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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의 장학금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51호/가대in 2010. 2. 18. 20:00
편집위원 찬표
대학 교정에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던 시절,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일이었다. 장학금 수혜자는 함께 ‘행동’하지 않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죽은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인식까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장학금을 받던 지식인들은 현재 자신의 저서에서 시위를 하는 친구들에게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학금을 받기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며 둘러댔노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얘기가 통할 리가 없다. 최근 등록금과 생활비 문제로 자살하는 대학생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등록금을 마련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사치일수도 있는 것이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이제 장학금은 받아도 그만, 안받아도 그만인 일종의 보너스가 아니라 학업을 계속하기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다. 『성심』교지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가톨릭대학교의 장학금 제도가 얼마나 학생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특별’한 장학금
2009년 1월 20일경,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은 발신자 불명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혼란에 빠졌다. 문자 메시지의 내용은 특별장학생으로 선정되었으니 통장사본을 전공 사무실에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문자 메시지는 전공 사무실에서 보낸 것이었고 이를 전화로 공지한 전공 사무실도 있었다. 특별장학생으로 선정된 학생들에 한해서만 공지를 하다 보니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온갖 논쟁이 들끓었다. ‘전년도 장학금 예산이 남아 학교가 일시적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대학 평가의 장학금 부문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와 같은 장학금 조성 배경에 대한 뜬소문은 점잖은 축이었다. 대부분의 댓글은 ‘나는 몇 점의 평점평균을 받았는데 왜 장학금을 받지 못했는가.’를 골자로한 원성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특별장학금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갈렸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주니 고맙게 받겠다는 무리와 자신은 못 받았다며 도대체 기준이 무엇이냐는 무리, 그리고 특별장학금을 이명박 정부의 유가환급금에 빗대어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무리까지……. 논란이 거세지자 학생지원팀은 처음 특별장학의 존재가 알려지고 이틀 후인 1월 22일, 학교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을 남겼다. 이에 따르면 특별장학생의 선발기준은 기준학기 2008년도 1학기, 신청학점 17학점 이상, 평점평균 3.50이상이었고 장학 내역은 수혜 적격자 중 성적순으로 1,500명에게 각각 50만원씩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생지원팀의 공지사항은 그간에 떠돌던 소문들을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했고 이것만으로 특별장학금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기에는 부족했다. 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가계경제에 도움을 주고 희망을 고취시키기 위함이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논란이 일어나고 나서야 뒤늦게 올라오는 사후공지를 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명확한 장학 선정 기준과 보다 실제적인 장학금 조성 배경을 포함한 사전공지가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장학금은 학교에서 선심 쓰듯 툭 던져주는 콩고물도, 학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몇 퍼센트의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학금 정책의 중심에서 학생이 배제된다면 이는 이미 장학금 본연의 의미를 잃은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거금 50만원이 현금으로 일시에 지급된다면 이를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50만원이라면 어떤 용도로 사용하던 경제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생활에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액수다. 그러나 그것이 장학금이라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언제, 어떻게 정해진지도 모르는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허탈해 할 것이고 학교의 장학금 제도에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숨겨진 배경이 어떠했든 분명 좋은 취지로 시작했고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번 특별장학금에 남겨진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가톨릭대학교의 장학금 제도는 며느리도 모른다.
