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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한 끼에 담긴 사랑과 희망 - 김하종 신부님과 안나의집 이야기75호/가대IN 2019. 11. 20. 19:30
권대옥 편집위원 (ok4u1445@naver.com)
Mr. 사랑나누기 김하종 신부님
2019년 2월 2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 가톨릭대학교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새내기 인성캠프가 열렸다. 동아리 및 초대가수 공연 전, 새내기들의 파릇파릇한 열정으로 가득한 체육관에 특별한 강연자가 찾아왔다. 바로 김하종 신부(오블라띠 수도회)였다. ‘파란 눈의 낯선 신부’가 유창한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자 화려한 공연을 먼저 기대하던 새내기들의 얼굴에서 당황스러운 표정이 보였다.
그러나 김하종 신부가 이탈리아 출신인 자신이 한국에 오개 된 사연, 봉사의 실천, 극복했던 난독증 이야기 등 진솔한 삶을 이야기하자 자리에 앉은 모두가 강연에 빠져들었다. ‘사랑’이라는 일관된 키워드로 봉사의 가치를 전하는 김하종 신부에게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김하종 신부와 가톨릭대학교의 인연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랑나누기 과목의 외부 강사로서 여러 번에 걸쳐 온/오프라인 강의로 봉사자의 자세에 대한 특강을 펼쳤다. 2015년 가톨릭대학교는 “소외된 이웃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사랑과 나눔을 실천해왔다”는 선정 이유로 김하종 신부에게 ‘이원길 인본주의 상*1’을 수여했다. 김하종 신부는 자신이 뇌사 시 장기와 각막을 질병관리본부에, 시신은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한국과의 인연,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는 1990년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경기도 성남지역에서 노숙자, 독거노인 등을 위한 급식소 ‘안나의집’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 급식봉사와 더불어 위기 청소년에게도 지속적인 상담과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본래 이탈리아 출신인 김하종 신부의 본명은 빈센초 보르도. 그는 김대건 신부의 성 ‘김’에 하느님의 종이라는 ‘하종’이라는 이름을 붙여 한국 이름을 만들었고, 귀화 절차까지 마쳤다.
그는 사제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이후 “선교사로써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 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꿈을 가졌다. 1987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빈부격차가 심했던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도시이자 달동네였던 성남에서 도시빈민 사목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이 되자 거리 곳곳에 노숙자가 생겼다. IMF의 여파로 실업자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김하종 신부는 이들을 위한 작은 무료급식소를 열었다. 지금의 안나의집이다. 여러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안나의집의 건물은 커졌지만 지금까지도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본래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성심>은 김하종 신부를 만나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나눔과 봉사의 의미는 무엇인지, 청년들은 봉사활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10월 5일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안나의집을 찾았다. 인터뷰와 함께 김하종 신부와 하루 동안 노숙자 식사지원 봉사활동을 함께하며 느낀 그대로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인터뷰
성심 : 김하종 신부님도 청년 시절 많은 봉사활동을 하셨는데, 안나의집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봉사하는 청년들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김하종 신부 : 요즘 청년들 많이 힘듭니다. 경쟁 많고, 봉사시간을 먼저 생각하는 것 알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봉사할 시간조차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다만 사회인이 되기 전, 봉사활동을 한다면 얻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사회’가 아름다워집니다. 그러한 경험은 어린 나이에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봉사하는 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봉사는 생활의 선물입니다.
성심 : 그렇다면 봉사자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기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김하종 신부 : 가톨릭 사제인 저로서 가톨릭 신자인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봉사활동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치유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종교를 떠나서 일반 모든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를 당부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감사하게도 자신만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을 나눠야 합니다. 또한 겸손해야 합니다. 타인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전제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면 불친절하고 얼굴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봉사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은 사랑한다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성심 : 봉사를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김하종 신부 : 여러 청년 봉사자들은 열정은 많지만, 낯선 환경에 쉽게 지칩니다. 그러나 언제나 먼저 환영하고, 타인의 말을 먼저 공감하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원래의 마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심 : 처음 한국에 오셨을 1990년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봉사를 하고 계신데, 봉사자이자 신부님으로서 바라보신 오늘날의 한국은 어떻습니까?
