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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전공 07 최원준
저는 항상 굼뜨고 어리버리한 바보예요.
모두들 저랑 같이 다니기 싫어해요. 저한테서 냄새가 난대요. 처음엔 땀 때문이겠거니 싶어서, 교복도 매일같이 빨고 속옷도 매일매일 갈아입고, 일어난 후랑 잠자기 전에 한번씩, 하루 두 번 목욕도 하고...그래도 애들은 저한테서 냄새가 난대요. 정말인가? 아무리 팔을 코에 갖다대며 맡아봐도 못 느끼겠어요. 제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이젠 제 스스로는 못 맡나봐요.
저는 수업 때 말고는, 다른 애들 있는 데로 가까이 안 가요. 제가 곁에 가면요, 화를 내거든요. 냄새 난다, 비듬 옮는다, 토하게 생긴 면상 들이댄다...그럼 저는 미안해져서, 다시 제 자리로 가요. 교실 맨 뒤쪽의 구석진 자리로 가서, 혼자 얼굴을 파묻고 자요. 사실 자는 건 아니에요. 잠은 안 오지만, 어떻게든 자려고 해요.
쉬는 시간이 됐든, 점심시간이 됐든 저는 수업이 없는 때 교실에 있으면 늘 그래요. 하지만 잠이 좀 오려고 할 때, 저를 툭툭 쳐요. 여자애들이요. 제 머리채를 잡아댕겨요. 아앗. 아파. 억지로 고개를 들고 나면, 무표정하게 제 자리를 에워싸고 있는 서너 명의 애들이 있어요. 야, 나 지금 그거 안하고 왔으니까, 니꺼 좀 줘봐. 그럼 저는 가방 속에서 꺼내요. 누가 볼까봐, 두 손으로 감싸서, 내밀어요. 꺄악!! 너 이거 뭐야? 누가 이거 달라고 했어? 이 미친 년이 나한테 생리대를 들이대고 앉았어!! 그 소리에, 교실에 있는 애들이 전부 제 쪽을 쳐다봐요. 저는 창피해서, 들고 있던 걸 머뭇머뭇, 책상 서랍에 넣습니다. 그게...니가 이 때쯤이면 꼭 이거 찾잖아......뭐? 너 지금 애들 다 듣는 앞에서 그게 뭔 소리야? 이 년이 갈수록 정신을 못 차리네...하며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제 머리를 다시금 툭툭 건듭니다. 어어...응...으응 미안해....그럼 어떤거? 아 씨, 깝깝하네. 고데기 달라고 고데기. 내 머리 상태 안 보이냐? 저기 오늘 안 갖고 왔는데......너 내일부터 가지고 와라. 니가 쓰는 걸론 말고. 비듬 옮으니깐 니네 엄마가 쓰던 거 같은 걸로 가져와. 야 친구들이 필요하다는데 그거 하나 못 빌려줘? 응...어...알았어......
고데기는 없습니다. 저번 주에 옆반 애들이 빌려갔던 걸 찾으러 갔는데 저를 흘깃 곁눈질로 보면서, 아 미안해, 그거 잃어버렸어. 하기에 그렇구나 하고 그냥 제 교실로 걸어왔어요. 어떡하지, 또 새로 살 돈 없는데...그래도 이런 거라도 애들한테 해줘야 친해질 수 있을 텐데...
또 수업 듣고, 야자 하고, 집엘 가요. 우리 집에는 아빠가 없습니다. 엄마랑 살아요. 엄마는 거의 매일 술을 드세요. 제가 집에 들어서니깐, 엄마가 눈이 반쯤 풀려서 절 노려보세요. 야 이 년아, 뭐한다고 생리대를 그래 많이 가지가노? 기-껏 사내 없이 홀몸으로다가 키워서 핵교 보내노니, 공부는 안꼬 피나 싸질르고 댕기나-? 하이고오- 남편 복 없음 자식 복도 읍따더마, 여그 집 구석이 따악- 그 꼴 아이가!! 저는 방으로 들어가요. 두 평 남짓한 이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자려고 누워요. 피곤한 중에도, 왠지 얼굴이 축축해져서 손으로 마구 문지르고, 베개도 어느 순간엔가 물기로 젖어서, 북북 닦고 다시 머리를 눕혀요.
