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다72호/뫼비우스의 띠 2018. 5. 31. 12:43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다
사진 출처 Yes24
가족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가족은 어때야하며, 가족은 무엇일까? 우리 대부분은 크게는 한 나라에 소속되고 작게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 성장한다. 따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설명할 수 없는 애국심과 가족애가 개개인 안에 분명 조금이나마 내재되어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곧 나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가족은 각기 서로 다른 성향과 기질을 가진 개개인들이 모여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공간이다. 따라서 가족은 애증의 대상이며, 가정은 화목하기만 한 공간이 될 수 없다. 이렇듯 우리는 가족에게 상처받으면서 성장해나간다
가족이라는 족쇄
나라마다 ‘가족’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다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짊어져야 할 역할과 책임의 무게 또한 한 나라 안에서 그 시대의 경제, 사회, 문화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다. 이러한 전통적 가치가 지금의 가족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대가족을 형성하면서 생긴 가족 간의 수직적인 위계, 가부장제, 그리고 가정 내에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뚜렷한 역할 구분 등. 이런 보이지 않는 억압이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눈 먼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 심청이를 보고 효심이 깊다고 말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과연 이게 진정한 효도일까? 이렇듯 우리나라의 가족은 구성원에게 ‘희생’과 ‘역할’을 강조한다.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은 아버지, 집안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 자식이 효도하는 길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성장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우리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족의 ‘문제’는 금기다?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고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다. 우리도 누군가의 자식, 딸, 아들이 되어보는 것이 처음이다. 우리는 지금의 부모를 원해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나의 부모도 우리 같은 자식을 원해서 낳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 처음이기에 불안하고 어색하고 어렵다. 따라서 가족 내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를 고치지 못한 채 서로 잘 어우러지기만을 고집한다. 서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오랫동안 굳어져왔던 역할들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기만 한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문제가 심화돼서 가족끼리 해결할 수가 없다. 이때는 제 3자의 조언이 필요하다. 가족끼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자신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추구하는 입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족들은 가족 안의 문제를 바깥으로 발설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가족 내의 문제를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과연 내 이야기를 남이 잘 들어줄까? 또 내 이야기에 누가 공감할까? 우리 가족은 이런 문제가 있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사람의 가족은 너무 화목해서 우리 가족이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또는 그 사람이 우리 가족을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행동은 아닌지 등 도움을 원하지만 망설이다가 말 못하고 끙끙 앓는다. 가족 상담을 받으면 문제 있는 가정이라고 낙인 찍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렇게 병든 가족은 치료받지 못하고 계속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사진 출처 Yes24
나 자신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한국문화에서 가족관계는 각자의 자아 경계(ego boundary)가 모호하게 얽히고설킨 병리적인 구조라는 정신 건강 전문의들의 견해를 음미해보자. 한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인의 감정을 가족 전체를 위해 숨기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나와 다른 가족 구성원들 간의 경계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호해지며 그렇게 가족관계가 얽히고설켜 결국 개인의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만든다.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문화가 한 개인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1 소위 ‘기질이 다르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부모는 자기와 다른 기질을 가진 자녀를 보며 “어떻게 내 배에서 이런 애가 나왔을까”라는 말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자녀를 자꾸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고 하면 둘의 관계는 틀어지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해석’ 과 ‘거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해석과 거리다. 20살이 되면 느끼는 해방감은 음주와 흡연이 자유롭다는 것, 성인 영화를 심야에 볼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지긋지긋하게 남들과 경쟁하고 어른이 되어 이러한 일탈을 누릴 대로 누리고 나면 허무하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방황한다.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나의 ‘자아’에 대해 탐구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가족은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할 시간을 충분히 마련해주는 공간이 되어야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억압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거리’다. 여기서 거리란, 물리적인 거리 외에 심리적인 거리도 해당된다. 나와 타인, 그 타인이 가족 공동체 중 한 명이라도 우리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거리는 나로 하여금 타인에 관한 관찰을 할 수 있게 한다. 관찰을 하다보면 나와 다른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인다. 가족 내에서 거리는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혼자’라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히려 ‘같이’,‘함께’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혼자여도 괜찮은, 남들과 달라도 당당한, 함께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도록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거리를 두다보면 타인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객관적으로 타인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로, 또 같이하는 가족
건강한 가족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독립적, 주체적, 올바른 이해, 배려, 좋은 분화라는 단어를 새기며 살아가야 한다. 따로, 또 같이하는 가족의 예는 이렇다. 자식에게 이성 친구가 생겼을 때 억지로 이성친구와 자녀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던가, 용돈을 줄인다던가, 이성 친구에 대해 험담하는 것은 자녀를 구속시키는 일이다. 자녀를 하나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따로, 또 같이하는 가족의 형태는 자녀에게 이성 친구가 생겼을 때 이성 친구의 어떤 점이 좋은지, 무엇을 같이 했는지에 관심을 가지며 관계를 지지한다. 문제없는 가족은 없다. 가족 구성원은 서로가 모두 처음이며 맞닥뜨린 문제도 처음 겪는 일이다. 문제를 잘 해결해나가기 위해서 가족은 개개인을 인정하고 이해해야한다. 서로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일도 분명 중요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알고 상대방의 삶을 지지해주는 가족이 따로, 그러나 같이하는 건강한 가족의 형태다.
- 한국인의 관계 심리학, 권수영, 살림지식총서 [본문으로]
'72호 > 뫼비우스의 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마스카라는 토끼에 의해 만들어졌다 (0) 2018.06.02 덕후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라도 한 번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0) 2018.06.02 맛있는 비건 식샤를 합시다-오랜지 파티 (0) 2018.05.31 이성, 결혼, 동거말고 (0) 2018.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