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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 바로 지금79호(2021)/뫼비우스의 띠 2021. 12. 2. 13:07
박연지 편집장
인간의 존엄이 타협될 수 있는가. 삶이 유예될 수 있는가. 인권에 합의가 필요한가. 정치인들은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을 ‘나중’으로 유예한다. 그들이 말하는 ‘합의’란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움으로써만 가능하며, 어떤 유예는 존재를 짓밟는 가해이다. 정치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하고 혐오를 묵인할 때 시민들은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지난 6월 14일, 1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이 이루어졌다. 모두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위해 시민들이 연대한 결과이다.
유예, 묵살, 외면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입법 권고에 따라 처음 발의되었다. 17대 국회부터 2013년 19대 국회까지 총 7번의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거나 반대 세력에 밀려 입법이 철회되고 포기되었다. 차별 없이 평등한 세상은 단 한 번도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는 네 개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해당 네 개의 법안이다. 네 법안 모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차별 사유에 포함한다는 큰 뼈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차별 사유의 개수, 차별 영역과 진정인에 대한 구제 방안 등에서 차이가 있다. 1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8.5%가 “우리 사회의 차별 시정 정책으로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한다.”라고.” 답했다. 이미 국민의 다수가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에 찬성하고 있으나, 법률 제정이 번번이 무산된 까닭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강력하고 조직적인 반대 활동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10만 국민동의청원이 이뤄진 후 국회의 행보는 어떠한가.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을 달성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국회에서 해당 청원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시 청원의 심사 기한을 60일 이내로 연장할 수 있으며, 연장 후에도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법제사법위원회의 의결로 추가 연장할 수 있다. 8월 24일, 국회 본회의에 올릴 법안을 결정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으나, 차별금지법(평등법)은 아예 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9 2월 8일,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의 심사 기한을 11월 10일까지로 연장했다. 3 8 4월에도, 9월에도 모두가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한 사유’는 없었다. 11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11월 10일까지였던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심사 기한을 2024년 5월 29일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5해당 날짜는 21대 국회의 임기 만료일이다. 21대 국회는 국민동의청원 심사를 미룰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까지 미룬 것이다. 6합당한 ‘특별한 사유’는 여전히 없었다. ‘심도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회가 제시한 사유인데,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논의를 하루빨리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7. 지금 국회는 논의 자체를 ‘나중’으로 미루고만 있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실존하는 ‘삶’이 유예될 수 있는가. 국민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국회의 의무이다. 현재 국회가 보이는 행태는 엄연한 직무유기이며 업무 태만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세 명의 의원이 ‘평등법’을 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해 “민주당 당론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으며 앞뒤가 다른 행보를 보였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9일 전남 우리목포교회에서 열린 전남 지역 시민공청회에 참여해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했다. 그는 “동성애 찬성만 자유이고, 반대는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을 늘어놓았다. 8어떤 존재를 ‘반대’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며, 혐오이고, 폭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혹은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걸까. 정치인들은 언제까지 보수 기독교 단체를 등에 업고¹ 시민들의 자유와 평등을 유예하고, 고통을 묵살하며, 존재를 외면하는 가해를 할 것인가.
¹ 보수 기독교 세력은 조직적으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특히 차별금지법의 차별 사유 중 ‘성적 지향·정체성’ 항목에 반대한다. 개신교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이 논의될 때마다 국회의원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국회 정문 앞에서 대규모 농성을 하는 등 강력하게 반대 활동을 벌여왔다. 개신교계와 정치권 사이에는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 21대 국회의원 중 41%가 개신교인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의 고소득층 가운데 개신교인이 많기에 나타나는 과다 대표 현상이다. (출처: 에디터 우리, 『차별금지법, 왜 지금까지 통과 안 됐지? [정치 편]』, 2021.06.18., 닷페이스, <https://dotf.kr/3jw77Pw>, 마지막 검색일 : 2021.11.09./ 이주민, 『왜 차별금지법인가』, 스리체어스, 2021, 54~60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정치권의 지속적인 혐오와 차별 조장에도 시민들은 자유와 평등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타협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힘을 모아낸다. 평등을 향한 여정에서 시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걸음을 내딛는 동안 든든한 셰르파²의 역할을 하는 연대체가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 실천하는 연대체” 9이다. 현재 차제연에는 161개의 시민단체가 소속되어 있다.
