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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53호/가대人 2010. 6. 11. 14:45
법학전공 05 이진호
우선 '르포르타주'라는 것은 무엇일까?
흔히 '기록문학'으로 번역하기도 하는 이 장르는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가 자신의 식견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 취재하고, 취재대상의 에피소드나 그 밖에 자잘한 흥미거리등을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된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르포르타주 중에서도 정말 걸출한 걸작- 조지 오웰의 1937년 작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70여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본작 속에 드러난 1930년대 영국의 모습과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나 닮아있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탄광촌 노동자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르포르타주이며, 2부에서는 자전적인 에세이형식을 빌어 사회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그의 눈에 비친 사회주의‘자’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더불어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길을 제언하고 있다.
1부에서 오웰은 1936년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두 달에 걸쳐 위건을 비롯한 랭커셔와 요크셔 지방 일대의 탄광 지대에서 광부 혹은 노동자들이 묵는 열악한 하숙집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인근 탄광에서 인부들과 함께하며 일반 중산층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강도의 노동과 그들이 ‘어쩔 수 없이‘머무는 쓰레기더미 같아 보이는 열악한 하숙집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조사를 통해 1930년대 영국 북부 지역의 탄광촌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 놓는다.
“탄진은 목구멍과 콧구멍을 틀어막으며 눈썹에 자욱하게 쌓이며, 그 비좁은 공간 안에 있으면 기관총 소리처럼 시끄러운 컨베이어 벨트의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런데도 필러들은 철로 만든 사람처럼 보이고, 또 그렇게 일을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끈하게 덮여 있는 탄진을 보면, 그들은 정말 철의 인간 같다. (…) 온몸이 시커메진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놀랍도록 힘차고 빠르게 삽을 휘둘러 석탄을 뜬다. ‘휴식’ 시간이란 게 없으니, 그들은 이론상으론 전혀 쉬지 않고 일곱 시간 반을 일한다. (…) 도시락은 대게 비계 바른 빵 한 덩이와 차가운 차 한 병이 전부다.”(34~35쪽)
사진과 같은 현실묘사는 물론이고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정확한 도표들과 통계는 역사자료로 쓰여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 시대의 경제규모와 상황에 맞추어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며 정말 그 현실 속에 스며들어 노동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며 취재했던 오웰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지하 수십 미터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는 광부들, 급작스런 가스 폭발로 늘어나는 시체들에 대한 묘사, 하숙집과 정부가 만든 공공주택의 집세와 구조, 실업수당으로 사는 가정의 가계부에다 심지어 집주인의 성격까지 자세히 조사한 오웰은 마치 현미경과 같은 모습으로 어두운 단면을 비춤으로서 노동자계급의 비참함과 부르주아들의 위선과 무지를 역설적으로 꼬집는데, 이는 비정규직에 대한 거대기업의 노동착취와 기본적인 생활마저 보장되지 않는 영세업자, 재개발 때문에 거처를 뺏겨가는 빈민층들, 홀대당하는 외국인 노동자와 무수히 쏟아지는 실업자등 우리네의 현실과 결코 괴리되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의 상황과 문제점을 그려내었던 1부에 비해 좀 더 대담하고 솔직하게 저자의 정치적 견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2부는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1차대전이후의 영국 내 정세불안과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파시즘에 의한 전체주의적 미래를 거부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오웰은 명문사립학교 출신으로써 하급 상류 중산층인 자신이 식민지 경찰로 복무하면서 제국주의의 압제의 일원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이는 식민지 피지배자와 다름없는 자국의 노동계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고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가슴 뜨거운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그는 또한 사회주의를 위해서는 우선 사회주의를 공격해보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스스로 ‘악마의 대변인’-선의의 비판자-을 자청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촌철살인의 비판과 질책을 쏟아낸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이란 그들이 어울리고 싶어 하는 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똑똑한 ‘우리’가 하층계급인 ‘그들’에게 부여할 일련의 개혁인 것이다.”(242쪽)
기계화된 문명과 목적을 잃어버린 발전, 파시즘으로의 잘못된 욕구분출.. 이 모든 것이 오웰이 두려워하는 미래이며, 그 시대의 사회주의자를 자청하는 작자들의 모습이다.
사회주의 그 본래의 목적과는 괴리되어 사상을 위한 이상만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에 대한 따끔한 일침으로써 그는 지식층 사회주의자들 중 상당수가 마음속으로는 계급적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속물이고, 현실이 아닌 이상에 집착하는 이론가들이고, 괴팍스런 기계 숭배자들이라며 직설적인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오웰은 단지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숙제를 제공하는데, 한 발짝 떨어져서 사안 깊숙히 들어가지 못하는 사회주의자가 아닌 진짜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현실에 문제를 느끼고 고쳐나가려는 사회인으로서의 모습을 촉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중반부에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열망과 사회주의자에 대한 비판을 지나 책은 지나친 기계화와 물질주의로 치닫는 현대사회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자유를 속박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전체주의를 경계하는 내용들로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가 조금은 모호하고 사회주의자에 대해 조금은 과한 비판 때문에 그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그것은 그가 가장 두려워한 파시즘에 대한 반감과 말뿐인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70여 년 전 영국 사회를 그린 작품 속에서 지금 2010년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문제들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은 그닥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피 끓는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IMF경제위기, 촛불의 함성 등 많은 굴곡의 시간을 지나 왔지만, 일부 배부른 지식층의 말과 허울뿐인 이상론은 밑바닥 서민들의 열망과 소박한 희망들을 짓밟아 왔다.
힘없고 어려운 약자가 강자의 지배에 짓눌리지 않고 보호 받을 수 있는 사회,
그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장하고 제공하는 실마리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비록 미약하고 무력하지만, 끊임없이 성찰하고 노력하는 진보적인 자세 하나하나가 결국은 밝은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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