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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설이란 무엇인가?53호/가대人 2010. 6. 11. 14:50
E. 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도올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책들의 이름을 제목부터 대담하게 참고하는 것도 답설의 한 창작법이라 할 수 있겠다.
Max Beaver
사회학전공 05 김호영
답설이란 답안지설의 줄임말로써, 학생과 교수가 답안지를 통해서 주고받는 답안지와 그 이상의 것을 오브제로 놓은 탐미의 형식이다. 좁게는 답안지 혹은 레포트 자체의 형식론적 완성으로부터 넓게는 답안지 혹은 레포트에 함축된 대학의 총체적인 시대맥락을 훑는다. 따라서 답설이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담아 교수에게 심사를 받는 기존 행위를 고찰함은 물론, 이미 권위자인 교수에게 자신의 다듬어진 정신세계를 제시하는 도전의 행위이기도 하다. 중세의 대학 원형인 ‘Universitas’에서부터 대형할인마트가 연구동을 대체하는 현재
학문에의 길에서 투신하신 교수님께 삼가 묵념을 올리는 바이다. 의 대학에 이르기까지 답안지 자체를 문예의 한 갈래로 보아 접근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서 탄생을 축하할 만한 일이나, 기실 대학생 특유의 나르시즘과 젊음의 애환을 과잉감정으로 읊조리는 이 형식은 결국 사라질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구체적인 형식에 있어 레포트 혹은 답안지의 형식을 빌어 각주를 과도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혹자는 대가들의 천박한 모방이 아니냐?박상륭이 각주를 쓰면 소설法이 되고, 보르헤스가 각주를 쓰면 포스트모던의 선언이 되는 것이나. 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표절은 아니하겠다.”라는 대학생의 프로페셔날리즘으로 보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선언과 동시에 사라질 것은 예상하는 것을 슬픈 일이나, 모 대학교의 철학과가 통째로 사라지는 현실에 어느 잡스러운 사조가 생겼다 사라진들 눈깜짝할 일은 아닐 것이다. 경(景) 긔 엇더니있고!
“말하자면 가장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써보라는 얘기예요. 에세이 형식도 좋고 짧은 논문도 좋아요. 콩트는 물론 더 좋구요. 만약에 콩트를 쓴다면 여러분이 백일몽 중에서나 상상해 볼 수 있는 완전한 방심상태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아주 솔직하고 대담하게 구사해 보면 좋겠어요.
그림도 좋고, 사진도 좋고, 아무튼 어떤 형식으로도 좋아요. 내가 그걸 보고 아찔해질 만큼 관능적 충격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리포트는 무조건 에이뿔따구입니다.“
( 마광수, -즐거운 사라中-)
김키치군은 마리아 410호의 문을 뻥찬다. 교수님은 다짜고짜 들어오는 이 버릇없는 인물에 흠칫 놀랐으나, 그가 이번 학기 자신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임을 인지하였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니 자네 뭔가?”
하지만 김키치 군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이 온 용건을 말하기 시작한다.
“교수님은 저에게 B+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걸 한 번 읽어보시고 나서 꼭 A+를 주셔야겠습니다. 교수님은 답안지 한두장으로 제 한 학기 학업의 성취를 겨우 알파벳 B로 매기셨는지 모르겠으나, 그 글들이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고 최종적으로 답안지에 옮겨지는지 아실런지요?
이 글이 제 대학생활의 마지막 답안지이자 제 생각을 자유로이 적는 제 인생의 마지막 글입니다.”
김키치 군은 홀연히 사라지고, 교수는 이 상황에 애써 이해하려고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름을 어쩔 수 없다. 심히 당황스럽지만 저 황당한 학생이 적은 글이 대체 어떤 글인지는 읽어보고 싶어진다.
Notes From UnderDormitory
-어느 지하기숙사 생활자의 수기
원제: 『Notes From Underground : 어느 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문예출판사) “명시성이란 원래부터 재능이 없거나 원본에 맞서 투쟁할 의욕도 없이, 원본의 몇 구절이나 소재에 기대어 원의 권위와 성과를 훔치려는 비겁자의 부적일 뿐이지요.” 『너에게 나를 보낸다』, 83p, 장정일, (미학사) -
Prologue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대학 시절」, 『기형도 전집』, 문학과 지성사.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학점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답안지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같은 책, 원문: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제 4 막 >
낮고 각진 천장의 기숙사 4인실 방 (메피스토, 베란다 없는 방이나 (여하튼) 등장한다.)
