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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드라마, 정말 재미있기만 했나요?82호(2023)/뫼비우스의 띠 2023. 12. 29. 21:25
박지윤 수습위원
문화를 자국민끼리만 소비하던 시대는 끝났다. OTT의 발전으로 국가 간의 문화 장벽이 허물어졌고,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이 너무나도 쉬워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 콘텐츠의 세계화는 막대한 무역 흑자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마냥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낮은 인종차별 감수성이 제대로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어떤데?
2019년에 발표된 설문조사 1를 함께 살펴보자.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이주민이 68.4%를 차지했다. 4년이 흐른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을까. 통계청 통계개발원이 9월 내놓은 《체류 외국인의 한국 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5명 중 1명이 최근 1년 내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인종차별적 체험은 대중매체에서도 나타난다. 다음은 “TV, 영화 등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인종주의적 편견”에 이주민들이 답한 통계이다.
항목 매우 그렇다 조금 그렇다 합계 이주민의 능력이나 성품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14.8% 30.2% 45% 이주민의 종교, 문화, 전통 등을 부정확하게 묘사한다 13.8% 26.5% 40.3% 이주민을 한국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로 묘사한다 13.0% 35.1% 48.2% 이주민을 폭력적이거나 위험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14.1% 26.2% 40.3% 백인이나 선진국 출신 이주민들만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25.5% 21.5% 47.0% 대체로 40% 이상의 이주민들이 한국 대중매체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을 느끼고 있다. 이주민 10명 중 4명은 한국의 콘텐츠를 시청하며 차별적 편견을 발견한 것이다. 동일한 설문조사를 한국 교원 및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대부분 50%를 넘기며 더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히 “이주민을 한국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로 묘사한다”라는 항목에서는 74.1%가 그렇다고 답했고, “백인이나 선진국 출신 이주민들만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라는 항목에서는 73.7%의 높은 동의율을 보였다. 꼭 이주민 당사자들만이 느끼는 불편함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문화를 자국민끼리만 소비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적 편견 또한 수출하고 있다.
우리 콘텐츠에 끊임없이 켜지는 적신호
드라마 < 킹더랜드 > ⓒ JTBC 올해 7월, 드라마 <킹더랜드>는 아랍 문화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아랍 왕자인 ‘사미르’가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바람둥이 캐릭터로 묘사된 것이다. ‘사미르’의 클럽 방문 및 음주 장면을 내보낸 것 역시 타문화 훼손에 한몫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랍권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아랍권 시청자들은 이러한 설정에 ‘아랍 문화에 대한 무시’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킹더랜드> 제작진 측은 “특정 국가나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나 타 문화권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 2라는 요지의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련 장면을 삭제하였다.
드라마 < 작은 아씨들 > ⓒ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베트남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베트남 정부가 방영 중단을 요청한 작품이다. “한국군 1인당 베트콩 스무 명을 죽였다.”라고 말한 장면 3 등이 베트남 전쟁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언론들은 ‘이러한 설정들이 한국군을 전쟁 공로자로 묘사하고 있다’라는 이유로 불쾌감을 표했다. 지금은 베트남 정부 측의 요구로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방영이 중단된 상태이다. <작은 아씨들>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에서는 “향후 콘텐츠 제작에서 사회적·문화적 감수성을 고려해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4
드라마 < 라켓소년단 > ⓒ SBS 국가를 비하하여 논란이 된 사례들도 있다.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는 인도네시아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배드민턴 국제대회 에피소드가 화두에 오른 것이다. 우선 인도네시아 주최가 한국 선수들에게 엉망인 숙소와 낡아빠진 경기장을 배정해 주었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어서 인도네시아 팬들이 한국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등장했고, 그러한 모습을 본 한국 코치들이 인도네시아 팬들을 “개매너”라고 칭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SBS 측은 “특정 국가나 선수, 인종을 모욕할 의도가 없었으며 일부 장면들로 인해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해드려 죄송하다.” 5라는 사과문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였다.
드라마 < 수리남 > ⓒ NETFLIX 이러한 국가 비하 문제는 외교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드라마 <수리남>은 수리남이라는 실존 국가를 ‘마약 국가’로 그려내며 외교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작중에서 수리남은 국민의 대부분이 마약 사업과 연관이 있고, 정부가 이러한 비리에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에 대해 알베르트 람딘 수리남 외교장관은 국가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드라마로 인해 다시 나빠지고 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또한 제작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안은주 외교부 부대변인은 “외교부는 수리남과의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해 지속 노력 중”이라고 발표했다. 6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문제가 되나요?
제작 측의 사과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무지에서 일어난 일이며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것. 이러한 주장이 거짓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위의 작품들이 의도적으로 타문화에 대한 편견 의식을 드러내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몰랐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라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차별적 묘사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라켓소년단>이나 <수리남>의 경우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인종차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에 불쾌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한 집단을 부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신중해야 할 사안이다. 전 세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것을 반기는 사람이 있을까? 단순히 흥행을 위해 사용한 장치가 누군가에겐 영원히 떨칠 수 없는 이미지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외국의 시청자들도 소비자로 상정한 이상, 관련된 주제를 세심하게 다루는 자세를 지녀야만 한다.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
이러한 논란들을 콘텐츠 제작자 개인의 몰이해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인종차별 및 타문화 훼손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정확히 알지 못하는 집단을 묘사할 때, 차별적인 고정관념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실존하는 국가나 집단을 다룰 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또한 콘텐츠 제작 시점에서 꼼꼼한 자료 조사와 정확한 검수가 필요할 것이다.
미래의 콘텐츠 제작자들, 그리고 콘텐츠를 열렬히 소비하는 학생들이 다시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오늘 당신이 본 영상을 전 세계인들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지. 작은 물음표 하나가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발걸음이 될 수 있다.
- 1. 김지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국가인권위원회, 2019. [본문으로]
- 2. 황재하, 『'킹더랜드'에 아랍권 시청자들 뿔났다…"아랍문화 왜곡"(종합)』, 2023.07.10.,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30710110151005> 최종 검색일: 2023.11.06. [본문으로]
- 3. 신진호, 『드라마 ‘작은 아씨들’, 베트남 넷플릭스서 퇴출 왜?[이슈픽]』, 2022.10.07.,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1007500037> 최종 검색일: 2023.11.06. [본문으로]
- 4. 김효실, 『‘작은 아씨들’, 베트남 넷플서 방영 중단…‘이 대사’가 문제였다』, 2022.10.12.,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61854.html> 최종 검색일: 2023.11.06. [본문으로]
- 5. 민경원, 『“개매너 아닌가요” 라켓소년단, 인도네시아 비하 논란에 사과』, 2021.06.18.,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85718#home> 최종 검색일: 2023.11.06. [본문으로]
- 6. 신승민, 『“마약 국가라니” 수리남 반발…세계적 주목 받는 ‘K드라마’의 숙제』, 2022.09.17., KBS 뉴스,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557921 > 최종 검색일: 2023.11.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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