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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항해, 닻 내린 ‘가대 CORE’ - 인문(대)학은 살아났을까75호/가대IN 2019. 11. 20. 19:37
CORE 사업,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국가 주도 인문대학 육성프로젝트인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이하 CORE 사업*1)이 2019년 2월 말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CORE 사업은 2015년 교육부의 기본계획안 발표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교육부 국책사업에서 늘 소외되었던 인문대학을 위한 단군 이래 최초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문송합니다’라는 자조로 대표되는 인문학, 인문대학의 쇠퇴 속 정부가 ‘시대에 맞는 인문소양을 갖춘 창의인재’ 육성에 총합 5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대학 자율성 침해라는 ‘논란’, 그리고 인문학을 산업 수요에 맞추려는 실용학문화라는 ‘우려’ 역시 맞물렸다.
치열한 경합 끝 총 19개 대학이 ‘인문기반융합모델’, ‘글로벌지역학모델’, ‘기초학문심화모델’, ‘대학자체모델’등을 내세워 CORE 사업을 수주했다. 이들은 새로운 융합전공을 신설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2018년 3월, 교육부는 <대학혁신 지원사업*2>을 발표하며 CORE 사업의 종료를 공식화했다. 기존 시행되던 대학지원사업의 기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유탄은 진행되던 CORE 사업에 떨어졌다. CORE 사업 출범 당시 교육부는 CORE 사업 재정지원이 3년이며 선정 조건으로 향후 5년간 대학이 해당 사업을 자체적으로 유지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CORE 사업 자체가 사라지며 기존에 진행되던 사업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향후 대학평가에서 CORE 사업의 지속성을 반영하겠다고 했으나, 강제성을 잃은 탓에 각 대학의 의지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실제로 일부 대학에서는 CORE 사업단 홈페이지마저 사라져 있었다.
가대코어 (2016. 6. 20*3~ 2019. 2. 28)
국내 여러 대학들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출항한 ‘가대코어 호’의 항해 역시 3년차를 끝으로 닻을 내렸다. 가톨릭대는 철학과를 제외한 인문대학 7개 전공*4(국어국문학, 국사학, 종교학, 중국언어문화학, 일어일본문화학, 프랑스어문화학, 영미언어문화학)교수진 주도로 ‘인문기반융합모델, 대학자체모델’을 기초로 한 사업기획안을 제시해 CORE 사업을 따냈다.
가톨릭대의 CORE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이창봉 영미언어문화학부 교수(CORE 사업단장)는 <성심>과의 인터뷰에서 본 사업으로 기존 인문대학의 스테레오타입을 바꾸는 게 목적이었음을 강조했다. “인문대학의 교수나 학생 모두 깊이는 있었을지 몰라도 남들이 보았을 때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할 넓이는 부족했습니다. 실용과 통섭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서, 인문학의 깊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고독에서 벗어나 실제 학문의 중심이 되는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에 인문학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쇠퇴한 것이지 인문학의 의의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업모델의 핵심인 글로벌인문경영 융복합전공, 글로컬문화스토리텔링 융복합전공, 빅데이터 인문경영전공이 신설되었다. 신설전공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글로벌인문경영 연구소, 글로컬문화스토리텔링 연구소도 연구를 시작했다. 이러한 학문적 기반 위 인문대학 7개 전공 및 신설전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기획되었다. '사제동행‘, ’해외탐방‘, ’청춘의서재‘, ’인문학 특강‘ 등은 학생들의 꾸준한 호응을 얻었다.
3년 간 야심차게 진행되었지만, <대학혁신구조사업>의 재편이라는 혼란 속, 2019년 2월 말을 끝으로 가톨릭대 역시 CORE 사업을 종료하게 되었다. 2019년 1학기 시작과 동시에 오픈한 ‘인문커뮤니티라운지’가 역설적으로 CORE 사업의 끝을 알렸다. 신설 융복합 전공 및 CORE 사업을 통해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은 가톨릭대 구성원의 과제로 남았다.
가대코어, 유산과 아쉬움
(1) 신설 코어 전공
CORE 사업은 끝났지만 결코 끝나지 않았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가톨릭대 CORE 사업단의 노력으로 3개 융합전공이 성공적으로 안착했기 때문이다. 이창봉 교수는 “향후 5년 간 의무 유지 조항과 상관없이 커리큘럼을 유지하고 발전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3년 동안 해당 전공에 등록한 학생들이 꾸준히 늘었고, 해당 전공을 선택한 학생이 수료하는 데 까지 문제가 없도록 커리큘럼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타 일반 전공에 비해 신설 융복합 전공의 학기당 개설 과목이 현저히 적은 만큼, 추가적인 교과목 수요에 대해 해당 전공과 소속 학생 간의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
(2) 온/오프라인 학습 인프라
또한 CORE 사업비로 학습 시설에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인문학 전용 강의실과 인문커뮤니티라운지가 신설되었으며 빅데이터인문경영 융복합 전공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최신사양 딥러닝 컴퓨터가 20대 이상 마련되었다. 투자는 보이는 시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가톨릭대 교양 인문학을 담당하는 학부대학과의 협업으로 인문학 교육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CORE 사업 첫 해, 사이버캠퍼스 강의실이 CORE 사업비로 구축되었다. 그곳에 가톨릭대 교수진의 인문학 관련 우수 강의들이 탑재되었다. 인문학 독서 교양을 위한 ‘쿡앤북’ 또한 CORE 사업의 디지털 아카이브 역할을 한다.
