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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53호 2010. 6. 11. 11:34
편집위원 수화
그런 시가 있다.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가 띵해지는 시. 한동안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아무 것도 못하게 하는 그런 시가 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도 그런 시였다.
나는 매번 사소한 일에 상처받는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어릴 적 바람은 늘 바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는 강한 바위. 겉도 속도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단단해서 아파할 마음도 없는 바위가 되고 싶었다. 좁은 내 속이 상처를 받을 때마다 너무 쓰리고 아파서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사람들과 부대껴 살며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하는 일이 너무나 겁났다. 내가 강한 사람을 원하면 원할수록 약한 내 모습이 너무나 미웠다. 외면하기도 했고 부정하기도 했다. 속은 상처를 받든 말든 강한 척 가면을 쓰고 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외면하고 부정해버리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웃고 강한 사람인 양 말해도 내 상처받은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완벽히 나를 숨길만큼 난 똑똑하거나 영악하진 못했으니까. 처음엔 내 약한 모습 보여주는 게 너무 창피했다. 내 상처를 보일 때는 마치 발가벗겨진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내 못난 마음을 보이는 일은 낯설고 어색했다. 그런데 마냥 부끄럽기만 했던 맘이 이상하게 차차 편해졌다. 가벼워졌다. 나 자신을 인정한 것이었다. 나를 나 자체로 온전히 인정하는 것. 약하든 강하든 멍청하든 똑똑하든 나를 나로서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내가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설사 바보 같은 모습일지라도 온전한 나 그 자체로서 그들과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었다.
나는 안다. 내가 약한 사람이란 걸. 그래도 이젠 싫지 않다. 좀 약하면 어떤가. 지금은 이렇게 약해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커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강해지지 않을까. 그땐 내 마음이 조금은 더 넓어져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성장의 첫 걸음은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걸 내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가르쳐주고 있다. 마음까지 단단한 바위보단 이리 저리 젖고 흔들려서 작고 소박하나마 꽃망울을 터트리는 꽃이, 그러한 삶이 더 아름답단 것 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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