보는 넙치와는 달리, 문어는 고상한 형태의 영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동도 하는 편이다. 야행성으로 탐욕스럽게 8개의 다리로 먹이를 감싸거나 공격하며, 위험할 때 먹물을 쏘고 달아나거나 돌 틈 같은 굴 속에 숨는 습성 때문에 이미 디즈니에 섭외되어 인어공주를 괴롭힌 바가 있다. 또 007시리즈에서 치명적인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여주인공과, 문어를 동일시하기도 하였으며 서양에서는 devil fish라고 하여 먹기를 꺼리는
현산어보를 찾아서 , 이태원, 청어람 미디어 일도 발생하였다. 그야말로 자신의 이미지를 잘 관리하여 인간들의 손아귀로부터 자유를 얻은 바람직한 케이스라 하겠다. 무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다는 칭송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넙치보다 훨씬 사악하고 더욱 위협적인 이 생물도 그들 자신의 습성을 이용한 인간들의 플라스틱 단지 같은 도구로 생을 마감한다. 대형할인점의 수산코너에 예쁘게 조각내어 정렬된 빨판을 드러내고 가격이 매겨져 있는 그들을 볼 때는 애처롭기 그지없는데, 그보다 더욱더 불쌍한 것은 더운 여름날에 빨간 고무대야 민물에 새하얗게 질려서는 생을 마감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때이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 생물을 기념코자 파란 물감으로 색칠해서 홍보용으로 쓰는 은행도 있으니 해양생물에 대한 예우로서는 역사에 남을 일일 것이다. 특히 해양생물의 이미지메이킹 기법을 차용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점이다.
다시 오징어
슬프다. 쥘 베른이 그렇게 신비롭게 묘사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아직도 영상에 담지 못한 그 대왕오징어가 말이다. 어쩌면 대왕오징어의 치어가 운 나쁘게 그물에 걸려서 해물볶음밥에 올라왔는지도 모를 일이지. 아직 발견되지도 않은 대왕오징어와 비교하자면 이 오징어는 억울한 것이다. 본능대로 불빛을 찾아 수면에 왔다가 반짝이는 루어를 문 것뿐이다. 이어령 씨가 7막 7장의 서문에 시속 100km로 헤엄치며 파도를 가르는 푸른 지성의 아가미 다랑어를 운운했으나, 그 다랑어조차 원양어선에 떼로 잡혀서 신체 부분부분 횟감으로, 통조림 캔으로 만들어져 인간의 혀를 즐겁게 할 뿐이다. 따라서 해양계의 위대한 생물을 찾으라면 당연히 다랑어가 아니라 대왕오징어일 것이다. 지구 밖에 무언가를 자꾸만 쏘아대고 지구 전체의 온도를 올리는 이 호기심 넘치는 생물들조차 대왕오징어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한 대왕오징어의 치어 내지는, 친척들이 해물이라는 이름으로 식탁에 올려지게 된다는 것은 해양생물계의 비극이다.
혹, 학생식당이건 어느 곳에서든 오징어가 해물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면, 혹여 대왕오징어의 치어는 아닐까 생각하며 감사히 먹으면 행복한 삶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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