억지로 눈을 뜨고, 아침은 안 먹고 학교에 갔어요. 제 자리 가서 가방 내려놓고 앉으려고 하다가 보니깐, 책상에 큼지막하게, 하얀 글씨가 써 있어요. ‘찌질이’, ‘생리대녀’...그래 휴지. 휴지가 어디 있지...뒤뚱하게 걸어서 교탁 위에 있는 휴지를 가져와서, 닦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소재의 책상에 분필로 쓰여진 거라 쉽게 지워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있는 힘껏 북북 문질러서 닦았습니다. 누가 쓴 건지는 알고 있어요. 어제 그 애들...제가 이거 닦는 모습을 웃으며 구경하고 있는 그 애들. 그리고 바로 제 옆자리의 짝도, 손으로 턱을 괴고 재밌다는 듯이 저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는, 너무 오랜만에, 분하다는 생각을 해 버렸어요. 그래도 그런 나쁜 생각하면 안 돼...에이 그래도 장난인걸...친구한테 화낼 수는 없잖아...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또 지난밤처럼 눈가가 축축해져서, 되는대로 표정을 굳게 하고 조용히 닦고만 있으려니, 우리반 남자애 한 명이 제 옆으로 와서, 휴지를 뜯어서 같이 닦아줘요. 그리고선 평소보단 조금 작은 목소리로, 힘든거 알겠는데, 참아, 하고 말하고선, 책상이 그나마 깨끗이 정리되니, 도로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어요. 그리고 별 일 없었던 것처럼, 샤프를 들고 책에 있는 문제를 푸는 그 애를 보고선, 묘하게, 얼굴이 뜨거워졌어요.
그 날부터, 저는 수업 때나 밥 먹을 때나 청소할 때나, 그 애를 힐끗힐끗 쳐다봤어요. 다른 애들이 볼까봐서, 어쩌다가 그쪽으로 고개가 돌아간 척, 매일 그 애를 봤어요. 여자애들은 늘 하던 것처럼 저한테 이것저것을 시키지만, 그러면은 예전에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울적했지만, 이제는 모든 일이 다 신나졌어요. 집에 가면 또, 엄마는 맥주랑 계란찜으로 범벅이 된 숟가락을 휘휘 휘두르며, 저를 혼내시지만, 그것도 이젠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전처럼 설치지 않고 잠들고, 잠에서 깨어나면 개운하고, 웃으면서 학교에 가요. 수업도 재미있고, 야자 때도 공부가 잘 돼요. 아!! 내일 빼빼로데이였지!! 혼자 집에 가다가 괜히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선, 마트로 가요. 정말로 집에날 기념해서 행사를 하네. 길이도 제각각이고, 어느 것은 색깔도 색다르게 핑크나 화이트, 포장도 너무 예뻐요. 신기해서, 빼빼로 코너만 한참을 들여다보는데, 값이...어뫉서 빼빼로가 이렇게 비싸졌나? 포장도 이쁘고 양 많은 걸로 사고 싶은데...지갑엔 이천 원밖에 없는데...
할 수 없어서, 이쁜 걸로는 못 사고, 천 원씩 하는 아몬드 빼빼로랑 누드 빼빼로로, 세트로 된 걸 사요. 이런 종류도 있었구나...근데 양은 적어 보인다아...도합 이천 원. 그래도, 이런 거 누구한테 선물하는 거 처음이야.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뭘 그리 히죽헤죽대냐고 하시지만, 저는 방으로 들어가서 빼빼로를 가방에 챙겨 넣고, 잠에 들었어요.
이 날은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났어요. 재빨리 머리 감고 세수하고, 그리고선 교복 입고 우당탕탕 대문을 여니깐, 뒤에서 아직 잠이 안 깨신 엄마의 늘어진 외침이 들려요. 미안해요 엄마아, 저 오늘 일찍 나가야 돼. 아직 하늘이 어두컴컴한데, 학교에 들어서니, 저 혼자뿐인가 봐요. 으으 아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가방의 지퍼를 열고, 어제 산 그것을 꺼내요. 지금 보니 포장이 이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네. 만화에서 보면 이런 거 책상 서랍에다가 많이들 넣던데. 그 애 자리로 성큼 걸어가서, 서랍에 쑥 집어넣고, 다시 몇 발치 물러서서, 그 애 책상 서랍에 제 선물이 꽂혀 있는 걸 봐요. 한참을 계속 보면서, 실실 웃고. 그 때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더니, 남자애 한 명이 들어와요. 쟤는...그 애랑 친구지...눈이 마주치니, 아무 말 없이 저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자기 자리에 가서 앉고, 엎드려서 자요. 휴 다행이다, 눈치는 못 챈거지...
날이 밝아지고, 애들이 하나둘씩 교실에 채워지면서, 저는 차차 긴장이 됐어요. 그거 보고선, 걔는 뭐라고 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떡해애. 그러던 중에 옆자리 짝이 저한테 화를 내요. 야, 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입 다물어 봐. 아아...헤...미안해....
다른 애들이 다 들어오고 나서쯤, 걔도 교실에 들어와요. 아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저는 괜히 움츠러들어서, 그 애만 보고 있었어요. 책상 서랍에서 책을 꺼내려 하더니, 제 선물을 손에 잡는 듯 싶더니, 다른 애들 앞에서 꺼내들어요. 야 이거 뭐야. 하하하. 야 씨~ 오늘 첫 빼빼로다~ 그렇게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저는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고, 아아, 너무너무 행복해서...고개를 숙이고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는 저를, 옆자리 짝은 뭐가 좋아서...라며 힐끗힐끗 쳐다봐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어요.
