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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어린아이였고, 머지않아 노인이 될 당신에게82호(2023)/뫼비우스의 띠 2023. 12. 29. 17:47
이승연 편집위원
“어른들이 조용히 있고 싶고, 아이들이 없어야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생각한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 하는 그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2018년 11월 동화 작가 전이수 씨는 동생의 생일에 가족과 함께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출입을 거부당해 슬펐던 경험을 일기로 써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단지 어린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식사하지 못했다. 수많은 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내 일이 아니니깐 별 상관없어.’, ‘일단 나부터 편하고 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따라서 타인, 특히 상대적으로 나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라 느끼는 약자를 쉽게 소외시키고 그들에 공감하지 못한다. 정녕 모두가 같이 살아가는 사회는 더 이상 우리의 선택지에 없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배제해야 할까.
노키즈존의 실상
‘노키즈존’은 영유아나 어린이가 출입할 수 없는 업소를 지칭한다. 이 단어를 처음 들으면 아이들이 접근하기 위험하거나, 정서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공간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해 둔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영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이들을 동반한 고객의 출입을 제한하는 업소를 지칭하며, 어린이들을 적대시하고 차별하여 그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약자인 영유아와 어린이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쉽게 배제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노키즈존 문제는 옛날부터 꾸준히 조명되었다. 2021년 11월 한국리서치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1%가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74%) △매장 환경이나 분위기 개선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등이 꼽혔다. 1노키즈존이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인가라는 질문에 74%가 동의했는데, 누구와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손님으로 온 아이들과 아이를 동반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의문이다.
2023년 2월 제주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노키즈존 현황과 쟁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에서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업소는 542곳으로 확인됐다. 2 경기도가 80곳으로 가장 많았고, 제주도가 78곳, 서울시가 65곳으로 뒤이었다.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실제 노키즈존 영업장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3 올해 9월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제주도 내 노키즈존이 85곳으로 늘었다고 한다. 4
명백한 아동 차별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서는 ‘누구든 사회적 신분에 의해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서는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상업시설 이용에 특정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이자 차별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 이 준칙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단지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 차별이다.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13세 이하 아동과 보호자의 이용을 금지한 식당에 대해 차별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5 당시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며 앞서 언급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를 근거로 덧붙였다. 6
노키즈존은 우리나라가 비준 동의한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1조 휴식, 여가, 놀이, 오락활동, 문화활동, 예술에 관한 아동 권리에 대한 일반논평’에도 위반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동의 권리를 임의로 제한해서는 안 되며, 이에 관해서도 인권위는 “일부 아동의 산만한 행동이나 보호자의 무례한 행동을 이유로 모든 아동 및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의 식당 이용을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일부의 사례를 객관적·합리적 이유 없이 일반화한 것에 해당한다”고 짚고 넘어갔다. 7
또 다른 차별을 자아내는 노키즈존
중학생 출입을 금지한 스터디 카페와, 대학 교수들의 출입을 제한한 대학가 술집 안내문 ⓒKBS 뉴스 영상 갈무리 및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49세 이상 손님은 사절한다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서울 관악구 소재의 노시니어존 음식점.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노키즈존이 대거 생겨나면서 최근에는 특히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이 생겨나고 있다. 8노시니어존은 올해 초 일부 음식점과 카페에서 ‘49세 이상 출입금지’, ‘60세 이상 출입금지’ 문구를 내걸면서 등장했다. 지난 9월 25일 프랜차이즈 카페 ‘빌리엔젤’ 직원이 노인 고객에게 ‘매장 이용 시간이 길다. 젊은 고객님들이 아예 이쪽으로 안 온다’며 나가라는 쪽지를 전한 일도 있었다. 빌리엔젤 본사는 노인 차별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직원이 쪽지에 ‘젊은 고객님들’이라고 적은 것을 두고 일각에선 “나이가 문제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빌리엔젤 본사는 9월 26일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고객 응대에 있어 나이, 성별, 인종, 이념 및 사상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가 잘못된 행위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9
노키즈존, 노시니어존 뿐만 아니라 노유스존(No Youth Zone), 노스터디존, 노향수존, 노래퍼존 등 ‘노존(no zone)’이라고 이름만 갖다 붙이면 새로운 차별이 계속 생겨난다. 이처럼 하나의 차별은 또 다른 차별을 자아낸다. 노혜련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키즈존이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시작하면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0
어떤 새로운 ‘노존’ 현상이든 그 이면에는 배제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노존의 확대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차례가 최대한 늦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한 번 생겨난 편 가르기가 우리에게 어떤 화살로 돌아올지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노키즈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식당 내 유아 관련 사고 판례를 살펴보았을 때, 법원의 잘못된 판결이 노키즈존의 확대에 부채질했다고도 볼 수 있다. 2008년 대구지법은 충북 제천의 한 숯불갈비 식당 안에서 뛰어다니던 만 24개월 된 아이가 화로를 옮기던 식당 종업원과 부딪쳐 화상을 입은 사건에서 식당 주인과 아이의 부모가 절반씩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아이의 부모는 식당 주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화로의 위험을 식별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가 돌아다니는 경우 종업원이 아이의 움직임을 살펴 부딪치지 않도록 주의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사고가 났다”며 “이는 종업원이 주의 의무를 게을리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에 따라 식당 주인은 부모에게 총 1,100여만 원을 지급하게 됐다.