차제연은 지난 8월과 9월에 전국 16개 지역에서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위한 전국순회 시민공청회’(이하 ‘시민공청회’)를 개최했다. 시민공청회는 8월 13일 창원에서 시작되어 9월 11일 김해에서 막을 내렸다. 모든 시민공청회는 방역을 위해 비대면으로도 참여가 가능했으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이 함께 진행되었다.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는 각 지역 시민들은 시민공청회에 모여 차별금지/평등법안의 쟁점과 의미를 토론하고, 지역별 의제를 공론화했다. 10시민공청회를 통해 각 지역은 연결될 수 있었으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다.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논의 자체를 미루고 책임을 방기 하는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서울 국회의사당까지 매일 약 20km씩을 행진한 사람들이 있다. 11차제연의 이종걸 공동대표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행진에 필두로 참여했고, 시민들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함께 걸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발걸음은 10월 12일 부산에서 출발하여 11월 10일 서울 국회 앞에 도착했다. 11월 10일은 국회가 이전에 제시했던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의 심사 기한이다. 국회는 결국 또다시 심사 기한을 미뤘지만, 국회가 ‘미룬’ 심사 기한 날짜에 ‘맞춰’ 도착한 시민들의 굳건한 발걸음은 그 답을 듣기 전까지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² 셰르파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에서 안내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칭한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셰르파는 등반가와 ‘함께’ 등반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여정의 모든 순간에서 시민들과 ‘함께’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생존의 문제
혐오와 차별을 법으로 막아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것이 사람을 해치고 죽이기 때문이다. ‘비시민’은 ‘시민’으로서 보장받는 법률과 제도 등의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생계를 위협받는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사회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이 이분법적으로 규정되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서열화되고 사회적 위계가 재생산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정상’ 범주에 속한 ‘시민’과 그렇지 못한 ‘비시민’이 나뉘게 된다.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하면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쉽게 타자화되며 삶이 불안해진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일부 ‘사회적 약자’만이 비시민으로 낙인찍혀 차별을 겪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언제든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타자’가 될 수 있고,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과 속한 집단에 대한 편견만으로 평가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연대하는 일은 곧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 서로를 지켜야 자신 역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자신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차별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이에 무관심하거나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어딘가에 공고히 존재하는 차별을 용인한다면, 그 반대편에서의 차별 역시 받아들여질 것이며, 사회는 모든 종류의 혐오와 차별에 관대해질 것이다. 용인되는 수많은 차별은 기어코 세상의 균열을 더욱 크게 만들어 우리가 딛고 선 바닥을 무너뜨릴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연대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
차별금지법 제정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여정의 도착지가 아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과 자유를 가리키는 이정표일 뿐이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에도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일상의 곳곳에서 생생하고 역동적인 사유와 실천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여정에서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덜 취약해지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의 사유와 실천이 나아갈 방향을 또렷이 제시할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연대의 결과가 아닌, 시작이다.
함께 행복할 용기
차별금지법은 차별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설명하고 해소할 확장된 언어를 제공하는 법이다. 언어가 확장되는 것은 살고 있는 세계가 확장되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를 넓히는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동료시민과 함께해야 한다. 동료시민과 함께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 세계에서는 서로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정체화되지 않은 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고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본연의 모습으로 안전하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용기의 영역이다. 우리는 ‘다 함께’ 행복할 용기를 내야만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용기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권리로 선언되기 위해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 1) 에디터 우리, 『차별금지법, 왜 지금까지 통과 안 됐지? [정치 편]』, 2021.06.18., 닷페이스, <https://dotf.kr/3jw77Pw>, 마지막 검색일 : 2021.10.30. [본문으로]
- 2) 에디터 한슬, 『차별금지법, 국회 논의, 끝까지 지켜보기』, 2021., 닷페이스, <https://dotf.kr/3BxnyCK>, 마지막 검색일 : 2021.11.01. [본문으로]
- 3) 박희정, 『“이 법이 대체 뭐라고 14년 동안 눈치 보고 핑계 대나』, 2021.11.05., 오마이뉴스, <http://omn.kr/1vuz6>, 마지막 검색일 : 2021.11.12. [본문으로]
- 4)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논평] 연장된 심사, 미뤄진 평등 – 국회는 지금 당장 차별금지/평등법 제정에 발벗고 나서라』, 2021.09.08. 차별금지법제정연대, <https://equalityact.kr/2021-0909/>, 마지막 검색일 : 2021.11.12. [본문으로]
- 5) 노윤정, 『국회까지 한 달 걸은 차별금지법연대 “국회청원심사 2024년 연장 통보받아”』, 2021.11.10., KB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321803>, 마지막 검색일 : 2021.11.12. [본문으로]
- 6) 에디터 한슬, 『차별금지법 국회 논의, 딱 30초 이야기하고 2024년까지 논의 기한 미룸』, 2021.11.11., 닷페이스, <https://dotf.kr/3Hec2zs>, 마지막 검색일 : 2021.11.12. [본문으로]
- 7) 에디터 한슬, 『차별금지법 국회 논의, 딱 30초 이야기하고 2024년까지 논의 기한 미룸』, 2021.11.11., 닷페이스, <https://dotf.kr/3Hec2zs>, 마지막 검색일 : 2021.11.12. [본문으로]
- 8) 김성훈, 『김회재 민주당 의원, 차별금지법 우려...“제3의 성 인정하고, 동성결혼 용인하게 될 것”』, 2021.09.13., 조선펍, <http://pub.chosun.com/client/article/viw.asp?cate=C01&nNewsNumb=20210933846>, 마지막 검색일 : 2021.11.01. [본문으로]
- 9)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https://equalityact.kr/> [본문으로]
- 10)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https://equalityact.kr/> [본문으로]
- 11) 신선영, 『[포토IN] 차별금지법 위해 매일 20km를 걷는다』, 2021.11.03., 시사IN,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889>, 마지막 검색일 : 2021.11.0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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