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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거 기획5. 이민경 작가 외고75호/가족+주거 기획 2019. 11. 20. 20:02
<어머니의 나라>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마지막 모계사회, 중국 윈난성 모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이갈리아의 딸들>이 성역할이 뒤바뀐 세계를 픽션을 통해 그리고 있다면 <어머니의 나라>는 실존하는 사회라는 점에서 새로운 판타지를 자극한다. 결혼제도가 없으니 이혼과 불륜의 개념도 없고, 미혼모가 없으니 혼외자식의 개념도 없는 모쒀족 사회는, 우리에게 새로운 공동체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작가소개
이민경
『어머니의 나라』 번역가.
저서로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임금차별: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 『임신중지:유럽낙태여행(공저)』가 있다. 최근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을 출간했다.이민경
2015년부터 페미니즘 대중화의 물결이 한국 사회를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이래로, 결혼하지 않은 2030 여성이 자신의 생애기획을 앞두고 마주한 갈등이란 결혼하고 싶지는 않지만 혼자 살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지만 결혼제도에 편입되기 두렵고, 결혼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기에는 외로우리라는 흔한 딜레마는 내가 보기에 사실상 정말로 양립되는 욕망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진 딜레마에 가깝다.
‘좋아한다’의 반대가 ‘싫어한다’가 아니고 그저 ‘좋아하지 않는다’이듯이, 결혼의 반대는 혼자 살기가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다’가 차지하는 혼자 살고 싶지 않지만 결혼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심드렁할만큼 너무나 당연한 지대가 있다. 여자들끼리 살아. 사석에서 내게 위와 같은 고충을 털어 놓는 여성들에게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면 갈등하던 여성들은 항상 같은 표정을 짓는다. 흰색의 반대가 검정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와 같이 잠시 갸웃거리다가 이내 반색하는 얼굴.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지대는 여전히 신대륙으로 남아 있다.
여성은 일상적인 친밀감을 나눌 타인을 필요로 한다. 주거공간을 나누어 쓰고 노동을 분담할 파트너를 구한다. 경제적인 공동체를 꾸릴 일원을 찾는다. 섹슈얼리티를 교환할 연인을 원한다. 이 가운데 결혼이 실질적으로 해소해 주는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 동안 우리는 결혼이라는 관념에 너무 많은 것을 거는 도박을 했다. 어디엔가는 혼자 살아갈 때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해소하고 앞서 열거한 모든 욕구를 채워 줄 동반자가 존재하고 내가 찾은 상대는 그런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언제나 여성에게만 지워졌다. 결혼식 이후 스스로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2인분의 노력을 해냈던 여성들이 사실은 어떤 과중한 노동과 외로움과 박탈감을 경험했던가는 각자의 불행으로 돌려졌다. 꽝이 씌어 있는 복권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물결은 휴지가 된 복권더미의 규모와 양상과 실태를 구체적으로 살폈고 여성들이 결혼에 뛰어들 때 가지는 기대와는 달리 혼자 대신 결혼을 선택한 여성이 채워지기를 기대한 욕구가 막상은 하나도 채워지지 않음을 밝혀냈다. 게다가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결혼의 반대는 혼자가 아닌 결혼하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인생에서 내 마음을 알아줄 단 한 사람, 사실은 한 남성과 모든 것-성욕과 낭만과 친밀성과 유대감을 채운다는 신화는 여성을 결혼에 뛰어들게 하는 좋은 기제가 되어 왔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제법 잘 안다(이런 신화를 남성은 기다리지 않는다). 단 한 사람과 영원토록 사랑하는 신화를 여성이 믿으면 믿을수록 남성의 유동적인 섹슈얼리티를 유동적인 채 내버려두고 여성의 다양한 노동을 먹고 자라는 결혼제도는 튼튼하게 유지된다. 게다가 여성이 이 모든 욕구를 채우기 위해 관계 내에서 노력할수록 그 욕구가 채워지는 쪽은 남성이라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그러니 고충을 토로하는 모든 여성들의 얼굴에 밝은 느낌표를 띄웠던 이 간단한 신대륙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해야 한다. 이성애 규범성은 무너져야 한다. 여성은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여성을 향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오래도록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동반자적인 관계가 다양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한 명 아닌 여러 명에게서 구할 때 더 안전하고도 행복할 수 있다. 그 여러 명을 모두 여성에게서 구할 수도 있지만, 만일 남성과 섹슈얼리티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욕구는 여성과 나눌 수 있다. 섹슈얼리티라는 불안정한 욕망을 포기하거나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결속이란 더욱 쉽게 공고함을 유지한다. 결혼제도를 떠올렸을 때 상기되는 노동의 부당한 착취와 감정소모와 이해받지 못함이라는 문제는 여성들 사이에서는 현저히 덜 발생한다. 자신이 삶의 터전을 여성과 나눌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취약함과 불안함에 떠는 일이 줄어든다.
여성은 더 이상 희박한 한 명의 남성을 찾아 나서고 뛰어듦의 결과가 실패임을 홀로 확인하고 나머지 인생을 노동과 억제된 욕구로 보내는 무모한 생애기획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형벌처럼 어떤 욕구도 포기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성애 결혼에 뛰어드는 무모함에 비하자면 여성끼리 사는 일만큼 확실한 기획도 없다. 여성은 여태까지 사회화된 방식 덕택에 함께 살아가기에 최적의 자원이다. 자원화되기를 두려워하는 여성이 다른 여성과 살아가는 일은 여성을 자원화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안이다.
그러나 여자끼리 살라는 대답이 신대륙인 것처럼 이 구체적인 방안은 여전히 신기루에 가깝다. 확률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 확실함에도 자꾸만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여자끼리 살아가자고 의기투합하는 여자들에게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이에게 그런 사람이 제일 빨리 간다는 의미도 재미도 없는 대답만큼이나 빠르게 누군가 한 명이 너희를 배신하리라는 저주 어린 예상이 뒤따른다. 이 예상에는 아무런 재치도 영양가도 없지만(한 명이 배신하면 다른 한 명을 구하면 된다) 적어도 여성을 믿고 미래를 설계하려는 여성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틔운다. 그러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것이다: 여성은 미래를 함께 계획함에 있어 아직 여성을 불신한다.
통계상으로는 비혼을 다짐하는 인구도 실질적인 1인가구도 늘어나지만 외롭고 불안한 여성들은 도처에 만연한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이 간단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성은 결혼하지 않고도 혼자가 아닌 채 여성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정책도 제도도 다 좋지만 이 믿음을 불신으로 뒤집으려는 오셀로 게임에서 이기는 일이 가장 길고도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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