메피스토: 안녕하시오. 신학생? 밤늦게 과제를 하느라 바쁘시구만?
파우스트: 보아하니, 교정을 잘못 찾아오셨구려. 여기는 성심교정, 아니 이제는 분교 느낌이 물씬 나는 국제캠퍼스이고, 성신교정은 서울로 나가야 될꺼요.
메피스토: 내 일터가 아니구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 책은 무엇인가? 저 책을 보고 신학교인 줄 알았지.
파우스트: 만오천원 주고 사서 한 번도 읽어보지는 않은 영성 교재이지. 아무튼 난 신학생이 아니라오.
메피스토: (관객들을 향해 방백) 내가 실수를 하다니! 그나저나 이 얼뜨기 학생이나 골려 주어야겠군. (파우스트에게)낭패일세, 보아하니 자네 전공과 읽는 책들이 취업에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네만! (책들을 둘러본다. 나는 누구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나의 투쟁, 산업사회학, 과학기술사회학, 사회사상사, 공산당선언 등의 책이 있다.) 게다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읽지는 않은 게 분명해.
파우스트: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공부를 하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라고 안 들어보셨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나?
메피스토: 자기 생각은 없고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잘도 같다 붙이는군. 자네 학과는 2015 플랜에 학부 내에서 유일하게 선정되지 않았지. Oh! What a pity! King of the Jews!
락뮤지컬 「Jesus Christ Super Star」King Herod‘s song 가사 中 이천여년 전 얘기는 이젠 아름다운 추억이구만. 바야흐로 Pax 경영학의 시대야. 굳이 철학과가 통째로 사라진 모 학교 얘기는 하지 않아도 되겠지. 2전공 선발에 면접까지 보면서 뽑는다는 것쯤 상식이지. 반면에 자네가 배우는 것은 꽁트가 생물학 패러디를 한 것을 가져다가 마르크스, 베버가 흉내를 내다가 미적지근 답이 나오질 않잖아? 앤서니 기든스가 제 3의 길로 빠져버리는 구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전과하는 것이 어떻겠나?
파우스트: (얼굴이 상기되며 급하게 흥분되지만, 다음 학기 들어야 할 전공필수 사회학사 삼수강과 그 동안의 영양가 없었던 대학생활을 떠올리며 이내 고개를 떨군다. )
메피스토: 게다가, 용산참사 현장이든, 노동절 행사든 콧빼기도 비추지 않고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펜대와 몽상으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행동하는 지성인 흉내를 낸다지? Max Weber는 무슨, Max Beaver겠지. 나무를 갉지 않고 살 수 없는 것 마냥, 자네도 똑같아. 불가능한 이상사회를 설정해놓고 현실이 조금만 어긋나면 갉아대기에 바쁘지. 끊임없이 갉지 않고서는 이빨이 근질근질해서 못살테지? 강박관념이야! 위생병이지. 이것저것 갉다가 쓰러진 나무에 횡사하던지, 쓸데없는 지식의 댐을 쌓는다고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있나?
파우스트: 아니야, 절대로…….(입을 헤~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한다.)
“악! 휴-.” 악몽을 꾼 것 같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려던 차에 일으킨 상체가 다시 침대로 털썩 떨어진다. 정수리에 돌출된 천장 모서리가 부딪힌다. “악!” 혹이 난 것 같다. 꿈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전 날 읽었던 소설에 너무 몰입했던 모양이다. 요즘 계절학기를 들으며 삭막해지는 정신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 파우스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기말고사 날이다. 긴장이 퍽 심했나 보다. 왼쪽 손을 더듬거려 핸드폰을 찾아본다. 모닝콜을 6시에 맞추어져 있다. 몇 시쯤 되었을까?
