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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라도 한 번 뜨거운 사람이었느냐72호/뫼비우스의 띠 2018. 6. 2. 14:08
덕후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라도 한 번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정민 편집위원 dajang77@catholic.ac.kr
혹시 좋아하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영화감상? 그림그리기? 그렇다면 혹시 ‘덕질’ 혹은 ‘덕후’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덕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 사실 당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관한 것들을 찾아 몰두한다면, 당신도 무언가를 덕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덕후 혹은 빠순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덕후들을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혹은 그들이 부딪히는 편견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는 왜 ‘덕후’들이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덕질이 뭔데?
우선 덕질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덕질은 덕후질의 줄임말로, 덕후는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어떤 분야에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성이 결여돼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입니다.1) 의미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분야에 몰두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죠.
이처럼 덕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취미의 심도 깊은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영화를 너무 좋아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영화관을 가고 영화를 외장하드에 꽉꽉 채울 정도면 영화덕질을 하고 있는 것이고,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정주행을 하면 드라마덕질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덕질은 그렇게 멀리, 어렵게 바라볼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고 주변사람들도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1)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험난한 덕질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덕질에 대한 부정적인 어감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요. 2016년에 고용노동부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직장인들이 월급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이였는데요. 그 이유로 커피, 택시, 덕질 등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게시글은 여러 비난을 받았지만 ‘덕질’이 단순히 돈을 낭비하는 행위로 본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또 종종 ‘내가 덕질하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한심하고 시간낭비하는 것처럼 본다’라는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직 우리사회에서 덕질은 ‘낭비’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로 인해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숨기려고 합니다. 그 예로 일코2), 덕밍아웃3) 등의 말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한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다닐까요?사진 국민일보
사람들은 특정 나이대가 되면,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런걸 해”, “나이값을 해야지” 등의 말로 동시대 사람들 속에 안정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각자 자라온 환경, 성격 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타인의 가치를 자신의 기준으로 옳고그름을 평가하려 합니다. 덕질의 경우 나이가 몇 살인데 아이돌을 좋아하냐, 그런 곳에 돈을 투자하냐 등의 말로 비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누구보다 한 대상을 열렬히 좋아하고 그로 인해 생긴 열정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텐데 말이죠.2)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어떤 연예인의 팬이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아닌척 하는 것
3)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말 ‘오타쿠’를 우리식으로 표현한 '오덕후'와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 공개하는 '커밍아웃'이 합쳐져 탄생한 신조어로, 자신의 오덕후 성향을 주위에 공개하는 것을 뜻하는 말페미니즘과 덕질
대표적인 덕질중에는 바로 ‘아이돌 덕질’이 있습니다. 이 아이돌 덕질문화는 사회가 그동안 나타냈던 성적소비문화를 뒤엎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대부분 아이돌 문화에서는 여성팬들이 주된 소비주체입니다. 아이돌콘서트 예매비율을 보면, 남자아이돌의 경우 여성예매율이 월등히 높고 여자아이돌은 몇몇 그룹을 제외하고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과거 사회에서는 여성이 성적 대상화의 ‘대상’이었지만 아이돌문화에서는 성적 대상화의 ‘주체’로 바뀐 것입니다.더군다나 아이돌 문화를 바꾸는 것은 페미니즘인식을 가진 팬들입니다. 2015~16년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노래에 여혐가사가 있다고 하여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팬들은 계속적으로 이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고 피드백을 요청했습니다. 소속사는 이를 인지하고 ‘사회에서서 여성의 역할이나 가치를 남성적인 관점에서 정의내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할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여성혐오가사 등 여러사건으로 페미니스트인 팬들이 늘자 이들을 연결하고 나누는 공간인 ‘페미바순허브’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페미니스트팬들이 모여 여성을 성적대상화로 보는 미디어를 비롯한 모든 문화를 팬, 그리고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더 자세히 세밀하게 관찰하고 비판함으로써 문화를 바꿔나간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덕후들은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를 소비하지만은 않습니다. 생산하면서 소비하는 생비자(prosumer)가 되는 것이죠.