문제는 사업비로 구축한 CORE 사업의 학습 인프라들이 사업 종료와 동시에 잊히고 있다는 것이다. CORE 사업으로 구축된 강의실로 일반적인 수업 환경은 개선되었으나 CORE 사업 종료 이후 이곳에서 외부 인문학 특강은 자취를 감췄다. 온라인 인문학 강의 또한 그 존재를 아는 학생이 드물다. CORE 사업을 기점으로 마련된 우수 강의들의 ‘온라인 아카이브’인 만큼 더 많은 홍보가 필요하다. 예컨대 이수 시 수료증 발급 혹은 학점 대체 등 학교 차원의 학사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쿡앤북’ 역시 CORE 사업의 후원을 받았던 2018년에는 청춘의서재 독후대회와 연계되어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었으나, CORE 사업 종료 후 뚜렷한 활용 방안이 보이지 않고 있다. CORE 사업 종료와 동시에 글로벌인문경영 연구소, 글로컬스토리텔링 연구소도 활동을 종료했다.
(3) 인문커뮤니티라운지
가톨릭대 CORE 사업으로 만들어진 가장 인상적인 학습공간은 김수환관 입구 1,2층에 자리잡은 인문커뮤니티라운지다. 인문커뮤니티라운지는 CORE 사업 프로젝트 중 하나인 ‘사제동행 프로젝트’로 구축되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교수가 한 팀을 이루어 국내 여러 대학의 학습공간을 참고했고, 휴식 공간과 공용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공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학습 및 휴식공간으로 사랑받는 인문커뮤니티라운지에 ‘인문학’의 향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인문학 진흥을 위한 CORE 사업으로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공부 및 휴식을 취하는 카페 이상의 의의를 찾기 힘들다. 인문학 도서나 학습자료 비치 등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수환관 1층에서 ‘인문’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에 대한 <성심>의 지적에 이창봉 교수는 최소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CORE 사업 결과물을 보관하고, 열람할 수 있는 작은 아카이브 공간의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다만, CORE 사업의 주체가 이제는 사업단 밖으로 넘어간 만큼, 학생, 학교, 총학 등의 새로운 여론 수렴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톨릭대 인문대학, 여전히 위기
CORE 사업을 통해 가톨릭대 인문대학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다. 인문학을 ‘코어’로 삼아 여러 융복합 전공을 개발하며 인문학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여러 매력적인 프로젝트들은 인문대 재학생 이외 타 전공 재학생들의 시선도 끌었다. 구축한 온, 오프라인 인프라는 향후 가톨릭대의 지속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대 CORE 사업단의 노력만으로 인문대학이 기존의 위기를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CORE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2018년 초, 종교학과가 갑작스럽게 ‘신입생 모집 중단’이라는 사실상의 폐과 수순에 들어갔다. 프랑스어문화학과 역시 학교 당국이 신임 교수채용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고사 작전을 시작했다.
특히 가톨릭대 CORE 사업단은 인문기반 융합전공 활성화를 위해 이를 총괄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칭 융합대학)을 건의했지만, 학교의 호응은 없었다고 한다. 3년 간 가톨릭대 인문대학이 CORE 사업을 필두로 적극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소위 비인기학과’ 정리 및 인문대학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의 묵살이었다. CORE 사업을 통해 만든 인프라 활성 방향은 사라졌고, 기존 인문대학의 연속성마저 잃어가고 있다.
국책사업을 대하는 자세
CORE 사업은 분명 낯설었다. 국책사업을 계기로 ‘고독 속에 파묻히던’ 인문학에 융합의 개념을 입힌 교수진에게도, 변화하는 시대상황에서 인문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학생들에게도 쉽지 않은 3년이었다. 결국 해마다 사업비가 남고 말았다는 사실은 CORE 사업이 결국 학생들에게 온전히 녹아들기에 시간적, 컨텐츠적으로 충분치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CORE 사업 지속에 대한 논의 대신 이어지는 인문대학 홀대는 학교 역시 CORE 사업을 인문대학 전체의 발전 계획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음을 뜻한다.
재정적으로 교육부에 종속된 오늘날의 대학은 CORE 사업을 비롯한 국책사업을 피해갈 수 없다. 현재 가톨릭대에도 <LINC+>, <4차산업혁명선도대학사업> 등 다양한 국책사업이 진행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이 애정을 갖고 참여할 수 있으며, 그 사업이 ‘유효기간’을 넘어 지속적인 대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 학내 구성원 간 더 많은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민주적 소통이 필요하다‘는 가장 뻔한 이야기가 가톨릭대 CORE 사업의 마지막이자, 또 다른 사업을 기획할 가톨릭대의 첫 말이 되었다.
<각주>
*1 CORE는 Initiative for College of humanities' Research and Education의 약자이다.
*2 2018년 3월 교육부는 CORE, PRIME, CK 등 기존 재정지원사업들을 통합하여 ‘대학혁신지원사업’으로 재편했다.
*3 가톨릭대학교는 2016년 4월 1일 CORE 사업단이 출범하였으며 6월 20일 최종 선정되었다.
*4 철학과는 CORE 사업의 취지에 동의하지 않아 참여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 보도자료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 기본계획(2015.12)”, 교육부
“대학 자율성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학 재정지원사업 개편계획안(2018.03)”, 교육부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안(2019.01)”,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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