비슷한 판결은 또 있다. 식당 내부 통로에 세워둔 유아차에 종업원이 된장찌개를 쏟아 4세 아이가 화상을 입은 사건에서 의정부지법은 식당 주인의 책임을 70%로 판단했다. 당시 식당 측은 식당 내 유아차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안내문을 게시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종업원은 뜨거운 음식을 운반할 때 쏟아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히 손님 식탁에 놓아야 하고 유아가 있다면 더 주의해야 하지만 이를 게을리했다”며 치료비 880여만 원의 70%인 620여만 원과 위자료 550만 원을 더해 총 1,17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1 이러한 업장 내 아동에 의한 안전사고 등에 대해서는 대부분 주의 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업주 측이 과도한 책임을 강요받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했거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일부 업주들은 노키즈존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12
노키즈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신중한 판결이 매우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법원은 cctv 등과 같은 객관적 자료와 인과관계를 파악한 후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 만약 업주의 책임이 없다면 아동을 방임한 보호자가 책임을 지도록 판결해야 하며, 과실 책임에 대해 어느 쪽도 억울하지 않도록 공정한 판결을 해야 한다. 정부 역시 아이에게 유해하거나 아이가 출입해서는 안 되는 마땅한 이유가 있는 곳만 노키즈존 설정이 가능하도록 그 기준과 제도를 정확히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논란을 잠재우고 모든 국민의 평등권을 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국가의 대처 전에 아무런 사회적 합의 없이 무작정 사고와 피해를 막고자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 업주들은 사고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고, 오직 아이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더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함양하고, 보호자들은 아이들에게 더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는 바이다.
“차별을 통해 쾌적함을 추구하는 노키즈존이 당연시해지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뭔가를 결정할 때가 올 거다. 그때 서로 불편을 감수해 가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간편하게 불편을 제거하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불편’이 될 수 있으므로.” 13 - 손희정 문화비평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노력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 부모님 세대와 아주 조금 더 보태서 지금 학창 시절을 누리고 있는 우리 세대까지는 어느 정도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오히려 아이들을 통제하고, 소외시키며, 노키즈존과 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오직 아이와 함께하는 자만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역시 어린아이일 때가 있었고, 그 어린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상에 갓 발을 들이고, 그 경험 속에서 실수한 뒤 얼굴을 붉힌 경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배우고 고쳐나갈 기회를 얻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를 이해해 주고,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을 당연하게 누려왔다. 하지만 여태 누려온 것들을 다 잊은 듯이 현재의 우리는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고, 고작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세대들도 누려야 할 기회를 당연하게 박탈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하려고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 서로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고, 타인을 향하는 관용과 이해의 태도가 우리 사회에는 절실히 필요하다.
- 1. 고원상, 『조례까지 만들어지는 노키즈존 ... 찬성 vs 반대, 다양한 의견들』, 2023.05.04., 미디어제주, <http://www.media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344347>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2. 박경철, 『“노키즈존, 아동 차별하는 어른들의 생각”』, 2023.08.30., 제주도민일보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963>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3. 김해나·박소영, 『출산율 꼴찌인데 되레 늘어나는 ‘노키즈존’ 업소』, 2023.07.24., 전남일보, <http://www.jnilbo.com/71067230091>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4. 민소영, 『전국 첫 ‘노키즈존 금지 조례안’ 추진…무엇을 남겼나?』, 2023.09.22., KBS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780722&ref=A>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5. 김주연·곽소영, 『아이 출입 막는 식당·카페에 “갈 곳 없다”…“차라리 해외가 편해요”』, 2023.05.24.,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524500209>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6. 황금비, 『인권위 “‘노키즈 존’ 식당 운영은 아동 차별 행위”』, 2017.11.24.,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0562.html>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7. 황금비, 『인권위 “‘노키즈 존’ 식당 운영은 아동 차별 행위”』, 2017.11.24.,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0562.html>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8. 위 두 사진의 출처는 다음 기사다. 신승민, 『“애들도 어른도 가라”…‘노(No)○○존’의 진화, 권리인가 차별인가?』, 2022.11.20., KBS뉴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605516>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9. 정소영, 『세대갈등 부르는 ‘문전박대’…노키즈·노시니어존 운영 설왕설래』, 2023.10.10., 일요신문,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60145>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10. 최은희, 『노키즈존서 쫓겨난 어린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2022.05.05., 다음 쿠키뉴스, <https://v.daum.net/v/20220505070201945>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11. 한정수, 『식당서 뛰다가 화상 입은 아이…누구 책임일까?』 , 2018.06.30.,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062715048268608>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12. 한정수, 『식당서 뛰다가 화상 입은 아이…누구 책임일까?』 , 2018.06.30.,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8062715048268608>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 13. 서보미, 『개는 되지만 아이는 안됩니다』, 2020.05.02., 한겨레21,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4056.html> 최종 검색일: 2023.11.0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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