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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회 오롯한 상영회 참석 후기- 우리에게 씌여진 장벽에서 벗어나>75호/가대IN 2019. 11. 21. 00:12
사회학과 주은성
이번 학기 한 수업의 교수님은 “요즘 나이가 들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다”라고 하셨다. 장애와 관련 얘기를 하던 중이셨는데, 누구나 생애주기에 따라 신체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이 말이 참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어렸을 적 눈을 다쳐 한 눈은 보이지 않고 다른 한 쪽 눈도 시력 0.1정도기 때문이다.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곳에 붙어있는 ‘모자람 없이 온전하다’란 ‘오롯’의 의미는 크게 다가왔다. 당연히 상영회를 신청했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나는 보리’ 배리어 프리 영화와 마주하다.
상영회 첫 영화의 제목은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이다. 약 20분의 영화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자취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전화통화로만 이루어진다. 화면은 거의 바뀐다고 볼 수 없다. 배우도 무뚝뚝해 보이며 표정 변화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배우의 목소리, 말투, 단어 선택 등 ‘사운드’로 모든 내용이 진행된다. 하물며 공간 바깥의 개가 짖거나 아이들이 떠드는 것도 화면전환이 일어나지 않아 ‘사운드’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상영회의 취지.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라는 점에서 청각장애인은 자막 없이는 어떠한 정보도 알 수 없다. 이를 위해 자막은 언어자막과 소리를 내는 주체를 함께 제시한다. 마치 배우들의 대본을 보는 것처럼 세세하게 적혀있다.
두 번째 영화는 ‘나는 보리’이다. 약 2시간의 영화로 청각장애인 부모, 남동생을 가진 보리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보리가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소리를 제시하지 않는다. 수화를 통해 얘기하기 때문인데, 고요한 세상 속에서 좀 더 배우들의 행동과 표정에 초점을 둘 수 있었다. 오히려 말을 하는 부분이 어색할 정도로 고요함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또한 영화 내용에서 알 수 있었던 것처럼 장애는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불편이 실은 상대적인 것이며 청각장애를 장애로 보고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시선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영화를 본 후 관람객들과의 자막 관련 피드백 받는 시간을 진행했다. 그중 몇 가지 내용을 꼽자면, “글씨체가 통일 된게 아쉬웠다. 예를 들어 풍경소리, 외부적인 소리는 다르게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젊은 선생님' 오타가 아쉬웠다”, “음악에 대해 조금 더 디테일하게 묘사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서 같은 음악인데 템포가 빨라지면서 경쾌해지는 건데 '경쾌한 음악'이라고 자막이 나오고 있어서 음악이 바뀌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와 같이 조금 더 디테일하게 자막을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수어로 소통할 때 단어 하나씩 나오는 것보다 문장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나는><배><가> 보다는 <나는 배 타러 가> 그런 식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며 단어 나열 보다는 문장 위주의 자막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다는 지적을 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우리 모두를 위한 배리어 프리?
이번 상영회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청각적 요소들을 자막을 통해 시각화했다. 현재 대다수의 영화산업은 비장애인 위주이다. 때문에 시각과 청각 모두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오롯’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 자막을 통해 장애인도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청각장애인 뿐 아니라 미래에는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불편감 없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 현재 영화산업은 비장애인 위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화는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보리’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소리가 나오지 않는 부분에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영화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성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딘가 존재하는 장애인들을 없는 것처럼 지워버리고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들도 있는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그들의 로맨스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시각장애인 킬러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궁금증을 갖게 하지 못하고 단단한 장벽 안에 우리들을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도 늙으면 노인이 된다면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을텐데, 그때도 영화를 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서 장애와 자신을 분리한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비가시화된 지점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궁금증을 통해 우리 사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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