“아- 안돼!.” “퍽.” 2층 침대 구석으로 떨어져 버린다. 필시 꺼져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폰을 찾기 위해 새벽에 자는 다른 세 명의 학우들을 다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이 마르고 심각한 배설욕구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서둘러 계단을 내려오다가 수면양말에 발을 헛디뎠다. “아 이런 XX." 메피스토가 실제로 다녀간 것일까?
Vita laborum plena est
삶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운이 좋지 않았던 새벽에 잠을 설치기는 했으나, 군인정신을 발휘하여 강의실에 늦지 않게 도착한다. 1년 전, 복학 첫 학기. 답안지에 보편적 인류애를 호소하며 교수님께 선처를 호소했으나, 준엄한 학점의 심판은 성적향상장학금의 실패를 안겨주었고, 자연스레 구멍난 학점을 메우기 위해 이번 겨울에 계절학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담배를 끊을 수야 없었고, 시험은 그런 데로 공부한 데로 적을 예정이다.
그런데 몹쓸 일이다. 시험시간 바로 이 시간에 답을 적는 와중에도 딴 생각이 난다. 내 몸은 이내 유체이탈하여 강단에 나가 “뫼비우스의 D."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소설집, 이성의 힘, 원제 “뫼비우스의 띠” 이하 필자 개작, 이는 패러디, 인용, 오마주도 아닌 정신의 Ctrl+V임을 밝힌다. 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제군, 지난 4주 동안 계절학기를 듣느라 수고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 주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학점이 낮은 학생이 과음을 하는가? 과음을 하는 학생이 학점이 낮은가?”
「가톨릭대학교 학생의 음주실태」조성기 외,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2002. 이 흥미로운 연구결과 낮은 학점과 과도한 음주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음주와 학점 중 무엇이 선행하는 요인인지, 그 둘을 매개하는 구체적인 인과적 요소는 무엇인지는 심층적으로 밝혀보아야 할 과제이리라.
(아 안돼! 이제 나도 사반세기의 나이야, 답안지에 헛된 편지나 적어대는 그런 나이는 지났어. 공상마저 술타령해서는 안 돼!)
나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는다. 다시 답안지를 적기 시작한다. 담배가 피고 싶다. 문장이 막힌다. 답안지를 한 장 더 받아쓰는 학생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불과 2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심리학과 조엣지군임이 분명하다. 집중할 수가 없다. 나는 다시 망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여러분들 중 몇 %가 D를 받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이제 나의 노력이 어떠했나 자신을 테스트해 볼 기회가 온 것 같다. 다른 인사말은 서로 생략하기로 하자.”
시험이 끝나면 패밀리마트에서 팩소주 한 팩을 사서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갈 생각을 한다. 그래. 조금만 더 적자. 애초에 옆자리 조 군처럼 2장, 3장을 적을 수는 없다. 2문단이라도 더 적자. 그나마 기억나는 개념을 덧붙여 이것저것 살을 붙일 궁리를 한다. 쓰고 보니 끝 문장의 내용과 앞 문장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삶은 고단한 답안지 쓰기로 가득 차 있다. Vita laborum plena est!
Errare humanum est
실수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그래도 명색이 이제 4학년. 상대평가 속의 치열함 속이지만 C+이상을 받을 자신이 있다. 승리의 팩소주를 쪽쪽 빨며 스카이라운지의 겨울바람을 느낀다. 기숙사 쪽을 바라보다가 세탁기에서 빨래를 갓 꺼내서 방으로 들어가는 여자 기숙사생의 눈과 마주친다. 나를 알아볼리는 없다. 바로 시선을 피하였으나, 일순간 저 여학생의 입꼬리에 담긴 비웃음을 관측 못할 나이는 아니다. 아름다우나 젊음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화장과 고급스럽지만 자신의 실제 경제능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 새내기가 분명하다. 바야흐로 옥택연의 시대 다. 그녀의 눈에 05학번 팩소주를 들고 있는 내가 아저씨로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문득, 혼자 가수 바다를 좋아하였으나 슈와 유진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탄압을 받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술기운이 오른다. 같은 소주인데 팩으로 빨아먹는 것은 맛이 다르다.
“그래도, 부탁하건데 흐리멍텅하고 피안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의 4학년 선배를 아저씨로 보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야.”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린다.
