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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결혼, 동거말고72호/뫼비우스의 띠 2018. 5. 31. 09:34
이성, 결혼, 동거말고
함하늘 수습위원
minle314@naver.com
공동체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목표나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할 때 그 조직’을 일컫는다. 단순한 결속보다는 더 질적으로 강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조직이다.
가족이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각각 공동체와 가족에 대한 사전적 정의라고 한다. 흔히 우리가 받아들이는 가장 기본단위의 공동체는 가족이며 그 기본 단위는 부부이다. 소위 말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는 것, 남편과 아내를 어우르는 말이 부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들의 사랑은 연애가 한계선이다. 그 한계가 주는 의미는 크다. 공식적인 결혼을 할 수 없으니 동거를 보통 사실혼의 의미로 생각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부부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애인의 보호자, 배우자로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이다. 가령 애인이 갑작스런 사고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 동성 애인은 보호자 동의 사인을 할 수 없다. 또 다른 예를 들어 가족들과 연을 끊고 30년 넘게 애인과 동거하다 사망했을 때도 애인의 유산은 30년을 함께 산 애인이 아닌 연 끊고 살아온 그 가족들에게 상속된다. 이처럼 법적인 효력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법적인 효력이 발휘 된다는 것은 국가가 그들의 공동체를 인정해준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체에서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성적 소수자들의 공동체는 어떻게 구성되며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다큐멘터리 <Paris Is Burning>, 영화 <메종 드 히미코>를 참고했다.
다큐멘터리 <Paris Is Burning>은 1990년 미국의 다큐멘터리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첫 멘트로 이런 말이 나온다. “아버지는 저에게 삼진 아웃이라고 하셨어요. ‘모든 흑인 남성은 흑인과 남성이기에 투 스트라이크인데 넌 게다가 게이니까 삼진아웃이다’ 라고 하셨죠.” 1980년대 뉴욕에 사는 흑인 게이와 크로스드레서, 트랜스 젠더, 드래그 퀸 등 다양한 성 소수자들의 삶을 담은 이 다큐에서는 ‘BALL’ 이라는 경연을 여는데, 이곳에서 그들이 하고 싶은 것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 흑인 게이들에게 볼은 “마법의 세계 같다. 이 세계에 오니 동성애자인 내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아. 자신이 되고 싶은게 있으면 되면 되는거야!” 라고 설명한다. 부치퀸, 대학생, 부자, 군인 등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볼에서 의상과 악세사리에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쏟아 붓고 간혹 물건을 훔치기까지도 한다.
이렇게 공을 들여서 여는 볼에 오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다. 돌아갈 집도, 가족도 없는 이들은 하우스에서 생활을 한다. 이들에게 하우스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성적 소수자 혐오로 인한 폭행, 살해 당할 위험 등 사회로부터 위협받는 그들을 유일하게 보호해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하우스의 마더는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을 한다. 이들에게 하우스와, 하우스의 마더는 보통의 가족, 보통의 엄마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Paris Is Burning>의 등장인물인 비너스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게이이다. 그러다 하우스의 마더에게 경찰들이 다가와 살해 당한 비너스의 사체 사진을 마더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화장하기 직전에야 수소문 끝에 하우스의 마더에게 온 것이다. 마더에게 비너스 그 하우스의 큰 딸이었지만, 하우스의 마더는 비너스와 법적으로는 아무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경찰의 연락을 바로 받을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의 공동체가 법적으로 인정받는 공동체였다면 비너스의 죽음을 일찍 알 수 있지 않았을까?
<Paris Is Burning>에는 성 소수자들이 그 나름대로의 공동체를 구성했다는 것은 보여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더 나은 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시작점을 마련해준 다큐멘터리이다. ‘떨어져있으면 항상 전화를 하고, 아무도 혼자 다니지 않고 같이 다닌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항상 사회로부터 생명을 위협 받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그들에게 법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는 공동체는 절실할 것이다.
