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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서평53호/가대人 2010. 6. 11. 14:46
국사학전공08 최정필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
현재 한국 사회를 ‘삼성공화국’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삼성이 한국 사회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말이다. 25만명의 임직원을 둔 세계적인 기업, 연 매출 200조에 육박하는 한국 최고의 기업, 구직자가 가장 다니고 싶어하는 기업 등 삼성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할 것이다. 이러한 삼성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많다. 많기는 한데 자세히 보면 두 가지로 수렴된다. “삼성이 최고”, 혹은“ 삼성이 악의 근원”이다. 그런데 삼성을 다니는 사람치고 삼성에 문제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삼성 문제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삼성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왜냐하면 삼성의 핵심 임원으로 7년이나 근무한 사람이 삼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해군 법무관을 지냈다. 30대엔 인천, 홍성, 부산, 서울 중앙, 부천 등지에서 주로 특수부 검사로 일했고, 40대엔 삼성 회장 비서실(구조본)에 입사하여 7년 동안 재무팀과 법무팀 등에서 일했다. 2004년 8월,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을 그만두었고 50대엔 양심고백을 통해 삼성 비리를 세상에 알렸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김용철 변호사가 서울지검 특수부 수석검사로 전두환 비자금을 수사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비자금 수사 후 서울지검을 떠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예정에 없는 인사 조치 때문이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6개월 뒤 부부장으로 진급이 예정돼 있는 상태였지만 수사 도중 상부의 수사중단 신호를 거스르고 비자금을 찾아낸 일 때문에 예정에 없는 인사 조치를 당하게 되었다. (당시 김용철 변호사가 석 달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수사를 해서 찾아낸 전두환 비자금은 1조원에서 450만원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용철 변호사는 검사직을 그만 두게 되었고, 경영 업무를 배우기 위해 글로벌 기업 삼성에 입사하게 되었다.
“배신자”
많은 사람들이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 로 비난을 한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배신했다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그가 삼성을 배신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양심고백과 특검 수사 이후, 삼성 계열사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삼성 임직원들에게 격려도 많이 받았다. 이건희의 눈치를 보느라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운 것이 삼성의 조직문화였다. 임직원들이 땀 흘려 일한 대가가 이건희 일가의 사치와 허영을 위해 낭비돼 온 게 삼성의 역사였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재용에게 삼성그룹 전체를 넘겨주기 위해 임직원들이 온갖 불법 ․ 탈법 행위를 저질러야 했던 게 삼성의 최근 상황이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런 현실과 역사를 고발했다. 삼성을 해롭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삼성의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치우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건희 일가와 소수 가신집단이 걸림돌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100-200명 정도다 한줌도 안 되는 이들 때문에 25만 삼성 임직원들이 범죄행각의 공범으로 몰리게 됐다. 오히려 멋진 포부를 품고 삼성에 입사한 임직원들이 이건희 일가에게 배신당한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를 배신했는가. 범법 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을 적발하는 일은 정부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공무원이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으로부터 부당한 돈을 받은 이들을 고발하여, 정부가 할 일을 도왔다. 이건 배신이 아니고 국가를 위하는 일이었다.
“삼성”과 “대한민국”
김용철 변호사가 말하는 삼성은 기업이 아니다. 한국 그 자체다. 삼성의 모든 행위는 혈관처럼 한국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정계, 법조계, 학계가 모두 삼성과 함께 움직였다. 삼성비리가 검찰비리와 함께 불거진 건 이상한 게 아니다. 삼성비리가 곧 국가 전체의 비리였다. 이쯤되면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 모두가 한통속인데 잘잘못을 따지고 말 것도 없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는 김용철 변호사가 7년간 일하며 보고 겪은 삼성이 온전히 그려져 있다. 그가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는 책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에 입사하기 전, 그가 가졌던 글로벌 기업의 환상은 모두 부서졌다. 그는 삼성이 저지른 비리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를 괴롭힌 것은 삼성이 비리를 저지른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상시적으로 저질러지는 비리가 삼성 존재의 한 근거라는 사실, 그것이 그를 괴롭게 했다. 그는 묻고 싶다. 기업의 핵심인 선진 경영과 세계적인 경쟁력, 삼성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껏 대한민국은 오늘의 삼성을 만들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 잠시 삼성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게 삼성을 다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독자들이 그의 글을 통해 삼성을 생각할 ‘때’를 실감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삼성의 경영쇄신안과 이건희의 회장직 복귀
삼성은 특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직후인 2008년 4월 22일 10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경영쇄신안을 발표하였다. 그 중 맨 앞의 세 개 항목은 총수일가 스스로 퇴진하겠다는 것, 그 다음 두개 항목은 전략기획실의 해체 및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의 퇴진이었다. 누가하라고 시킨 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하겠다고 경영쇄신안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이 발표한 이건희 회장의 복귀와 삼성전자 회장실 설치 등을 통해 삼성은 2년 전의 경영쇄신안을 완전히 없던 일로 공식 선언한 것이다. 2년 전 스스로의 입으로 약속했던 경영쇄신안은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약속이 다 이루어진 것이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앞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이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2년 전의 경영쇄신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은, 그 경영쇄신안이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삼성은 우리 국민 모두를 우롱했고, 사법부와 정부까지 농락했다. 이는 삼성이 단순히 훌륭한 성과를 기록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차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질서와 민주질서를 유린하는 최고의 권력자가 이건희임을,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용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삼성을 생각한다」에서는 삼성의 특검수사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특검 수사결과 이건희 일가의 비자금 규모는 4조 5000억원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건희에게 227억 원 배임죄를 새로 확정했으며 형량은 추가할 수 없다는 파기환송심을 끝으로 삼성 비리를 둘러싼 주요 법정 공방은 일단락됐다. 사제단이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삼성 비리에 관한 첫 기자회견을 연 게 2007년 10월 29일이니까, 만 22개월이 걸린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건희 일가는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법적 논란에서 풀려났으며, 주요 비리에 대해 면죄부를 받았다. 차명으로 관리하던 자산을 실명화 하는 성과까지 거뒀으니, 얻은 게 많은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용철 변호사에게 재벌의 비리를 공개해 봤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했다. 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 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김용철 변호사는 말한다.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라고.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재작년 “삼성 비자금 특검”이 한국 사회에 큰 이슈였다. 하지만 나는 삼성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으로 깊은 사색이나 사건의 본질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신 냉소적인 자세로 “삼성이 원래 그렇지” 라고 말하곤 했다.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삼성에 대해 냉소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냉소할 뿐이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그마한 실천을 하나씩 하기로 했다. 이 책을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게 학교교지에 서평을 기고하는 것과 삼성 재품 불매운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 그것이다. 비록 작은 실천이지만 조그만 실천이 하나씩 모여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김용철 변호사가 노들야학에 선생님으로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지검 수석 검사,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 직함만 들어도 숨이 막히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편하게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왜 이런 힘들 결정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어서 김용철 변호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삼성의 권력구조의 본질, 삼성의 비자금, 삼성家에 대해 미약하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김용철 변호사가 개인의 영달이 아닌 사회를 위해서 책을 집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삼성을 생각한다」의 판매부수가 벌써 10만부를 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 책 홍보가 전혀 되고 있지 않지만, 독자들의 자발적인 홍보가 큰 힘을 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가톨릭 학우에게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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