페미니스트 팬들이 모인 트위터계정 ‘페미바순허브’ 그들은 모여 덕질문화내의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한다
사진 트위터 페미바순허브(@femi_basun)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이런 모습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4) 큰 인기를 끈 M.net <프로듀스 101>을 통해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즌1은 여자연습생, 시즌2는 남자연습생들이 나와 경쟁을 해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먼저 각 시즌의 대표곡을 살펴봅시다. 시즌1에서 여자 연습생들은 “Pick me Pick me”를 외치면서 자신을 뽑아달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시즌2 남자 연습생들은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나”를 외칩니다. 이렇게 상반된 가사는 이미 많은 비난을 받아낸 바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채널에서 반영되었던 <프로듀스 101>(시즌1)과 <소년 24>를 비교해 봅시다. <프로듀스 101>의 광고를 보면 ‘소녀’는 누군가에게 귀속되어 있는 존재(“당신의 소녀”)입니다.
이런 프로그램 안에서 여성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성적 대상화될 가능성이 큽니다.5) 또 <프로듀스 101>에서 이들의 운명은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컨셉입니다(“당신의 한 표가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하지만 <소년 24>는 정반대입니다. ‘소년’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소년들”)하고, 그래서 소년은 객체가 아닌 ‘주인공’(“주인공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입니다. 여성들이 주된 소비주체인 아이돌 문화이지만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남자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여성을 성상품화로만 보고 있습니다.4) [디지털싱글:페미아이돌] 2.여자아이돌, 야동이거나 상품이거나, 2016.08.17., 티스토리 블로그
‘월간여기’ (http://weolganyeogi.tistory.com/27?category=653376)5) 김민준, '남녀 모두 성적 대상화는 나쁘다' 이 말의 함정, 2016.08.06., 오마이뉴스
덕질은 세상을 바꾼다
과거에는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그저 한심한 곳에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강했습니다. 너 덕후야?라고 물어보는 것은 어느정도 상대방의의 덕질을 이해못하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덕질은 하나의 문화를 재창조해내고, 세 바꾸고 있습니다.
그동안 덕질의 개념이 사람들의 ‘소비’에만 국한되었다면 이제는 생산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덕후’들을 위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물론 덕질 문화는 기업의 성장동력입니다. 국내 배달 서비스 앱중 하나인 <배달의 민족>은 ‘배달의 민족을 짱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배짱이’라는 팬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올해 배짱이 3기 모집에는 무려 20만명이 온라인 응시 시험을 치뤘고 정식 지원은 3000명, 이 중 400명이 합격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그저 앱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앱을 홍보하고 기업은 그들의 홍보로 이익을 얻고 여려 혜택을 제공합니다. 소비자입장에서는 일석이조인 셈이죠. 또 최근 ‘BTS 예술혁명’,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또 Mnet에서는 <덕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덕질’은 사람들의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모두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 뿐일까요? 무엇보다 덕질은 개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덕, 일명 성공한 덕후는 덕후들의 꿈이자 로망입니다. 그 중에서도 본인이 덕후였던 분야를 직업으로 삼는 것은 성덕 중의 성덕입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취미를 넘어서 덕질이 되고, 이 덕질을 직업까지 삼으려면 남들과는 다른 열정과 끈기는 필수이겠지만요. 영화제작사 <마블스튜디오>의 사장인 케빈 파이기는 대표적인 성덕입니다. 그는 마블 코믹스 전권을 다 읽을 정도로 엄청난 마블 덕후였다고 합니다. 영화학과에 진학하고 일을 하던 중 영화제작자의 추천으로 마블대표와 만나 입사하게 됩니다. 캐릭터 판권을 팔 정도로 매우 어려웠던 시절 마블의 사장이 된 그는 기존에 없던 할리우드에 프랜차이즈 영화 제작방식을 만들었고 많은 덕후들의 심장을 자극하는 영화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이후로 마블은 전무후무한 성공을 얻었죠. 그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열정을 끊임없이 내비치고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렇듯 필자는 덕후들을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런 덕후들이 모이면 결국 어느 분야든 세상을 바꾸어나가지 않을까요?
덕질은 위대하다!
한 언론은 앞서 언급한 책들의 출판과 더불어 덕후를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기존 체제에 대항하고 이를 해체하며, 빠르게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합니다.6) 본인이 하는 덕질이 무엇이든, 당신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문화를 소비해나가고 바꾸어가는 주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소확행’, 즉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큰 행복보다는 작은 행복이 당장 현실에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죠. 어쩌면 덕질은 소확행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전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 혹은 드라마같은 영상을 보는 것 만큼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덕질과 함께 오늘도 힘차고 여러분들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기를 희망합니다.6) 철학, 아이돌에 입덕하다, 최현미, 문화일보, 201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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