김하종 신부 : 완전히 다른 나라에요. 좋게는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우리’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경쟁이 너무 심해서, 타인을 밟고 올라가려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봉사자가 된다면 봉사자와 도움을 받는 사람 함께 다같이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안나의집에서
안나의집은 비좁은 골목 사이 언덕에 있었다. 아직 식사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건물 바로 옆 공원에서는 노숙자들이 서성였다. 이들의 한 끼 식사를 위한 급식소는 건물 지하에 있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는 신부님과 봉사자들의 자세 같았다. 문을 열자 급식소 내 조리시설 청소가 한창이었다. 김하종 신부와 열한 명의 봉사자들은 모두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끼며 조리시설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봉사자 할머니는 이런 ‘대청소’가 날마다 있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아빠를 따라서 왔다는 중학생 봉사자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며 식탁을 박박 닦았다. 이마저도 즐겁고 감사하다는 할머니는 벌써 봉사만 10년 차인 베테랑이다. 청소가 끝나자 김하종 신부는 식사 재료를 확인하고 짐을 옮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하종 신부와의 인터뷰 후 막간의 시간을 거쳐 저녁식사가 임박했다. 메뉴는 큼지막한 고기가 들어간 설렁탕. 옆에 있는 김치 반찬도 대단한 양이다. 김하종 신부는 “우리 급식소를 찾는 분들이 음식을 많이 드세요.”라고 이야기했다. 하루에 식사를 할 기회가 안나의집 단 한 번인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란다. 벌써 입구부터 기나긴 줄이 이어져있다.
김하종 신부는 봉사자들에게 부탁을 당부했다.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눈을 꼭 마주치면서 큰 소리로 인사하세요.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외쳐주세요.” 실제로 매 식사마다 특별한 의식이 행해진다. 식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필자도 동행했다. 식사하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줄근한 옷에 며칠 째 감지 않은 듯한 머리를 가진 분들이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많았다. 김하종 신부와 봉사자들은 개의치 않고 크게 미소지으며 이들과 눈을 마주쳤다. 사람 좋게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는 분들 절반, 눈을 피하는 한 경우가 절반이었다. 김하종 신부는 “우리가 대접하는 것은 밥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꼭 눈을 마주쳐야 해요.”라고 안나의집 만의 식전 의식을 설명했다.
약 5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무료급식소에 밀려들어왔다. 반찬인 김치는 끊임없이 동이 났다. 나는 식사를 하러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수저와 식사를 안내하고, 떨어진 김치를 채워 넣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수저와 식판을 홱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봉사하던 세례명 프란치스코 할아버지가 옆에서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 내가 8년 째 옆에서 지켜봤어. 친해지면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야. 다들 사정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오는 것이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채우고 다시 추운 밖으로 향한다. 김하종 신부와 봉사자들은 안나의집 지하 급식소에서 날마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밥을 준비한다. 편견어린 시선에서는 ‘눈칫밥’이기도 했다.
“저 때문에 노숙자가 동네에 몰려든다는 욕을 많이 먹기도 했어요.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노숙자들은 심리적, 사회적, 신체적, 경제적 문제가 있기에 노숙을 하는 거예요. 단순히 밥을 주는 것이 아니에요. 밥으로 이 사람들을 안나의집에 끌어들여서 다양한 자활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고, 다시 사회에 돌려보내야 해요. 저는 노숙자 문제 해결 못 합니다. 그러나 식사를 핑계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체니까 다 같이 도와야 해요.”
안나의집 봉사자들은 모두 미소를 띄고 있다. 빈손으로 왔기에 감사와 기쁨을 얻어간다. 밥 한 끼에 담긴 사랑을 담고 희망을 나눈다. 나 또한 나누면 커진다는 깨달음을 안나의집 봉사로 이해했다.
- 각주
*1 ‘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 상’은 평생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고 이원길 선생의 삶을 기리며, 그 정신을 우리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해 가톨릭대학교가 2013년에 제정해 매년 시상하는 상이다.
- 참고문헌
1. 꿈, 나눔, 아름다운 동행 - 안나의 집 20년의 기록, 안나의집,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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