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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진지하게 세상에 한 발 내딛기53호 2010. 6. 11. 11:36
편집위원 정승균
나는 평범했을까? 어렸을 때, 나는 꿈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특별히 없었고 늘 옆자리 친구의 영향을 받아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하기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졸업을 앞에 두고 꿈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꿈을. 당시 나는 운동에 큰 선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현실과 꿈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운동의 전설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었고 내가 들어왔던 대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였을 뿐이며, 왕년의 투사였다던 선배는 그냥 속좁은 선배였을 뿐이었다. 가장 중요하게도 나는 운동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인간이 덜 된 존재였다. 노동운동을 동경했지만 나는 노동자이지 않았으며 노동자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운동’이라는 이름의 허세를 부리고 있을 뿐이었다.
군대에 들어가면서, 대학에서는 온갖 잘난척을 하는 인간이었던 나는 라면하나 제대로 못 끓이고, 빨래하나 제대로 못하는 평범축에도 못 끼는 모자란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한 것 만으로도 군대는 나를 사람의 방향으로 가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곳이었다. 제대 후에는 학비를 벌기위해 노동을 해야 했다. 백화점에서 하청 비정규직으로, 정부발주 사업에서는 4대 보험료가 아까워 위장 자영업자로 내 노동력을 팔았다. 서울에서 촛불이 켜졌지만 알바현장의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하청 알바를 지휘․감독하는 백화점 정규직과 법에 규정된 액수에 미달된 야간수당을 주는 하청회사에 대한 증오, 그리고 이를 참고만 있는 나 자신에 대한 경멸에 쏠려 있었다. 나는 바라지 않았지만, 노동자가 되어야 했고, 되어 버렸다.
얼마 후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조금 솔직해졌고, 조심스럽게 꿈을 위해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2010년 3월 13일. 나는 국내 첫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청년, 그중에서도 20대이며, 주기적으로 학기가 끝나면 학생에서 비정규직노동자로 변신하는, 졸업 뒤에 다가올 청년실업에 무력한 개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청년유니온 속에서 극히 평범한 존재다. 나는 지금 청년유니온에서 매월 조합비를 내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허세 뿐이었던 내가 평범한 인간으로 세상과 진지하게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첫걸음이니까. 이제 첫발을 내딛는 나 자신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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