-먼지가 되어中- 김광석 5년 전 새내기 시절에 열심히 살았더라면 저 새내기가 나를 저렇게 보지 않았을까? 해가 지날수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온몸을 전율시킨다. 토익 공부를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됐어. 취업에 도움이 되는 복수전공을 했어야 됐어. 내가 여기 지금 서있게 했던 수많은 선택들이 떠오른다. 그저 시험 후에 낮술을 시작한 것만이 나의 실수일까. 갑자기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역곡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Ars longa, vita brevis est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듣는 순간만큼은 온 생애의 고독을 이해할 것만 같은 Veinte Anos(중독된 고독)를 들으며 지하철을 무작정 탄다. 출퇴근 시간은 아니지만 서울로 가는 1호선은 역시나 혼잡하다. 관절염까지도 효험이 있는 기모레깅스가 제법 팔리고 있었다. 뜬금없이 ‘사평역에서’라는 시가 생각난다. 마치 나의 교양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듯한 지식같으나, 사실 그렇게 싫어했던 주입식 수능공부 덕택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제된 언어로 묘사된 겨울역의 묘사와는 달리 실제 지하철 안은 형용할 수 없는 혼잡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편한 인연들의 만남과 헤어짐. 한 역을 지날 때마다 규칙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문에 사람들이 오간다. 과도한 화장과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에도 감출 수 풋풋한 젊음만은 감출 수 없었던 아까의 새내기가 떠오른다. 어쩌면 이런 공상을 하는 나도 스무 살이라면 젊음의 상념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하철 안의 모든 이가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아까 그 새내기처럼. 어느 누구의 시선과도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창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눈길이 멈춘다.
“시대를 초월한 팝아트의 제왕.”
강렬한 보색대비의 색채구성은 미술의 문외한인 나의 시선마저 포스터에 두게 만든다. 나는 쉬이 미술관으로 향한다. 시에나 밀러 주연의 팩토리걸에서 ‘앤디’는 병약하지만 섬세한 호모섹슈얼의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튼, 입장료는 아깝지 않다. 팩소주의 취기에도 그림들은 쉽게 보이게끔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영화내용을 다시 떠올린다. 앤디에게 에디 세드윅(시에나 밀러 분)은 어떤 존재였을까? 로뎅과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술가에게 여자란 강렬한 영감의 원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시 미술작품. 결과에 대한 기여는 허망하게 사라질 뿐이다. 혹, 후세 사람들이 기억해준다 한들, 그것 자체는 영화의 소재가 될 뿐이다. 더구나, 내 삶이라는 것을 누가 영화화 시켜주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유명한 캠벨스프 그림이 보인다. 브릴로 상자더미들도 보인다. 내 인생에 아무리 많은 색을 칠해도 저 상자들 중, 저 스프들 중 하나밖에 못 될 것 같은 슬픈 기분이 든다. 답안지에 어떤 상념을 문자화시키고 썰을 풀어낸다 한들 알파벳 몇 가지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문득 슬퍼진다. 취기가 점점 풀어지는 것일까. 나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시대를 초월한 답안지의 제왕.”
혼자 말하고 혼자 킥킥거리며 웃었다.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 것인가. 마지막 학기 한 과목 정도는 시대를 초월한 답안지를 적어내고 싶다. 어떻게 할까? 답안을 적어 학을 접을 것인가? 똑같은 답안을 반복해서 적을 것인가? 색연필을 가지고 가 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해볼 것인가? 휴- 하지만 말보로 5갑의 기회비용 만큼의 입장료 가격으로 환산하기엔 너무 유치한 공상이었을까. 내 나이를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딱 수능점수만큼 나온 내 토익점수와 두 눈의 시력을 합한 것만큼의 평균평점을 떠올려 본다.
이제 공상을 그만 두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계절학기는 끝났지만 토익을 봐야 하는 나의 숙명은 끝나지 않았다. 시립미술관의 계단을 걸으며 내려간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다행히, 또 다른 특별전시회를 발견한다. “천경자전이라?” 그녀의 작품은 값비싸게 거래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킬킬킬 혼자 웃어 본다. 문외한이지만 왜 그녀의 작품들이 고가로 거래되는지 이해될만 한 그림들이다. 오늘 입장료는 아깝지 않다. 뱀들이 엉켜 있는 「생태」라는 작품에서부터 해외여행을 하며 그린 이국적인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미술도 이 작가도 잘 모르지만 이 작품들에게서는 천경자의 느낌이 난다. 이 사람이 천경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돈이 많다면 기꺼이 이 그림을 살 것만 같다!