2007년 제정된 ‘교육관련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의하여 이제 모든 대학은 학교운영, 예․결산 내역, 교육여건 등을 비롯한 주요정보에 대해 ‘대학별 개별공시 의무’와 ‘통합공시를 위한 자료제출 의무’를 가지게 됐다. 이는 정보를 원하는 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하기 전에 누구나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미리 공개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공기관 정보공개보다 더욱 적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교육관련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이 교육기관에 정보공개의 의무를 강제하고 공개 자체를 원활히 한다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알고 싶은 정보를 어디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가톨릭대학교의 개별공시에서 ‘성심교정’의 장학금 수혜율은 52.4%이고 전체 재학생 1인당 장학금은 연간 69만 3천원으로 명시되어 있다(통합 캠퍼스를 주창하며 세 교정의 하나됨을 강조하는 가톨릭대학교에서 대외적인 정보공개에 있어 어째서 성심교정을 본교로, 성의․성신 교정을 각각 제 2캠퍼스․제 3캠퍼스로 지칭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상세정보에서조차 장학금을 받은 총 인원과 수혜한 장학금의 총액만 뭉뚱그려 놓은 탓에 장학금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장학금 수혜 ‘현황’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뭔가 달라진, 그러나 실속은 없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나타나 있는 장학제도를 살펴보자(현재 장학제도는 2009학년도부터 상당부분 개편된 상태이다). 성심교정의 장학제도는 크게 성적우수자에 해당하는 ‘진리’와 가계 곤란자에 해당하는 ‘사랑’, 그리고 나머지 거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 ‘봉사’로 나누어져있다. 이 중에서 학우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성적 장학금인 ‘진리’이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아직까지 장학금이라 하면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한데다가 수업 이외의 여타 학내 활동을 하지 않는 대다수의 학우들은 성적 장학금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진리 장학금이 올해 들어 새로 바뀐 탓에 학우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원래 작년까지 성적 장학금은 전공별 전체 수석자에게 주는 ‘최우수’와 전공별 학년 수석자에게 주는 ‘우수’, 그리고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진리’와 ‘사랑’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 우수가 '우수 A'로, 진리가 '우수 B'로 명칭이 바뀌면서 사랑 장학금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008학년도부터 ELP(윤리적 리더 육성 프로그램)장학금이 신설되었다고는 하지만 학우들이 성적 장학금을 받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LP장학금은 08학번부터 적용이 되고 기존에 있던 장학금 제도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학생 선정 방식 또한 전공별로 교수회의를 통해 전공 사무실에서 학교 당국으로 통보를 하던 것에서 학교가 ‘역점’을 두고 있는 종합포탈정보시스템(TRINITY)을 통해 일괄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전공 사무실에서는 장학생 발표가 되고 나서야 누가 장학생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전공별로 모든 학년을 성적순으로 일렬로 세워 장학금을 지급하다보니 실질적으로 고학년이 대부분의 장학금을 쓸어가는 현상이 생겨났다(전공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기존에는 어느 정도 학년 별로 배분이 되었다). 장학금 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학우들이 체감하는 장학금 수혜율은 오히려 적어지게 된 것이다.
장학금과 등록금, 불가분의 관계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최근 들어 장학금은 등록금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다. 이제 장학금은 학문을 장려한다는, 즉 장학(獎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 난 4월 7일, MBC PD수첩에서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마련하는데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자 대학, 가난한 학생」편이 방영됐다. 등록금을 낼 수 없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한 학생은 방송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도 장학금 받기가 너무 어렵고 학기 중에도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습비 명목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등록금을 내는 미대생들은 작업실이 없어 복도에서 그림을 그리고 청소까지 직접 해야 한다. 재정상의 문제로 장학금을 늘릴 수 없다는 학교는 거액의 돈을 들여 멋들어진 건물을 지어놓고도 그 공간을 학생들에게 내어주지 않고 돈이 되는 사업체가 들어오기 까지 마냥 놀리고 있다. 이러면서 사립 대학교의 이월 적립금은 나날이 쌓여가고만 있다.
등록금을 낮춘다고 장학금 선정의 형평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장학금을 무턱대고 늘린다고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장학금을 늘리고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두 배 올린 고려대 경영대의 경우를 보라). 그러나 등록금과 장학금은 현재 한국 대학 사회를 휘감고 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장학금만이라도 투명하고 공평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운영될 수는 없을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20대의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의 대학생, 가톨릭대학교 학우들은 괴롭기만 하다.'51호 > 가대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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