청소 시간에, 제 일은 쓰레기통 비우는 거예요. 원래 남자애들이 하기로 한 일이고, 저는 칠판 청소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친구들 부탁이라, 전부 제가 하는 거예요. 평소처럼 소각장까지 가서 쓰레기통 비우고, 교실로 들어오니, 반 애들이 저를 보고 킥킥 웃기 시작해요. 그러더니 금방 저를 에워쌌어요. 야, 쟤한테 빼빼로 준 거 너라매? 끼하하하. 야 생리대녀가 하명이 좋아한대~!! 끼히히. 에하하하.
그래요. 그 애의 이름은 조하명이에요.
아, 아니야. 내가 준 거 아니야......구라까네 미친 년!! 너가 한거 쟤가 봤다는데? 아이들 무리 속의 한 여자애가 가리킨 남자애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쟤는 아침에 봤던...
순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를 둥글게 에워싼 애들의 얼굴, 그게 그렇게 무서워 보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무리를 헤집고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하명이에요. 저는 그 애를 보고, 울음을 애써 참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근데, 제가 준 선물이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야 이 쌍년아, 남 쪽팔리게 뭐하는 짓이여? 하~ 나 이거 씨...야 이거 너나 집에 가서 니네 엄마랑 쳐먹어. 형광 포장지에 싸여 있는 선물은, 이내 제가 들고 있는 빈 쓰레기통 속에 던져졌습니다.
일순간 주위에서 오~!! 하는 함성이 들렸습니다. 야 하명이 너무 냉정하다!! 카하하. 야 넌 또 뭐하고 있어. 사랑하는 왕자님께 고백 한번!! 키히히히.
고백해!! 고백해!! 사랑을 이뤄라!!
함성은 마치 짜여진 것처럼 하나의 구호로 변해갔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든 쓰레기통 속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는 어찌 되어도 상관 없었어요.
나...하명이가 좋아.
뭐라는 거야? 미친 년이.
그...렇지? 기분 나쁘겠네...미안해......
죽여버리기 전에 그만 해라.
하명이도 반 애들도, 누구도 이미 저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는 걸, 저는 바보라서, 모르고 있었어요. 저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한 사람의 울음소리가 지쳐가면 지쳐갈수록, 주위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그 애의 생일도
키랑 몸무게도
좋아하는 음식도
취미랑 이상형도
혈액형과 별자리까지도
저는 전부 알고 있습니다.
항상 미니홈피를 들여다보며 외웠거든요.
그리고 그 애가 다닌다는 카페들. 일부러 가입해서, 생전 처음 보는 멋있는 브랜드 옷들, 재미나고 세련된 소설들. 그런 것들을 열심히 봤어요. 마치 그 아이 자신이 된 것처럼요.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이 무지 어둑어둑해져 있네.
학교 옥상. 어쩌다가 제가 여기 있는지는 몰라요. 그냥 한번 와 보고 싶었어요.
바람이 차가운데, 그리 추운지는 모르겠어요.
난간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 경치를 봐요.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 저마다 집에 가느라 정신없는 사람들...거리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밑에, 그 사람들은 아주 잘 보였어요.
여기에서 동네를 보고 있자니, 꼭 제가 일개미들의 행진을 내려다보는 꼬마애 같아서, 어색하기도 하고, 웃음이 픽 나왔어요.
이번에는 하늘을 쳐다봐요.
아, 달이다.
맨날 학교 끝나면 고개 숙이고서 집에 가느라 달을 똑바로 본 적이 별로 없었어.
있지, 하명아.
너가 있어서 며칠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집에 갈 수 있었어.
나는 니가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저 달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어.
그래서 항상 고마워.
있지, 하명아.
사람은 누구든지 나중에 별이 된다고, 어렸을 때 이야기 같은 거 많이 들었잖아?
근데 난 별보단, 달에 가고 싶어.
새까만 밤 하늘에서 제일 은은하고 이쁘게 빛나는, 달에서, 너를 한평생 바라보고 싶어.
그래 달나라로 가는 거야
날아가면 돼
너도 나한테 방해받지 않을 거야
이렇게...한 걸음 한 걸음...가면 갈 수 있어
한 걸음씩만 더 가면......
휴일 새벽부터, 학교는 일대 난리가 났다. 학생이 화단에 떨궈져 있는 걸, 교직원이 본 것이다. 현장을 본다며 경찰들이 열댓 명이 몰려온 새에, 교장은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사장님” 하며 휴대폰을 들고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또 그런 교장에게 도대체 옥상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 하고 온갖 욕지거리를 듣는 교직원들은,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또-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부닥친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별 철없는 년이 다 있네. 왜 하필 여기서 몸을 던지누? 결국 피딱지 하며 살점 치우는 건 우린데...”
동네 사람들 또한 몰려와서, 혀를 끌끌 차기도 했고, 어느 집의 누구 자식인지 부모가 참 불쌍하게 됐다고 웅성대기도 했다. 이렇게 한바탕 새벽부터 저녁까지 난리를 피우다, 해가 저물자 다들 춥다고, 또는 오늘 일 대강 끝났다고, 얼마 남아있지 않던 경찰과 구경꾼들도 하나둘씩 흩어졌다.
아무도 남지 않은 화단엔, 평소 잘 비치지 않던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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