나는 아까 기말고사 답안지에 적었던 내용들을 떠올린다. 더불어 5년 전에 입학하여 줄곧 적어왔던 나의 생각들을 떠올려 본다. 교과서에서 따와 비슷하게 적으려고 노력했던 것 외에 나 김키치의 생각은 얼마나 적었던 것일까? 팩소주의 취기는 다 가셨지만 나는 공허함을 느낀다. 전시장에 아무도 없다면 엎드려서 엉엉 울고 싶다. 아마도 다섯 살 차이가 날 예의 새내기의 눈빛이 떠오른다. 천경자의 모든 작품들도 나를 비웃는 것 같다.
Good Night
기숙사에 돌아왔다. 모든 의욕이 사라진 것 같다. 다만 식욕만이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왠지 식욕을 느끼자마자 컵라면 뚜껑을 뜯는 스물 다섯의 나를 상상한다면 내 스스로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다.
학교에서 틈틈이 알바를 할 때 챙겨두었던 시험답안지를 2~3장 꺼내본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짤막하게 나열하며 적어 본다. 천경자전. 시대를 초월한 팝아트의 제왕. 앤디워홀전. 새내기. 째려보다. 복학생. 외로움. 나이 25살. 과목명에 4학년이라 적고 학년과 학번을 적으려다가 낮의 새내기가 생각나면서 이내 그만 둔다. 책장에 꽂혀진 토익책들을 바라보다가 탁상의 거울을 보며 내 피부를 살펴본다.
컵라면을 들고 방을 나선다. 카드키를 챙겨 문이 잠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2010. 05. 23까지 안양1A2 김순X
유통기한이 적혀 있다. 아무 것도 아닐 숫자이건만 내 졸업일보다 유통기한 마감이 더 빠름을 생각해 낸다. 남은 학기와 학점을 적어보고 5학년 1학기를 다녀야 할지 계산해 본다. 아무래도 다녀야 함을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조기졸업한 다른 학우들의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조리법): 뚜껑을 화살표까지 개봉한 후 면 위에 분말스프를 넣고 끓는 물(265ml)을 용기에 넣고 약 4분 후에 맛있게 드세요.
뚜껑을 뜯고 가지런히 굳어 있는 면발들을 쳐다본다. 4분 동안 잘 익혀진다면 맛있는 면발이 되겠지. 나 또한 4년, 5년 전에 뜨거운 물에 잘 익었다면 지금 맛있는 면발이 되었을 터이다. 어느 회사 인사담당자들이라도 탐낼 맛있는 면발 말이다. 양념은 처음 넣으나 나중에 넣으나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면발만큼은 말이다.
분말스프와 야채스프를 뜯어 넣은 후 뜨거운 물을 넣는다. 하지만 기숙사 정수기의 물은 앞 사람이 금방 떠가버렸는지 미지근하여 이등병 시절 저녁 점호 후의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나 또한 어중간하게 익어버린 것이 아닌가. 서럽다. 4분 후에 면을 아무리 저어 봐도 쫄깃쫄깃한 조리예같은 면발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쏴아-.”
변기에 모두 버렸다. 새 컵라면을 뜯어 먹을까했지만 식욕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책상에 앉아 끄적거려 볼까. 도서관에서 빌린 파우스트를 읽어볼까. 하지만, 심각한 우울함은 두껍고 지루한 괴테의 글들을 읽을 용기를 주지 못한다. 대신 도스토예프스키의 얇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꺼내 본다.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으니 지하기숙사생활자 쯤 되려나?”
슬프다. 눈물이 떨어진다. 회색 답안지에 적힌 수성잉크가 눈물에 번져 기묘한 색들을 번져내고 있다. 오늘은 죽은 이들만의 곡들을 듣도록 하자. 김광석, 김현식의 곡들을 듣다가 유재하의 “텅 빈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듣고, 빅토르최의 Good Night을 들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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