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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모텔 가71.5호(18새내기)/대학IN 2018. 4. 3. 12:48
나 지금 모텔 가
이유림 수습위원 lucy9800@naver.com
‘모텔’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퇴폐적이고 건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99년생 이상이라면 남녀 혼숙이 가능해지는 나이니 드디어 ‘성인’의 영역에 출입할 수 있다는 로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 속에 모텔은 ‘섹스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모텔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청년들은 살 곳이 없다
과거에 비해 모텔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뀐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결국 첫 번째 요인은 ‘청년들의 공간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의 부재가 모텔의 이미지 개선에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실태와 개인적인 공간 축소는 청년들이 모텔을 새 ‘놀이터’라 고 인식하게 만들었다.
구의동에 대학생들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을 짓겠다고 정부가 발표했을 때,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유인 즉, 청년들이 들어서면 모텔, 술집과 같은 혐오 시설이 늘어나 집값이 하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양질의 주거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계획된 구의동 공공기숙사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건설하기로 예정되었던 700실을 500실로 줄이는 등 합의점을 지금도 찾지 못하고 착공도 못한 채 사실상 취소 상태이다. 목동 행복주택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목동 지역에 거주하는 행복주택 건립 반대 주민들은 300일이 넘게 농성 중에 있으며 현재 행복주택 건립 취소에 대한 행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서울 및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저렴하지만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임경지(민달팽이유니온 세입자네트워크팀장), 청년 주거 문제 실태와 현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한계, 2015.2.10., <http://www.peoplepower21.org/Welfare/1240774>, 검색일: 2018.1.22
파괴되고 있는 ‘주거 사다리론’
‘주거 사다리론’을 아는가? 20대 때는 다소 좁고 안 좋은 곳에 월세로 살다가, 직장을 구하면 전세로, 결혼하면 대출을 받아 드디어 ‘내 집’을 마련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도 10평 남짓하는 자취방과 고시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의 청년들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개인적인 활동을 할 공간도, 학우들 간의 교류를 쌓고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다. 사회의 모든 공간들은 자본화 되어있거나, 사유화 되어있다. 대부분의 공간은 진입할 수 없거나 진입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 놀이터, 공원, 거리 등은 카페, 건물, 상가, 도로로 바뀌었고 도서관은 독서실로, 과방이나 동아리방은 예약제로 바뀐 ‘커뮤니티 라운지’라는 관계를 파편화 시키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청년 문화가 점차 소멸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청년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영화, 카페에서 돈을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날이 이를 위한 비용은 증가하고 있다. 집 안에서는 부모님 눈치를 보느라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지만, 그런 집에서 독립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지금의 청년세대다.
★엄아린 편집위원, 대학생 주거, 실격! , 성심71호, 2017.11.27., 68p
모텔이 인기 있는 이유?
마음껏 즐길만한 청년 문화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우선 대중문화를 청년문화라 가정해보자. 대표적으로 영화가 있다. 영화 한 편 보는데 거의 만 원이 든다. 인원이 둘이면 2만원이다.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에 가면 음료 한 잔에 5000원 선이다. 밥 값 보다 커피 값, 디저트 값이 더 비싸다. 그렇다고 음료 한 잔 시켜놓고 주구중창 카페에 앉아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둘이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갔다고 하면 하루에 드는 돈은 약 5만원 정도 든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모텔은 2만원~4만원 사이에 오랜 시간 대실 또는 숙박을 할 수 있다. 요새 모텔은 TV가 있고 컴퓨터도 있다. 영화관에서 막 막을 내린 최신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다. 모텔 로비에는 팝콘, 식빵, 음료수, 토스트기 등이 배치되어있어 간식도 먹을 수 있다. 경제적인 조건을 따져봤을 때 청년들이 모텔을 선택하는 이유다.
모텔을 ‘놀이터’로...청년을 공략한 마케팅
모텔 예약 앱으로 유명한 ‘야 놀자’는 모텔 중개 어플이다. 소비자에게 다양한 모텔의 조건을 보여주고 모텔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것이다.
“모텔 홍보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이용자들이 후기를 남길 수 있게 게시판을 열었는데 '오늘은 여기 데이트가 좋아요' 따위의 글이 올라왔어요. 주 고객층이 2024였는데 모텔 주변의 데이트 코스 정보를 나누더라고요. 그들에게 모텔은 그저 데이트를 즐기는 장소 중 하나였던 거죠. 그때 저도 모텔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2007년부터 모텔 주변 데이트 코스를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이색 카페, 점집, 한복대여점, 맛집을 취재해 모텔 정보와 함께 올리니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점차 양지로 나왔죠." -야놀자 이수진 대표 인터뷰 中-☆
☆유소연, ‘쉬다’ 가는 끈적한 모텔, 직장인·청춘남녀의 놀이터로 만들다, 2018.1.6., <http://v.kakao.com/v/20180106030351242>, 검색일: 2018.1.22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하는 거라고? 그런걸 왜 사? 돈 많아? 야, 놀자!”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모텔의 역할을 단순히 섹스만을 위한 공간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광고 모델이 인형 뽑기를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장 풀에서 노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놀거리 중 하나로 모텔을 제시한다. “삶을 즐겨, 3을 즐겨”라고 말하며 “3번 예약 시 3만원 무료 지급‘을 홍보 수단으로 광고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방에 있는 것처럼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과제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누워서 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모텔은 청년들에게 놀이터나 데이트 장소 정도로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는 숨어서 모텔에 간다
모텔의 이미지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그 말은 우리 같은 청년세대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물론 아직도 ‘모텔=섹스하는 곳’이라고 규정해서 모텔은 ‘문란한 애들이나 가는 곳’이라 생각하는 보수적인 청년세대도 있을지 모른다. 기성세대는 더하다. 가까이 있는 부모님께조차 떳떳하게 “오늘 모텔에서 놀다왔어.”라고 말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청년세대는 갈 곳이 없다. 집도, 편안한 휴식처도 없다. 학교는 취업과 스펙을 위한 기관으로 변하고 있고 취미 생활을 즐기기에 집은 부담스럽다. 바깥의 공간은 더하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모텔이라는 공간도 떳떳하게 갈 수 없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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