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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내 상업시설, 무엇이 문제인가.51호/가대in 2010. 2. 18. 20:08
- 150주년 기념관 및 성심국제문화연수원 개관에 부쳐
편집위원 찬표
상업화, 이처럼 꾸밈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가 또 있을까. 상업화가 최신 과학 기술이나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과 함께 쓰이면 우리의 실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반면에 의료·방송·철도 등의 상업화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대학의 상업화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마다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학문의 요람이라는 대학 본연의 존재 의미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지 않을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의 풍경들이 학교 안으로
요즘 대학생들은 학내에 있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친 후 스타벅스 같은 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본다. 식상하기 짝이 없는 데이트 코스 같지만 이 모든 것을 학교 안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학의’ 편의시설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단지 거리마다 일률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권이 꼭 닮은 형태로 대학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얼마 후면 대학 안 대형 할인마트에서 장을 볼 수도 있다. 대학가가 상업화로 신음하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학 내 상업시설
고려대학교의 ‘타이거 플라자’는 2004년에 문을 연 지하 1층, 지상 4층의 편의시설 건물이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쉼터 공간으로 되어있는 4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편의점, 커피전문점, 레스토랑 등 외부 상업시설로 채워져 있다. 물론 타이거 플라자가 처음부터 아무 저항 없이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세워졌던 것은 아니다. 2004년 타이거 플라자 완공되었을 때 ‘타이거 플라자를 바꾸는 사람들(이하 타바사)’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공간 재배치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건물 내부의 쓰임새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재 타바사는 해체한 상태이고 학내 외부 상업시설에 대한 논쟁은 이내 사그라졌다.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오혜리(서양화․4) 씨는 “현재는 타이거 플라자 문제를 두고 학내에서 어떠한 논쟁도 벌어지지 않고 있으며 일단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
다.”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대학 내 상업시설 입주에 있어 비교적 최근 시점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곳이다. 2008년 완공된 ECC(Ewha Campus Center)는 연면적 2만여 평의 거대한 인공 계곡의 형태를 띤 지하캠퍼스로 역시 영화관, 커피점, 휘트니트 센터, 제과점, 꽃집, 편의점 등이 즐비하다. 필자가 찾아갔을 때는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 순서를 기다리면서 커피점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오히려 위층에 있는 열람실에는 사람이 적은 느낌이었다. 이 같은 ECC 상업화에 대한 『이화』지의 외침이 와 닿는다.
“학교 밖으로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가게들이 들어선 ECC는 ‘이화인이라면 누구나’의 공간이 아니라 이러한 물가를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특정한 이화인’들만의 공간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화』교지편집위원회, 「ECC, 그 너머를 바란다」, 『이화』, 75호.
필자가 외부 상업시설이 들어선 많은 대학교 중에 하필 고려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찾아간 이유가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작지만 건물 전체가 상업시설로만 채워진 타이거 플라자가 생기면서 대학 상업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화여자대학교는 ECC가 세워지면서 총학생회가 고공농성, 천막농성 등의 적극적인 투쟁을 벌였다. 언론의 지나친 조명 탓도 컸지만 두 학교 모두 대학 상업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학교이기 때문에 150주년 기념관 건립을 앞두고 가톨릭대학교가 나아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취재를 진행하면서 두 학교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외부 상업시설이 학내로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릴 때는 반대 여론이 반짝하다가 막상 건물이 완공된 후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편의시설들이 생기면 상업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잃는 공식이 반복됐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다. 학문 탐구의 공간인 대학이 자본과 기업의 논리로 물들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학교
현재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150주년 기념관 및 성심국제문화연수원(이하 150주년 기념관)’은 당초 올해 2월에 완공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사는 6월이 돼서야 끝날 것이고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개관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공사가 지연된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특히 새로운 기숙사를 손꼽아 기다리던 원거리 거주 학생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또한 올해 입학한 새내기들을 비롯한 모든 가톨릭대 학생들은 다시 한 학기 동안 공사 소음 속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교가 150주년 기념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건물 내 공간 배치에 대한 것이다. 완공이 코앞인데 학생들은 150주년 기념관 안에 정확히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 학교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이화여대는 ECC 건립 당시 정보공개와 의견 수렴에 소홀하다고 비난을 받았지만 완공 10여 개월 전에 내부 배치도를 공개하고 간담회와 공청회를 거쳐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톨릭대학교에서는 김기찬 기획처장이 학보와의 인터뷰에서 150주년 기념관에 대한 내용들은 4월에 확정된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또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준비 중이라고 대답한 부분가톨릭대학교 학보사, 「사회 속에 ‘삼투’하는 상아탑 될 것」, 『가톨릭대학보』, 제190호. 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4월에 150주년 기념관 내용이 확정된다는 것은 이미 어떤 내부 시설이 들어올지는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이고 입점 업체와 계약 조건 같은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떻게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서 이를 실제 행정에 반영한다는 말인가.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그저 구색 맞추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대목이다.
대학 내 상업시설에 반대하는 이유
덮어놓고 150주년 기념관에 들어설 외부 상업시설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에도 상업시설은 존재한다. 니콜스관과 도서관에 카페가 있고 기슨관에는 매점과 복사실이, 학생회관에는 잡화점과 서점, 구두병원, 안경점, 컴퓨터매장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외부 상업시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영업 중인 점포들은 소규모 자영업자들로 학교와의 계약관계에서는 약자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불친절한 서비스로 많은 지탄을 받기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점포들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150주년 기념관에 거대 자본이 투입된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된다면 이들 점포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의문이다. 필자는 3년 째 학교를 다니면서 교정 내부의 상업시설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현재 상업시설들이 교정 바깥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못 미친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는 생각에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이 공강 시간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실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그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꼭 커피점같은 상업시설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무조건적인 상업시설 유치보다는 자치공간의 확충을 제안한다. 기존에 있는 과방이나 동아리방에 가기를 꺼려하는 학생들도 입구까지는 개방적이지만 자신이 있는 테이블은 독립적인 카페 형식의 자치공간은(사진 참조) 거리낌 없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자본과 기업의 논리에 무감해진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 150주년 기념관은 그렇지 않지만 많은 대학들이 삼성관, LG관 따위의 기업 이름이 떡하니 붙은 건물들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은 그 곳에서 공부하면서 그 건물을 지은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목을 맨다. 그 과정에서 자본가의 착취나 사회의 부조리함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왜 대학이 앞장서서 자본의 논리에 부합하는 장사를 해야 하나. 학문을 장사 속에 사고팔고 소위 ‘돈이 안 되는’ 전공을 통폐합하는 것으로는 모자란 것인가.
앞서 고려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처럼 가톨릭대학교에 들어서는 상업시설도 많은 호응 속에 연착륙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태까지의 움직임을 보면 어떤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필자는 150주년 기념관에 들어설 ‘스타벅스’를 보고 싶지 는 않다. 가톨릭대학생들이 대학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린 교정에서 아무 저항의식 없이 생활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가톨릭대학교가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우아하고’, ‘세련된’ 외부 상업시설을 학우들의 편의 증진을 내세우며 적극 유치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2009년의 가톨릭 대학교는 기로에 서있다. 장사를 할지. 학문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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