<메종 드 히미코>는 2006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이다. 게이샤란 일본에서 요정이나 연회석에서 술을 따르고 전통적인 춤이나 노래로 술자리의 흥을 돋우는 직업을 가진 여성을 뜻한다. 이 영화에서는 사오리의 아버지가 어느 날 자신이 게이라고 고백을 하고 게이샤로 떠난다. 어머니와 둘이 남은 어린 사오리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가지며 큰다. 게다가 어머니가 40대가 되었을 때 갑자기 암에 걸려 돌아가신다. 사오리는 어머니의 수술값과 치료비로 인해 빚더미에 앉게 된다. 악착같이 돈을 버는 와중에 한 남자가 요양원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부탁한다. 돈을 벌기 위해 간 요양원은 그녀의 아버지가 게이들을 위해 만든 실버타운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살아왔지만 암이 걸린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얘기에 매주 한 번씩 그곳에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 안에는 각각의 다양한 게이들이 있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자유롭다. 그들이 하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거리를 두던 사오리는 점차 그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모습과 숨겨진 외로움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메종 드 히미코>속 요양원 사람들에게 요양원은 집이며 가족이며 그 자체이다. 그 안에서 가장 나답게 생활 할 수 있고, 나를 나로 받아주는 공간이다. 다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다 보니 한명 한명이 몸이 아플 때 마다 걱정을 하며 결국 병수발을 위해 아들에게 보낼 때도 요양원 안에서 했던 나 답던 차림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해서 보내는 모습에 슬퍼하던 요양원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메종 드 히미코>를 통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공동체에 속하기 힘든 모습을 성적 소수자에 빗대어 단편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우스나 메종 드 히미코 같은 각자 그들만이 속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과 또한 그들이 둘 다 성적 소수자라는 것, 그 공간들은 그들에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소중한 공간이라는 것들이 공통점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인정받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 또한 공통점이다.
2017년 남미 콜롬비아에서는 남성 동성애자 3명끼리의 사랑을 인정받았다. 물론 이 법적 인정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3명의 폴리아모리적 사랑이 결혼으로써 처음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이 세 명은 배우인 빅토르 우고 프라다, 스포츠 강사인 존 알렌하드로드리게스, 언론인인 마누엘 호세 베르무데스 인데 이들은 법적인 결혼을 통해 서로에 대해 상속권 등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고 프라다는 “우리가 견고한 법적 토대 위에 가정을 꾸리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입증하고 싶었다.”며 “법적으로 다른 형태의 가정이 존재함을 인정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결혼을 원하는 애인 사이로 이뤄진 형태이지만 법적으로 기존에는 없었던 다른 형태의 가정을 인정받은 것은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시작으로 결혼으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해 나가야 한다. 예를 들면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지만 여전히 미혼모 가족이나 동거 가족 등은 정상 가족으로 인식되지 않는 문제점 또한 예를 들 수 있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아직 입양, 혈연,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만 가족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입양을 제외하면 그 기본을 혼인으로 보고 있는데 미혼모 가족 등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우리 민법 제 779조 제 1항 제1호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미혼모의 경우 혼인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하나의 가족이 되기 어렵다. 동거 또한 법적 혼인이 이뤄지지 않아 가족으로 인식하지 않는 비율이 높다. 이에 변 부연구위원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 인식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이들을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만으로도 보호막이 될 수 있다”며 “동거의 경우 법적 가족 외에도 수술 동의서를 쓸 수 있게 해주는 방법 등을 통해 가족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얘기했다.
이처럼 법적인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사람들의 인식 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적소수자뿐만이 아니라 미혼모, 동거인 등 상대적으로 사회의 소수자인 공동체를 위한 남성과 여성이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 뿐 만 아니라 더 다양한 공동체들의 틀이 절실히 필요하다.
제 10회 여성인권영화제에 <사회학자와 곰돌이> 영화가 나왔다. 김순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의 영화 리뷰를 보자면 ‘이 영화에서는 결혼과 친족체계가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져왔는지에 대해 보여준다. 결혼을 둘러싼 가치는 시대마다 언제나 해체되었고 또 다른 의미로 재구성 되어 왔음을 공유한다. 이성애를 중심으로 한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의 경험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결혼. 현재 이성애자라며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결혼을 중심으로 한 가족 형태가 한때는 백인 부르주아 계급이나 재산 있는 사람만이 가능했던 시대가 있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듯 가치는 늘 변화한다. 우리가 완벽하다 생각했던 결혼제도와 가족제도는 사실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시대·문화·가치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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